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키우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언제나 식물  책들은 관심 대상이었다. 처음 식물 책을 접한 건 식물들을 어떻게 하면 죽이지 않고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실용서적을 읽곤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식물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식물 키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렇게 찾아 읽은 책이 『식물 수집가』 『반려식물』『엄마의 꽃밥』이었다.

 

 

 

 

 

 

 

 

 

 

 

 

 

 

 

 

세 권의 책을 재밌게 읽긴 했지만 모두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무척 아쉬웠다. 짤막한 이야기로 식물에 대한 사랑은 감지했지만 허기가 졌다. 더 깊고 더 풍부한 이야기할 책을 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호프 자런의 『랩걸』을 읽게 되었고 나는 이처럼 완벽한 부재를 단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부재로만 설명해도 끝날 정도로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안에 호프 자런의 20년의 세월이 담겨있는 것이다.

 

 

 

 

 

 

 

 

 

 

 

 

 

 

 

첫 시작은 유년기 시절의 기억이다. 과학자였던 아버지의 연구실을 놀이터 삼아 모든 기구들을 만져볼 수 있었던 행운 덕분인지 그녀는 과학자라는 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무뚝뚝함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북유럽 가족의 품에 안겨 정겨운 유년기를 보내지 못했노라 토로하는 호프 자런이지만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고 아버지와 함께 과학자의 꿈을 꿀 수 있었던 환경만으로도 그녀가 안정적이며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엄마는 책을 읽는것도 일종의 노동이며, 각 문단마다 분투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나는 그런 식으로 어려운 책을 흡수하는 법을 배웠다"(p30)

 

" 과학은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발견 하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 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과학은 또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을 가르쳐줬다"(p49)

 

 

그리고 그녀는 혼자의 힘으로 여성 과학자로서의 길에 들어선다. 1969년 출생한 그녀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 시절 여성 과학자로서의 길이 순탄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팟캐스트 <북 카페>에서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여성 과학자분들이 계시지만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차별을 당하고 가정과 일이라는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일이 많아서 진급하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더욱이 과학이라는 분야에 지원하는 여성들이 많지 않아 그녀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가 자런의 이야기와 겹치면서 그녀의 길이 고단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 그 대신 나는 내 삶을 구하기 위해 연구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남자에게 구속되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부터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일했다. 시골 마을 결혼식을 거쳐 아이들을 낳고, 내 꿈을 펼치지 못한 실망감을 아이들에게 쏟아내면서 아이들의 미움을 받는 운명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그런 길을 걷는 대신 나는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한 길고도 외로운 여정을 거치기로 결심했다. 약속의 땅은 존재하지 않지만 종착지는 지금 이곳보다는 더 나은 곳일 것이라는 개척자들의 굳은 신념을 가지고 말이다."(p79)

 

 

이런 고단한 길 위에서 빌이라는 동반자를 만났다. 자런의 석박사 조교 시절 현장학습을 떠났던 날 우연찮게 토양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빌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런은 그와 함께 과학자로서의 길을 함께한다. 그런데 빌과의 호흡이 어찌나 잘 맞던지 나는 이 둘의 깨알 호흡에 깔깔거리며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리고 연구에 실패한 채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 "내게 콩코드 브리지를 넘어서까지 갈 수 있는 차만 있었어도 당장가서 그 나무들을 불 질러버리자고 할 텐데 말이야."

빌은 실험실 깔대기를 써서 감자칩 봉지 바닥에 남은 가루들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나무 하나가 타는 걸 다른 놈들한테 보여준 다음 이제 꽃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물어볼 수도 있고"(p112)

 

 

팽나무 씨앗에 오팔이 함유되어 있고, 달팽이 껍데기처럼 아라고나이트 결정체가 생긴다는 것을 찾아낸 자런은 그 실험을 위해 콜로라도 주 스털링 근처 사우스 플랫 강변에 갔다가 그해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 한 채 돌아왔는데, 그런 자런을 위해 빌이 건넨 위로가 담긴 유머에 배꼽을 잡고 깔깔거렸다. 대체 나는 왜 이런 이야기가 좋은지. 나만큼 자런도 빌의 농담이 좋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이야기는 또 있다.

