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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어하우스 - 드론 택배 제국의 비밀 ㅣ 스토리콜렉터 92
롭 하트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세상이 사막으로 되고 있다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오아시스로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오아시스가 누군가의 소유라면 그리고 그가 오아시스의 물을 마시고 싶으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오직 자기가 명령한 것만 철저하게 수행하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존이 얼마나 절박하느냐에 따라 선택의 양상을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오아시스의 일원이 되어 그렇지 못한 자들 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기계가 되기로 결정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정치부 기자를 역임했으며 정치 경력도 있는 미국의 스릴러 작가, 롭 하트의 '웨어하우스'는 이런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드론을 통한 택배로 엄청난 부를 거머쥔 회사라는 설정은 실제 그런 서비스를 준비 중인 아마존을 얼른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튼 이 소설에 나오는 '마더 클라우드'는 그 정도의 대기업이다. 창업자 깁슨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 보면 된다. 소설은 그 깁슨의 말로 시작한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마더 클라우드로 성공했는지 밝히는데 그러면서 췌장암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할 거리는 것도 아울러 고한다. 뒤이어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명은 남자 팩스턴. 다른 한 명은 여자 지아나.
둘은 같은 날 '긴급 고용'에 뽑히기 위해 마더 클라우드에서 면접을 본다. 원래 팩스턴은 자기 사업이 있던 사람이었다. '퍼펙트 에그'라고 달걀을 안에 집어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원하는 모든 요리를 만들어주는 기계를 발명해 사업을 했다. 그러나 주 고객이었던 클라우드가 자꾸만 낮은 단가를 원해 거기에 맞추다가 그만 사업이 망하고 말았다. 사업을 하기 전에 교도관이었던 팩스턴은 그 일을 하다가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자꾸만 상실하는 것 같아서 그걸 보존하기 위하여 사업을 한 것이었는데 이제 그것 또한 실패하여 다시 거대한 기계와도 같은 마더 클라우드의 부품이 되려 하고 있었다. 지니아는 처음부터 수상쩍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에겐 뭔가 비밀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유능한 산업 스파이이다. 그녀가 마더 클라우드에 입사하는 건 오직 의뢰인이 높은 자릿수의 금액을 입금하고 회사를 망칠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자 다른 이유로 입사하게 된 이들은 우연히 팩맨이란 고전 게임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다. 팩스턴은 교도관 이력 때문에 보안 업무를 맡게되고 거기서 마더 클라우드에서 유통되고 있는 마약 오블리비언의 입수 경로를 찾아내라는 임무를 받는다. 지니아는 해킹 프로그램을 심을 컴퓨터 단말기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접근 하기가 쉽지 않다. 마더 클라우드의 모든 고용인은 손목 시계를 차도록 되어 있는데 그건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철두철미하게 감시하는 기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시계를 풀고서는 방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이토록 천라지망과도 같은 감시망 아래에서 지니아는 과연 비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은 꽤 다채롭다. 일단 이야기 전개가 세 사람을 중심으로 번갈아가며 행해진다. 언제나 시작을 여는 것은 깁슨이다. 그의 말은 대체로 그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통해서 독자에게 제시된다. 다른 둘은 물론 팩스턴과 지니아이다. 깁슨이 말할 때는 그가 말을 다 할때까지 도중에 시점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지만 팩스턴과 지니아에선 때로 수시로 시점이 이리저리 바뀐다. 말하자면 항구적 존재 하나와 유동적인 존재 둘. 이런 인물의 전환 외에도 팩스턴의 것은 마약이 소재고 그것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라 범죄 수사물처럼 보이고 지니아의 것은 첨단 감시 체제를 교묘하게 피해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션 임파서블' 같은 스파이 물처럼 보여 이야기 자체도 서로 달라진 장르적 분위기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한층 더 그렇게 다가온다. 게다가 팩스턴과 지니아, 이 둘 사이의 로맨스도 이뤄진다. 이러니까 이거 뭐, 장르 소설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느낌마저 난다.
아무튼 난 앞서 팩스턴과 지니아를 유동적인 존재라 불렀는데, 그건 이 둘의 로맨스와 많이 관계가 있다. 경험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잘 변화시키는지. 지니아가 그렇다. 그녀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입사했다. 그녀는 오로지 임무 완수만 생각하고 다른 건 일절 관심 갖지 않는다. 팩스턴과의 관계도 실은 자기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접근한 것이었다. 둘은 만나게 한 것은 '팩맨'이란 게임이었는데, 지니아야말로 그 팩맨이었다. 조라가 쫓아오든말든 경마장의 말처럼 뒤를 조금도 돌아다보지 않고 죽어라 도트만 먹어치우고 다니는.
