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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 편 - 개정증보판 ㅣ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2월
평점 :
유럽 도자기 하면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8월의 여름밤은 대통령 궁 가까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보내기 좋다. 늦은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녀 떠들석 하고 넓직한 광장 주위엔 앉아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데도 많아 여유롭게 이국의 밤을 즐기기엔 제격이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토속 맥주를 이것저것 맛보다가 술이나 깰 겸 사람들에 섞여 거리를 걸었다. 가는 도중에 갑자기 동행한 지인이 날 어떤 가게로 끌고 들어갔는데 거기가 바로 폴란드 도자기를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었다. 원래 도자기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제서야 폴란드 도자기를 처음 본 것인데 흔히 그들의 말로 공작의 눈이라 부르는 코발트 블루와 흰색의 공백으로 이루어진 도자기들은 단순한 디자인인데도 제법 멋이 났었다. 그 때서야 지인은 바르샤바를 고집했던 것이 폴란드 도자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여러 개를 골랐고 우린 그걸 거의 한 달 가까이 되는 유럽 여행 또한 내내 가지고 다녔다. 가게 주인이 아주 튼튼하게 포장해줘서 다행이었다.
[여행 때 구입한 폴란드 도자기 커피잔과 함께 한 컷^^]
기자 출신인 조용준 작가의 '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 편'을 읽게 된 것은 그 기억 탓이 크다.
어쨌든 나도 그걸 계기로 폴란드 도자기에 대해 알게 되었고 몇 개도 구입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심이 생겼으니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내게 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여하튼 이 책엔 제목 그대로 폴란드는 물론이고 독일을 비롯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의 도자기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많은 도판과 함께 실려 있다. 유럽 자기의 역사는 생각한 것보다 짧았다. 유럽에서 최초로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여 자기 공장이 설립한 게 1710년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18세기라면 조선 후기고 그 때면 이미 고려 청자는 물론 조선 백자도 한참 시간이 지났을 때다. 유럽 자기의 역사는 그만큼 늦었던 것이다. 자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베를린 출신의 연금술사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다. 그는 기독교에 의해 이단시 되었던 연금술을 했다가 걸려 당시 작센과 폴란드 군주였던 아우구스트 1세 의해 강제로 자기를 만들게 되었다. 자기는 도기와 다르게 철 함유량이 3% 이하인 고령토를 사용해 1300도씨 이상의 고온에서 굽는데(도기는 철 함유량이 3% 이상인 점토를 사용해 900도씨 내외의 온도에서 굽는다.) 마침 독일 작센과 체코 보헤미아의 경계에 있는 에르츠게바르게 산맥에서 일종의 고령토인 슈노르가 발견된 것이다. 그렇게 하여 도자기는 처음 공장이 세워진 마이슨을 시작으로 동유럽 각지로 퍼져나가게 된다. 책은 그 발자취를 따라 나간다. 제목에 여행이 들어간 것은 그래서다. 어디로 가면 어떤 도자기의 역사를 볼 수 있는지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동유럽의 도자기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면 이 책이 밟았던 여정을 그대로 답습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한 달 간의 유럽 여행 일정과 비슷해서 더 흥미로웠다. 책에 나왔던 대부분의 장소가 그 때 발을 디뎠던 곳이었던 것이다. 나는 밤베르트가 동유럽 도자기에서 중요한 명소인 줄은 몰랐다. 황혼녁의 밤베르크의 유명한 시청사를 보면서 훈제 맥주인 라우흐비어(이거 정말 추천합니다. 밤베르크에 가시면 꼭 한 번 드셔보세요.)를 마시긴 했어도 초콜릿 제조와 판매로 얻은 막대한 수입을 미술품 수집에 바쳤던 페터 루드비히의 컬렉션을 거기서 볼 수 있다는 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프라하에서 베를린 갈 때 들렀던 드레스든 또한 커트 보네것의 '제 5 도살장'을 생각하며 명소들을 방문했을 뿐 그 곳의 박물관에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가장 유명한 일본 도자기인 아리타 도자기를 만들어 낸 조선 도공 이삼평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는 건 몰랐다. 뮌헨의 레지덴츠와 님펜부르크 궁전에서 전시된 허다한 도자기들을 봤어도(이 당시엔 귀족들 사이에서 자신이 수집한 도자기 컬렉션을 전시하는 도자기 방을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것에 어떤 의미들이 있는 지 또한 몰랐다. 그 도자기들의 흥망성쇠가 바이에른 공화국의 흥망성쇠와도 관련 있었다니. 폴란드 도자기와는 또 다른 디자인을 가진 체코의 쯔비벨무스터와 헝가리의 헤렌드를 알게 된 것도 이 책 덕분이었다. 체코와 헝가리의 도자기들은 유럽의 것과 많이 닮아있어 개성적인 맛은 좀 떨어졌다. 폴란드 도자기들은 미국에서 먼저 유명해져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그건 동유럽 국가들 중에서 폴란드가 가장 먼저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 때 동유럽 국가들 중 처음으로 개방 사회가 되어 독일에서 근무하고 있던 많은 미군들이 폴란드로 여행을 갔고 거기서 독특한 미를 가진 폴란드 도자기들을 조국에 귀환할 때 선물로 많이 사갔던 것이다.
이처럼 그냥 보고 마시고 먹기만 했었던 도자기들에 대한 역사와 여러가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어서 '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 편'은 내게 꽤 유용한 책이었다. 또한 코로나 19 때문에 언제 또 다시 가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 하게 되는 8월의 유럽 여행을 겹쳐진 여정 때문에 마구 소환하게 되어 더 각별한 독서 경험이었다. 언젠가 다시 가게 된다면 그 때는 도자기들에 대해서도 눈여겨 살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