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프롬 - 개정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4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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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6일에 썻던 글입니다.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과 <겨울>을 함께 읽었다. 지난 달에는 <순수의 시대>와 <기쁨의 집>을 함께 읽었는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이 “쌍”들의 연관성이 꽤나 긴밀해서 오히려 놀라웠다. <순수의 시대>와 <기쁨의 집>이 뉴욕 상류 사회를 배경으로 한데 반해 <이선 프롬>과 <겨울>은 미국 하층 계급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디스 워튼이 뉴욕 상류 계급의 손꼽히는 가문 출신이라는 점에서는 물론 <이선 프롬>과 <겨울>이 의외의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디스 워튼은 잘 알지도 못하는 세계를 피상적으로 그렸다는 비판에 대해 10년 동안이나 작품의 배경이 되는 뉴잉글랜드의 산간 지방에 거주하며 그들의 삶을 자세히 알게 된 후에 쓴 글이라고 반박했다. 하층 계급에 대한 워튼의 묘사가 얼마만큼 사실적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사실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다. 흥미로운 것은 다만 그 소설들의 문제 의식이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선 프롬은 가난한 시골 농부이다. 한 때는 엔지니어나 화학자의 꿈을 가졌지만 잇따른 가정의 불행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산골 마을에 붙박혀, 나이 많은 아내와 살고 있다. 아내는 이선 프롬의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함께 살게 된 먼 친척인데, 어머니가 죽은 후 혼자 남게 된 프롬과 결혼을 했다. 병간호를 할 때는 무엇이든 척척해내든 아내는 정작 결혼 후 1년 남짓 만에 자신이 환자가 되어 이선 프롬을 옭아매는 짐이 되어 버린다. 아내의 요청으로 아내를 대신해 집안일을 할 여자 아이를 불러 오는데, 이선 프롬은 곧 아내의 친척인 이 처녀를 사랑하게 된다. 오갈데 없는 고아인 이 처녀는 비록 하녀의 신분인 셈이지만 이선 프롬의 다정함 속에서 은밀한 행복을 누린다. 그런데 둘의 관계를 눈치 챈 아내가 이 처녀를 쫒아 내다시피 돌려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이 처녀가 돌아갈 곳은 사실상 없다. 이선 프롬은 이 처녀를 데리고 서부로 도망가려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기차표를 살 돈도 없이 암담하다. 결국 처녀를 돌려보내려고 마차를 타고 가던 중 둘은 예전에 약속한 눈썰매를 타기로 하는데, 언덕에서 가파르게 내려오던 썰매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향해 돌진한다. 이십 사년 전에 일어난 이 이야기를 방문자에게 전해 주는 이선 프롬은 다리를 절룩이는 늙은 노인이다. 그의 집에는 두 명의 노파가 있는데, 한 명은 그의 아내이고, 또 한 명은 척추를 다쳐 불구가 된 그 처녀이다.

  이선 프롬의 집을 떠나 갈 곳이 없는 처녀는 무섭게 내달리는 눈썰매의 황홀경 속에서 이선 프롬과 함께 죽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유일하게 열려 있는 그들의 탈출구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모든 욕구를 잃은 늙은 이선 프롬과 갑자기 생기를 되찾아, 불구가 된 처녀를 이십 사년 동안 간병한 늙은 아내와 의자에 파묻힌 채 온갖 불평을 해대는 노파가 된 처녀가 폐가 같은 집에서 유령처럼 살고 있다.

이디스 워튼은 <이선 프롬>에서 가장 잔인하다. <기쁨의 집>의 릴리에게는 허용되었던 죽음마저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죽지 못한 이선 프롬은 자신이 사랑했던 그 처녀가 실제는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것일 뿐임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그 처녀는 아내의 반복이다. 결혼 이전에는 그토록 눈부신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였던 아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환자임이 드러난 것처럼, 그 처녀의 거부할 수 없던 매혹의 빛 역시 사고와 함께 사라지고 남은 것은 아내와 똑 같은 불평 덩어리의 불구일 뿐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 숭고했던 그 대상은 가까이 다가 왔을 때 그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사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 처녀를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게 했던 그 매혹의 중핵은 그 처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선 프롬은 그 처녀와 함께 죽거나 그 처녀를 보내야 했다. 그 처녀는 상실됨으로써만 영원히 이선 프롬에게 살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 그 처녀는 상실됨으로 인해 이선 프롬의 숭고한 대상으로 영원히 살아 남아 이선 프롬의 삶을 지탱하는 은밀한 보충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처녀에 대한 추억이야말로 아내와의 불행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지지대이다. 그러나 그 처녀는 살아남아 또 하나의 아내가 되었고, 그래서 이선은 살아 있는 유령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환상에 의지해 살거나, 혹은 환상을 빼앗긴 유령이 된다.

 

  그러나 하나의 질문이 남아 있다. 환상 없는 유령의 삶이 나쁜 것인가? 어떤 면에서는 우리 모두는 환상 없는 유령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턱없는 과장이라면, 우리 결혼한 부부는 모두 환상 없는 유령이라고 해두자. 결혼 6개월 혹은 일 년이 못되어 우리는 우리 배우자에게 “그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것, 우리를 도취시켰던 그것, 우리가 알지 못한 채 한 없이 끌렸던 그것, 그 미지의 X. 그것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보았던 그것, 바로 그들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그것. 그토록 눈부신 광휘를 뿜어내던, 손 안에 잡히지 않아 더 눈 부셨던 그 보석은 그저 하나의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음이, 어느 차가운 아침에 오롯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가? 나는 답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윤리적인 것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 우리의 돌덩어리가 빛을 잃었다면 우리는 새로운 빛나는 또 다른 돌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인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 진정으로 윤리적인 것인가? 욕망이란 그런 것인가? 역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선택한 돌덩어리를 끝까지 인내하고 견뎌내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윤리라고. 차가운 돌덩어리의 공허를 견디기 위해 눈부시게 빛나 보이는 새로운 돌을 찾아 헤매는 것은, 혹독한 현실을 대면하지 않으려 끝없는 마약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중독자와 같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어지는 또 하나의 질문이 있다. 모든 결혼은 혹은 모든 최초의 선택은 끝가지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것인가? 다시 한번 그것이 윤리적인 태도인가? 여전히 그들의 답은 이해의 너머에 있다. 다만 그들이 보여 준 어떤 예를 하나만 들어 보자. 다스 베이더가 되기 직전 아나킨은 오비완 커노비와 마지막 대결을 한다. 명백히 패배가 보이는 곳에서, 그것도 선이 아니라 악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나킨은 선의 길로 돌아오라는 오비완의 마지막 요청을 거절한다.

“아나킨은 이를 거부하고, 비록 이미 치명적으로 부상을 입었지만 마지막 힘을 모아 다시 그를 공격하려 한다. 나는 아나킨의 고집을, 석상의 구원에 대한 마지막 제안을 거절하는 모차르트의 돈조반니와 유사한, 본격적인 윤리적 입장으로 인식하고자하는 마음을 거둘 수가 없다. 두 경우 모두 내용적인 층위에서 악의 선택으로 보이는 것이 형식적 차원에서는 자신의 윤리적 일관성을 주장하는 행동이다. 즉 그들은 모두 실용적인 자기중심적 계산의 관점으로는 악을 거절하는 편이 적절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생의 최후의 순간에 악의 선택을 고집하는 것이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괴할 만큼 윤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도전적인 행동으로 그들은 용기 있게, 어떤 물질적인 또는 정신적인 이익에 대한 약속 때문이 아니라 원칙에 따라 자신들의 선택에 충성을 다한다.”

  이선 프롬이 처녀와 함께 도망가지 않은 것은 다만 기차 삯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선 프롬은 자신이 떠남으로 그의 아내가 어떤 곤궁에 처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늙은 이선 프롬이 입을 다문 채, 그의 아내와 불구가 된 그 처녀를 이십사년 간 묵묵히 지켜온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모든 이혼이 비윤리적인 것도 아니고, 모든 결혼의 유지가 윤리적인 것도 아니다. 단순히 경제적 사회적 이익 때문에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비윤리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최초의 선택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최초의 선택과 그 선택의 유지와 폐기 사이에 있는 어떤 것들의 관계가 그것을 윤리적인 것으로도 혹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이혼이 비윤리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가정의 유지가 윤리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를 매혹시켰던 그 빛남이 우리 상대들의 소유가 아니었던 것처럼, 그 빛의 사라짐 역시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 책임을 그들에게 물으며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 그것이 사랑에 윤리가 개입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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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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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7일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내가 자주 놀러 가는 서점은 동네에 있지만 나름대로 대형서점이다. 

우리집 보다 네 배는 넓어 보이니 줄잡아도 100평은 될 것 같다.

가운데는 대여섯개의 책상과 스무개 쯤의  의자가 놓여 있어 눈치보지 않고 책을 읽기도 좋다.

칠팔년 전까지만 해도 책은 꼭 사서 읽고

그렇게 다 읽은 책으로만 책꽂이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혼자 뿌듯해 하곤했다.

그런데 무슨 변덕인지 그 빼곡한 책들이 어느 순간 갑갑해 보였다.

그 후로는 왠만하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밑줄치며 읽어야 할 책이나 너무 너무 마음에 드는 책만 사고 있다.