그렇게 주변을 전혀 둘러볼 줄 모르는 이였으나 팩스턴과의 관계를 통해 점점 바뀌어 간다. 해들리란 소녀가 릭이란 사내한테서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당하자 그를 혼내주고 급기야 그토록 중요했던 자신의 임무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끼는 사람을 구하려고. 그렇다고 팩스턴에게도 변화가 없는 건 아니다. 그도 바뀐다. 처음엔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잠시만 회사에 몸을 의탁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점점 남들의 인정을 받게 되는 기쁨과 자신의 존재가 차츰 더 중요해진다는 즐거음 때문에 그는 마더 클라우드에 온전히 정착할 생각을 한다. 자신을 몰락시킨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런 결정을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니아였다. 그는 지니아와 함께 하기 위해 안정된 기반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마더 클라우드가 믿을만한 사람들이 질서 체계를 잘 정립한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물론 오블리비언 같은 사소한 결함이 없진 않지만 그런 건 자신이 얼마든지 교정할 수 있는 문제라 여겼다.
하지만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마더 클라우드 때문에 망해버린 도시의 폐쇄된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자신을 저항군이라 소개하던 앰버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클라우드에 대해 한 말씀 드리지. 그건 우리의 선택이야. 우리가 그들에게 통제권을 줬어. 그들이 식료품점을 다 인수하기로 했을 때,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들이 농업 운영권을 인수하기로 했을 때도 우린 가만히 있었어. 그들이 언론, 인터넷 제공업체, 휴대 전화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그 때도 우린 그러라고 했어. 클라우드는 고객만 신경 쓰니까 보다 나은 가격에 동일한 상품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얘기를 들었지. 고객은 가족이라는 말도 들었어. 하지만 우린 가족이 아니야. 우린 대기업이 크게 성장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음식에 불과해.(p. 396)"
마더 클라우드가 드론 택배로 오늘의 자리에 오른 건 '블랙 프라이데이' 사태 덕분이었다. 블랙 프라이데이 때, 쇼핑객들을 상대로 한 학살 사건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오프 라인 쇼핑을 꺼려한 탓이었다. 앰버는 그 사건 또한 마더 클라우드가 조장했을 것이라 말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치료약을 준다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 자신들의 독에 더 중독되게 만드는 마약일 뿐이었다. 팩스턴이 훗날 찾아낸 오블리비언 유통의 진실과 똑같이. 앰버의 말 그대로 마더 클라우드의 사람들은 회사의 음식에 지나지 않았다. 나중에 지니아가 충격 속에 발견했던 것처럼 그들이 맛나게 먹던 클라우드 버거의 쇠고기는 사실 그들의 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니까. 마더 클라우드는 직원의 대변마저 돈을 받고 팔아 다시 그 입에 처넣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짓을 해도 마더 클라우드가 태연자약할 수 있는 건, 팩스턴 같은 사람들 때문이다. 그렇게 당하고 사는데도 조금의 먹을 것과 온기에 스스로를 속이며 착취와 굴욕을 용납하고 사니까. 그런 팩스턴에게 지니아는 자신도 각성을 하게 했던 어슐러 르 귄이 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 준다.
"어떤 장소에 대한 얘기였죠. 유토피아. 거기엔 전쟁도 없고 굶주림도 없었어요. 모든 것이 완벽했죠. 대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한 아이가 아두운 방에서 끊임없이 방치된 채 갇혀 있어야 했어요. 아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게 작동하는 방식이었던 거죠. 빛도 없고 따뜻함도 없고 친절함도 없는 곳에서. 음식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조차 그 아이를 무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사람들은 그걸 받아들였구요. 그게 그곳이 작동하는 방식이었으니까요.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마법의 규칙 같았죠. 거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 한 아이가 고통받는 대가로 모든 훌륭한 것들을 얻었으니까요. 수십억의 삶을 위해 한 사람쯤 희생하는 게 그리 대수겠어요? (...) 그 이야기는 나를 항상 화나게 했어요.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식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왜 아무도 그 아이를 도와주지 않는 걸까요? 난 항상 그 이야기의 결말을 새롭게 쓰는 상상을 하곤 했죠. 내 상상 속 결말에서는 몇몇 용감한 사람들이 쳐들어가서 그 아이를 안고 나와 그간 누리지 못했던 사랑을 줬어요.(P. 506)
이건 팩스턴이 지니아에게 물었던, 스포일러 상 밝힐 수 없는 일을 감행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고귀한 인간의 존재를 하찮은 똥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걸 눈으로 분명하게 확인했는데 어떻게 아이를 내버려둔 채 오멜라스를 그냥 떠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팩스턴 또한 그동안 자신이 보아왔던 마더 클라우드가 가진 허다한 비인간적인 처사들을 묵과해선 안된다고 말이다. 그 모두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돌봐주지 않는 한없이 약한 해들리란 소녀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기에.
이처럼 '웨어하우스'는 단순히 재밌는 스릴러를 넘어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로 집중화되는 현상이 점점 가속화 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대한 매서운 비판도 담겨 있는 작품이다. 앰버나 지이나의 말에서 왠지 마음 저 밑바닥에서 치솟는 뜨거운 감정을 느낀다면 그런 당신 또한 지금의 자본주의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문제 의식이 있다면 소설이 더욱 잘 읽히게 될 것이다. 결말이 그리 시원하지 않아서 조금 불만이긴 하지만(론 하워드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고 하는데 거기서는 결말이 좀 바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살짝 첨부해 둔다.) 그래도 재미와 메시지가 그걸 상쇄하고도 충분히 남기에 좋은 스릴러라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