 

 

빌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빌이 한 달동안 연락이 없자 20년 지기 동지로써 자런은 빌의 아픔을 느끼며 갑작스러운 아일랜드 현장답사를 계획했고 아일랜드에 도착해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나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황인지라 빌이 어떤 계획이냐고 묻자 자런은 이렇게 대답한다. ' 레프리콘(아일랜드 만화에 나오는 작은 남자 요정)을 찾고 있는 중이야.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야 해"(p345) 이렇게 말을 던진 자런은 너무 혼란스러운 길 때문에 방향을 잃고 사이드 미러가 부러지는 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사고 소리를 들은 동네 주민 중에서 굉장히 아일랜드인처럼 생긴 키 작은 남자가 "카운티 클레어에는 도대체 왜 오셨수?"라고 묻자 그 사람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빌은 대답했다. "아저씨를 찾아 헤매고 있었던 거 같아요"(p347)라고. 다시 빵 터져 버린 나. 자런의 농담을 빌은 죽자고 받아주는 모습이 너무 웃기기도 했고 현장답사를 다니며 많은 사고에도 늘 태연자약하게 굴어주는 빌의 모습이 참 듬직하기도 했다. 그래서 짐작했다. 둘이 결혼하겠구나 하고.

 

 

그러나 내 짐작은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자런은 바람처럼 나타난 클린트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빌은 20년 지기 친구로서 묵묵히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내가 이런 배신감을 느껴야 하는지. 빌도 이런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으려나.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친구라서 한평생 과학자의 길을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버드나무의 신비한 능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버드나무 한 그루 근방에 꼭 버드나무가 한 그루가 더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버드나무들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신기했다.

 

 

" 그러나 정말로 흥분되는 일은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라는 건강한 시트카 버드나무들, 즉 한 번도 공격을 당하지 않은 버드나무들도 텐드나방 애벌레들 입맛에 맞지 않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멀리서 자라는 건강한 나무들에서 딴 이파리들을 먹은 애벌레들도 시들시들하고 병이 들어 2년 전처럼 순식간에 숲을 파괴할 힘을 잃은 듯 보였다.

 

 과학자들도 뿌리에서 뿌리로 전달되는 신호 체계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땅속에서 화학물을 분비해서 이루워지는 현상이다. 그러나 위 연구에서 관찰된 시트카 버드나무 두 집단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흙을 통해 의사전달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분명 땅 위에서 서로 신호를 주고받은 것이 분명했다. "(p240)

 

 

나무가 뿌리가 아닌 어떤 호르몬이나 어떤 가루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런의 책을 읽고 있으면 작은 식물 개체 하나하나가 생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식물들을 소중하게 다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식물 학자답게 맺는말에 나무를 심어보자고 제안한다. 개발 위주의 현대문명 속에서는 점차 식물들이 사라져가고 그 결과 무시무시한 환경오염은 불 보듯 뻔하다는 이야기였지만, 작은 식물을 키우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사에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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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서를 읽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어떤 책을 읽었는데 묘사가 너무 난잡하다 못해 욕지기가 턱 밑까지 몰려왔을 때, 문득 이 작가가 정말 이런 단어를 써가면서 표현한 것인지 번역가가 독자를 현혹 시키고자 더 살을 보탠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원서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것 같다.

