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열전 - 제국을 이끈 10인의 카이사르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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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고대 전쟁사 분야에 있어 탁월한 학자로 알려져 있는 미국 코넬대 역사학 교수인 배리 스트라우스는 '스파르타쿠스 전쟁'을 통해 처음 만났다. 거기서 고대사에 있어서 유명한 사건을 전통적인 견해에 자신을 묶지 않고 직접 발로 뛰며 찾아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건에 대한 풍성하고도 입체적인 묘사와 독창적인 통찰력을 보여주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저자는 이번 책, '로마 황제 열전'에서도 여전했다. '로마 황제 열전'은 카이사르에 의해 처음 정립된 황제 체제를 그의 뒤를 이어 굳건히 한 아우구스투스부터 처음으로 기독교를 국가 공인 종교로 인정하고 황제로선 최초의 기독교 신자가 된 콘스타니누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10명의 황제를 각 개인 별로 소개하는 책이다. 지금까지 로마 역사에 관한 책은 많았으나 이렇게 황제에게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는 책은 없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로마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의 흥미를 대번에 낚아채 버렸다.

 

 

 책은 로마 황제의 궁전들이 있었던 팔라티노 언덕에서 시작하여 로마 제국 말기 마지막으로 로마의 빛이 명멸했던 동방의 라벤나에서 끝난다. 

 지금도 '팍스 로마나'란 말로 유명한 로마 제국의 역사는 사실상 황제 체제의 정립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그 체제의 종말과 더불어 끝났기에 '로마 황제 열전'은 로마 제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비록 황제가 중심이긴 하지만 로마 제국이 어떻게 운영되었고 유지되었으며 확장되는 반면 수축되어 갔는가 역시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배리 스트라우스가 이 책에 실린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네로, 베스파시아누스, 트리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도합 10명의 황제 개인의 삶은 물론 그를 둘러 싼 로마와 국제 정세까지 두루 자세하게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로마 황제가 얼마나 많은데 왜 10명 밖에 없냐는 의문이 있을 것 같아서 작가의 말을 빌어 얼른 대답해 두자면, 이 10명의 황제가 가장 유능하고 성공적이었던 황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 네로만은 성공적이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가장 흥미를 돋우는 황제라 넣어놓았다고 한다. 어쨌든 뭐, 제국의 역사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창한 이유를 제외해 놓고서라도 여행을 갔다든가 해서 이탈리아 문화 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콘크리트를 처음 만든 것이 네로 황제 때라든지, 로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축물인 '콜로세움'을 지은 것이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라든지 이탈리아 문화에 관한 이런 저런 소소한 정보들도 많기 때문이다. 거기다 꽤 재밌다. 로마 황제 개인의 사생활은 정말 이혼과 재혼이 반복되고 차기 황제의 승계를 위해 자기 아내를 딸로 입양하는 등 요즘 드라마에 유행하는 막장도 많아서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렇다고 재미만으로 퉁치기엔 이 책에 담겨 있는, 이전엔 미처 몰랐던 로마 역사의 새로운 면모가 많아서 좀 아까운 생각이 든다.

 먼저, 우리는 로마 황제들이 마치 조선 왕조가 그렇듯이 하나의 혈통 속에서 계속 계승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초기 로마 황제를 고르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던 카이사르의 혈통은 불과 4대인 네로를 끝으로 끊어졌다. 네로는 원로원과 군대의 하야 압박에 못 이겨 달아나다 로마 도시 바로 바깥에서 자살했는데 동시에 카이사르의 혈통마저 단절되었던 것이다. 당시 로마인들에겐 카이사르의 혈통이 아니면 황제가 제대로 통치할 수 없다고 여겨 비 카이사르 혈통 황제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것을 보기 좋게 깨뜨린 사람이 바로 로마 북동쪽 사비니 지방 출신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였다. 그는 로마인도 아니었고 심지어 어릴 땐 염소 치는 일이나 하던 평민이었지만 개인의 능력으로 황제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그는 걸출한 통치력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버금가는 로마의 전성기를 이룩했으니 로마 사람들은 더이상 황제가 카이사르 혈통이 아니더라도 훌륭히 통치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밖에 없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흉상]

 

