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좀 써야겠다. 어떤 준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써 내려가고 싶다. 북플에 쓰니 대상 도서가 있어야 하고, 그래도 현재 읽고 있는 책 중에 가장 유사도가 있는 책이 뭘까 하다 큰 고민 없이 한국사 책을 골랐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은 '예상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뭔가 써 내려가고 싶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그래 누구나 아는 것처럼 서프라이즈 큰 기쁨 또는 눈물이 맺히는 감동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일들이 남기는 것보다 더 깊고 굵게 상흔을 남기는 슬픈 일 당황 또는 황당한 일이 더 많이 화자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역사'에서 흥미롭게 또 주목해서 다루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잘 계획되고 물 흘러가듯이 흘러가는 것은 옛날에 어떤 나라가 있었고 치정을 하고 국민들도 잘 보살펴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 보다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거사가 엉뚱하게 중국의 위조 지폐범을 잡다가 탄로가 나서 실패했다는 6.10 만세 운동과 같은 것이 읽은 이들의 가슴을 조이고 또 어쨌든 그러지 말아야지 그래서 더 조심해야 지와 같이 사실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다짐을 하며 기억에 남게 하는 것 같다. 그 맥락으로 나도 그 소재를 이 글에 차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 중에서 '과거와 똑같이 하면서 이번만은 다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 어리석다'가 있다. 


이 문장을 볼 때 '아하의 순간'처럼 메모도 하고 회의나 발표 때 인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누가 그것을 모를까?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반복되는 것을 또 하고야 만다. 그것을 습관이라고 불러줘도 좋고, 중독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우리와 거의 모든 일은 그것을 반복한다. 사람이 달라지면 곧 죽을 때가 되었다는 비아냥의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일'의 충격파는 더 큰 것 같다. 또는 닭과 달걀의 문제처럼 실은 예상치 못한 일도 항상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충격적인 것만 우리의 뉴런이 시냅스와 함께 더 잘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좀 더 정교하게 이 글을 내려쓰기 시작한 동인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일'에 관한 것이라고 고쳐 써보자.

나는 중학교 때 자전거로 통학을 하던 코스의 어느 커브 길 언덕을 엉덩이를 치켜들고 올라가며 '시간'에 대해 깨우친 것을 평생의 좋은 '수단'으로 삼고 있다. 비밀스러울 만큼 나만의 비법도 아니고 알고 보니 이미 내 주위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고, 또 몇몇 책에서도 유사한 것을 다루었다. '힘든 순간도 어느 순간 과거가 되어버린다는 자각'이다.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상대적이고 그것이 우리의 뇌와 마음에서는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상대성보다 더 위력적인 것은 '지나간다'이다. 사실, 지난주에도 "난 지금 시간의 흐름을 자각하고 있어 바로 '지금' 그것을 인지했어. 지금을 붙잡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이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번에는 "그래 지금을 느낀 이것이 과거가 되겠지, 어디 정말 미래의 내가 이것을 기억하는지 두고 보자 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과거가 되었고, 그 대과거의 나를 과거의 나가 인지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그 모두가 다 과거이다. 그래서 나의 '수단'이라는 것은 아주 하기 싫거나 고통의 상황이 있으면, 이것이 모두 끝났을 때 나는 특정 행동을 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그것이 다 지났을 때 그 행동을 하며 '그래 봐봐, 모두 다 이렇게 지나가잖아. 괜찮아'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면서 나에게 더 확인을 준다. 

'모든 것은 지나갈 거야'.


내가 나의 이 '수단'을 말하는 것은 지금 내가 엄청난 충격을 받아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지금 그 '수단'을 한번 말해보고 싶었다. 어떤 연관성이 있든 없든. 아 그렇다.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일'은 그 시간은 지나갈 것이라는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아니 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나의 방법은 이미 내가 마주한 (face)일에 대한 대처법이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일'과는 미묘한 시간 차이가 있다.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일'도 다 지나갈 것이라는 대입을 해 볼 수 있지만, 그건 그래도 감정을 아주 빨리 추슬러도 몇 초의 시간이 걸린다. 빠르면 1초 내에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 맞닥뜨린 순간은 그것이 1초 또는 1밀리 세컨드라고 해도 굉장히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1은 뒤에 0이 많이 붙은 것처럼 확장되고 나에게 깊이 각인된다. 잠시 콜드플레이의 Fix You에 있는 각인 하다 Ignite의 단어가 간절히 떠오른다. 살아 있어 살이 붙어 있는 뼈에 각인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것이고 그 대상이 생명을 다해 죽어도 뼈에 남아 있을 만큼 깊을 것이다.