 

분야별로 모아 놓은 베스트 셀러들을 주~욱 훍어 나갔지만 은희경은 보이지 않았다.

자꾸 신경숙이나 김훈이 눈에 들어 왔다.

영화 도가니에 힘입어 공지영의 도가니도 눈에 띄었다.

국내소설 서가를 하나하나 훍어 나가다가 결국 검색대를 찾았다.

등잔불 밑이 어두웠던지 은희경의 책은 벽면에 따로 마련한 전체 베스트셀러 코너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맨 아래칸, 흰색 표지에 작게 쓴 글씨의 제목이 쉽게 눈에 뜨이지 않았나 보다.

제일 많이 읽히는 작가가 맞기는 하나보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책 날개에 옆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은희경은

언젠가 EBS의 테마기행에서 보았던 그 여성 작가가 맞는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여리고 고운 목소리의 그 나레이션을 쉽게 소화하지 못했다.

첫 장을 넘기자

아침에 일어나서 블라인드를 걷고, 날씨를 살피고, 커피콩을 갈고 같은 문장들이 튀어 나왔다.

부실 공사 탓인지, 낡아서 그런지, 관리소장 말대로 기계실 밑이라 그런지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만 하면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아침마다 위이잉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는 나는 '커피콩' 에 눈을 멈추었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쉬 너그러워지지 않는다.

부럽고말면 될 것을 나는 어쩌자고 시기를 한다.

 

한 시간여를 읽고 나니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동네를 한바퀴 산책하고 빵을 먹고 벤치에 앉아 가지고 다니던 책을 읽었다.

한결같이 어려운 책. 나는 또 무얼하려고 이 어려운 책을 낑낑대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동네를 한바퀴 돌아 서점으로 들어갔다.

미안하다.

오늘 여기서 이 책을 다 읽고 말 심산이다.

아직 한 번도 책 한권을 몽땅 서점에서  읽은 적은 없는데...

이 서점의 회원이긴 하지만 여기서  산 책은 딱 두권이다.

다음에 알라딘 말고 여기서 주문해 주기로 마음 먹는다.

 

시애틀, 커피콩, 독일, 맥주, 사인회, 원주와 박경리..

반짝이는 문장들을 탁구공처럼 주고 받는 문인 친구들과의 새벽 트윗질..  

체취처럼 풍겨 나는 그리움, 쓸쓸함, 사랑의 기억..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고 나는 공지영이 부러웠다.

지리산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낙장불입 시인이나 고알피엠 여사는 부럽지 않았다.

그 산 속에는 행복 만큼이나 벌레도 불편도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돼지고기 몇 근을 싣고 차를 몰고 와 밤새도록 술을 마실 수 있는 공지영이 부러웠다.

나는 그렇게 은희경도 부러웠다.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고도 결국 아무것도 읽어 내지 못한 채 서점을 나왔다.

넋을 놓고 붉은색 신호등을 보고 있는데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의 어떤 단어들이 튀어 올랐다.

'발화내용의 주체'와 '발화행위의 주체'

말하자면 낙장불입 시인이 발화내용의 주체라면 공지영은 발화행위의 주체인 셈이다.

나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졌다.

그래!! 나는 발화행위의 주체로서 그녀들이 부러웠던 거야!

나도 배운게 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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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과 군중 - SNS는 군중의 세계인가 공중의 세계인가?
가브리엘 타르드 지음, 이상률 옮김 / 지도리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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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2일, 카페 과제물로 쓴 글입니다. 이 때는 타르드(따드)의 책이 번역된 것이 없었는데, 그 이후 두 권이나 나왔네요.  리뷰 상품인 <여론과 군중>과는 상관없이 쓴 글입니다. 

그 때 과제는 타르드를 우리 나라에 소개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기획서까지 써보라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쓴 세 글 중 마지막 글입니다. 기념 삼아 옮겨 두었습니다.

 

 

 

세상에 라이벌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참 많다.

 

 

 

 

일요일 오전에 방송하는 MBC <서프라이즈> 에도 ‘불멸의 라이벌’이라는 코너가 있다.

내가 본 것은 에디슨 대 테슬라, 미켈란젤로 대 다빈치 편이었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가 어디에 있건, 이런 대결 구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 인물들이 보여 주는 그 어쩔 수 없는 인간적 치졸함에 있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이야기를 보면, ‘천재라는 것은 1%의 영감과 99%의 땀이다.’ 라는 멋진 격언이 어쩌면 테슬라의 발명 스타일에 대한 에디슨의 질투와 시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에디슨은 될 때까지 실험을 반복하는 노력형인 반면 테슬라는 직관과 영감으로 승부하는, 어찌 보면 진짜 천재였기 때문이다.

사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에디슨과 테슬라는 노벨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서로를 인정할 수 없었던 이 두 라이벌은 동급으로 취급받느니 차라리 수상을 거부했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있다.

 

 

수학사에는 이 보다 더 살벌한 대결도 있다.

칸토어라는 수학자는 당시에만 해도 신의 영역이었던 ‘무한’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결국 정신 병원에서 죽었다.

칸토어의 무한 개념을 인정할 수 없었던 크로네커는 칸토어의 논문 발표와 교수직 임용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다른 수학자들과 함께 칸토어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끈질긴 방해와 핍박 속에서도 칸토어는 실무한의 이론을 정립하여 후세에 집합론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정신병원에서 최후를 맞이한 비극적 인물이었다.

“수학의 본질은 자유에 있다.”라는 칸토어의 묘비명은 그의 정신병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혹은 없다고 추정되는) 크로네커가 그의 스승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찬드라세카르는 블랙홀의 단초를 제공한 천체물리학자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인도 출신의 이 젊은이는 영국 유학의 기나 긴 항해 길에서 ,이후에 ‘찬드라세카르 한계’라고 불리게 될 획기적인 이론을 착안해 낸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들의 노년은 백색왜성이라고 알려졌는데, 찬드라세카르는 별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1.4배가 넘으면 중력 때문에 그 별은 백색왜성이 되지 못하고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던 것이다.

이렇게 폭발한 별들은 질량에 따라 중성자별이 되거나 블랙홀이 된다는 것이 후대의 연구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러나 당시 천문학회의 거장이었던 영국의 에딩턴 경은 찬드라세카르의 이론을 ‘별 장난’으로 치부하며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식민지 원주민이었던 찬드라세카르는 막강한 귀족 과학자인 에딩턴의 핍박으로 한때 연구 분야를 바꿀 결심까지 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이론을 천체물리학계에 남기게 되었다.

 

 

당대의 최고 학자이며 저명 인사였던 사람들도 때로는 지독히도 치졸했던 것 같다.

논문 발표를 막고 온갖 술수를 부리면서까지 학계와 사회에서 라이벌을 매장시키려 했던 그들의 행동은 사실 인지상정으로 봐주기에는 과한 면이 있다.

치졸함을 드러내면서까지 라이벌을 짓밟아야 했던 그들의 분노는 어떤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그들 자신이 그 누구 보다 먼저 그 신예 라이벌들의 가능성과 파괴력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구축한 세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그토록 잔인하고, 그토록 폭발적으로 분노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과잉 반응은 그 자체가 어떤 질병을 나타내는 증상일 수도 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을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부모나 선생님은 늘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한 아이 보다는 과잉적 폭력을 휘두르는 체벌자의 내면을 주목하게 만든다.

길거리에서 아이를 쥐 잡듯이 잡아 족치는 엄마의 귀를 찢는 고함 소리는 차라리 삶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지르는 비명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권위와 명성의 힘으로 혹은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행사하는 그들의 과잉 탄압 또한 신예 라이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나타내는 증상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청출어람’ 이란 말은 겉보기만큼 그렇게 훈훈하기만 하거나, 맑고 깨끗한 푸른빛이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뛰어 넘는 제자를 인정할 수 없었던 수많은 스승과, 스승을 넘고 나아가야만 했던 제자들이, 얼마나 피 튀기는 전쟁을 치렀어야 했는지, 역사의 곳곳에 남아 있는 이 기록들이야말로 그 증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자연 과학 분야에서는 승부가 의외로 간단히 끝날 수 있다.

당대에는 권위나 명성에 억눌려 묻혀 버리기도 하지만, 한 번 빛을 본 위대한 이론들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살아나기 마련이다.

그것들은 막힌 학문의 물꼬를 트고 신세계로 향하는 물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고 가야 할 비밀의 문 같은 것이어서, 후학이라면 그 봉인을 풀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라이벌들을 현재에 다시 불러오는 이유가 그리 복잡할 것 같지는 않다.

역사 속의 인물들이 지지고 볶은 그 '서프라이즈‘한 쟁투만으로도 어느 정도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데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 류의 교훈도 살짝 얹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진리는 승리할지니 굳세어라, 젊은이여!?

 

 

 

 

하지만 여기 좀 더 복잡한 상황이 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불러 낸 세종 이도와 밀본 정기준의 대결 말이다.

 

 

 

그전에 잠깐, 여러 편의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매우 친근해진 이산 정조에 관해 살짝 살펴보자.

내가 아는 한 대중에게 정조에 관한 관심을 맨 먼저 끌어 낸 사람은 소설가 이인화이다.

