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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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7일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내가 자주 놀러 가는 서점은 동네에 있지만 나름대로 대형서점이다. 

우리집 보다 네 배는 넓어 보이니 줄잡아도 100평은 될 것 같다.

가운데는 대여섯개의 책상과 스무개 쯤의  의자가 놓여 있어 눈치보지 않고 책을 읽기도 좋다.

칠팔년 전까지만 해도 책은 꼭 사서 읽고

그렇게 다 읽은 책으로만 책꽂이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혼자 뿌듯해 하곤했다.

그런데 무슨 변덕인지 그 빼곡한 책들이 어느 순간 갑갑해 보였다.

그 후로는 왠만하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밑줄치며 읽어야 할 책이나 너무 너무 마음에 드는 책만 사고 있다.

 

분야별로 모아 놓은 베스트 셀러들을 주~욱 훍어 나갔지만 은희경은 보이지 않았다.

자꾸 신경숙이나 김훈이 눈에 들어 왔다.

영화 도가니에 힘입어 공지영의 도가니도 눈에 띄었다.

국내소설 서가를 하나하나 훍어 나가다가 결국 검색대를 찾았다.

등잔불 밑이 어두웠던지 은희경의 책은 벽면에 따로 마련한 전체 베스트셀러 코너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맨 아래칸, 흰색 표지에 작게 쓴 글씨의 제목이 쉽게 눈에 뜨이지 않았나 보다.

제일 많이 읽히는 작가가 맞기는 하나보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책 날개에 옆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은희경은

언젠가 EBS의 테마기행에서 보았던 그 여성 작가가 맞는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여리고 고운 목소리의 그 나레이션을 쉽게 소화하지 못했다.

첫 장을 넘기자

아침에 일어나서 블라인드를 걷고, 날씨를 살피고, 커피콩을 갈고 같은 문장들이 튀어 나왔다.

부실 공사 탓인지, 낡아서 그런지, 관리소장 말대로 기계실 밑이라 그런지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만 하면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아침마다 위이잉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는 나는 '커피콩' 에 눈을 멈추었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쉬 너그러워지지 않는다.

부럽고말면 될 것을 나는 어쩌자고 시기를 한다.

 

한 시간여를 읽고 나니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동네를 한바퀴 산책하고 빵을 먹고 벤치에 앉아 가지고 다니던 책을 읽었다.

한결같이 어려운 책. 나는 또 무얼하려고 이 어려운 책을 낑낑대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동네를 한바퀴 돌아 서점으로 들어갔다.

미안하다.

오늘 여기서 이 책을 다 읽고 말 심산이다.

아직 한 번도 책 한권을 몽땅 서점에서  읽은 적은 없는데...

이 서점의 회원이긴 하지만 여기서  산 책은 딱 두권이다.

다음에 알라딘 말고 여기서 주문해 주기로 마음 먹는다.

 

시애틀, 커피콩, 독일, 맥주, 사인회, 원주와 박경리..

반짝이는 문장들을 탁구공처럼 주고 받는 문인 친구들과의 새벽 트윗질..  

체취처럼 풍겨 나는 그리움, 쓸쓸함, 사랑의 기억..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고 나는 공지영이 부러웠다.

지리산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낙장불입 시인이나 고알피엠 여사는 부럽지 않았다.

그 산 속에는 행복 만큼이나 벌레도 불편도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돼지고기 몇 근을 싣고 차를 몰고 와 밤새도록 술을 마실 수 있는 공지영이 부러웠다.

나는 그렇게 은희경도 부러웠다.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고도 결국 아무것도 읽어 내지 못한 채 서점을 나왔다.

넋을 놓고 붉은색 신호등을 보고 있는데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의 어떤 단어들이 튀어 올랐다.

'발화내용의 주체'와 '발화행위의 주체'

말하자면 낙장불입 시인이 발화내용의 주체라면 공지영은 발화행위의 주체인 셈이다.

나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졌다.

그래!! 나는 발화행위의 주체로서 그녀들이 부러웠던 거야!

나도 배운게 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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