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비어린이 2017.봄 - 통권 56호
창비어린이 편집부 엮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책을 학습만화로 읽어본 적이 있다. 워낙에 좋아했던 책이고 글이 좋았던 터라 학습만화용이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에 읽어봤는데 되려 실망만 했던 적이 있다. 너무 스토리에 치중한 나머지 글의 본질을 놓치고 있던 느낌이랄까.
이번 <창비 어린이> 봄호에서 '논픽션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로 좌담을 벌이는 부분을 읽으며 공감을 많이 하게 되었다. 논픽션의 목적은 대상이나 사건을 관찰하여 재해석할 가치관을 설정하고 표현할 서술 방법을 구상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을 취하는데 여기서 대상이 아이들이라는 특성에 기대 너무 스토리에 치중한 나머지 본래 해야할 본질의 이야기를 놓치고 있다는 부분에 가장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없었을때는 오히려 스토리텔링이 잘되고 있었는데,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부터 이상한 형식이 생겼어요. 캐릭터를 등장시키면 그게 스토리텔링인 줄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스토리텔링은 말 그대로 '이야기하다'라는 뜻이잖아요. 이 세상에는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도 있지만, 저는 논픽션 작가들이 진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과학도 다 이야기거든요. 우주가 생겨나서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일어난 일들이 바로 진짜 스토리란 말이에요. 지식 자체에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그걸 잘 들려주기만 해도 훌륭한 스토리텔링이고 억지스러운 설정을 만들 필요가 없죠. <파브르 곤충기>나 <코스모스> 같은 책을 보면 아무런 설정도 캐릭터도 없지만 위대한 스토리텔링이에요. 파브르가 '우리는 진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거든요. 사실적인 이야기가 더 재밌고, 그걸 잘 들려주는 게 논픽션 작가의 능력이죠. 또 수학을 예로 들자면 수학이라는 추상적인 학문의 본질을 하는 기뿜, 수학자들이 알고 있는 그 기쁨을 아이들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게 작가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p28)
이런 이야기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만화의 역할는 미처 글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의 부분을 거들뿐, 스토리가 화려해지거나 거대해지거나 아름답게 포장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마치 글과 그림이 상호작용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되는 그림책처럼 학습만화라는 장르도 글과그림의 상호보완으로 완성되는 하나의 작품이 아닐까나.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매출이라는 경제적인 부분과 겹쳐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지나치게 화려해지거나 내용의 본질보다도 스토리에 치중해 버리는 부분이 눈에 띄어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더욱이 그런 부분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는 학습만화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음이 참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런나 그런 아쉬움 속에서도 좋은 학습만화를 찾아 아이와 함께 읽을 수 있는 부모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림책으로 육아를 했다가 그림책이 좋아서 책을 내게 된 어떤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림책에 좋은 점을 이야기하시다가 유독 학습만화라는 부분에서 검열적인 시각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화라고 해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한한다거나 딱히 글로 된 책보다 언어의 풍성함을 감소시킨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물론 그분도 그렇게 생각하셨다) 다만 만화는 우리 어른들의 인식과 편견이 작용된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책이라고 하면 어른들에게 꾸중을 들으며 자랐던 오랜 시간 쌓인 편견들이 아이들에게 답습되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작가 이혜경님이 하신 말이 떠오른다. 어른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면 아이들에게도 나쁜 책은 아니지 않느냐고(p169 인터뷰집 중에서)
또 비평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도 곱씹게 된다.
" 이때 아이들에게 또는 교사(어른)에게 최소한의 매뉴얼을 제공하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라 할 것이다. 넘어서야 할 안전지대가 어디이며, 기꺼이 배반해야 할 가치들은 무엇인지 제시해 놓은 매뉴얼"(p143)
위 글에서 '비평가'를 '부모'라는 단어로 바꾸고 싶다. ' 아이에게 어떤 책이 좋은지 추천해주세요'라는 말보다도 직접 서점에서 좋은 책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또 아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책의 영역을 제한 시키지 않는, 부모는 그저 아이들이 넘어야 할 안전지대와 배반할 가치들이 무엇인지만 비춰줄 뿐, 그런 등대가 되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