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 나왔을 때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썼을까 좀 놀라웠다.

 

이책은 우선 소개 글에서 '맨스플레인'이란 신조어를 소개하고 있는데, 일명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미국에서는 2010년 <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단어로 꼽혔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실리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남자들은 한 번쯤 자신도 그러지 않는가 뒤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그렇게 말하니 나도 일생 살면서 이런 남자 솔찮이 만나 봤다. 아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자들 거의 대부분 이런 기저가 있지 않을까? 가까이는 울아버지가 그랬다.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몰랐던 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가 술을 자시고 늦게 들어오시는 날은 숨기 바빴다. 아버지가 술 드시는 날은 어김없이 우리를 붙들고 뭐라고 뭐라고 횡설수설 하는 날이 바빴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름 자식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아버지 나름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걸 맨정신으로 못하고 꼭 술을 드셔야 했던 것인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건, 한 20 몇년 전 스팸 전화 한 통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땐 핸드폰이 상용화되기 전이었으니 그런 전화를 걸러낼 수도 없는 일이고, 난 늘상 그런 전화가 오면 쌀쌀맞게 관심없다고 하곤 일방적으로 끊는다. 그래야 차후에라도 그런 전화를 안 받지 않겠는가? 그런데 누군지 모르겠는데 내가 쉽게 전화를 끊지 못하도록 계속 아양을 떨고 깐족거리는 것이었다.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싶어 조금 심하게 해서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쌍욕을 하고 끊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쌀쌀맞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성격이고 보면 그쪽도 기분은 어지간히 상했나 보다. 잠시 후 전화가 왔는데 이 인간 말하는 게 좀 웃겼다. 다짜고짜로, "야, 너 이빨에 무좀 났냐?" 그러는 것이 아닌가? 순간 하도 말 같잖아 역시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는데 약간 겁이 더럭났다. 이거 사이코 겸 스토커면 어쩌지?   

지금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넌 어지간히 재수 무좀 난 사람인가 보구나. 그러니까 알지도 못한 사람한테 성질난다고 이러고 있지?" 그랬으면 날 죽이려 들었을까?

 

나의 20대의 마지막 시기를 교회 청년부에서 잠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성경공부 조장이 나 보다 한 살 많은 소위 말하는 교회 오빠였다. 물론 난 나 보다 나이 많다고 아무나 오빠라고 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 형제님이야 말로 맨스플레인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땐 그를 함부로 맨스플레인으로 분류할 수는 없었고 조원의 이야기를 들어 준답시고 어느 정도 듣고 있다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딱딱 정의를 내려주고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는데 그게 왜 교회 오빠처럼 느껴지지 않고 앞서 말한 미스터 스팸의 이빨에 무좀 난 것처럼 느껴졌는지. 그가 잘 쓰는 언어 패턴이 있는데, "뭐 뭐하면 참 좋겠어."란 말인데, 그래서 '형제님은 마음 먹은대로 그렇게 잘 사나요?'라고 묻고 싶었다. 하긴, 별로 못 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도 그 형제님은 훗날 청년부 회장까지 했으며, 자신이 원하는 여자와 결혼했으니까. 그것도 나랑 동갑내기 같은 성경공부 조원과. 그 친구가 당시 청년부 형제들에겐 나름 인기가 있었으니  그 형제님 입장에선 챙취한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어쨌든 나하고는 잘 안 맞았다.

 

또 하나의 맨스플레인의 전형은 애석하게도 내가 여기에 가끔 소개해 왔던 나의 글 공부 선생님이다. 난 이분을 일생 두 번 만나 공부를 했었는데, 뭐든 한 번이면 족하다고 내가 이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 공부한 건 정말 나의 실수이긴 했다. 이 선생님을 다시 뵙기 전엔 좋은 점만을 기억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내 글을 보고 잘 쓴다고 칭찬했던 거라던지, 쫀득쫀득 찰진 언어를 구사하는 거라던지, 수강생과 이물없이 지내는 것에서 오빠 같은 느낌까지. 다시 뵈면 이런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나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다시 뵀을 때 분명 그런 면들이 여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한 것들과 마주했을 때 나는 조금은 당황했다. 그건 그 선생님에게 실망했다기 보다 사람의 좋은 면만을 기억하고 있는 내 자신이 바보 같달까? 

 

선생님은 산의 정기를 받고 사셔서 그런지 기가 세셨고, 무엇보다 좌중을 압도하는 언변은 사실 알고 보면 맨스플레인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남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나를 포함한 수강생 전부는 거의 정자세로 듣고 있어야만 한다. 난 이 선생님이 이렇게 살다가 돌아가시겠구나 했다.

 

또 한 사람은 나의 한창 시절 나와 함께 연극을 같이 했던 N이다. 난 거기서 글만 썼지만 그는 스텝부터 시작해서 늦게 서울 예전을 들어가 팀장과 연출까지 담당했고 학교에선 회장도 했으니 나름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내가 정이 많아 그런지 아니면 녀석이 복이 있었던 건지 그래도 팀이 해체되고도 가장 늦게까지 연락하고 지내기도 했다.  

