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회입니다.

연휴의 막마지라 한 회 쉴까했지만,

과반이 가능하다고 하셔서 내쳐 공부하였습니다.

오늘 일곱명이 모였고요.

물루님이 쉬폰까지 만들어 오셔서 더욱 즐겁고 오붓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공부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고요.

맞죠? ^^

 

오늘은 두 책 모두를 공부하였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에서는 18세기 계몽주의, 

<인문 고전 강의> 에서는 프랑스 계몽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몽테스키외를

알아보았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사상이 18세기 프랑스에 수입되어서 꽃을 피운 것이 계몽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홉스와 뉴턴을 받아들인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등이 프랑스 계몽주의의 대표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루소는 '계몽주의의 마지막 수호신인 동시에 신랄한 비판자' 이기도 합니다.

 

바이저가 쓴 『헤겔』이라는 책에는 '이성의 권위에 대한 계몽의 신앙' 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최고의 권위를 가진 것이 바로 이성입니다.

 

"계몽은 이성의 시대였는데, 왜냐하면 계몽은 이성을 모든 지적 물음들에서 최고의 권위, 최종적인 상고 법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것의 중심적이고 특징적인 원리는 우리가 이성의 주권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P44~5)

 

 

계몽주의 시대의 지적 물음들에 대한 답은 <백과전서>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고등학교 세계사에서 볼테르나 몽테스키외 보다 백과전서파를 더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포함되지만 보다 엄밀하게는 계몽주의자가 아닌 사상가가 루소입니다. 루소는 문명이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루소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사회입니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소유가 발생하고 정부가 만들어지고 권력이 자의적으로 횡포를 부리면서 노예상태로 전락했습니다. 18세기 프랑스의 일반 인민의 삶이 그랬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루소의 방안은 '소유권 기반 사회'를 '일반의지 기반 사회'로 바꾸는 것입니다.

 

'소유권 기반 사회'는 로크적인 사회입니다. 로크는 17세기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상가입니다. 로크는 욕망에 따라 자신의 소유물을 만들고 지키는 것을 자연적인 권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로크에 따르면 소유물의 많고 적음에 따른 불평등은 당연한 것입니다. 루소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자유롭고 평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의지가 필요합니다.

 

일반의지는 공동체의 의지입니다.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합의하여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대한민국의 일반의지를 대통령 당선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내가 투표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선된 대통령은 우리 공동체의 일반의지에 따라 선출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법한 절차를 거친 선거 결과에 모든 국민은 승복해야 합니다. 즉 일반의지가 개인의 의지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모든 개인은 일반의지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40%대의 선에서 대통령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은데, 만약 나머지 60%가  당선인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그 일원인 나의 자유도 없습니다. 비록 40%가 만들어낸 일반의지라 해도 그것이 일반의지임이 확인되고 나면 100%의 국민이 이에 복종해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일반의지에의 복종이 개개인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는 현대의 제도와 같습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의 내가 동의했건 반대했건 간에 확정된 제도는 따라야 하고 법은 지켜야 합니다.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 인권선언문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기반해 있습니다.  탕플 감옥에서 계몽사상을 읽은 루이 16세는 '볼테르와 루소가 프랑스를 망쳐놓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이었던 국민공회를 이끌었던 로베스피에르가 숭배했던 인물이 루소라고 합니다. 하지만 루소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약 십년 전에 죽었습니다.

 

 

  

다음주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칸트입니다.

철학하면 칸트, 칸트하면 철학이 등식처럼 뇌리에 박혀있어서

칸트를 한다니 진짜 철학을 하고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문제는 그 칸트를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입니다.

칸트는 두 주에 나누어 공부할 예정입니다.

다음주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해봐야 알것 같은데요.

일단 칸트 철학의 전반적인 개요와 <순수이성비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칸트 : p463 ~ 482

 

<2012 서양 철학사>

  37강

 

<2015 서양 근대사상>

08강 칸트의 판단력비판 서론 2

(강의 파일 1보다 2가 더 개괄적이므로 먼저 2를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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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휴일인 집도 있고, 안 휴일인 집도 있는 날입니다.

초등학교 운동회도 있고요.

그래서 ... 오늘 최저 인원을 찍었습니다.

여섯명이 함께 하였습니다.

 

인원은 적었지만 재미있는 공부였습니다.

모처럼 지금 우리 정신세계 및 물적세계와 딱 들어맞는 내용을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고 저절로 막 이해가 가고 할 말도 많은 주제였습니다. 그도그럴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틀을 만든 로크의 『통치론』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로크는 "17세기 새롭게 대두되는 신흥상업부르주아 계급의 당파성을 대변한 사상가"로 정의됩니다. 명예혁명의 성공과 더불어 로크의 사상은 영국 근대국가의 성립 뿐 아니라 한 세기를 지나 미국 독립혁명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프랑스혁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죠.