그가 <인간의 길>이라는 책을 통해 박정희를 미화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전, 그의 이름을 세간에 각인시켜 준 것은 소설 <영원한 제국>이다.

<영원한 제국>은 간단히 말해 어떤 정치 형태가 더 훌륭한 것인가를 놓고 정조와 노론이 벌이는 정치적 투쟁에 관한 소설이다.

정조는 모든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는 강력한 왕권 중심의 성왕정치를 주장한 반면, 노론은 붕당을 통해 왕권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신권 중심의 붕당정치를 고집했다.

붕당은 ‘학문적·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양반들이 모여 구성한 정치 집단’ 이라고 한다.

당파싸움으로 조선이 망했다는 인식 때문에 붕당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지만, 사실 붕당은 지금의 정당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삼권이 분립되어 있는 현대의 민주정치에서도 이상한 대통령 하나가 5년이 채 되기도 전에 온 나라를 뒤집어 놓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사실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강력한 왕권은 세종이나 정조 같은 성군만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연산군 같은 폭군이 더 막강하게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온 백성의 삶이 왕의 품성 하나에 달려 있는 체제란 사실 야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붕당을 만든 양반들이 공맹의 도에 따라 올바른 정치를 이끌기 보다는 사리사욕과 가렴주구에 탐닉하게 되면 백성의 삶이란 어짜피 피폐해질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것은 현대의 정당정치가 가져오는 폐해와도 다르지 않다.

국회가 날치기 통과시킨 각종 법안들이 오히려 국민의 목을 옥죄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굳이 애써서 찾아낼 필요도 없는 것이,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는 한미 FTA가 날치기를 앞두고 있다.

 

 

정치체제란 당대의 사회적 상황이나 힘의 관계와 분리하여 판단할 수는 어렵기에, 단순히 성왕정치가 더 나은가 아니면 붕당정치가 더 좋은가 따위의 질문은 별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금 내가 <영원한 제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왜 이인화가 조선 시대의 정치적 대결 구도를 현대에 다시 불러 왔느냐 하는 것이다.

이인화는 <영원한 제국>을 통해 정조의 왕권중심 체제를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

어떤 블로거의 서평에 의하면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천황중심의 절대왕권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근대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조선에는 왕에 의한 유신이 없었고 이 때문에 권문세도가의 가렴주구가 왕국의 쇠멸을 재촉했다’ 고 한다.

이 블로거는 ‘이 소설에는 정조가 살아서 유신에 성공했더라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지도 않았고, 박정희가 군사 정권으로 유신을 단행하는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는 역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감추어져 있다’ 고 쓰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인화가 박정희의 유신 독재를 비극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일까?

 

처음 <영원한 제국>을 읽었을 때 나는 참 많이 감동했다.

붕당이란 것이 패를 갈라서 자기들 뱃속만 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구나, 비록 상복 하나에 목숨을 거는 희극을 벌였을지언정 그 바탕에는 왕의 전횡을 막고 백성을 위해서 공론의 정치를 펴려했던 훌륭한 이념이 있었구나.... 그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뿌듯한 경험이었다.

물론 이인화는 정조의 왕권정치가 좌절된 것에 깊은 회한을 표했지만, 나는 꼬장꼬장한 노론의 영수 심환지가 그렇게 악마처럼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랬던 것이 그 이후에 출간된 <인간의 길>을 읽고서야, 나는 이인화가 왜 하필 정조를 이 시대에 다시 불러들였는지를 뒤늦게 알아챌 수 있었다.

이인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절대군주이건 군사독재 정권이건,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절대 권력에 의한 근대화 작업이었다, 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속에 잠자던 정조가 기껏 박정희의 들러리를 위해 후손들 앞에 불려 나왔던 것이다.

나는 극심한 배반감을 느꼈지만, 원래 이인화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는 결코 그것을 숨기지도 않았고, 오히려 <영원한 제국>을 통해 그의 사상을 세심하게 다듬어 유포시켰던 것이다.

이인화의 세계에서 박정희는 정조가 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근대화 작업을 완수해낸 훌륭한 지도자였고, 다만 이 근대화 작업에는 반드시 절대적인 권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박정희의 독재 정치는 필요악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인화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독재자의 길을 걸어 가야 했던 인간 박정희를 형상화함으로써, 박정희에게 인간적인 아우라마저 실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영원한 제국>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인화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건 나는 그 책을 통해 정치 체제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얻었던 것이다.

사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 본 적도 없고, 왜 국가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나뉘어져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것들은 공기나 물처럼 자연적인 것, 그냥 원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 당연한 그런 것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정치 체제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 그것들은 목적에 따라 언제든지 파괴될 수 있고 또 새롭게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너무나 기초적인 상식이지만, 그것이 박제된 상식으로서가 아니라 생생히 마음을 파고드는 상식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결코 완결된, 완벽히 이상적인 체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뿌리 깊은 나무>를 보았을 때, 나는 이것이 <영원한 제국>의 짝퉁은 아닌가 조금 의심했다.

왕의 밀명을 받은 학사들이 죽어 나가고, 왕은 무언가 비밀스런 일을 꾸미고 있고, 그것을 파헤치는 과정에 왕과 신하들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기타 등등.... 이건 거의 표절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표절에 관해서라면 뭐 이인화가 시비를 삼을 리는 절대 없을 터이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이인화의 첫 장편소설인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을 때 이인화는 자신의 작품이 공지영이나 무라카미 하루키만을 베낀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마구 베낀 혼성모방 (페스티쉬)에 의한 것이며, 이것은 표절이 아니라 하나의 당당한 예술적 기법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바람에 페스티쉬라는 생소한 단어가 일약 유행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뿌리 깊은 나무>는 나의 그 우려가 제대로 증거를 갖추기도 전에,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아, 표절이고 뭐고 생각할 틈도 없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뿌리 깊은 나무>의 대결 구도는 복합적이다.

 

  태종 대 세종

  이도 대 똘복

  세종 이도 대 밀본 정기준

  소이(담이) 대 정채윤(똘복)

  정채윤 대 정기준

 

 

<뿌리 깊은 나무>가 <영원한 제국> 보다 복합적인 대결 구도를 가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왕과 사대부가 공히 국가의 근본으로 내세우는 바로 그 ‘백성’이 전면에 부각되어, 대립의 한 축을 능동적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똘복과 소이는 절대 왕권을 추구하던 태종과 재상 정치를 뿌리내리려는 사대부 사이의 정쟁의 한가운데에서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한 백성들이다.

세종 이도는 아비와는 달리 문의 길을 자신의 통치 형태로 삼았지만, 세종 역시 왕권을 강화하여 직접 성왕정치를 실현하려는 점에서 태종의 길과 궁극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성왕정치의 근본은 백성이다.

군주의 역할은 하늘의 뜻을 받아 백성을 어버이처럼 돌보는 어진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도전이 꿈꾸었던 재상정치 역시 백성이 근간이라는 민본사상을 이념으로 하고 있다.

정도전은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 ’ 라는 맹자의 사상을 정치에 실현하고자 하였으니, 밀본이 주장하는 재상 정치라는 것이 단순히 사대부의 계급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백성은 늘 명분으로만 존재할 뿐 살아있는 개개인의 인간으로 존중받지는 못한다.

그것은 비단 조선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여타의 정치·역사물들과 뚜렷한 차별화에 성공하는 것은 백성이 명분이나 배경으로서만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물로서, 주체적으로 역사적 사건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의 복합적 대결 구도는 실제로는 왕권, 신권, 백성이라는 삼자 구도의 형태로 간결화 될 수 있다.

 

 

 

 

                                       똘복, 소이

 

               세종 이도                                         밀본 정기준

 

 나머지 대립들은 세부적인 이야기 전개에 흥미와 긴장을 불어 넣는 곁가지 대립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밀본의 수장 정기준은 세종 이도의 치세가 태평성대임을 인정한다.

밀본이 세종에 반대하는 것은 세종이 무능한 군주이거나 폭군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대부의 이익이 침해당할까 우려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정기준은 세종이 성군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말한다.

정기준의 우려는 이대로 왕권정치가 뿌리를 내리면 세종 이후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있다.

무능한 왕이나 포악한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게 될 때, 이것을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그 때 나라와 백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정기준이 생각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삼봉 정도전이 관료 체제를 확립하고 재상 정치를 주창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종 이도는 어린 시절 정기준이 과거장에서 써 낸 글을 보고 깊이 감명을 받는다.

세종은 유림들이 몰래 모여 정도전에게 제사를 드린다는 바위에 올라서 정도전의 혼백에게 술을 뿌린다.

정도전만은 아마 자신이 하려는 일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세종 역시 정도전의 민본사상이 자신의 덕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분노는 백성을 위한 자신의 정책이 현실 정치에서 사사건건 사대부에 의해 방해받는 다는 사실에 있다.

사대부들은 정도전이 가리킨 민본의 이념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재상정치의 체계와 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만 매달린 채, 실제로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있다고 세종은 분노한다.

