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2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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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4일, 카페 과제물로 쓴 글입니다.

 

 

도서관의 시 서가에 ‘장정일’이 안 보인다.

그리 많지 않은 서가를 꼼꼼히 짚어 내려가다 오래전에 읽은 기형도에 관한 소설이 생각났다.

 기형도는 언젠가 못 마시는 술을 두어 잔 마시고 구보씨를 찾아와서 이런 푸념을 한 적이 있다.

    “구보. 내가 글쎄 오늘날의 시인 백 명 가운데도 들지 못한다는군. 나는 시밖에 쓴 것이 없는데. 나는 오늘날을 살지 않거나 시인이 아닌가봐. 만해와 소월, 윤동주와 이육사, 정지용과 백석, 김수영과 신동엽을 제외했는데도, 그들은 오늘날의 시인이 아니니까, 나는 오늘날을 살면서도 백 번째에도 못 드는 시인이라는군. 혹은 시인이 아니거나. 혹은 외국의 시인이거나 말이야. 아니 혹은 외계의 시인이 아닐까.” 」

장정일은 시인이 아닌가? 아! 장정일은 소설가인가?

그러고 보니 나는 예전에 장정일의 소설을 한 권 읽은 적이 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에게 나를 보내마’ 였던가?

기억은 ‘너에게 침을 뱉어마’ 와 뒤섞인다.

김사과의 <미나>는 장정일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비하면 차라리 해제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친절하고 착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잊었지만 그 느낌은 또렷하다.

장정일은 내 이해력이 닿을 수 없는 어떤 곳에 있었다. 나는 속이 메슥거렸다.

 

 

네이버의 어떤 블로거가 친절히 옮겨 놓은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맛이 없었다.

말 그대로 맛이 없어서(無) 나는 맛을 알 수 없었다.

혹은 요즘 내가 읽는 책에서 자주 접하는 말로 바꾸어 보자면, 조금 재수 없지만, 나는 無를 맛보았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지만, 無맛의 햄버거에 어떤 맛을 보태는 것은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읽고, 찬성이나 반대냐, 입장을 정하고 논하시오.” 라는 지시문이었다.

 

식어빠진 햄버거의 축 늘어진 상추 잎이 갑자기 물기를 머금고 싱싱하게 살아났다.

내게 상상력이 있다면 나는 A4 2장짜리의 멋진 시를 쓰고 싶었다.

제목은 <햄버거에 대한 찬반 논쟁>? <깍두기를 명상하라>? <햄버거 소고기의 원산지에 대한 명상>? <미식 햄버거, 한식 햄버거, 퓨전 햄버거>?

 

나는 수학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었다.

사고력은 필요하지만 상상력은 환영받지 못하는,

Y=F(x)

함수가 주어지고 변수가 정해지면 나는 정확한 Y값을 계산한다.

잘 했던 것을 하자.

 예전에 잘 했던 것을 지금도 잘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도 잘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잘 할지도 모른다고 우기는 것 보다는 정답을 맞힐 확률이 높거나 덜 뻔뻔한 주장일 것이다.

는 정답을 좋아한다, 지금도.

 

F(x) =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읽고, 찬성이나 반대냐, 입장을 정하고 논하시오.”

이제 변수 x를 찾아야 한다.

보통은 문제에 제시되는 것이지만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두 번 읽어도 그 안에서 자명한 x를 찾지 못한다.

깜빡 잊으신 걸까? 행간에 숨겨두신 걸까? 아니면?

구 동구권에 유행하던 속담이 하나 있다고 한다.

  매일 무언가를 훔쳐가는 일꾼. 그런데 주인은 그 일꾼이 훔쳐가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일꾼의 수레를 샅샅이 뒤지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일꾼이 훔쳐가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빈 수레였

  다.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읽고, 찬성이나 반대냐, 입장을 정하고 논하시오.”

이것이 바로 x이면 어떻게 할까... 살짝 걱정이 되다가 그냥 가던 길로 가기로 한다.

산을 오르다 길을 잃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가던 길로 계속 가는 것이란다.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다가는 정말로 길을 잃는다, 죽을 때까지.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 찾는다 또는 찾아서 만든다.

햄버거를 만들듯, x를.... 만든다.

상상력은 없지만 약간의 융통성은 있다.

 

가능한 x들에 대한 명상...

 

1. 단단하거나 투명한 것이 아니라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해서도 명상한다.

2.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이다.

3.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때 잡념을 떨쳐라.

5.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6.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 준다.

7.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8.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A4용지 10매는 거뜬하겠다.

작년에 배운 돈오돈수와 돈오점수.

단박에 깨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돈오점수는 깨친 것을 계속 어루고 만지면 더 큰 깨우침이 있다는 것이고, 돈오돈수는 찰나의 깨우침이 가장 큰 깨우침일 뿐 더 이상은 없다에 내기를 건 방법이라고 했다.

일단 문제는 머릿속을 밝히는 번개가 없다는 것이지만 돈오돈수를 방패삼아, 명상 없이 Y값을 찾아 나선다.

 

1. 이왕이면 불투명한 것들에 대해서도 명상하라. 그런데 금이나 꿈이 어떻게 단단하고 투명한 것이냐? 금값은 하루아침에 널을 뛰고 오늘도 주식 시장은 사이드카가 발동되었는데. 꿈이 꿈인 것은 그것이 불투명하기 때문이지 투명하면 그게 꿈이냐?

2. 어쩌다보니 우리는 햄버거를 사· 먹· 는 족속이다.

3. 옛날에 TV 요리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 따라 만들고 싶었는데 재료를 구하지 못했다. 무국이라 해놓고 소고기가 필요하고, 양식에는 보지도 못한 치즈와 올리브 오일이 필요했다. 돈이 없어 못 구하고 알지를 못해 못 구했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건가?

 

오오오오오.... 재미없는 답안지다.

 

나도 가끔 명상을 한다.

설거지를 할 때면 온 신경을 수세미를 쥔 손과 흐르는 물과, 눌러 붙은 밥 알갱이에 집중해야 한다.

설거지만이 세계의 전부이다.....

흐르는 물 위로 구제역으로 매몰된 소, 돼지의 벌건 침출수가 섞인다.

두 식구 밥만 해도 봄, 가을이면 갈라터지는 셋째와 넷째 손가락이 숨 막히는 고무장갑 안에서 근질거리다 화끈거리다 비명을 지른다. 내일은 꼭 면장갑을 사야 한다.

물과 수세미와 밥 알갱이에 집중하면 할수록 점점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와글거린다.

세계가 머릿속에 들어온다.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지 않고 스며들도록 조심조심 발라도 어느새 세계는 보이지 않는 틈을 찾아 머릿속을 차지한다.

나는 자주 망상을 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명상한다. 망상한다.

햄버거를 먹는 족속들의 심장부가 뚫렸다.

월스트리트가 99%에 의해 점령당한다.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맛좋고 영양 많은 미국산 쇠고기 패티를 빵 위에 올린다.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에서 빠지려고 했던가?

촛불은 꺼졌다.

 

아! 그런데.... 어쩌자고 이 분은.....

 

   오늘은 詩를 한편 감상하시면서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만들어 보세요.

   장정일 시인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은 햄버거 레시피 입니다.

   슈퍼를 생협 매장으로만 바꾸면 완전 웰빙 햄버거 완성!!

   가끔은 이런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삶의 재미!!!

 

장정일의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생협의 믿을 수 있는 재료가 그 품질을 한층 더 높여서!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세계에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이 전부 다 망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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