 그렇게 하여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이후에는 비 로마인들이 많이 황제 자리에 올랐다. 로마 역사상 최고의 군주로 알려진 트리야누스 황제는 로마 사람들이 시골로 치부하던 히스파니아 출신이었다. 로마 문화의 모태가 된 그리스 문화를 선망하여 진정한 그리스 가치관으로 로마 제국을 하나로 묶으려 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 역시 그 동향이었고 '명상록'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시 그의 조상들은 '스페인 마피아'에 속하는 타지 사람들이었으며 셉티이무스 세베루스 황제는 무려 아프리카 사람이었다.(그가 흑인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고 한다. 그건 기록이 없기 때문인데 이건 애초에 로마인들이 황제의 피부색에 연연해하지 않았다는 걸 뜻할 수도 있다.)

 

 이처럼 황제 계승의 역사에서 보듯 로마는 점차 개방성을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그들은 제국을 열심히 확장했지만 그렇다고 오직 로마인만이 그 정점에 서야한다고 여기진 않았다. 그들이 제국의 존속을 위하여 가장 우선적으로 폈던 정책은 속주가 된 지방 엘리트들에게 출세길을 열어주어 포용하는 것이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를 비롯 타 지역 출신의 많은 황제들이 가능했던 건 그런 로마의 기본 정책 때문이었다. 이들의 개방성은 거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에 대해서도 그러했고 다른 지역이 평민들에게도 그러했다. 여성의 경우 공식적으로 정치 진출이 인정되지 않았으나 이런 저런 황제 승계에 있어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여성이었다. 황제들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거나 물려주기 위해 기꺼이 여성에게 자신의 권력과 부를 나눠주었다. 아무리 다른 남자의 아내이고 그의 아이를 배었다 하더라도 왕비로 삼는 것엔 문제가 없었고 때로 티베리우스처럼 전 남편의 아이가 황제가 될 수도 있었다. 세상엔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다.' 나중에 읽어보면 알겠지만 로마 황제의 역사만큼 이 말을 실감시켜 주는 것도 또 없다.

 

 더하여 다른 지방의 평민에 대해서도 로마의 벽은 차츰 허물어져 갔다. 로마에겐 시민권이라는 게 있다. 그건 로마의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자격이다. 처음엔 오직 로마인에게만 주어졌디만 제국의 역사가 지속될수록 그 범위 또한 비 로마인에게로 넓혀졌다. 마침내 후기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속주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로마 시민권을 모조리 부여하는 아주 파격적인 정책을 펼치게 된다. 그건 기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기독교는 아우구스투스 때부터 왕성한 포교 활동을 펼쳤다. 유대(책에서는 '유다이아'라고 부른다.)지방은 로마 제국 역사 내내 골칫거리 였다. 반란이 잦았던 땅으로 그 유다이아 지방을 평정하는 것이야 말로 황제의 중요한 공적이 되곤 했다. 하드리아누스 때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가장 거대한 반란이 일어나서 그 진압에 친히 나서야 할 때도 있었다. 유대인들이 가장 저주하는 로마 황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인데, 그가 이른바 '기독교 대박해'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있었지만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었을 때도 되도록 관대하게 되었고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포교만 한다면 대체적으로 내버려두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을 그리스적 문화로 통일하려 했었는데 그건 기독교가 점차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일신에다 내세 중심인 기독교가 로마 제국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청년을 신격화하여 이성과 다양성 그리고 현세 중심인 그리스적 종교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역사는 기독교가 국교가 되는 곳으로 흘러갔고 그렇게 되는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필요하거나 인정할만하다면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던 로마의 개방성이었다.

 

 이러한 로마 제국의 모습은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척이 심해지는 오늘날 정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로마 황제 열전'이 잘 보여주듯이 무려 1,200년에 이르는 로마 제국의 역사가 다른 것도 아닌 특유의 개방성이 원동력이 되었음을 상기한다면 이제 그런 태도들은 버려야한다는 게 절로 자명해진다. 타자에 대한 배척과 차별은 분열과 붕괴를 가져올 뿐이다. 공존을 위한 존중과 배려만이 나의 장기 지속 또한 가능하게 만든다는 걸 '로마 황제 열전'이 상세한 정보와 흥미로운 서술로 세공한 로마 제국의 역사는 선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객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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