 

 

“내가 대체 뭘 그리 잘못했느냐? 나는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이었다. 내 신하들은 지금도 모두 모여서, 내 뜻을 거스를 모의를 한다더구나. 그래, 생각해 보면 항상 그랬다. 중국의 책력이 아닌 우리의 책력을 만든다 할 때도, 천문기기를 만들기 위해서 중국에 사람을 밀파할 때도, 세법 가부조사를 할 때도, 노비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려 할 때도... 대행 대왕의 뜻을 거스를 수 없사옵니다. 국고가 낭비 되옵니다. 신분 질서가 어지럽혀 지옵니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엔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이면서, 온갖 공맹의 도리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공자께서 언제 자국의 책력을 만들면 안 된다 하셨느냐? 맹자께서 제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들으면 안 된다 하셨어? 나는 단지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이었는데,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

 

 

세종은 신하들에게 소리치는 대신, 정도전에게 술을 바친다.

세종이 신하들의 면전에서 직접 호통 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비록 형식에만 매달려 있다 해도, 정도전이 만든 경국대전은 조선 통치 이념의 근간이며, 그들의 논리 역시 만만하게 깨어질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익을 취하는 신하들은 별도로 하더라도, 적어도 세종 이도와 밀본 정기준 사이의 대립에는 원칙적으로 사사로운 이익에 대한 다툼은 없다.

이들은 말 뿐인 대의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대의를 위해 사활을 거는 것이다.

두 가지 체제 모두 대의와 논리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현실에서 잘못 운용될 경우 치명적인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다.

왕은 폭군이 되어 백성을 헐벗게 만들 수 있고, 사대부는 탐관오리가 되어 백성을 수탈할 수 있다.

누구를 따를 것인가?

 

여기에서 <뿌리 깊은 나무>가 보여주는 새로운 길은 바로 ‘각성한’ 백성의 힘이다.

 

똘복은 왕이고 나발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신분이나 계급에 억매이지 않는 그의 주체성은 본능적으로 획득된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기본권에 대한 인식과 다르지 않다.

복수를 꿈꾸며 무작스럽고 교활하게 굴러 온 똘복이지만, 그가 철칙으로 신봉하는 것은 세상에 천한 목숨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똘복은 세종 이도를 죽여 왕의 목숨과 아버지 노비의 목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소이의 주체성은 각성의 산물이다.

소이는 한자를 몰랐지만, 아는 체 했고, 그것 때문에 모두가 죽었고, 그 감당할 수 없는 죄의식으로 말을 잃었다.

그러나 세종이 백성들의 문자를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즉각적으로 그것이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문자야말로 왕이나 사대부의 농단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해독 불능의 편지(문자)’가 촉발한 비극 속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소이 보다 더 처절하고 절실하게 새로운 문자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자가 달리 누가 있겠는가.

소이의 비극은 소이를 산주검으로 몰아갔지만, 그 죽음을 통과한 소이는 주체적 인간으로 다시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자는 그렇게 소이의 새로운 삶이자 복수가 된다.

소이는 직접적인 복수가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복수를 선택한 것이다.

백성들이 문자를 갖게 됨으로써 왕과 사대부와 백성이 모두 평등한 인간임을 입증하는 것, 더 천하고 더 귀한 목숨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소이의 복수이자 속죄이다.

문자가 곧 권력이었다면 백성의 문자는 그 권력을 백성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

 

 

세종 이도가 백성의 문자를 만들려고 했던 이유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종은 누가 왕이 되고, 누가 사대부가 되더라도, 백성들이 억울하게 핍박당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도전이 경국대전을 편찬하고 재상 정치 체제를 구축했던 이유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도전이 제도로서 백성을 보호하려 했다면, 세종은 백성 스스로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정기준의 투쟁은 철저히 사대부의 결사체인 밀본을 중심으로 실행된다.

재상정치의 근본에는 민본사상이 있지만, 조선은 또한 사대부의 나라이고 백성은 수동적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기준이 비록 가리온이라는 백정으로 수십 년을 반촌에서 살았다고 해도, 그는 한 번도 천한 신분의 백성과 스스로를 동일시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단지 뜻을 펴기 위한 수족이었을 뿐이었지, 뜻을 함께 하는 동지는 아니었다.

정기준에게 '민본'의 民인 백성은 다만 추상적 존재였을  뿐이다.

 

 

그러나 세종의 한글 창제에는 반드시 소이와 똘복이 필요하다.

허구의 인물임이 분명하겠지만, 그래도 <뿌리 깊은 나무>에서 소이가 한글 창제의 핵심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백성의 능동적인 참여 없이는 ‘백성의 문자’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작가들의 의식 때문일 것이다.

지난 주 <뿌리 깊은 나무>의 끝 부분에 밀본 세력에 의해 세종이 문자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막에 둘러앉은 백성들은 낄낄거리며 별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것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당하면 당하는 대로 살아가는 그냥 백성이다.

백성들은 아직 문자가 무엇인지, 어떤 힘을 가졌는지, 하루하루 밥 먹고 살아가는 일에 무슨 보탬이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귀찮고 쓸데없는 일이다.

 

거기다가 똘복은 세종을 향해 악을 쓴다.

문자를 몰라서 억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신분이 천해서 당하고 사는 것이라고.

문자를 몰라서도 죽지만, 문자를 알아도 죽는다고.

 

세종 이도 앞에 놓인 과제는 그러므로 단순히 사대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문자를 반포하는 것만이 아니다.

세종은 한글에 대한 두 번째 판관으로 똘복 정채윤을 선택했다.

그것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문자가 왜 필요한지,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를 깨달아야만 비로소 한글이 백성의 문자로서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총 방송 분량의 절반이 방영된 시점에서 <뿌리 깊은 나무>의 후반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관심사는 똘복 정채윤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가 하는 것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똘복이 어떻게 한글을 수용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백성들의 삶에 어떤 능동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는가에 드라마의 명운이 달려 있을 것이다.

 

 

나는 힘없는 백성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탄생하는 소이와 똘복이라는 인물이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이 시대에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혐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적인 태도는 세련되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사실 ‘소인이 뭘 알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라는 드라마 속의 백성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아무리 쉬운 문자를 만들어 주었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배워야 하는지를 백성 자신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문자란 그저 지랄염병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1인1표의 투표권이 주어졌다 해도, 그것이 등록금이나 취업난, 전세난, 빈부격차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스스로 깨닫고 참여하지 않는다면 민주적인 선거 제도 역시 쓰잘데기 없는 정치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세종의 시대에서 문자에 눈뜬 백성이란 지금 이 시대에 정치의 필요성에 눈뜬 시민과 같지는 않을까?

소이가 똘복을 변화시키듯 우리도 우리를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을 이 드라마는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가 성왕정치와 재상정치 사이에서 세종의 편에 서는 것은 그 제도 자체의 우수성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백성의 문자라는 ‘한글’ 자체가 백성을 다스림의 수동적 대상으로 보는 사고로는 절대로 착안될 수 없고,  문자란 스스로의 뜻을 펴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고, 제도 자체 보다 더 탄탄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히 발상해내고 창제해낸 세종의 정치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핵심에 ‘백성의 참여’를 배치한 까닭은 지금 이 시대에도 그 ‘참여’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현재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역사적 인물을 현재로 다시 불러 올 때는 그 인물의 삶이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어떤 의미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이런 인물도 있었다거나 이런 신기한 사건이 있었다는 차원에서 역사 속에 곱게 잠자는 인물을 깨워 온다면, 괜히 미이라의 저주니 어떠니 하는 괴 소문에나 시달릴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역사적 인물을 소환할 때는 먼저 그 사유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당신이 그것을 기획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이것이 내가

“ Gabriel Tarde에 대한 소개서를 자신이 낸다고 할 때, 출간 기획서를 쓰시오

”란 과제를 받아들고 계속 생각해 왔던 문제이다.

 

우리의 독자는 일반 대중이거나 기껏해야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진 대중이다.

따드는 대중에게 어떤 현재적 의미를 줄 수 있을까?

 

 

내가 가질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백과사전적 정보에다가, 동시대의 사회학자 뒤르켐과 라이벌이었다는 사실 정도이다.

그의 책은 번역된 것이 없고, 그의 사회학적 방법론은 라이벌 뒤르켐에 의해 매장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심리학적 사회학’이란 이름 외에는 세간에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

고작해야 “모든 사회현상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적(心的) 관계라는 궁극의 형태로 환원되며, 이것이 ‘순수하게 사회적인’ 것으로서의 사회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라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일단 따드에 대한 우리의 소개서가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뒤르켐과의 라이벌 관계다.

그러나 단순하게 뒤르켐이 얼마나 철저하게 따드를 파묻었고, 따드는 얼마나 생고생을 하다가 억울하게 죽었나 등등의 이야기만으로는 별로 신선할 것이 없다.

세기의 라이벌, 불멸의 라이벌, 불구대천의 라이벌 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있어 왔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려면 일단 따드의 이론이 복권되어 거꾸로 뒤르켐을 파묻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땅에 묻힌 고분을 발굴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따드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대에 따드가 공헌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누군가 따드를 필요로 하고 있어야 한다.

학문은 과거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직선적으로 발전해나간다고 할 수 있지만, 거꾸로 현재의 연구가 과거에 매장된 이론을 되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학자가 아니다.

우리 책은 전문 서적도 아니며, 따드의 책을 번역할 계획도 없다.

우리의 목적은 따드의 발굴이 아니라, 따드의 대중화이다.

따드의 이론이 훌륭해 보이니 그것을 먼저 발굴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분석해낼 방법을 찾아가는 식의 순서를 밟을 수는 없다.

