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샹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씨네샹떼 - 세계 영화사의 걸작 25편, 두 개의 시선, 또 하나의 미래
강신주.이상용 지음 / 민음사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라딘 서평단의 어느 분께서 "영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쓰셨다. 난 이 제목을 살짝 비틀어서 영화는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고 적어 본다. 내가 그 분에 대해 어떤 감정이나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가끔 책을 읽을 때마다 호불호가 갈린다 생각을 한다. 다른 서평단 분들은 이 책에 대해서 좋았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솔직하게 내게는 별로였다. 일단 나는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터뷰가 주를 이루는 책이라든지, 혹은 대담형식의 강의를 책으로 옮겨놓은 것이라든지 하는 형식의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난 강신주라는 철학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철학적 책읽기와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에 대해서는 꽤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팟캐스트를 통하여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상당히 불편하게 느꼈었다. 김어준하고 친해서일까? 그의 말투와 화법은 지극히 마초적이며,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니 이 책이 재미가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에 몰입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고전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걸작선 25가지 중 내가 본 것은 채 5편이 되지 않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떠들어댄다고 해도 내가 몰입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다 좋다고 말하는 책에 몰입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영화는 확실히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만약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을 봤다면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 앉아서 토론을 한다면 재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지도 않은 영화를, 그것도 자기들이 잘 났다고 온갖 현학적인 말들로 기록하고 있는 책을 보고 있으면서 도대체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장담컨대 난 이 책을 앞으로 펴보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을 봤을지라도 말이다.

 

  영화에 대해서 플롯을 이야기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남들에게 무엇인가 나의 유식함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재미있게 보고, 돈이 아깝지 않다, 혹은 이 영화는 잘못 택한 것 같아 정말 돈이 아까워 이 정도의 평가만 내린다고 할지라도 영화를 즐기는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 않을까?

 

  굳이 재미도 없는 고전 영화를 걸작이라고 굳해서 보고 싶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잘났다고 떠드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의무이기 때문에 읽었을 뿐이고, 이 서평을 마무리한 후에 신나는 코미디 영화나 봐야겠다.

 

  영화를 읽으려고 하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6-2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서평을 쓰기 위해서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를 읽게’ 됩니다. 한 번 본 장면을 다시 봐야 영화 내용이나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영화서평을 작성할 때가 제일 어렵습니다.

saint236 2015-06-29 22:38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고 좋아서 감상을 적어야 하는데 감상을 적기 위해 영화를 보니 재미보다는 부담감만 남지요
 
[노동여지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노동여지도 - 두 발과 땀으로 써내려간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의 풍경
박점규 지음 / 알마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2010 - 4110

  2011 - 4320 

  2012 - 4580

  2013 - 4860

  2014 - 5210

  2015 - 5580

  2016 - ?

 

  위의 숫자가 나타내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가? 앞의 숫자는 연도를 나타내는 것이고, 뒤의 숫자는 최저 임금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2013년까지 최저임금 수준이 5천원을 넘지 못하다가 2014년 갑작스럽게 5천원의 벽을 돌파했다. 이는 순전히 박근혜 대통령의 공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억력이 약간이라도 좋은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2012년 대선후보 시절에 최저임금이 얼마냐고 묻는 사회자의 말에 "한 5천원 넘나요?"라는 말을 했다가 된통 당했던 일을 말이다. 아마도 그 일이 마음에 걸렸던지, 그녀가 대통령이 되어서 최저 임금을 5천원 넘게 해 주셨다. 2013년까지 200~300원대 사이에서 오르던 최저임금은 2014~2015년 사이에는 자그만치 300~400원 사이에서 오르게 되었다. 물론 퍼센티지를 따지자면 비슷하겠지만 어찌 되었건 이만큼 오르게 된 것은 각하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각하의 은총이 너무 과하다 생각한 경영계에선 2016년 최저임금을 올해와 동일한 5580원으로 하자고 한다. 더 이상 올리면 기업해 먹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아마도 그들은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천명하셨던 MB 시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번면 노동계에서는 1만원으로 대폭 올려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경영계의 말대로 4420원을 더 올려준다면 이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깎아먹는 일이 될까? 문든 그런 궁금증에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기로 했다. 2015년 비정규직을 850만이라고 잡았는데 이 비율이 전체 노동인구의 45.2%라고 한다. 그럼 단순 계산으로 폭 넓게 잡아도 1800만이 넘지 않을 것이다. 30일 풀로 하루 8시간 일한다고 계산해보자