말하고 싶은 것은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방법은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일'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은 줄 수 있지만, 짧으면 1초이지만 그래도 그 순간의 어떤 위안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절망의 깊이를 더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날까?

그걸 이야기하려면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그의 질문은 "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주 작은 것 (양자)'로 이루어져 있을까? 분자도 모자라 원자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것들로". 그의 답을 내가 이해한 것으로 해석하면, 세상이 존재하기 위해서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이분법적으로 현상이 일어나면 세상은 금방 파멸되기 때문이다. 특정 확률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거나 일어날 확률이 낮아야 멸종과 같은 것을 막을 수 있거나 특정 상태로 편향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일은 확률로 일어난다. 코로나 확진자와 한 공간에 같이 있던 사람이 모두 감염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슈뢰딩거는 양자를 설명하고 그것에 이어 DNA까지 유추한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일은 '당연할 수 있는 결과'이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일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가질 수 있으니 모두 일어날 수 있고, 그나마 확률에 따라 덜 일어나거나 더 일어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는 더 일어나는 일에 익숙한 것이고, 덜 일어나는 일에 몹시 당황하고 고통받는 것이다.

잠시 내가 밥 먹고 사는 세상으로 오겠다. 2010년 초반에 기계학습에 대혁명이 일어났다. 단층 학습에서 다층 학습 그리고 그 한계를 깨버린 '역전파'이다. 입력으로부터 다층 학습을 통과해 나온 값을 보고 각 층의 계산을 바꾸는 것보다 거꾸로 답을 내는 마지막부터 거꾸로 올라가며 계산을 바꾸는 획기적인 (발상은 간단해 보이는) 방법이 역전파이다. 기억이 희미해서 역전파가 그 대 혁명인지는 100% 장담은 못하겠다. 아무튼 그래서 몇십 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기계학습이 약한 인공지능의 미래를 몇십 년 안에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여기서 약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Weak 약한은 아니다. 강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니 마음 먹는 것 빼고는 다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예기치 못한 일'에서 갑자기 내가 밥 먹고 사는 동네 근처로 옮겨온 이유는 0과 1의 기계 - 우리는 이 일차원적인 기계를 튜링 기계라고 한다 - 마저도 다층 학습을 하면서 인간을 따라와서 이제 넘어서고 있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그 층이 수십 층으로 알고 있는데, 이세돌을 이겼을 때 200여 차원인가였는데, 이미 그것보다 두 배 넘는 차원의 학습을 하는 컴퓨터들이 지금도 무시무시하게 학습하고 있다. 층이 많으면 뭐가 좋을까? 음, 판단의 과정을 더 잘게 쪼갤 수 있다. 인간의 시각을 다루는 뇌세포가 가장 많다고 하는데, 시각을 예로 들어보자. 층이 많다는 것은 인지 과정을 잘게 쪼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를 보고 있을 때, 낮은 차원은 경계만 처리해서 땅으로부터 연결된 나무와 하늘 두 개만 구분해서 땅과 나무의 형태만 보고 나무라고 결정하는 것이다. 근데 이것이 아주 잘게 쪼개지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1㎝ 크기로 쪼개서 한 층이 각각의 픽셀을 처리하고, 그것을 다음 층이 4개씩 합쳐서 처리하고 계속해서 추론해나가면 몇십 층 몇백 층이 지나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을 추론하는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보다 몇 배 몇십 배 많다면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내 눈앞의 소나무를 보고 "아 소나무구나"라 라고 생각하지만, 기계는 "아 소나무가 있고, 수령이 얼마나 되었고, 병충해를 얼마만큼 입었고, 주위에 서식하는 개체 종류가 이렇게 있겠군" 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보면 아이큐가 높은 천재가 일반인과 동일한 것을 감각하지만 엄청난 정보를 얻어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너무 길어졌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으로 다시 한번 돌아오겠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 예기치 못한 일과 연관시키고 싶은 것은 - 그 '층' 이다. 그 층을 잘 보면 랜덤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기계 학습의 식이라도 해도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고 알 수 없는 상수가 조금 더 있고 그 상수의 비밀은 '어렸겠다' 정도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편향을 막기 위한 임의의 선택이라는 부분도 있다. 컴퓨터가 사과를 구분하는데, 붉은색과 둥근 것으로만 치우쳐서 추론하면 앵두와 사과를 구분하는 데 집중하기도 할 것이고, 부사는 결코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그 고상해 보이는 기계 학습의 내부에는 임의의 선택이 있다. 그 임의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연이다.