우리는 거꾸로 따드를 통해 우리 사회를 성공적으로 분석해낸 사례를 찾아서 따드를 소개하는 방식을 택해야만 한다.

사실 그런 성공적인 사례가 없다면 우리는 따드를 포기해야 한다.

훗날에 제대로 따드를 되살려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기회를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출간 기획서의 목표는 따드를 소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먼저 판단하는 것이다.

정식 출간 기획서는 그 판단이 이루어진 이후에 작성될 수 있을 것이다.

출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따드와 관련된 연구자들을 찾아서 그들의 연구 내용과 그들이 판단하는 따드의 현재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따드의 이론을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 적용한 사례를 찾는 것이다.

셋째 그 사례들이 대중적으로 공감될 수 있거나 대중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책도 반드시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책이라 하더라도 ‘유용성’이 없이는 대중 서적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유를 촉발하건, 교양을 함양하건, 재미를 주건 대중 서적은 대중에게 줄 수 있는 유용한 그 무엇, 그 존재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따드에 관한 기획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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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유혹 - 에코의 즐거운 상상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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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3일, 카페 과제로 쓴 글입니다.

 

 

선생님이 패를 깠다. (‘까셨다’는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선생님의 의중을 적중하리란 야무진 꿈은 꿔보지도 않았지만, 당황스럽다.

그러니까 일종의 블러핑으로 보인다.

 

 

   에코라는 이름은 쓰지 말 것.

   책의 구절은 인용해도 상관은 없지만, ‘에코’라는 단어는 쓰지 말 것.

   어떤 이탈리아 학자 혹은 어떤 소설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봐주겠음.

   (기본적으로는, 이 책을 모티브로, 에코와는 아무 상관없는 글을 쓰는 연습임.)

 

 

나는 진짜 에코와는 아무 상관없는 글을 2편이나 썼다.

그러면서도 왜 굳이 선생님이 두 권의 책을 지정하셨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글을 쓰고 보니, 그 책들을 읽었건 안 읽었건 별반 상관없는 글을 썼다는 생각을 잠깐 했을 뿐이다.

‘출제의도’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출제의도’ 같은 것과 별 상관없이 살았다.

이공계열이 흔히 그렇듯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곰곰이 헤아려봐야 할 출제의도 같은 것은 없었다.

문제는 분명하게 주어졌고, 나는 적절한 실험을 하거나, 계산을 하거나, 추론을 하거나, 기억을 되살리면 됐다.

물론 깊이 있는 학문을 하게 되면 그렇지 않겠지만, 슬렁슬렁 대학교를 졸업한 나는 그렇게 단순하고 표면적인 공부로, 공부라는 것을 마감했다.

 

 

은희경과 김사과 때부터 왜 하필 은희경인가? 하는 의문은 있었고,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역시 이건 무슨 뜻? 따위의 즉각적인 의문은 있었지만, 그리고 매번 선생님의 의도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이렇게 블러핑까지 하실 줄은 몰랐다.

가진 패를 전부 다 보여 주어도 판판이 잃을 학생들인 것을 도대체 왜 저런 함정을 파 놓으셨단 말인지, 왜 ‘에코’의 ‘에’자도 꺼내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신 것인지, 나는 그저 한 붓에 써야 한다는 것에 혹해서 허리가 끊어지도록 책상머리에 붙어있었다.

숨겨진 문재를 찾는 선생님만의 독특한 취향이라 생각해야겠지만, 헛 다리를 짚어도 너무 심하게 짚어 놓고는, 마감 안에 과제를 다 했다고 혼자 좋아라한 것이 혼자 생각해도 쪽 팔려서 뭔가 생떼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나는 쪽글 8을 다시 쓰기로 했다.

선생님이 패를 다 까놓았으니, 나도 규칙에 관계없이 ‘에코’라는 말을 마구마구 써버릴테다 우기며 말이다.

일단 에코의 <글쓰기의 유혹>에 나오는 “63그룹”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선생님을 슬프게 했다는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를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물론 선생님의 <샌드위치 위기론의 허구> 초판 서문도 찾아 읽어야 했다.

그런데 아람누리 도서관에 선생님의 책은 없었다.

나는 다시 조금 더 멀리 있는 다른 도서관으로 책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다른 도서관에는 <샌드위치 위기론의 허구>가, 그것도 초판 발행본으로 소장되어 있었다.

서문은 그다지 길지 않아서 도서관에 앉아서 읽고 올 수 있었다.

아쉽지만 본문은 다음에 읽기로 했다.

우선 쪽글을 써야 하니까, 그것도 에코, 에코 하면서 써버릴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 쪽글을 다시 쓰기로 한 것이 다만 무안수세 때문만은 아니다.

왜 에코인가에 대한 선생님의 글들과 63그룹에 대한 에코 자신의 분석은 왜 내가 하필 여기서 쪽글을 쓰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곧바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재밌으니까’ 혹은 ‘심심하니까’ 따위의 대답으로 뭉기적 거리기에는 이제 다들 느끼다시피 이 쪽글들이 그렇게 만만한 소일거리가 아니다.

선생님의 목표는 처음부터 일반인 저자를 키워내는 것이었지만, 나는 한 번도 내가 저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도서관이나 서점에는 책이 넘친다.

읽을 책이 없는 것은 읽을 만한 책이 없는 것이지, 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들이 점심때마다 먹을 것이 없어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쨌든 쏟아지는 책들 때문에, 정작 10년이든 100년이든 읽혔으면 하는 책들은 자리를 빼앗겨 어느 지하서고에 처박혔는지 알 수도 없고, 읽어도 고만 안 읽어도 고만인 신간들이 온통 도서관의 서가를 차지한다.

내가 일반인 저자라는 말에 별로 귀를 쫑긋하지 않는 이유도 그렇게 거치적거릴 책을 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선생님을 비롯해서 책을 준비하는 분들 모두 그런 책을 내놓으려고 하지는 않으실 거다.

 

 

어쨌든 나의 문제를 정리하면 이렇다.

   내가 만약 책을 쓴다면 나는 적어도 ‘읽을 만한 책’을 쓰고 싶다.

   나는 지금 그럴 능력이 없다.

   선생님의 훈련을 제대로 따라가면 그런 자질을 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확신도 없다.

   그렇다면 이 만만하지 않은 과정을 계속할 명분이 있을 것인가.

   그런데 이 과제들이 나는 좋다. 자꾸 내 안의 뭔가를 건드린다.

 

 

문제는 재빨리 찾아냈지만(아직 2페이지도 못 채웠다), 답은 천천히 풀어야 한다. (그러니까 아직 8페이지가 남았다.)

일단 선생님에게서 시작한다.

 

 

선생님은 우리를 선택한 이유를 여러 번 밝히셨다.

 

 

    “ 결론부터 말하면, 에코의 63그룹은 실패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을 기점으로 하는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이 68 전에 모여서, 이탈리아를 살려보자, 그렇게 모였다.

      일단 실패.  그 실패의 원인을 찾는 게, 경제 대장정을 준비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가졌던 질문이다.

      그게 아방가르드라서 실패한 게 아니라, 예술가 등 너무 지식인 중심으로 모여서 했던 게 아닐까, 그 생각을 했다.

      지금 습작당 그리고 그 원형이 되었던 학생들과의 모임, 혹은 또 다른 일반인 모임, 이런 방식으로 63그룹과는 다른

      포맷 실험을 계속해보는 게, 내가 지금 귀하들과 여기서 이러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

 

 

이 글을 뜯어보면 이렇다.

선생님의 궁극적 목표는 “대한민국을 살려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식인” 은 안 된다, 이탈리아의 63 그룹이 그걸로 망했다, 그래서 선생인 나는 “일반인”인 여러분과  실험하기로 했다.

 

일단 목표가 어마어마하다.

졸지에 국민교육 헌장에서 외웠던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오늘에 되살려야 할 임무를 맡은 것 같다.

작은 어깨로 감당할 무게가 아님이 분명하지만, 일단 동의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하는 것이 마땅하고, 해야만 하는 것이니 또 하는 것이 마땅한, 그런 훌륭한 목표인데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능력의 문제는 차후의 일이다.

선생님도 우리 모두가 ‘나라를 살릴’ 수 있으리라 믿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일단 ‘살려 보자’ 는 것이지 반드시 목숨 걸고 살리겠다는 혈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등등으로 논의를 이어가야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사실 자명한 것이 제일 어렵다) 여기서는 이 정도로 해두고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내가 주목하는 가장 큰 문제는 지식인과 일반인의 대립 구도에 있다.

선생님은 아방가르드라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지식인 중심이라서 실패한 것 같다고 이탈리아의 63 그룹을 진단했다.

지식인이라서 실패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나는 아직 선생님 자신으로부터 여기에 대한 답을 찾아보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그리고 죄송하게도 나는 <88만원 세대> 외에는 선생님 책을 읽어 보지 못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들어 본 적도 없다.

분명히 어디선가 그 이유를 밝히셨을 것 같은데, 오늘에야 부랴부랴 그걸 찾아보기에는 선생님이 쓴 책이 너무 많고, ...그렇다.