 

 

 

 

 

 

 

 

 

 

 

 

 

 

 

 

 

 

" 원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고 영화를 볼 때 자막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해방감을 주는 것 못지않게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큰 이점이자 기쁨이다. 번역이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한번 걸러진 표현으로 읽거나, 원어의 뉘앙스를 그대로 살리기 불가능한 한국어 표현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무척 아쉬운 일이다."(『자유로울것』임경선.p174) 

 

 

임경선 저자의 말처럼 원서를 읽는다는 것은 도정되지 않은 원석 그 자체를 만나는 행위이자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문장을 날 것 그대로 받아볼 수 있는 행위이며 기쁨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일본어를 공부를 하고 첫 원서를 읽게 되었을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던 기억이 난다. 손가락으로 지문을 꾹꾹 눌러가며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읽었지만, 마치 빠진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맞춰지는 듯 문장이 연결됐을 때의 기쁨은 지루하게 느껴졌던 공부시간에 커다란 보상처럼 느껴졌다.

 

 

그런나 그런 기쁨은 예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후와후와』의 원서와 번역서를 읽던 중 뜻하지 않게 나의 한계와 번역가의 솜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직 미흡한 수준의 번역임을 감안해서)

나는 온 세상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지만,

이 지상에서 살고있는 모든 종류의 고양이들 중에서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

 

(번역서)

나는 온 세상의 고양이를 다 좋아하지만,

지상에 사는 모든 종류의 고양이 중에서도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

  

 

 

 

그 고양이가,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았던

넓은 목용탕을 연상케하는 것처럼,

매우 고요함이 넓게 퍼져있는 오후에,

햇빛 쏟아지는 툇마루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때,

그 옆에서

 

(번역서)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은

넓은 목욕탕처럼 정적이 흐르는 어느 오후.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가

햇살 쏟아지는 툇마루에서

낮잠을 잘 때, 그 옆에서

 

 

 

노란 밑줄이 그어진 부분에서 보면, 하루키 작가는 ' 그 고양이'라고 불렀고 번역하신 분은 앞장에서 나왔던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라는 말을 가져다 쓰셨다. 그러니 내 짧은 소견으로 읽었을 때의 글맛과 번역가님의 풍부한 글맛은 여간 다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서를 직접 읽는 기쁨은 컸지만, 그만큼의 고통을 감수해야 함을 느낀 것이다. 단어마다 의미하는 바를 깊게 깊게 생각해야 하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작가의 의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번역서들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서 큰 인기를 불러일으킨 책들 뒤에는 번역가님들의 뛰어난 문학적 소양이 뒷받침되고 있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우연찮게 알게 된 일본어 번역가이신 권남희님의 책이 눈에 밟힌다. 현재 절판이라 아쉬웠는데 다행스럽게 도서관에 있다는 걸 알게 돼 다음 기회에 빌려서 읽어 볼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야릇하게도 원서를 읽을 때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꽃님 에미'라는 필명으로 그림책 육아를 선풍적으로 이끌고 있는 저자가 이번에 캐나다에서 영어그림책으로 꽃봉이와 함께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영어 그림책의 기적>에는 원서를 읽는 재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떤 해석이 맞는지 찾아보는 재미

 

번역 과정을 거치면서 책의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아예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꽃봉이가 무한 애정을 보였던 그림책 『No! David』의 작가 데이빗 새논David Shannon의 『A Bad Case Of Stripes』도 그렇습니다. 번역본은 『줄무늬가 생겼어요』(비룡소)란 제목이죠. 꽃님이가 어릴 때부터 읽었으니까, 지난 10여 년 동안 제가 줄잡아 30번 이상은 읽은 책이에요. (중략)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 후로 카밀라는 전과는 달라졌어요. 카밀라가 좀 이상하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카밀라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카밀라는 마음껏 먹고 싶은 콩을 먹고, 줄무늬라면 손도 대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원서를 봤더니 이렇게 돼 있는 겁니다.

 

Afterward, Camilla wasn't quite the same.(그 후로 카밀라는 전과 달라졌어요.)