 

서구의 시민혁명으로 근대 국가가 확립되었고, 현대 세계는 여전히 이때 만들어진 근대국가의 틀 안에 있다고 보면, 로크의 사상은 바로 지금 우리 삶의 기본 이념인 셈입니다. 우리 세계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인 까닭은 이 때문입니다. 이 세계는 여전히 가진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돈이 주인인 세상, 자본주의 세계이지요.

 

17세기 로크 당시에는 이런 생각이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인신과 소유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연적인 권리가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중세나 절대왕정시기 개인의 생명도 재산도 왕이나 영주의 임의적 처분에 놓이기 일 수 였으니까요. 소유권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보호한다는 생각은 혁명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제3신분으로 재산을 많이 획득한 부르주아들로서는 이 아니 반가운 사상일 수 없습니다. 로크가 신흥상업부르주아 계급의 당파성을 대변했다는 말은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로크는 여기에 저항권까지 부여하였습니다. 통치의 목적은 개인의 소유권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주권자와 인민 사이의 계약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런데 주권자가 개인의 재산을 침해하고 소유권을 박탈할 때 이 계약은 종료되고 통치권은 몰수됩니다. 인민이 저항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주권은 다시 인민들에게 돌아가고 인민은 새로운 주권자와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미국 독립혁명은 이 과정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보스턴 차사건은 영국이 미국 식민지에 일방적으로 부과한 세금 즉 재산의 침탈에 저항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폭동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전쟁을 거쳐 독립을 획득하게 됩니다. 로크의 사상이 글자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에서, 18세기 미국과 프랑스에서 혁명적이었던 로크사상은 그러나 현대에서는 보수적인 사상입니다. 재산으로 인격을 따지는 사회, 가진자만이 인간으로 대접받는 자유주의 사회는 로크 이후 300여 여년을 거치며 많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사회주의 사상과 러시아 혁명은 자유주의 국가에 경종을 울렸고 자유주의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도록 강제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 자유주의 국가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20회 모임에는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와 < 인문 고전 강의> 를 함께 합니다.

내용은 18세기 계몽주의 입니다.

철학 내용으로는 주목할 만한 것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18세기 시민혁명에 끼친 영향에 의의를 두면 되겠습니다.

루소와 볼테르, 몽테스키외를 중심으로 볼까합니다.

 

 p 428 ~ 460

Ⅱ 계몽주의

Ⅲ 근대의 형성

 

<2012 서양철학사 강의>  36강 (루소 1:17 이후~) 

 

 

 p 423 ~ 441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인문고전강의> 090910-000 ~ 09091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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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년만에 카페를 벗어나 말그대로 '교실'에서 스타디를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완벽한 분위기여서 저는 약간의 적응 장애를 느꼈습니다. ㅎ

카페인도 충분히 보급되지 않아서 머리도 멍했고요.

게다가 오늘 주제인 경험주의는 정말, 

세계도 없고 자아도 없다는 총체적 붕괴로 빠지는 과정이라

덩달아 멘탈이 붕괴되는 듯도 했고요.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과연 이것이 말은 말인가 싶기까지 했습니다.

 

 

다음주에도 경험주의 맥락의 영국철학자 로크를 공부하지만,

오늘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너무도 현실적인 정치사상가를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인문 고전 강의』 중 로크의 <통치론>

  p 369 ~ 420

 

<강유원 선생님 강의> 

 파일 20090806 ~ 20090827 

 

 

오늘은 모두 열 명이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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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쉬고, 아홉명이 모였습니다.

 

지난 회 데카르트에 이어

오늘은 <17세기 관념론> 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에서는

<17세기 관념론> 항목 아래

데카르트와 프랑스의 데카르트주의자,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유원 선생님의 강의에서는

<자연적 필연성의 영역>에서 확실성을 추구한 철학을

근대철학의 Part 1 로 분류하고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뉴턴을 포함하였습니다.

 

분류가 어찌되었건 17세기 근대 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Cartesian mind를 토대로 삼은 17세기 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스피노자입니다. 

 

스피노자는 단독 실체로서의 신과 신의 변형태로서의 자연을 역설하였습니다. 

