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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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라는 이름은 내게 늘 이른 봄의 새벽 찬 공기를 느끼게 한다.  언젠가 배우 김혜자가 '깎쟁이 같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웃음이 터지면서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던 무렵 새벽 출근 준비 시간에 틀어 놓았던 TV 뉴스 속의 손석희는 가끔 싸가지 없어 보이도록 쌀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정신을 맑게 일깨우고 가야할 길을 서두르게 한다.  


몇 가지 이유로 나는 웬만한 책은 소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 서재를 책장삼아 심심할 때면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남긴 글들을 통해 되살린다.  밑줄을 그어야 하거나, 일하는데 필요하거나, 죽을 때 같이 태우고 싶은 몇 권의 책들 이외에는 남은 책이 없다.  


얼마 전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손석희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손석희가 아니었다면 당연히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을 것이다. 우리 지역에도 희망 도서 신청을 하면 신간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도서관은 있다.  이 책을 구매한 이유는 한가지다.  고마움이다.  마지막에 이런저런 소문들이 떠돌긴 했지만, 그는 이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선한 의지를 가진 올곧은 지식인이다.  나는 이 한 권의 책으로 그의 오랜 노고에 대한 소리없는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책은 재미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그 시간들, 그 장면들이야말로 우리가 막 시작한 21세기를 강타했던 연이은 태풍들이 아니었던가. 21세기가 끝나갈 즈음에는 이 태풍들도 역사의 한 장으로 고요히 잦아들겠지만, 함께 울고 함께 외치고 함께 분노했던 우리에게는 언제까지나 생생한 현실이 될 것이다. 동시대인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사건 자체보다 폭풍우 속의 외로운 선장처럼 끝내 방향을 잃지 않으려던 그의 노력과 고뇌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요즘 툭하면 플라톤을 떠올린다. 철학 전공자가 아니니 플라톤주의자라고 하기는 외람되지만, 플라톤이 옳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모르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구체적인 이론은 다 떠나서 플라톤이 최고의 이데아로 삼았던 善, 올바름이 우리 삶의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고 고개가 끄덕여 진다. 우리 발걸음이 올바름을 향해 있지 않다면 그렇게 정신없이 내달아봤자 우리가 도달하는 곳에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올바름의 이데아가 실재하든, 하늘의 본으로 떠있다고 단지 가정하든 그 별빛이 없는 한 우리는 그저 힘센 놈이 더 가지려고 아귀다툼하는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거기가 기원전 5세기의 희랍이든 기원후 17세기의 영국이든 그리고 AI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공존하는 21세기이든 말이다. 그 야만의 정글을 사는 것은 짐승이지 인간은 아니다. 


손석희는 그의 저널리즘을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로 요약한다. 이 이데아가 JTBC라는 종편을 한때 가장 품격있는 매체로 만들어 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도 플라톤주의자라고 부르면 안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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