<샌드위치 위기론의 허구> 서문에도 그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이 서문은 63그룹이 왜 19C 영국에 천착했는지를 설명하는데,

 19C 영국은 단순히 제국의 심장부가 아니라, 그 당시 세계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탐구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이 영국과 미국의 차이점이고, 미국에서 대부분의 선진 지식을 배워 오는 우리 사회가 아무런 철학 없이 표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요렇게 기억한다;;)

 

 

여하튼 지식인의 문제로 다시 돌아와서,

혹시 에코의 논문 <63그룹>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에코는 먼저 63그룹이 아방가르드 집단인지 실험주의 집단인지를 질문한다.

   “의문의 여지없이 63그룹 내에는 이 두 영혼 즉 아방가르드적 영혼과 실험주의적 영혼이 공존해 있었으며,

    이 그룹의 기본적인 성격이 그처럼 애매모호해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선생님은 63그룹을 특별히 세분하지 않고 아방가르드로 총칭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라면 아방가르드로서의 63그룹에만 관심이 있으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코에 의하면 아방가르드로서의 63은 실패했다.

그것은 아방가르드라는 개념 자체에 존재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 모든 아방가르드 집단은 의식적으로 자신들의 붕괴를 재촉한다는 원칙대로,

      63그룹 또한 <퀸디치>의 폐간과 함께 스스로를 해체했다 ”

에코의 설명을 조금 더 보태자면 이렇다.

   “ 역설적인 것은 전혀 없었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퀸디치>는 새로운 자유공간이 되어, 이 그룹과 발기인들의 원래의 ‘문화적’ 요구와 체제 전복을 추구하는 ‘정치운동’의 요구를 동시에 표현해야 했다. 그러나 막상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이 그룹은 자신들이 아무런 이데올로기적 통일성도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이 그룹은 누구를 위해 그리고 누구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지 전혀 의견이 통일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방가르드그룹으로서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문제가 점점 복잡해져 간다.

이제 영영사전을 볼 때처럼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또 다른 단어를 줄줄이 찾아야 하는 연쇄의 사슬로 빠지는 듯하다.

   아방가르드란 도대체 무엇인지?

   실험적 집단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63그룹이 아방가르드나 실험적 집단 중 하나로만 구성되었다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

   어쨌거나 그들에게 공유된 이데올로기적 통일성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인지?

 

 

63그룹에 대한 애증이 남다를 에코라면 마땅히 연구해야 할 문제겠지만 내가 여기서 에코의 설명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거나 에코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은 문제까지 머리를 쥐어뜯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뜯어 봐도 답 나오기는 힘들다. 아차차...주어가 빠졌다. 물론 주어는 ‘내가’ 이다. 에코에게 혐의를 두지 마시길...)

다만 실험적 집단으로서의 63과 아방가르드로서의 63을 대략 비교해 보는 것은 필요할 듯하다.

 

63그룹은 ‘일군의 작가, 비평가, 화가, 그리고 음악가들’이 주류인 ‘3~40대의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룹을 ‘지적-실험적 서클’로 바라보면서 ‘문화적 과제’를 저항의 주된 형식으로 간주하는 실험적 집단과 문화적 혁명주의와 테러리즘을 특징적 요소로 하는 아방가르드 집단이 혼재해 있다.

실험적 작가가 규칙을 파괴하는 것은 그 들의 새로운 규범이 ‘수용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이고, 아방가르드적 태도는 도저히 수용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제도 자체’를 파괴하려는 것에 있다.

내가 보기에는 마치 개혁과 혁명의 차이처럼 보인다.

에코의 태도는 아방가르드에 조금 더 애정이 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잘은 모르겠다.

다만 이미 1969년에 스스로 청산해 버린 아방가르드로서의 63 그룹을 20년이 지나서 기이할 정도로 과도하게 축하하고 칭찬하는 것은 너희들이 아방가르드를 아방가르드가 아닌 그 무엇으로 변질시켜 아예 그 문화 자체를 청산해 버리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에코를 통해서도 분명한 답을 얻어내지 못했다, 혹은 읽어내지 못했다.

이 논문에서의 에코는 특별히 ‘지식인’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일반인의 어투로 말하자면, 맨 땅에 해딩이 필요한 순간이다.

 

 

 

지식인은 무엇이 문제일까?

어제 밤에 침대에서 눈을 감았는데 언뜻 몇 가지가 떠올랐다.

 

   지들끼리 논다.

   더럽게 어려운 말만 한다.

   습속(그들 말로는 아비투스)이 이질적이다.

 

용서하시라.

무릇 거추장스러운 것을 내려놓고 잠이 들 때는 교양이라든지 예절이라든지 그런 것들도 벗어 던지기 마련이다.

내가 주관적으로 본, 혹은 주관적 직관으로 본 지식인의 결점은 이런 것이다.

 

 

지식인들이 학계를 터전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물론 학계와 생활세계를 통섭 불가능한 것으로 분리하는 태도에 있다 .

예전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늘 엄마가 하시던 말이 있다.

공자왈, 맹자왈...하면 밥이 나오요, 돈이 나오요!

실상 공자든 맹자든 돈 벌어 밥 먹고 사는 세상의 이치와 그 태도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일 텐데, 아버지는 밥 벌어 먹는 현실을 모두 엄마에게 맞기셨다.

우리는 무지 아버지를 원망했는데, 그렇게 하신 공부로 일가를 이루시거나, 후학을 교육하지도 못하셨으니, 아버지 자신의 심정도 오죽 답답하셨을까 마는, 어쨌든 자식 된 심정으로 지금 돌이켜 보아도 무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살리건, 세상을 바꾸건, 천하를 경영하건, 일단 세상 속으로 들어와 세상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니, 세상을 공부하는 지식인들은 먼저 세상과 소통해야 할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속이 뒤집힐 때가 참 많다.

머리를 쥐어뜯기로 하면, 안 그래도 얼마 없는 머리카락이 삽시간에 흔적도 없어질 판이다.

최근에 나는 헤겔의 <정신 현상학>을 읽었다.

이런 책을 감히 내가 읽으려 했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 짓일지는 몰라도, 왜 그걸 읽어야 했는지는 나중에 하소연하기로 하고, 읽다가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세 달은 족히 걸린 것 같은데, 다 읽고 난 지금도, 그래서 “정신은 뼈다” 란 말을 헤겔이 긍정한 것인지 부정한 것인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긍정했다고 그것이 긍정이 아니요, 부정했다고 그것이 또 꼭 부정은 아닌 것이 헤겔의 악명 높은 변증법인 것 같은데, 웬만한 머리로는 오독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구조이다.

거기에다가 학계의 식민지라는 우리나라의 특성이 보태지면 점입가경이다.

이것이 한글인지 영어인지 독어인지, 문장 구조는 차지하더라도, 일단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원문의 ‘not' 이 어디에 붙었는지 확인할 길 없는 독자로서야 문맥이 아무리 이상해도 번역자가 부정해 놓은 곳을 부정으로 읽어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주어, 술어, 목적어 순서가 완전히 다른 우리나라 언어로 번역될 때 발생하는 번역자의 실수일 수도 있고, 물론 독자가 엿가락처럼 길고 긴 번역문을 어디에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몰라서 발생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니 지식인들의 언어가 무지하게 어렵게 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떨 때는 이게 바벨탑을 보시고 하느님이 했다는 바로 그것과 똑 같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인간들이 더 이상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도록 종족 마다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장벽을 치셨다는 그 치사한 이야기 말이다.

전지전능한 하느님께서 인간들이 알아봤자 얼마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 짓까지 하셨다는 건지 나는 오히려 그 이야기가 인간들이 꾸며낸 하느님에 대한 음해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여하튼 지식인들이 설마 그럴 리야 하겠는가만, 쓰는 말이 하나같이 어려워, 독자는 서럽다.

 

 

습속, 습관, 체화된 태도 등으로 부를 수 있을까... 아비투스란 나도 누군가에게 얻어 들은 단어다.

그가 습관을 굳이 아비투스라고 하는 것은 아마 그것이 가장 정확한 의미이고, 습관이라는 평이한 단어로는 그 뉘앙스와 그것의 사회학적· 철학적 의미를 온전하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인에게서 보는 나의 이질감은 딱 이런 아비투스에 있다.

상대방이 알아듣든 모르든 아비투스는 아비투스여야 한다.

어쨌거나 여기서 아비투스가 무엇인지 검색창에서 찾아와 보자.

 

위키 피디아는 너무 딱딱해서 검색 창의 맨 위에 올라온 어느 블로거의 설명을 빌려왔다.

http://neigeblue.blog.me/40035409593

 

   “ 아비투스란 습관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다....그런데, 이런 문화적 취향 즉 아비투스는 부르디외에 따르면 위계화된 사회문화 공간 속에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경계를 가르는 요인이다....우리는 흔히 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개인의 특성이자, 선천적인 끌림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고급문화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으며, 같은 그룹들의 사람을 만나 교류함으로써, 고급예술에 대한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더 발전시킨다. 즉 이들의 취향은 교육을 풍부히 받은 지배집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당한 취향(Legitimate taste)’에 속한다. 중산층 사람들은 이들 보다는 질이 조금 떨어지는 예술작품에 대한 취향을 가지며 이를 ‘중류층 취향(Middle-Brow taste)’이라고 한다..그리고 대중적 취향(Popular taste)’ 이 있다.”