 

Some of the kids at school said she was weird, but she didn't care a bit.(카밀라가 이상하다는 학교 친구들도 있었지만, 카밀라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She ate all the lima beans she wanted, and she naver had even a touch of stripes again.( 카밀라는 먹고 싶을 때마다 라마 콩을 먹었고, 줄무늬병 따위엔 두 번 다시 걸리지 않았답니다.)

 

원래 감기기운이 있다는 말을 'have a touch cold'라고 하거든요. 감기가 터치만 한 상태란 뜻인가요? 그래서 a touch of stripes 는 stripes라는 병이고요. she never had even a touch of stripes again은 ' 그녀는 다시는 줄무늬병 따위에 걸리지 않았다'가 되는 겁니다. 줄무늬에 손도 대지 않은 것과 줄무늬병에 걸리지 않는 건 엄연히 다른 이야기잖아요?(p308~310)

 

 

 

 

단어의 해석을 달리해서 내용이 엉뚱하게 전달되는 경우를 찾아낼 때의 짜릿함이야말로 원서를 읽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마도 이 정도의 내공이 되려면 풍부한 단어 습득은 물론이지만, 그 나라 문화적 특성을 잘 알고 어휘의 사용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읽고 싶은 원서는 많지만 내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내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내게 딱 맞는 원서를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나.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파이브 핑거 룰'이라고 한다.

 

" 캐나다 학교 도서관에 주먹 그림이 붙어 있었어요. 책을 읽을 때 주먹을 쥐고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손가락을 펴는데요, 한 페이지에 0~1개는 너무 쉽고, 2~3개는 지금 딱 읽기 좋은 책, 4~5개면 한번 노력해봐라, 5개 이상이면 너무 어려운 책이니까 딴 책읽어라,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파이브 핑거 룰Five Finger Rule이래요."(p293)

 

 

다시 『후와후와』를 펼쳐봤다. 첫 장에는 한 개정도 모르는 단어라 쉽게 봤는데 뒷장으로 갈수록 아는 단어가 손에 꼽힐 지경이다.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멀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재미를 가지고 열심히 읽다 보면 나도 어느 순간 우리말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으려나 싶은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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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5-18 0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해피북님~~~ 일본 원서 읽으시는 거 넘 멋져요.
저는 영어 말고는 다른 외국어 정말 1도 몰라서요. 원서 읽으시는 거 부럽습니다.
가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일본어 원서 코너에 가서 이 책 저 책 만져보기는 하는데, 까막눈이라 쳐다보고만 옵니다.

원서로 책을 직접 읽으면 작가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 좋아요.
저는 그래도 속도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는 좀 늦게 읽는 편인데, 영어로 읽다보면 더 늦어지잖아요.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 그래도 가끔 저자가 넘 좋으면 원서를 구입하기는 하는데,
원서는 읽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요. ㅠㅠ

해피북님 일본어 원서 읽기.... 응원합니다.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더 재미있게 읽으시기를.
그리고 저한테도 알려주시구요^^

해피북 2017-05-20 08:39   좋아요 0 | URL
아~~단발머리님께 이런 칭찬은 부끄럽습니다 ㅎ 독서도 깊이깊이 하시고 영어 원서도 읽으시고요 ㅋ 저는 영어를 1도 몰라서. 이건 정말이예요 ㅋㅋ 너무 안쓰고 사는 삶을 살았더니 스펠링이고 단어고 아무것도 생각도 안나서 기초 영어부터 다시 시작하는 중이기도 해요 ㅋ 저에 최대 목표는 영어는 챕터북을 읽을 수 있는 수준까지이기도 하고요. 이제 일본어는 서서히 탄력이 생겨나는지 원서나 영화 드라마에 재미가 생겨나고 있고요 ㅋㅋ