 

올해 봄이 막 시작될 무렵, 난 또 무슨 신기라도 들린 것처럼 갑자기 다시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 뭔가 연극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는 길을 보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내가 아는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서 연락을 하고 거기에 당연 N이 빠질 리가 없었다. 그동안도 그는 나만 만나면 누나가 글만 쓰면 나머진 걱정하지 말라고 한마디씩 하는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동안은 글 쓸 꺼리도 의욕도 없었으니 그런 말을 하면 그냥 고맙다고만 하고 넘기곤 했다. 그런데 녀석의 말을 지키게 해 줄 기회가 비로소 왔으니 내가 어찌 연락을 안하겠는가?

 

만나서 내 계획과 의도를 설명했더니 처음엔 흔쾌히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중엔 이런 말도 했다. "누나가 내가 싫다고 팀에서 나를 잘라버리기 전까지 저는 절대로 나 스스로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 얼마나 신의에 찬 피도 안 섞인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인가? 그 말을 그동안 두 번쯤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나도 감동 먹었었다. 그래 너 밖엔 없어. 너 믿고 한다. 이 정도면 세상에 둘도 없는 오누이지간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는 가면갈수록 뭔가 처음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어느새 눈빛이 달라져 있었고 나를 도와주겠다는 본말과 달리 점점 꼬장을 부리는 것이심상치가 않았다. 물론 처음엔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처럼 하더니 나중엔 자기가 하려는 것이 정석인 양 거기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을 기세다. 

 

물론 그 일은 나중에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설혹 그렇게 되지 않았어도 녀석과는 같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도와주겠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며, 그것을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또한 나를 위하는 척 하면서 결정적일 때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는 그것을 보면서 내가 얘를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시절 나는 그가 뭔 일만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와져 사고칠 것만 같아 윗선에 계신 분께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얘 좀 말려 달라고. 마침 그때가 생각이나 그 얘기를 들려줬더니 녀석은 실실 얼굴을 쪼개며, "그래서 그때 제가 그 말을 들었던가요?"한다. 그래서 잘은 기억은 안 나는데 좀 순해졌던 것 같았다고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내가 누구 말을 그렇게 듣고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하며 말끝을 흐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난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녀석을 잘라버려야 했다. 물론 녀석도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그렇게 의리와 신의로 똘똘뭉친 사람처럼 잘난 척 하더니 시쳇말로 개쪽 당하고 말았으니. 연출이 작가 보다 높다고 누가 말하던가? 연출이라고 시작도 하기 전에 갑질부터 하는 것도 꼴 사나웠고, 평소 때와 일할 때가 한결 같아야 하는데 N은 그것이 일치하지 않았다.

 

문득 그를 보면서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 그의 슬하에서 딸이 자라고 있는데 안 그래도 보수 꼴통 성향이 다분한 녀석이 앞으로 딸과 좋은 부녀지간으로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세상엔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들도 많을 것이다. 전에 없었던 단어로 일반화시키는 것도 위험할 수도 있고. 하지만 한번쯤 맨스플레인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이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인지 아닌지 돌아 볼 필요는 있을 것 같고, 맨스플레인은 꼭 남자들에게만 있을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라고 본다. 여자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어떤 프레임으로 볼 것이냔데 저 책의 저자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 것 같다.

 

남자들이여, 제발 듣는 귀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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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5-2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남자라고 다 그런건 아닐거에요..
아시겠지만 남자 인간들도 여자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류가 가지가지입니다
잘 골라서 사용하세요 ㅋㅋ

stella.K 2015-05-24 18:1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데 써 놓고 보니까 좀 거칠 게 쓴 것 같군요.
그러게요. 남자들도 가지가지일텐데 너무 여성적 편향으로
쓴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무튼 말씀 새겨 듣도록 하겠습니다.^^

cyrus 2015-05-2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의 절반은 여자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아요. 우리 아버지가 그래요. 어머니가 무얼 하라고 제안을 하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본인 생각대로 행동을 해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하는 제안은 거의 다 좋은 쪽이었는데 아버지가 그걸 가볍게 넘기는 바람에 손해를 본 적이 많았어요.

stella.K 2015-05-24 18:1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부인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단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니까.
넌 이 담에 결혼하거든 부인 말 잘 들어라.^^

cyrus 2015-05-24 21:10   좋아요 0 | URL
누님 말씀하시는 거 우리 엄마 같았어요. 엄마가 아빠랑 부부싸움 하고 나면 항상 하는 얘기거든요.. ㅎㅎㅎ

hnine 2015-05-24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공부 선생님이란 S 선생님을 말씀하시나요??
저는 성질이 더 못돼서 그런지 남자뿐 아니라 가르치려는 말투로 말하는 모든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요.

stella.K 2015-05-24 18:13   좋아요 0 | URL
네.ㅋ
저도 그래요. 거의 경멸하죠.
저 글 쓴 거 좀 보세요.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는데
그것을 반증하고 있지 않습니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