 

 

나는 최근 어떤 진보 지식인의 이런 아비투스에 좀 당황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이런 쪼잔한 걸로 뭐라고 해서는 안될 만큼 훌륭한 지식인이다.

지금 이 글의 사정이 여기까지 온 바람에, 생생한 사례을 전달하기 위해 결례를 무릅쓰니 부디 용서하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고 트윗을 팔로우하고 있는데, 행동하는 좌파 지식인이다.

그의 트윗은 농성현장의 상황이나 소속 정당의 행동 강령, 이념에 대한 해석 같은 것들이 주를 이루는데 그는 가끔 개인적 소회를 트윗에 올리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매우 감성적이고 음악을 사랑하고 문학적 표현력도 뛰어난 분이다.

예를 들어 물대포 앞에서 반값 등록금 시위를 하다가 돌아 온 밤에, 그는 이런 트윗을 올린다.(사후적으로 구성된 예다)

 

 “poetica virtute"

 

이게 어느 나라 말일까?

나는 갑자기 내 코 앞에서 창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그가 거리에서 묻은 온갖 먼지를 떨어내고 장미향 가득한 욕조에 앉아 깔바도스를 옆에 놓고 스트라빈스키를 듣고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는 그의 ‘정당한 취향(Legitimate taste)’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취향이라곤 ‘대중적 취향(Popular taste)’이 전부인 나로서는 그저 말할 수 없는 이질감과 거리를 느낄 뿐이다.

아비투스라는 것은 어쩌면 공기와 물처럼 자신이 속해 있는 계급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획득된 것이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고급문화에 대한 대중의 몰이해일 뿐 아니라, 대중적 취향에 대한 지배계급의 이해 불능일 수도 있다.

어쨌든 문제는 이질감이다.

언뜻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취향‘의 문제가 사실은 감성의 영역에서 가장 강력하게 대중을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강남 좌파’에게서 느끼는 이질감도 비슷한 문제이다.

나는 강남 좌파를 존중한다.

그들은 필요하고 그리고 훌륭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여간에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와인의 원산지를 구분해 내고, 이탈리아 본고장의 스파게티 맛을 논하고, 차가 쌩쌩 달리는 찻길 옆이라도 굳이 햇볕이 쪼이는 테라스를 고집할 때, 유럽의 문화를 종횡무진으로 꿰뚫으며 책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온 것들을 그저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할 때, 겨우 9박 10일의 여정으로 관광지 문화재 앞에서 사진만 잔뜩 찍고 돌아 온 ‘대중적 취향(Popular taste)’인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지식인이 모두 그런 아비투스를 가졌는가에 대한 질문이 남았다.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지식인은 지배계급 출신이 다수이다.

19C 영국이든, 20C 미국이든 선진 지식을 위해 떠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어야 한다.

눈물 나는 유학생의 고생담도 사실 일반 서민에게는 호사에 불과하다.

그들의 고생과 먹기에만도 하루하루가 힘겨운 고생을 비교하는 것은 한 급에 놓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족 같지만, 강조하거니와 일반론일 뿐이니 개념치 마시길 바란다.)

 

 

 

그렇다면 지식인은 민중의 적인가?

나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지식인을 버리고 일반인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지식을 버렸다는 뜻이 아님을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지식을 버렸다면 왜 굳이 일반인들을 데리고 저자 만들기 작업을 하고 계시겠는가?

다만 선생님이 지식인이기 때문에 잘 할 줄 아는 것이 그것 밖에 없어서 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우리 카페에도 올라 온 슬라보예 지젝의 이야기를 해보자.

지젝은 사실 학계의 이단아라고 할 수 있다.

정통 학계에서는 학자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엔터테이너나 광대로 조롱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 1988년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발표한 이후 생각하는 속도 보다 책을 쓰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저술 활동을 해왔다.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자본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체제를 주장하는 것이고, 내가 아는 한 그것은 실패한 과거의 공산주의에서 그 공산주의가 실현하지 못했던 공산주의적인 그 어떤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 스탈린 체제냐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그는 스탈린이 실패한 곳에서 반드시 구원해 내어야 할 공산주의적인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최근 월 스트리트 현장에서 그것을 ‘공통적인 것 혹은 공통성 commons' 이라고 표현했다.

 

이 개념은 지젝이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에서 이미 밝힌 바가 있다.

 

 첫째는 ‘문화의 공통성’으로 직접적으로 사회화된 ‘지적’ 자본을 말한다. 언어, 공공 운송, 전자 통신, 우편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만약 빌게이츠에게 독점권이 허용된다면 우리는 특정 개인이 우리의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망의 소프트웨어 토대를 문자 그대로 소유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에 처해지게 된다.

둘째는 ‘외부 자원의 공통성’ 이다. 석유, 숲, 자연 서식지 자체가 오염과 착취로 위협받고 있다.

셋째는 ‘내적 자연의 공통성’ 이다. 인간의 유전자 같은 것을 말한다.

 

지젝은 이것들의 사유화는 그것 자체가 사회적 존재에 대한 폭력 행위이므로, 필요하다면 폭력을 통해서라도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산주의의 부활이 정당화되는 근거가 바로 이 ‘공통성’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젝이 이런 것들을 주장하는 방식은 헤겔과 라깡, 맑스를 통해서이다.

즉 그의 작업은 다분히 이론적이다.

그는 구호로 민중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좌파 지식인 사회에서 폐기된 공산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지식인들과 끊임없는 이론 싸움을 해왔다.

그러나 지젝은 그 싸움을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행해 왔다.

그의 책은 히치콕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와 소설, 구 동구권을 떠도는 무수한 농담들로 가득 차있다.

지젝의 용어가 한 때 씨네21에 그렇게 많이 등장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지젝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다.

학문이 그렇게 만만할 리는 없다.

더구나 까다롭기로 유명한 헤겔, 명료한 언어가 거의 불가능한 라깡이 아닌가.

그러나 헤겔과 라깡, 맑스는 그의 이론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는 그것을 대중화하기 위해 지적 엔터테이너의 오명을 무릅쓰고 거리의 비속한 농담들까지 책 속에 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젝이 금융자본주의의 운명을 손에 쥔 바로 그 월 스트리트의 ‘사건’ 현장에서 군중의 환호와 지지를 받으며 유투브에 널리 회자될 명연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20년이 넘는 그의 학문적 탐구와 투쟁의 결과인 것이다.

지젝의 연설은 역사의 현장에서 감정에 겨워 곧바로 튀어 나온 즉흥적 주장이 아니다.

그는 민중의 요구에 대해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주입해 온 ‘불가능하다’란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대안적 세계를 모색하기 위하여 치밀한 이론적 작업을 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지젝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꿈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백일몽을 꾸는 이들은 지금과 같은 방식이 무한히 계속될 수 있으리라 믿는 그들 자신이다.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점점 악몽이 되고 있는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젝이 이루어낸 오랜 기간의 학문적 성과 없이는 오늘날 저 월 스트리트의 지젝 또한 없다는 것이다.

지젝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의 언어가 알아듣기 쉽고 호소력 있는 비유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유와 철학이 그의 언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주의가 점점 악몽으로 변하자 이제 사람들은 ‘공통성 commons’이라는 공산주의적인 것들을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언어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지식인의 역할을 현실을 해석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것들은 일반인이 쉬이 해낼 수 없는 것이다.

남편 친구 중에 몇 년 전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로 지내다가 최근에야 겨우 매형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 사이 그 친구는 녹즙 대리점도 해보고 이것저것 손을 댔지만 모두 실패했다.

처음 그 친구는 모든 것을 자신의 무능으로 돌렸다.

그런데 실업자로 지내던 그 몇 년 동안 아고라를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를 열심히 돌아다니던 그 친구는 남편의 말에 의하면 열렬한 사회 비판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해 주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다.

물론 최전방에서 이런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조금 덜 학문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조금 덜 엄밀할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지식인의 활동 영역도 여러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어떤 단계로 나누어진다고 분명하게 밝힐 수도 없지만, 선생님만 하더라도 스스로를 B급이라고 하시는 걸 보면 하여간 그렇게 느껴진다.

 

학문적 엄밀성 보다는 현실적 유용성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지식인도 있다.

그렇다고 학문적 엄밀성이 지식인의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학문이란 혼자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지젝이 말하는 이른바 ‘공통적인 것’ 의 영역에 있다.

엄밀한 학문의 성과 위에서만 그 지식은 현실적 유용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양한 역할을 하는 다양한 지식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헤겔이 필요한 만큼 지젝이 필요하고, 그리고 지젝을 더욱 쉽게 읽을 수 있는 어떤 매개자 또한 필요하고, 아고라의 그 복마전에 속에서도 여론의 흐름을 제대로 주도할 지식인 역시 필요하다고 나는 본다.

 

 

 

이것이 선생님이 지식인이 아니라 일반인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저자를 발굴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선생님의 의도가 따로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내가 해석하는 이 프로그램의 의의는 그러하고, 결론적으로 내가 여기에서 끙끙대며 이 쪽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인이란 생활인이다.

우리는 무엇을 읽거나 볼 경우, 학자적 엄밀성을 발동하여 논리를 정치하게 따지기 보다는, 곧 바로 우리의 일상에 비추어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우리가 이해하는 형상으로 그려내고,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생활 언어로 번역한다.