그런데 정말 말씀처럼 속도가 문제라서 원서 읽느라 다른 책을 못읽을땐 조급한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있죠. 정말 우습게도 그래도 제가 책을 읽은 덕분인지 문유석판사님도 그랬고 임경선 작가님도 그랬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길을 가는 것에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귀찮아지고 답답해도 꾸준히 해보자는 마음하나로 버티는 중이랍니다 ㅎ 그래서 단발머리님 응원 정말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젠 나도 기억력 만큼은 젊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거 같다. 어떤 물건들. 꼭 어딘가에 잘 넣어둔 물건은 기억이 나질 않고 찾아내질 못하는 횟수가 빈번해질수록 내 나이를 체감하곤 한다. 특히 책장을 정리하면서 책을 여기저기 분산시켰던 탓에 요즘 책을 찾으려고 정리해놓은 상자를 우르르 무너트릴땐  머리 끝까지 치솟는 화가 한심함으로 바뀌고 나서야 섬광처럼 머릿속을 지나치는 어떤 찰나의 순간들이 떠오르곤 한다.

 

 

요즘 이런 순간은 대출한 책에서도 고역스럽게 느끼곤 한다. 처음 대출했던 책들과 훗날 예약 문자를 받아서 대출해온 책들이 책장에서 한 몸으로 뒤섞여 버렸을 때, 어떤 책을 언제 반납해야 하더라 하는 생각이 걱정으로 뒤바뀌고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을때, 하는 수 없이 책을 모두 짊어지고 가서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었던 때의 황당함과 뒤늦게 휴대폰으로 대출 목록을 확인해 보면 될 것을 하는 미련함이 떠올라 큰 한숨을 몰아쉬곤 했다.

 

 

그러니 그냥저냥 기록만이 살 길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조금은 귀찮지만 그 귀찮음 보다 무서운 것은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하는 미련함이라는 생각을 하며...

 

 <반납일은 5월 20일이다>

 

 

이 중에서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는 구간인데 요즘 나온 신간보다는 분홍빛 표지의 쿠슐라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찍힌 구간의 표지가 더 좋은 느낌이다. 왜 표지를 양장본으로 바꾸고 사진을 흑백으로 처리한 신간으로 나왔는지.. 아쉬운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구간을 빌릴 수 있던 게 행운이었다.

 

 

창비 블로그에 놀러 갔다가 <여자다운게 어딨어>라는 책을 보고 도서관에서 대출했는데 그 옆에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이 보여서 함께 대출했다. 잠깐 표지를 읽어봤더니 그가 여성의 참정권 도입을 주장하며 여성 해방 운동에 앞장 섰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또한 아내 해리엇 테일러가 사상의 동반자이자 조언자라는 표현 역시 마음에 들었다. 선거일을 하루 앞둔 오늘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 참정권 주장이야말로  뜻깊게 새겨볼 만한 일이 아닐까나.

 

내일은 선거일이라서 신랑이 출근시간에 맞춰 함께 투표장소로 가기로 했다. 많은 분들이 내일을 손꼽아 기다렸던 만큼 좋은 소식이 들려왔으면 하는 바램은 가득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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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

 

언젠가 터질 것 같은 머리와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을 붙여잡고 방안에 들어앉아서 이게 삶이냐고, 이렇게 살아가는 게 인생이냐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 힘겨움 속에서 눈에 들어왔던 건 책장에 수북이 쌓여 먼지만 더해가던 책이었다. 그중 눈길을 끌던 책을 골라잡아 단숨에 읽어내리며 진통제 같은 글귀를 발견했던 그 체험은 내 몸속에 남아 숨 쉬는 시간이 책 읽는 시간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런 기억들은 공지영 작가의 책을 읽으면 늘 깨어난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찾아낸 진귀한 글귀가 일상을 관통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 유독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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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은 매우 긴 하나의 시간이다.(p13)

 

'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표상(表象)이다.'

 

그해 여름과 가을 겨울이 지나는 동안 안젤름 그륀과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에픽테토스는 그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를 치료해가고 있었다.'(p20)

 

'이토록 운명의 벽이 단단하다는 것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어. 투명 유리창에 머리를 꽝 부딪힌 것 같다고나 할까? 그때 선배 생각했어"

 

"내 생각을 왜?"