 

  1800만 * 4420원 * 30일 * 8시간 * 12달 = 229조 1328억원

 

  1년 동안 229조 1328억원이 추가로 더 소요된다는 말인데(이것은 말 그대로 단순 계산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맞는 것은 아니다.) 과연 이것이 기업들에게 힘든 일일까? 2013년 자료에 의하면(2015년 자료를 못찾았다.) 우리나라의 외부 감사를 받는 법인 23000개의 사내 유보금이 1102조 4천억원이란다. 쉽게 말해서 투자도 안하고 그냥 자기 지갑에 넣어둔 돈이 1102조 4천억원이라고 하는데 2014년이나 올해에는 더 늘어났을 것이고, 내년에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2013년 사내 유보금만 가지고 최저임금 1만원을 주는 것이 단순계산으로 4년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자는 말이냐? 먼저 파이를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고 있는 기업의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시대,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죽을 때까지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시대, 3포 세대가 아니라 5포 7포인 시대에서 과연 우리의 노동은 안녕한가? 이 책은 우리에게 이것을 묻고 있다.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전국 각지의 노동 현장을 돌면서 작가는 끊임없이 이 질문을 묻는다. 그리고 안녕하다는 답을 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돌아오는 거의 모든 대답은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MB처럼 젊은이들이 쓸데 없이 눈이 높다고 눈을 낮추라고 나도 해봐서 안다고 이야기를 할 것인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지 않는다. 다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간혹, 정말 간혹 우리의 노동을 안녕하게 만든 사람들을 소개해줄 뿐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희망이 되고 고맙고, 감동이 된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을 이야기하면 빨갱이가 된다. 못된 놈이 된다. 직업적인 데모꾼이 된다. 노동 운동 출신 국회의원드링 몇명이나 배출된 이 시대에 말이다. 이 시대에 우리의 노동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우리는 어떠한 노동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인가? 진지하게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혐오와 수치심]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9년 5월 23일!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날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속상한 날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승리의 날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가운데 2009년 5월 23일이 어떤 날인지 제대로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009년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날이다. 전직 대통령이, 그것도 광우병의 역풍을 명박산성으로 간신히 막았던 현직 대통령과 항상 비교가 되던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건 과정 중에 담배 한 개비 찾다가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 이를 두고 여러가지 말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그가 가족들의 잘못 때문에 뛰어 내렸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그가 검찰 조사를 받다가 자존심이 상해서, 어떤 이들은 언론의 비열한 플레이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덮어질 것이라는 점을 알고 계획적으로 뛰어내린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직 대통령에게 엿먹이려는 고단수의 정치적인 방법이었다고 한다. 그의 투신을 두고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한데, 난 이 책을 통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관해서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논리가 작동했고, 이 논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퇴임한 후에 그는 꽤 존경받는 대통령이었다. 누구처럼 국가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을 막지도 않았다. 아방궁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는 동네 청소를 하고, 농사를 짓고, 손주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막걸리 한사발 마시고, 담배 한개피 피우고 돌아오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존경을 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대통령에 비하여 너무나 소탈했기 때문이리라. 그 또한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자부심도 오래가지 못했다.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정치인이 검찰 조사 받는 것이야 무엇이 대수겠는가? 김대중 대통령도, 김영삼 대통령도, 노태우 대통령도, 전두환 대통령도 모두 조사를 받았고, 형을 구형받았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곧 퇴임 후 검찰 조사로 직결된다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걸어야할 통과 의례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가 왜 뛰어 내렸을까? 왜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잔인한 언론의 플레이 때문이리라.

