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드는 이유'

'염화시중'拈華示衆ᆞ'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가 전달됨의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곧 '마음에서 마음에 전한다'는 뜻이니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찌 부처와 가섭만 그러하겠는가 그대와 나,
꽃 한송이, 사진한장, 문장기호 하나로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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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한다는 것'
전체를 봐야한다. 이런 저런 다양한 모습, 때론 비슷해 보이는 조건에서 어긋나는 듯 보이는 반응을 통해 나타나는 요소들을 종합하여 대상의 본질적 모습에 접근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래야 대상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오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꽃을 보는 방법으로 대부분 전체를 한눈으로 본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역으로 부분에 집중하여 보면 전체로 볼때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다.


사람도 이와다르지 않다. 전체를 보아야 당연하지만 그 전체자리를 보기 힘들 때에는 특정 부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좋아보이는 모습, 대상의 장점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모습에 집중하여 대상과 교류ᆞ공감을 통해 소통한다면 대상의 본질자리로 나아가는 빠른 길이 될 수 있다.


내가 그대의 본질로 들어가기 위해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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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8-04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키 작은 야생화를 집중해서 볼 때, 이런 꽃이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는. .음. . 한 사람의 모든 면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나의 관점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길로 가기 마련이니까요.
관계의 시작은 관심이고, 어떤 면이 보인다는 것은 대상과 소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본질까지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지는 언제까지 집중해서 바라보느냐에 달려있다 보면 될까요?

무진無盡 2015-08-04 01:05   좋아요 1 | URL
어디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관계성립 자체가 달라지기도 하지요. 하여, 난 상대에게 무엇이고 싶은지를 보고 확인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선을 넘는다는 것
풀잎 위에 앉은 물방울은 고요 속에 있다. 고요가 흐트러지는 순간 위태로워진다. 자칫 자신의 존재가 무너질 수도 있다. 선을 넘지 않는 균형감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만의 범주를 정해두고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고 사는 이에게 이 선을 넘는다는 것은 강한 저항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누군가의 선을 넘고자할 때는 상대의 마음상태를 잘 살펴야 한다.


앞서지도 말고 그렇다고 한발 물러서서 애써 확보한 거리를 포기해서도 않된다. 예민하기 그지없는 선의 미묘한 움직임에 촉수를 두고 스미듯 나아가야 선을 넘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이 감정의 조절이다. 오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조그마한 변화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넘치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균형이 무너지고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 애쓰는 수고로움이 과잉감정으로 상대를 도망가게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감정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틀렸다. 이는 관계의 깊어짐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서둘지 않을 것이다. 멈추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대와 나 이와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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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사회 - 불평등은 어떻게 나라를 망하게 하는가
최환석 지음 / 참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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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 되고 싶은가?

언제부턴가 사회적 관계를 구별하는 말로 갑과 을의 관계로 파악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어떤 사회적 관계에서나 사회구조적 또는 심리적으로 보다 유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을 의 자리에 올리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의 위치로 상정하여 둘 이상의 사회적 관계를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갑을 관계는 사회구성원으로써의 개인적 관계의 범주를 넘어서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간에도 확대 적용하여 이 사회적 관계를 성명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갑질이 포함하는 사회적 관계의 불평등을 조장하거나 인정하는 것과는 별도로 이런 말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고 못하고를 떠나 너무도 자주 그리고 쉽게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최석환의 갑질 사회는 바로 갑을 관계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더불어 이를 기반으로 한 역사적 관계를 살펴보고 미래의 전망까지 내놓는다. 저자는 왜곡된 성과주의에서 뛰쳐나온 사회적 신분 서열제의 산물이라고 보는 이 갑질하는 사회적 현상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갑을 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적 관계는 현대사회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사의 어느 시기였던지 기득권 세력이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을 조장하며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한 것이며, 이는 신라의 기득권층은 당나라에, 고려의 기득권층은 원나라에, 조선의 기득권층은 일제에 나라를 팔아넘기며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했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기에 이른다.

 

이는 1퍼센트의 이익을 위하여 나머지 99%의 이익을 희생시킨 것이며, 99%보다 1%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불평등은 결국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이러한 불평등을 용인하는 사회가 우리의 현주소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불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갑질 사회를 용인하는 것은 현주소의 우리들뿐 만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모습도 결정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것이 가능하게 되는 주요한 이유로 정치를 꼽고 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며 현실정치에 대한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현실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를 잘 사용해 올바른 정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갑질 사회에서 저자는 갑질 할 수 있는 권리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 갑질하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더 밝은 사회로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개인들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을에서 갑으로의 존재 변화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갑을 관계의 해소에 필요한 개개인의 역할에 주목하여 현제와 미래 우리사회의 전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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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줄 수 있는게 없어요"
상대를 지극히 배려하는 마음이다. 더불어 스스로 가슴에 상대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까만밤 길어진 목으로 달을 기다리는 달맞이꽃이 먼동트는 새벽 태양을 기다리는 해바라기의 마음과도 다르지않다.

'주는 게 없어도 받는 게 많다는 것이 가능하다' 는 이 속 깊은 정은 시간의 겹이 쌓여 깊어진 마음일 때 비로소 알게 된다.

"꽃에 물든 마음만 남았어라
전부 버렸다고 생각한 이 몸속에"
-사이교

이제, "그대에게 줄 수 있는게 없어요"라고 안타까워하는 그대 마음자리 깊은 곳에는 꽃물든 깊은 정으로 가득채워질 일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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