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이란 소설가로부터 촉발된  신경숙 소설의 표절 문제는 그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 문단에 고착화된 문제가 무엇인가를 더불어 알게하는 개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작년에 읽었던 이명서의 소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를 통해 우리나라 문단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하지만 이 책은 작년에 처음 나왔던 책이 아니고 오래 전에 나왔다 최근 개정판이으로 다시나왔다. 그러니까 오래 전부터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우리 문단을 성토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나도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판도라의 상자을 연것처럼 혼란스러워 오히려 이 책을 비판적으로 봤던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나의 태도는 우리나라 문단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성스럽게 본 나의 무지의 소치였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그 세계를 동경만 하면 그런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나 같은 무지의 속박을 깬 도끼 같은 책이기도 한 셈이다. 또한 그 책을 통해 문단계도 예외없이 권위주의적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사실 난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제가 됐을 때 신경숙도 신경숙이었지만 이 이응준이란 작가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계도 층층시야일 텐데 그 무림고수의 세계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기란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격월간지 <악스트>를 읽다가 난 또 이와 비슷한 작가를 한 명 더 발견하게 됐다. 그는 다름아닌 커버에 나온 천명관이다. 그는 이 잡지를 통해 우리 문단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요즘 신인들의 글을 보면 다들 너무 똑똑하다. 이미 등단에 나올 때부터 준비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써야 등단을 하고 어떻게 써야 문학상을 받는지 영악하게 알고 있다. 나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취향이 공장에서 생산된 것처럼 다 비슷비슷하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한 주머니에 다 담아도 빠져나오는 송곳하나 없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결국 선생님들의 시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시스템이 반백년 넘게 문단을 지배하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봐도 나쁜 짓이다.(95p) 

 

이런 글을 읽으면 적어도 이 범주안에 속하는 작가들은 대입을 위해 논술학원을 비롯해 인성학원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자격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다지 나을 것이 없으니까. 그리고 천명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디선가 이런 작가를 키우는 집단과 그 집단의 우두머리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미 각 일간지의 신춘문예는 입신을 위한 신 과거제도가 된지 오래다. 어떤 문단계 문인이 작가지망생을 모아 도제식으로 가르쳐 가장 많은 신춘문예 입상자를 냈다는 말이 공공연한 말이 아니다.   

 

어쨌든 꼭 천명관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쩌다 지인들과 만나 얘기를 해 보면 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하기가 주저하게 된다는 얘기를 심심치않게 하게되곤 한다. 재미도 없는데다 뭔가의 자의식에 빠진 듯해서 선뜻 선택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그래도 계란으로도 과연 바위가 깨어지는지 요즘엔 그나마 한 두 작가는 애정이 가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 책 값이 만만치가 않고 물가가 오르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문화비고 그중 도서구입비를 지출목록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형편이고 보면 그 작가가 아무리 빼어난 문체를 자랑한다고 해도 일반독자에게 선택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그렇게 똑똑한 글을 쓴 신인작가들에 대해 뭐라고 하기가 미안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한 주머니에 들어가건 안 들어가건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겠는가? 그리고 일반독자들의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동정론이 문학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부추겨 왔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작가들 스스로가 갖는 묘한 사고들이 문제를 크게 만들을 것이다. 이를테면 천명관은 말하는 문학을 종교로 보는 숭고한 신념 같은 것들. 근대 시대만 해도 이런 생각이 먹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서 이런 생각을 고수하기란 얼마나 전근대적인가? 그는 말한다. 문학에 숭고한 신념은 필요치 않으며 오히려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고.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캐롤 오츠의 <작가의 신념>이란 책을 인용하기를 좋아한다. "문학에 예술만 있고 기술이 없다면 개인적인 일일뿐이다. 반면에 기술과 예술이 없다면 그것은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의 말을 더 들어 보자. 그는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는 건 문학상 제도에 있다고 했다.

"대부분 단편에 주는 상인데 상은 여러 개이지만 문학상을 평가하는 기준은 획일화 되어 있다. ...... 매 시즌 문학상을 놓고 겨루는 이 리그에선 장편 보단 단편이, 스토리 보단 문장이, 서사 보단 묘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의 취향과는 괴리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 문학상에 대한 비판은 천명관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소설가 방현석도 <명작의 탄생>이란 책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요즘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들을 뽑는 기준이 아예 다 똑같아요. 특징도 없어요. 저는 그게 걱정이고 문학 발전의 저해요인이라고 봐요. 우리나라 등단제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아주 독특한 제도이죠. 글 쓰는데 무슨 라이선스가 필요해요? 무슨 영업허가서도 아니고.(225쪽)" 

어찌보면 이 문학상에 대한 권위의식은 우리나라 문단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천명관은 말한다. 