 

  당시 검찰 조가사 신문을 통하여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원색적인 제목의 기사가 난무하기도 했다.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 논두렁에서 1억짜리 시계를 주우러 봉하마을로 가자 등등의 상식 이하의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자녀들에 대한 집중 포화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느꼈을 감정은 무엇이며, 그의 측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이 무엇일까? 그가 느꼈을 감정은 수치심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측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은 혐오감이리라. 이유없는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역시 빨갱이, 좌파라는 말로 그를 공격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너는 형편없는 사람이다,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혐오감과 여기에서 느껴지는 수치심 이 두 가지가 상승작용을 일으켰고, 결과는 우리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났다. 물론 오늘까지 일베는 그에게 수치심을 주면서 혐오감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그만의 문제였다면 좋겠지만,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혐오감과 수치심, 이를 통한 차별화와 이등국민화, 편가르기는 계속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지방 대학생에 대한, 혹은 같은 대학이라도 외국인 전형이냐 농어촌 전형이냐라는 문제들로 혐오감과 수치심이 난무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적인 감정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법이라는 공적인 가치관에도 침투하기 시작한다. 상대방 진영에 대한 정치적인 공격의 밑바탕에는 혐오와 수치심이 자리잡고 있다. 상대방에 대해서 수꼴, 좌빨이라는 말, 어린 것이, 꼰대 등등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상대방을 법적으로 고소하고, 조롱하고, 처벌하려고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법은 혐오와 수치심으로 작동하면 안된다.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가치관 속에서 집행되면 안된다. 그런 법은 없느니만 못한 악법이 된다. 제발 법관들이, 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한번만이라도 읽고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식의 언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삐걱!!

 

  "안녕하십니까? 스타벅스입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나를 반기를 점원들의 활기찬 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계산대 앞에 서면 여러가지 질문을 받는다. "무슨 음료를 하시겠습니까?" "아메리카노요." "차가운 것인가요 뜨거운 것인가요?" "뜨거운 것이요." "사이즈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란데...아니요 벤티로 주세요. 참 샷 추가해 주세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벤티 맞으신가요?" "예! 시럽은 필요 없습니다." "더 필요한 것 없으신가요?" "없는데요." 주문을 하더 내 눈에 순간 마카롱이 보인다. '저걸 집을까 말까? 그 옆에 보이는 카스테라를 집을까? 베이글은 어떨까? 그런데 스타벅스는 왜 샤벳은 없는 것일까?'

 

  어느 순간 스타벅스는 내 옆에 아주 가까이 와 있다. 예전처럼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비단 스타벅스일뿐이랴. 스타벅스로 이야기를 하지만 카페베네도 있고, 이디야도 있고, 할리스도 있다. 잠시만 눈을 돌리면 여러가지 이름의 커피숍이 많이 보인다. 사이즈도 각양 각색이다. 난 아직도 벤티와 그란데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물론 크기가 다르다는 것은 알겠지만 굳이 벤티와 그란데를 구분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 톨과 그란데가 무슨 차이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느새 우리는 그 이상야릇한 단어들을 아무런 고민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왜 스타벅스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가? 음식이라는 문화가, 말과 의미가 어떻게 우리 삶에 일상적으로 들어왔는지를 밝히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가장 자주, 그리고 잘 보여주는 것이 그카벅스 이용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 윗 세대들만 해도 혀를 굴리기조차 힘든 그런 말들을 아무런 망설임없이 너무나 능숙하게 사용한다. 과거에는 커피를 코피로 발음했는데 요즘은 커피로, 그리고 더 이국적으로 카페 혹은 카베로 발음한다.