데카르트가 나눈 사유와 연장은 신의 두 가지 속성에 불과할 뿐이고,

이 세계의 개별 사물들(자연)은 모두 신의 다양한 양태들입니다. 인간 역시 신의 변형태입니다. 이 개념에 따르면 " 실체 = 신 = 자연 " 의 공식이 성립합니다.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을 "무한자와 유한자의 무차별적 통일로서의 동일철학" 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용어로는 범신론입니다.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은 그의 대표작인 『에티카』 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입니다. 윤리학에서 증명한 것이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 즉 형이상학이고, 그 방법론은 기하학입니다. 하나의 책에 형이상학과 윤리학 그리고 방법론이 모두 포함된 역작이라고 합니다. 

 

사실 기하학으로 어떻게 무한자와 유한자가 통일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원작을 읽어보아도 아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핵심은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곧 형이상학이라는 것입니다. 

 

희랍철학의 전통에서 윤리학의 목표는 행복, Eudaimonia 입니다. 행복은 '잘 사는 것' 입니다. 'well(잘)' 에는 기능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좋은 바이올린은 음을 잘 냅니다. 좋은 커피는 향과 맛을 잘 냅니다. 좋은 사람은?  이성을 잘 사용합니다.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 바로 이성을 사용하는 것, 앎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언어를 사용하고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탁월함을 앎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고자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데카르트의 Cogito 명제 또한 인간의 본질을 사유 즉 정신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스피노자 역시 서양사상의 지적 전통 아래 있습니다. 스피노자가 주장한 것은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 입니다. 지적 직관에 의해 유한자인 인간은 무한자인 신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지적 직관이란 신적인 입장으로 올라서서 즉 신의 위치에 서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플라톤의 '갑자기'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스를 통해 제1 원리를 알수 있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생각납니다. 무한자에 대한 앎은 이렇게 늘 직관을 통해서만 설명되어 왔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요? 

 

스피노자가 지적 직관으로 알아낸 것은 신적인 필연성입니다. 그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고, 신이 없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생각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때의 신은 필연성을 따르는 신입니다. 17세기 근대과학이 발견한 자연적 필연성이 곧 신의 필연성인 것입니다. 자연법칙에 반하는 기적을 마구 일으키는 전능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법칙을 따르는 지혜로서의 신입니다.

 

이 세계가 신적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조화롭게 질서지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불확실성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이런 복종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에서 시작하여 뉴턴에서 그 정점에 이르른

고전역학의 결정론적 세계에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인과법칙에 맞물린 질서정연한 세계, 완벽한 체계에서

인간은 단지 노예이거나 기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이런 의문을 제기하고

근대 형이상학을 전복하려 했던 철학자가 니체입니다. 

강유원 선생님은 1900년 니체의 죽음과 함께 근대 철학도 끝이난다고 합니다.

 

 

다음주는 영국의 근대철학입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p407 ~ 427

 

<2012 서양 철학사 강의>

34강 로크 (1시 25분 경 ~)

36강 흄 (1시 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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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를 공부하다 보니 늘 세계사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정작 오늘이 제주 4.3 항쟁 기념일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네요.

어제,오늘 제주 곳곳에서 제사를 모신 집이 많았겠습니다.

7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진상규명을 제대로 못한 사건입니다.

 

오늘은 아홉명이 함께 했습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대한

강유원 선생님의  <인문 고전 강의> 책과 강의 파일을 각자 공부하고 모였습니다.

데카르트의 cogito 명제에 대해서는

지난 주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를 읽으며 공부해 두어서

오늘은 쉽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Cogito ergo sum'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로 그대로 직역하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유가 원인이고 존재가 결과처럼 인식이 되는데요.

cogito 명제의 의미는

'나의 본질은 사유하는 것이고, 나의 정체성은 정신에 달려있다'로 이해하면

훨씬 명확해집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res cogitans (사유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cogito 명제를 기화로

우리는 각자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삼고 있는지,

나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철학적 질문은 답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오늘 또다시 느꼈지만,

철학의 힘은 답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 자체에 있다고 알고 있기에

오늘은 물음을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음 회차의 책은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입니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 17세기 관념론 철학자를 공부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스타디 회원 과반 이상이

다음주와 다다음주에 걸쳐 다른 일정이 잡혀서

부득이 17회차는 3주 후인 4월 24일(월)에 있을 예정입니다.  

다른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다음 회차 내용> 

 

책 :  P 369 ~ 404

 

강의 : 2012 서양철학사 파일 35강

 

 

 

 

 

 

 

 

 

 

그리고 강유원 선생님이 읽어보기를 권유하신

<다시 쓰는 근대 세계사 이야기> 는 현재 절판입니다.

이 책의 2nd edition이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원 제목은 <The Origins of the Modern World> 입니다.

두 주간의 공백이 생겼으니 ^^,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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