"처음 문단에 나왔을 때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한적이 있다. 벙어리 삼 년에 귀머거리 삼 년, 시집살이 한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덕을 쌓으라 처신을 잘하고 인맥관리를 잘하라는 말이다. 한국사회가 대체로 그런 분위기라는 건 알고 있지만 문단조차 그럴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을 하고 보니 문단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문단마피아라고 부른다. 출판사와 언론사, 그리고 대학이 카르텔을 형성해 시스템을 만들고 작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작가는 더 이상 문단의 주인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주인이다. 이런 의견에 대해 다들 펄쩍 뛰며 노발대발할 것이다. 하지만 권력은 언제나 그 권력 자체를 부정해왔다. 십수 년 전에 문단에도 권력논쟁이 있었다. 그때도 문단의 권력논쟁은 대표적인 가짜 논쟁이라며 권력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심사 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할 때마다 그 실체를 경험한다. 

지금의 문단 시스템은 독자와 상관없이 점점 더 대학에 종속되어가고 있다. 문창과가 없으면 문학도 사라질거라고 얘기들을 한다. 선생님들은 모두 대학을 근거지로 삼아 물밑에서 문단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  

 

이것은 확실히 수위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지금까지는 정치 개혁, 경재 개혁이런 것에 묻혀 문단은 성역화하고 개혁의 필요성엔 둔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것에 대한 대안은 있는 것인가? 천명관은 말한다.

"우선 작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생님들이 먼저 숟가락을 거둬가야 한다. 편집위원이니 심사위원이니 하며 문학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과 신도들 사이에 끼어 권력을 누리던 중세의 성직자들과 같은 것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왜 선생님들의 지도편달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필요하다면 유능하고 영민한 편집자가 필요할 뿐이다. ...... 문학은 문학주의의 성채에 가둘 수 없는 역동성이 있다. 지금도 독자들은 재미있는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보라.  영화판은 대학의 권위를 빌리지 않아도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문단도 당연히 작가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등단제도니 청탁제도니 문학상이니 다 때려치우고 문을 활짝 열어젖어야 한다. 대중 위에 군림하는 대신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평가는 당연히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문학의 질적저하를 우려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단호히 말한다.

"누군가 문학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말을 한다면 장담컨대 그자는 틀림없이 나쁜 새끼다. 패거리를 짓고 조직을 만들어 권력자로 군림하려는 새끼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누가 마피아나 선생님이냐고 묻자 그는,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가 바로 마피아의 일원이거나 패밀리와 커넥션을 갖고 있는 작자일 것이다.(웃음)" 

읽는 나도 웃음이 났다. 하지만 난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까발려 얘기하는 천명관의 말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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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8-08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모르셨군요. 요즘은 문창과과 국문과 교수는 자기 파워를 위해 스파르타 식으로 문청에게 집중 교육을 시킵니다. 시 등단 몇 명, 소설 등단 몇 명 배출하느냐에 따라 교수 위상이 달라지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등단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 심사 위원 구미에 맞는 스타일대로 따를 수밖에 없죠. 그래서 다 그게그거가되는 겁니다.

stella.K 2015-08-09 18:25   좋아요 0 | URL
조금은 알고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제가 이 세계를 워낙에 동경했던지라 뭔가 성역 의식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cyrus 2015-08-0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부 독자들이 우리나라 문단의 현실을 잘 모르니까 성스럽게 보는 것 같아요. 책을 잘 안 읽는 독자가 한국소설을 읽게 되면 베스트셀러만 찾는 성향이 강해요. 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제 주변에 책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칭찬하는 모습을 봤을 땐 어색했어요. 그 친구가 신경숙의 소설을 강력 추천해도 읽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고요. 저는 그 친구의 태도가 한국 문단을 너무 맹신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믿는 작가가 표절 문제 때문에 독자의 발등을 찍으면 독자 입장에서는 그 허무함과 배신감이 더욱 크게 느껴요.

stella.K 2015-08-09 18:30   좋아요 0 | URL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정치나 경제는 사범이 있잖아.
그런데 비해 문단계는 도덕적으로 잘못 됐다는 정도지
특별히 사범으로까지 몰아가진 않잖아.
그리고 문학은 일반 독자들에게 어쨌든 동경과 동정을 오가고 있으니
더 그런 것 같아. 지금이라도 자정 노력을 해야겠지.

2015-08-09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8-09 18:35   좋아요 0 | URL
본문이 너무 길어서 다 옮기지는 못했는데
천명관도 정말 작가가 되고자 원한다면 문단 안에서
길을 찾으려 하지말고 바깥에서 찾으라는 말을 하더군요.
문단에 발을 들여 놓으면 그 시스템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더군요.
확실히 새겨 볼 말입니다.

에밀 시오랑 같은 작가가 드물게는 있긴 하죠.
저도 이 작가의 책을 한 번 읽어 봐야할 것 같은데
도무지 짬이 안 나는군요.ㅠ

깜장고양이 2015-10-1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천명관에게 `나쁜 새끼`는 아닌 것 같아 안도했다는. ㅎㅎㅎ


근데요, 쓰신 글 읽는 데 오타가 걸렸습니다. 수정 부탁드립니다~

~개기가 되기도 했다.
층층시야
빠져나오는 공곳하나 없다는 게

stella.K 2015-10-16 15:50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이 원래 오타가 좀 많습니다. 이 글 말고도...
그냥 그러려니 하시길.
고치느라 고치는데도 나중에 또 발견되더군요.
오타는 짬짬이 고치겠습니다. 그냥 이해하시길...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