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20년이 잠깐 사이 흘러간다.  지구에서 물리적 시간이란 객관적이겠지만, 각자가 지각하는 시간의 빠르기는 다르기 마련이다.  2022년은 아직 어색하지만 2002년은 그립고도 생생하다.  내 인생의 어디론가 돌아갈 수 있다면 그해 노란 물결 속으로 팔랑팔랑 뛰어들고 싶다. 


그리고 그즈음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들뢰즈, 가타리,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이 유행이었고,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이라는 알쏭달쏭한 책을 시작으로 지젝을 참 열심히도 읽었다. 아마 지젝이 쉬웠다면 그렇게 독파하진 않았을 텐데 다작으로 유명한 지젝의 비슷비슷한 책들을 한권도 빼지 않고 번역되는 족족 읽었던 것은 두 번 세 번 반복해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철학사를 읽고 있었고, 철학자의 원저에도 욕심이 생겨났다. 


<향연>은 맨 먼저 추천 받았던 철학 책이다.  무려 플라톤인데 쉽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쉽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다소 기이했다.  그러다 우연히 강유원 선생의 <라디오 인문학> 이란 프로그램에서 <향연> 강의를 들었다.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그때 알게 되었다.  




재작년에 고전 읽기 모임을 하면서 <향연>을 다시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2년 간 다들 그러했듯 코로나19가 계획을 엉클어 버렸다.  연말연시 무엇을 할까 하다가 <향연>을 택했다.  플라톤 아카데미의 이태수 교수 강의를 먼저 들었고, 역자 강철웅의 작품 해석도 함께 읽었다. 이 강의도 2013년에 있었다. <라디오 인문학>도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었다. 


<향연>을 대표하는 내용은 소위 '에로스의 사다리'이다. 소크라테스가 예전에 디오티마라는 여성에게 들은 이야기를 향연의 참석자들에게 들려주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10여 년 후에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이렇게 들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다시 들려주는 복잡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야기가 전해지고 전해지고 전해져서 결국 2,400여 년 후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오래 살아 남은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하니, <향연>은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여야 하는데, 그 배경을 알지 못하면 사실 낯선 시공간을 사는 우리가 직관적인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https://youtu.be/MGLuj4KjnF8



이태수 교수의 강의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는 순간 막가는 인생인 된다."는 것이다.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갈망)"인데, 아름다움이란 몸의 아름다움에서 시작해서 영혼의 아름다움, 앎의 아름다움, 그리고 '갑자기' 직관하게 되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 이르기까지 계서화 되어 있다.  에로스의 사다리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름다움 그 자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의 아름다움이란 영혼의 아름다움과 앎의 아름다움 그 언저리에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삶이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은 마치 거울 반사처럼 타인들을 통해 내게로 되돌아 온다.  휘번뜩이는 눈빛과 마구 내뱉는 말들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드르고 있는 사람은 정작 자기 영혼의 추함을 모르고 있을 터이다. 그 무지의 추함은 물론이거니와. 국가 최고의 권력을 얻더라도 그것이 정작 어떤 아름다움으로도 향하지 않을 때, 인생도 국가도 막가게 될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라디오 인문학 : Apple Podcasts에서 만나는 강유원의 라디오 인문학 (주말 뉴스쇼 박명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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