 

"글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 선배가 그런 말 했거든, 그 말 생각한 거야. 그래서 병가 내고 책 많이 읽었어. 읽었던 책도 또 봤는데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하나 더 열리는 그런 느낌. 그 문을 여는 열쇠는 고통이었어, 운명처럼 보였던"(p214) ###

 

고단했던 그녀의 삶 만큼이나 그 고단함이 느껴지는 글을 취하듯 읽다보면 글이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말에 강한 공감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는 생각을 한다.

 

 

2. 소설인 듯, 소설이 아닌 듯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에는 다섯 가지의 단편이 있다. 그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와 <부활 무렵>이라는 단편을 뺀 세 가지 <월춘 장구><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맨발로 글 목을 돌다>에 화자는 공지영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나는 읽는 중에 너무 어리둥절해서 몇 번씩 표지를 들여다보며 '공지영 소설'이란 문구를 곱씹어 보곤 했다.

 

 

이렇게 화자를 작가의 이름으로 써놓고서 자전적으로 버무렸는데 이게 정말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인 걸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상대의 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패를 읽어낼 수 없는 선수처럼 어리둥절해져  출판사 블로그를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리고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라는 글을 읽으며 소설이긴 소설이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소설이면 어떻고 에세이면 어떻냐만은 그래도 소설이라면 그 허구성에 대해 에세이라면 그 진실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은 분명 있으련만. 작가의 글에는 그만큼의 경계가 없어서 자칫 그녀의 소설을 그녀의 삶이었노라 오해를 사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아직 공지영 작가를 알아가야 할 시간이 많은 나에게만 걱정스러운 부분이려나.

 

 

3. 타인의 취향을 안다는 것.

 

누군가의 취향을 안다는 건 그만큼에 거리가 살가워졌다는 뜻이겠지만, 또 그만큼의 삶에 무게를 얹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그 취향이라는 것이 내 취향과 겹칠 때는 문득문득 신경 써지는 일이 두 배로 늘어난다.

 

나와 취향이 겹치는 부분이라면 거의 책일 텐데 그 사람이 좋아하는 작가나 좋아하는 장르의 책이 서점가에서 눈에 띄는 날이면 문득 그 사람이 떠올라 책을 구입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분야를 알게 되고 작가를 만나게 되는데 그렇게 만나게 된 작가가 공지영 씨고 공지영 씨의 책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분은 우리 어머님이다.

 

아버님 댁의 서재에 유독 한 작가의 책이 많았는데 살펴보니 공지영 씨의 책이었고 그렇게 어머님과 책에 대해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어 좋았다. 비록 그때까지 공지영 씨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많은 대화를 할 수 없었지만, 어떤 취향이 일치할 때의 기쁨이 컸던 탓에 그 이후로는 공지영 씨의 신간이 나오면 서둘러 구입해서 읽고 어머님께 전해드리며 조잘조잘 책 이야기를 했던 순간들이 연등처럼 피어오른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읽으실 어머님과는 어떤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을지. 찾아뵙지 못한 어버이날에 죄송스러운 마음 한가득 담아서 책갈피 속에 고이 접어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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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초지로 - 고양이와 집사의 행복한 이별
고이즈미 사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콤마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지난달 다녀온 친정집에 몽실이라는 수컷 강아지가 있었다. 아부지가 장날에 만 원 주고 골라온 강아지라고 했다. 약간 노란 끼가 도는 털에 데려 온지 두 달밖에 안되는 새끼 강아지였는데 처음 대문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몸이 u자로 꺾이도록 반가워했고, 선풍기 팬처럼 꼬리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게 신기해서 연신 머리를 쓰다듬고 진정시키느라 혼이 났던 기억이 난다. 아부지는 처음 보는 사람 보고 짖지도 않는다고 핀잔이셨지만, 내가 아부지랑 닮아서 그런 거죠라고 대답하고 반가워해주는 몽실이를 내심 좋아했다.

