"인생이라는 것은 그 와중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한정되어 있소. 인생이라는 행위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은 한정된, 아주 짧은 기간이라오." p73, 태엽 감는 새 2

마미야 중위가 오카다에게 보낸 편지이다. 전쟁 중 외몽골 병사들에 의해 몽골의 평원 한가운데 우물 바닥에 버려졌을 때, 그가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재현이라도 하듯이 오카다도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 하루에 한 번 해와 우물과 자신이 일직선이 될 때 비치는 빛을 본다. 마이야 중위가 그 짧은 기간 - 기회 - 을 놓쳐버리고 보낸 40년 무상한 세월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듯이, 그것을 인정하고 재확인하려는 듯이, 도대체 모를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는 듯이 찾았다는 듯이.

우리는 신도 아니고, 궤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해도 아니고, 네발이 달려 해를 쫓아다닐 수 있는 우물도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우물 바닥으로 기어 내려가 그 빛을 한 번 볼 수 있는 인생이 주어져 있다. 작은 우물의 원을 통해 해를 볼 수 있는 것은 단 한 번 뿐이라 해도.

빛이 들어오기 전이든, 빛이 지나가 버렸든, 심지어 빛이 그렇게 비칠 때든, 뭘 좀 먹어야겠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p127,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속 단편처럼 뭘 좀 먹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마미야 중위도 오카다도 말하지 않았다. 내일 또 빛이 그렇게 들 것이라고. 어제 들었던 그 빛이. 그리고 난 어두운 것도 좋아한다. 빛을 추억하며 말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그 와중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한정되어 있소. 인생이라는 행위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은 한정된, 아주 짧은 기간이라오." p73, 태엽 감는 새 2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p127,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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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6-01-28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배가 고파지네요. 무라카미 하루키와 레이몬드 카버의 글을 읽어서인지. ㅎ

초딩 2016-01-28 17:0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넵. 빵이 먹고 싶어요. 생각해보니 점심도 빵 먹었는데. 그래두요. 저녁 맛 있게 드세요~

물고기자리 2016-01-28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우물을 접할 때마다 전 실망스럽고 슬퍼지는 것이 아니라 되려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요ㅎ 열심히 살라는 말보다 카버의 롤빵에 더 힘이 나는 것 같고요^^

누룽지를 끓여 먹으며 이 글을 읽고 있는데 아무래도 누룽지보단 초딩 님의 글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진 것 같아요ㅎ 맛있는 저녁 드세요:)

초딩 2016-01-28 17:39   좋아요 1 | URL
물고기자리님의 말씀에 너무너무 감사함을 느낍니다. 구수한 누룽지의 온기가 여기까지 전해지네여.

살리미 2016-01-29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을 때는 저 롤빵이 어떤 위안을 주는 건지 크게 실감하진 못했어요. 좀 어른이 되고나서 (?) 사실 지난 세월호 사건 이후에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땐 정말 엄청 다른 의미로, 그런 작은 위안이 정말 커다랗게 다가오더라고요. 책이 나에게 손 내밀때가 분명 있나봐요.

초딩 2016-01-29 01:05   좋아요 1 | URL
:) 우리 인간이 `생명체` 라는 것을 증거해주는 - 좀 쉬고 먹어야 모든 것들이 좋아지는 - 것이 요즘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제게.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서도 송곳처럼 이야기하고,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도 노동을 통해 정신의 맑아짐을 전하고 구요. `롤빵`을 건너주는 빵집 주인의 말들에 따뜻함이 느껴지면서 그자리에 털석 주저 앉고 싶더라구요. `위장`하지 않아도 될 곳을 찾은 것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