그래서 더 놀랍다. 0과 1의 단순함이 그저 많이 모여 복잡했던 컴퓨터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우리처럼 확률도 기반한 연산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주 하는 '착각', '착시', '오해' 같은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일'은 이제 고소하게도 컴퓨터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율주행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중에 누군가 장난으로 표지판을 잘 못 돌려놓거나 잘못된 사인을 써두는 것도 판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과학자들이 고민한다. 어쨌든 컴퓨터도 인간의 거의 모든 것을 습득하고 있고 그것을 우리는 발전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진화라는 말도 쓰겠지만. 아무튼 그것을 발전이라고 한다는 것은 그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엄청난 비약일 수도 있고, 궤변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다시 슈뢰딩거로 돌아가면 '우연'이 이 세상사의 기본 원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나는 받아들이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 자문자답을 위해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아직은 분이 풀리지 않는다. 어느 날 공황이 찾아왔어요 처럼 나쁜 생각을 하는 뇌 쪽에서 좋은 생각을 하는 뇌 쪽으로 아무리 유모차를 밀어 봐도 이 '예기치 못한 일'에는 큰 소용이 없다.

이럴 땐 우뇌가 좀 힘을 써줬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을 지각하고 있는 좌뇌 때문인 것 같다.

우뇌가 힘을 좀 써주려면, 맨정신은 안되니 술의 힘을 좀 빌리기보다도 해야 한다. 아직 다 마시지 않은 1865 와인이 있으니 그걸 털어 넣어야겠다.


이럴 땐 조르바 같은 친구를 만나서 부러워하며 하하하 웃으며 조금 더 취하다 오늘을 아쉬워하며 쓰러져 잠들어 버리는 것이 제일 일 텐데 말이다.

그래도 너무너무 길게 썼으니, 과격한 용두사미는 말아야겠다.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보내야하지 어쩌겠는가.

아인슈타인이 반복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했지만, 천재인 그는 모르겠지만, 많은 우리들은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백 년이고 천년이고.

글로 이렇게 마구 쏟아내 버렸더니 당도 땅기고 술도 더 땅긴다. 1865가 기다리는 집으로 빨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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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1 23: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딩님 이페이퍼는 코로나 팬더믹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읽고 사유해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명포스팅^.^

초딩 2021-02-11 23:00   좋아요 1 | URL
ㅜㅜ scott님의 ‘명포스팅‘ 이라는 말에 ㅜㅜ 넘넘 기분이 좋고 영광입니다 ^^ 부족한 글에 멋진 칭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얄라알라 2021-02-10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전거를 엉덩이 들고 타며 ‘시간‘의 원리를 깨치신 것인가요?^^ 비슷한 경험한 분들도 있다고 적으셨는데, 저는 그게 뭔지 전혀 상상을 못하니 더욱 신비로운 경험으로 보이네요^^

초딩 2021-02-11 23:01   좋아요 1 | URL
현재가 과거가 되는게 인지되는게 신기했어요.
만약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식탁에 앉아 손 바닥으로 식탄을 두번 쳐야지.
그런데 ㅜㅜ 그 순간이 되어 식탄을 두번 치면, 현재는 과거의 미래였고, 과거의 현재가 과거가 된 것이 느껴져요. ㅎㅎㅎㅎ :-)

막시무스 2021-02-10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책에 재미를 붙이고 시픈데, 읽다가 실패하고 좌절한 책이 눈에 보이네요! 김대식교수님 책으로 다시 접근해보고 싶어집니다!ㅎ 즐건 설명절되시구요!

초딩 2021-02-11 23:05   좋아요 1 | URL
^^ 막시무스님~~~ 행복한 연휴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제나 파이팅입니다.

2021-02-11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2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2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