 

몽실이는 마당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물어 뜯어버리는 탓에 묶여 있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은 몽실이를 풀어놓고 공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나도 그 틈에 끼어 공놀이를 했다. 목줄에서 해방된 녀석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던지는 공을 바람처럼 달려가서 물어오고 또 던지면 또 물어오고 몇 번의 놀이가 끝나면 물그릇으로 달려가 물을 먹는 모습이 무척 귀여서 여러 번 그 모습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며칠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왠지 몽실이가 눈에 아른거리기도 했다. 늘 신랑과 애완동물의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어쩐지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다가 끝나곤 했는데, <안녕 초치로>를 읽고 그런 생각에 더한 무게를 얹어 주었다.

 

 

초지로와 라쿠라는 고양이 남매를 키웠던 저자는 그 행복했던 찰나의 순간들을 일러스트로 더해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함께 지냈던 십 년의 세월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순간순간의 아름다웠던 잊을 수 없는 추억담을 읽으며 함께 한다는 것은 이렇게 따뜻한 거구나 싶은 마음을 갖기도 했다. 그렇지만 초지로에게 암이 발견되고 끝끝내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보낼 때는 함께 눈물짓기도 했다.

 

 

한 생명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묵묵히 지켜내야 할 과정이라는 것울,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쌓이는 만큼 언젠가는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 과정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학창시절에 고양이를 키웠던 경험이 있던 신랑은 이 책을 보며 그 시절을 회상했는데 초지로처럼 배에 암덩어리가 발견되어 하늘나라로 떠난 사연도 같다면서 당시 동생이 많이 슬퍼했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망설이고 고민스럽다. 한 생명을 온전히 받아들고 온전히 떠나보낼 수 있는 그 힘이 생기는 날 나에게도 그런 날이 찾아온다면 그 따뜻한 생명체를 끌어안고 온전히 그 체온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으며, 이 고민을 언제나 ing 상태로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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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8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키웠는데, 다 자란 성견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버리거나 분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반려견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 건널 때까지 곁에 있어줘야 합니다. 이런 분들이 정말 마음이 따뜻하고, 진정한 사랑을 느낄 줄 압니다.

해피북 2017-05-10 05:51   좋아요 0 | URL
아. 무지개다리! 책에서도 무지개다리란 말이 나왔었는데 ㅎ 맞아요. 저도 티비에서 이사간다고 동물병원에 애완견을 던져놓고 안락사 시켜달라는 말만 남기고 도망간 사람도 있다는 말이 참 마음아팠습니다.

단발머리 2017-05-18 0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렸을 때 키웠던 강아지도 이름이 몽실이었는데..... 반갑기도 하고, 몽실이랑 헤어질 때도 생각나슬프네요. 언제나 헤어짐은 슬픔..... ㅠㅠ

저희 아이들도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하기는 하는데, 저는 자신이 없어서....
미루고만 있어요. 한 생명과 함께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것 같아요. 탄생부터 죽음까지 함께 한다는 게 정말 쉬운일은 아니니까요.


해피북 2017-05-20 08:46   좋아요 0 | URL
ㅎ 몽실이란 이름이 귀엽기도하고 들었을때 폭신폭신한 느낌이라 인기가 많은거 같아요 ㅎ 몽실이 전에 친정에서 키우던 강아지 이름은 몽이였거든요.

단발머리님도 고민이 되신다니 그 마음 공감이 됩니다. 요즘 티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사랑스럽고 행복한 순간만 있는거라 생각이 들기 쉬운데 막상 책을 접해보면 털갈이부터 배변이나 코골이나 방귀까지 여느 사람 못지 않다더라고요 ㅋ 이런 모든 부분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 우리보다 먼저 떠나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데 저는 여전히 자신이 없어서 늘 책으로나마 달래고 있는데... 정말 쉬운일이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