그것들이 때로는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개념의 엄밀성에 발목 잡혀 자유로운 표현을 하지 못하는 지식인 보다, 거칠고 때론 불안하지만 큰 틀에서 보아 오류가 없다면, 편안하고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일반인이 더 깊은 감동을 줄 수가 있다.

물론 결정적으로 치명적인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여기서 이렇게 훈련을 받는 의의가 또한 여기에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일반인과 동일한 습속(아비투스)을 가진 일반인들의 공감 능력이 지식인들의 그것을 능가할 수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읽힐만한 책을 쓸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능력이란 그렇게 쉽게 획득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싹수란 것도 있어야 하고, 열정도 있어야 하고, 노력도 있어야 한다.

다만 지금은, 10매씩 써야하지만 이것이 그다지 힘들지 않고, 사실을 말하자면 살짝살짝 흥분이 되기도 하고, 그리고 이 모든 도전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내게 어떤 변화가 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은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정말 할 수 있을까요?”란 히스테리컬한 의문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 그 신념을 지렛대 삼아 이 의문의 강을 도약하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작가 노트>에서 꼭 새겨두고 싶은 문장 하나를 기억하고 싶다.

 

 

   “ 그러나 새로운 소설, 전혀 다른 종류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쓰려고 할 경우 작가는, 독자가 드러낸 요구를 분류하는 시장 동향 분석가가 아닌, 시대정신의 흐름을 간취하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작가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원해야 하는>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설사 작가 자신이, 대중이 원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작가는 자기를 독자에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자기에게 드러내고자 한다.”

 

 

여러분 모두, ‘대중이 원해야 하는 것을’ 대중의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으로,  대중 앞에 드러내는 작가가 되시 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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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2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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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4일, 카페 과제물로 쓴 글입니다.

 

 

도서관의 시 서가에 ‘장정일’이 안 보인다.

그리 많지 않은 서가를 꼼꼼히 짚어 내려가다 오래전에 읽은 기형도에 관한 소설이 생각났다.

 기형도는 언젠가 못 마시는 술을 두어 잔 마시고 구보씨를 찾아와서 이런 푸념을 한 적이 있다.

    “구보. 내가 글쎄 오늘날의 시인 백 명 가운데도 들지 못한다는군. 나는 시밖에 쓴 것이 없는데. 나는 오늘날을 살지 않거나 시인이 아닌가봐. 만해와 소월, 윤동주와 이육사, 정지용과 백석, 김수영과 신동엽을 제외했는데도, 그들은 오늘날의 시인이 아니니까, 나는 오늘날을 살면서도 백 번째에도 못 드는 시인이라는군. 혹은 시인이 아니거나. 혹은 외국의 시인이거나 말이야. 아니 혹은 외계의 시인이 아닐까.” 」

장정일은 시인이 아닌가? 아! 장정일은 소설가인가?

그러고 보니 나는 예전에 장정일의 소설을 한 권 읽은 적이 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에게 나를 보내마’ 였던가?

기억은 ‘너에게 침을 뱉어마’ 와 뒤섞인다.

김사과의 <미나>는 장정일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비하면 차라리 해제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친절하고 착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잊었지만 그 느낌은 또렷하다.

장정일은 내 이해력이 닿을 수 없는 어떤 곳에 있었다. 나는 속이 메슥거렸다.

 

 

네이버의 어떤 블로거가 친절히 옮겨 놓은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맛이 없었다.

말 그대로 맛이 없어서(無) 나는 맛을 알 수 없었다.

혹은 요즘 내가 읽는 책에서 자주 접하는 말로 바꾸어 보자면, 조금 재수 없지만, 나는 無를 맛보았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지만, 無맛의 햄버거에 어떤 맛을 보태는 것은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읽고, 찬성이나 반대냐, 입장을 정하고 논하시오.” 라는 지시문이었다.

 

식어빠진 햄버거의 축 늘어진 상추 잎이 갑자기 물기를 머금고 싱싱하게 살아났다.

내게 상상력이 있다면 나는 A4 2장짜리의 멋진 시를 쓰고 싶었다.

제목은 <햄버거에 대한 찬반 논쟁>? <깍두기를 명상하라>? <햄버거 소고기의 원산지에 대한 명상>? <미식 햄버거, 한식 햄버거, 퓨전 햄버거>?

 

나는 수학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었다.

사고력은 필요하지만 상상력은 환영받지 못하는,

Y=F(x)

함수가 주어지고 변수가 정해지면 나는 정확한 Y값을 계산한다.

잘 했던 것을 하자.

 예전에 잘 했던 것을 지금도 잘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도 잘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잘 할지도 모른다고 우기는 것 보다는 정답을 맞힐 확률이 높거나 덜 뻔뻔한 주장일 것이다.

는 정답을 좋아한다, 지금도.

 

F(x) =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읽고, 찬성이나 반대냐, 입장을 정하고 논하시오.”

이제 변수 x를 찾아야 한다.

보통은 문제에 제시되는 것이지만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두 번 읽어도 그 안에서 자명한 x를 찾지 못한다.

깜빡 잊으신 걸까? 행간에 숨겨두신 걸까? 아니면?

구 동구권에 유행하던 속담이 하나 있다고 한다.

  매일 무언가를 훔쳐가는 일꾼. 그런데 주인은 그 일꾼이 훔쳐가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일꾼의 수레를 샅샅이 뒤지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일꾼이 훔쳐가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빈 수레였

  다.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읽고, 찬성이나 반대냐, 입장을 정하고 논하시오.”

이것이 바로 x이면 어떻게 할까... 살짝 걱정이 되다가 그냥 가던 길로 가기로 한다.

산을 오르다 길을 잃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가던 길로 계속 가는 것이란다.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다가는 정말로 길을 잃는다, 죽을 때까지.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 찾는다 또는 찾아서 만든다.

햄버거를 만들듯, x를.... 만든다.

상상력은 없지만 약간의 융통성은 있다.

 

가능한 x들에 대한 명상...

 

1. 단단하거나 투명한 것이 아니라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해서도 명상한다.

2.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이다.

3.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때 잡념을 떨쳐라.

5.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6.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 준다.

7.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8.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A4용지 10매는 거뜬하겠다.

작년에 배운 돈오돈수와 돈오점수.

단박에 깨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돈오점수는 깨친 것을 계속 어루고 만지면 더 큰 깨우침이 있다는 것이고, 돈오돈수는 찰나의 깨우침이 가장 큰 깨우침일 뿐 더 이상은 없다에 내기를 건 방법이라고 했다.

일단 문제는 머릿속을 밝히는 번개가 없다는 것이지만 돈오돈수를 방패삼아, 명상 없이 Y값을 찾아 나선다.

 

1. 이왕이면 불투명한 것들에 대해서도 명상하라. 그런데 금이나 꿈이 어떻게 단단하고 투명한 것이냐? 금값은 하루아침에 널을 뛰고 오늘도 주식 시장은 사이드카가 발동되었는데. 꿈이 꿈인 것은 그것이 불투명하기 때문이지 투명하면 그게 꿈이냐?

2. 어쩌다보니 우리는 햄버거를 사· 먹· 는 족속이다.

3. 옛날에 TV 요리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 따라 만들고 싶었는데 재료를 구하지 못했다. 무국이라 해놓고 소고기가 필요하고, 양식에는 보지도 못한 치즈와 올리브 오일이 필요했다. 돈이 없어 못 구하고 알지를 못해 못 구했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건가?

 

오오오오오.... 재미없는 답안지다.

 

나도 가끔 명상을 한다.

설거지를 할 때면 온 신경을 수세미를 쥔 손과 흐르는 물과, 눌러 붙은 밥 알갱이에 집중해야 한다.

설거지만이 세계의 전부이다.....

흐르는 물 위로 구제역으로 매몰된 소, 돼지의 벌건 침출수가 섞인다.

두 식구 밥만 해도 봄, 가을이면 갈라터지는 셋째와 넷째 손가락이 숨 막히는 고무장갑 안에서 근질거리다 화끈거리다 비명을 지른다. 내일은 꼭 면장갑을 사야 한다.

물과 수세미와 밥 알갱이에 집중하면 할수록 점점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와글거린다.

세계가 머릿속에 들어온다.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지 않고 스며들도록 조심조심 발라도 어느새 세계는 보이지 않는 틈을 찾아 머릿속을 차지한다.

나는 자주 망상을 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명상한다. 망상한다.

햄버거를 먹는 족속들의 심장부가 뚫렸다.

월스트리트가 99%에 의해 점령당한다.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맛좋고 영양 많은 미국산 쇠고기 패티를 빵 위에 올린다.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에서 빠지려고 했던가?

촛불은 꺼졌다.

 

아! 그런데.... 어쩌자고 이 분은.....

 

   오늘은 詩를 한편 감상하시면서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만들어 보세요.

   장정일 시인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은 햄버거 레시피 입니다.

   슈퍼를 생협 매장으로만 바꾸면 완전 웰빙 햄버거 완성!!

   가끔은 이런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삶의 재미!!!

 

장정일의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생협의 믿을 수 있는 재료가 그 품질을 한층 더 높여서!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세계에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이 전부 다 망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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