 

  이 책이 소개하는 칠면조 요리, 마카롱, 와플 등등 우리 귀에 이미 친숙한 단어들도 사실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문화가 섞이면서 발전하듯이, 음식 문화도 여러나라의 것들이 섞이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파스타는 다 스파게티였지만 요즘은 그렇게 말하면 무식하다고 취급을 받는다. 이미 파스타는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음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음식의 언어와 문화는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아니라 각 나라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우리 나라의 고유한 음식은 전주 비빔밥입니다, 김치입니다, 된장찌개입니다 등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이미 음식은 물론 문화도 섞여 버리고 있고, 개방적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그것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유 음식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이미 아이들의 입맛은 과거의 김치를 멀리하고, 된장찌개를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다. 난 우리나라의 고유 음식은 김치이고, 이것은 발효학적인 면에서 매우 발달되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입니다를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위행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음식도, 음식을 지칭하는 언어도 너무나 쉽게 개방적이 되어 가는데 우리는 그 문화들에 대해서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이 다 외국에서 온 것이고, 아직도 카페라떼가 정확하게 어떤 의미이고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문화의 개방이란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음식의 언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언어를 추적하면서 그 음식들이 어떤 역사적인 맥락과 문화적인 교류 속에서 탄생하고 전파되고 발전되어 왔는지를 말하면서 우리에게 개방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다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사족이라는 생각때문인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신경이 거슬린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만인생 2015-06-1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도 신자유시대인 것 같습니다. 글이 책을 잘 그려 줍니다.

saint236 2015-06-13 10:54   좋아요 0 | URL
신자유주의가 아닌 것이 없지요. 융합은 필연이지만 무분별한 융합은 필망이겠지요.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 명작을 모방한 명작들의 이야기
카롤린 라로슈 지음, 김성희 옮김, 김진희 감수 / 윌컴퍼니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미술 관련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번씩 해본다. 과연 이런 방법 말고는 없는 것일까? 커다란 그림 몇장이 나오고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형식의 책은 꽤나 좋은 구성이겠지만 나처럼 그림보다는 그 그림이 그려진 배경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구성이다. 그림 몇장 넘겨보면 어느새 책이 끝나기 때문이다.

 

  미술책의 한계인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찌되었던 이 책이 주인을 잘못 찾은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 이 책이 보고 싶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 이 책은 그렇게 유의미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대가들의 그름을 베끼면서 표현방법을 배우기 때문이 아닐까? 위대한 화가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고 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도 위대한 작가들의 작푸믈 베껴쓰거나 모방하면서부터 글쓰기 연습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책들은 그렇게 서로 닮은 그림을 모아 놓았다. 그 사람이 분명 이 그림을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음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사기에서 복사해낸 듯이 똑같은 그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그림이다. 자기 그림의 원본이 되는 그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자기 나름대로 비틀어 본다. 그들의 비틈은 꽤나 유쾌하기도 하고, 때론 불편하기도 하고, 때론 난해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그림을 베낀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모방과 창조의 바람직한 관계가 아닐까? 이 책을 보면서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특허권에 관한 내용들이다. 특히 몇 년전에 그리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과회사와 세별의 싸움 말이다.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이놈이다. 서로 닮아 있고, 아식플은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소프트 웨어야 워낙 차이가 나지만 그들이 다투는 것은 소프트 웨어보다는 하드 웨어니 가운데 버튼이 동그라미냐 네모냐, 그리고 버튼이 하나냐 세개냐 뭐 이런 차이가 있지만 멀리서 보면 같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미친듯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쪼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책에 나오는 그림의 작가들이 한 시대를 살았다면, 이 시대에 다빈치와 뒤샹, 앤디 워홀이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서로 특허권을 주장하면서 법정 다툼까지 갔을까? 법정다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특허권보다는 자기 그림을 모독했다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까?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은 어쩌면 원작자들이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아야 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이 책을 표현하자면 "림은 좋지만 텍스트는 부족하다. 그래서 주인을 잘못 찾은 책 같다."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4-2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의 서평을 읽고나니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확인해보고 싶군요. 저도 그림만 배치하고 부연 설명이 적은 미술책을 선호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