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 크로니클 셜록 시리즈
스티브 트라이브 엮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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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난 '셜로키언'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시즌이 거듭될 때마다 더 높은 기대와 더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는 드라마 '셜록'을 처음 보게 되었던 것은 '셜록 홈즈'가 나와서가 아니라 각본을 쓰고 드라마를 제작한 '스티븐 모팻' 때문이었으니까. 나는 모팻을 '닥터 후'를 통해 처음 만났고 'BLINK'를 비롯하여 그가 쓴 에피소드들을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그가 부활의 아이디어를 내고 각본을 썼다고 하니 드마라가 보고 싶었다. 셜록에 대해선 기대가 별로 없었다. 가이 리치가 감독한 '셜록' 영화들이 잘 보여줬듯이, 이미 셜록에겐 날 혹하게 만들 새로운 매력들이 다 고갈되었다고 생각했다. 셜록을 좋아하는 이들은 누구라도 한 번쯤 이런 꿈을 가져봤을 것이다. 셜록으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 스티븐 모팻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오랜 셜록의 팬이었고 특히 30~4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판 셜록들을 대단히 좋아했다. 친구 중에 이와 똑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가 바로 드라마에선 셜록의 형으로 출연하는 마크 게이티스였다. 친한 친구였던 둘은 우정을 나눈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같이 기차를 타고가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사진의 주인공은 드라마 '셜록'의 공동 제작자 마크 게이티스와 스티븐 모팻. 제작 현장에서 셜록의 상징인 헌터 캡과 해포석 파이프를 물고 셜록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굳건한 홈즈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이 헌터 캡과 해포석 파이프는 원래 원작에는 없던 것이라 한다. 헌터 캡은 처음 삽화를 그렸던 시드니 에드워드 패짓이 그냥 그려 넣은 것이고, 해포석 파이프는 윌리엄 질렛이라는 미국인 배우가 한 연극에서 셜록 역을 맡았을 때 처음 썼던 것이라 한다. 책이 밝혀주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홈즈의 모습은 알고 보면 많은 세월에 걸쳐 다양한 경로로 이뤄졌다. 새삼 홈즈가 활자를 넘어 종합적인 문화 현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열심히 셜록과 그 영화들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던 그들은 셜록이 현대화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그 일을 해 줄 사람이 없을까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셜록 현대화의 적임자이며 바로 자신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룰 작정을 한다. 어쩌면 21세기의 대표 드라마 중 하나가 될 지도 모를 '셜록'은 그렇게 아주 우연한 잡담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이 사실을 '셜록 시즌 4'가 방영되기 전에 공개 되었던 특별판 에피소드 '유령신부'의 국내 상영에 맞춰 발간되었던 책, '셜록 : 크로니클'을 읽고 알게 되었다. '셜록 : 크로니클'은 한 마디로 드라마 셜록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책이다.



 시즌 3까지 방영된 드라마 셜록에 대해 궁금한 것은 뭐든지 바로 이 책을 통해 풀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으며 각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구상 되었고 그 장면들은 어디서 찍었으며 또 어떻게 찍었는지 그리고 드라마 속 이야기와 원작은 또 어떻게 차이가 나며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등등. 드라마를 보면서 품었던 아주 작은 의문조차 이 책은 기꺼이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드라마의 공동 기획자, 마크 게이티스가 이 책의 서문에서 한 말 그대로다.


 '이 책에서 여러분은 우리가 셜록을 창안해내고 베이커 가의 사내들을 21세기로 데려온 과정들을 세세하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전세계 시청자들의 주목과 충성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주인공들을 슈퍼스타로 만든 시리즈를 제작한다는 게 힘들지만 얼마나 흥분되고 황홀하던지... 이것은 모험에 관한, 충성심에 관한, 피할 수 없는 위험에 관한, 머리 염색과 커다란 코트와 로맨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무엇보다도 스티븐과 내가 그랬던 것마큼이나 셜록과 존을 사랑하게 되는, 헌신적인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를 만들 때 그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것은, 빌리 와일더 감독이 1970년에 만든 영화 '셜록 홈즈의 사생활'이라고 한다.



 그 영화는 처음으로 셜록의 형인 '마이크로프트'라는 인물을 창조했고 영국 정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도 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설정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마이크로프트', 그대로인 것이다. 이렇게 그들 스스로 고백하듯이 이 영화의 많은 것이 드라마에 직접 인용(p. 20)되었다. 특별판 '유령신부'에서 디오게네스 클럽의 집사 이름이 '와일드'인 것은 아마도 그 영향에 대한 감사 표시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디오게네스 클럽' 자체도 그 영화에서 처음 등장했다. 내 생각엔 '유령 신부' 자체가 영감의 원천이 된 '셜록 홈즈의 사생활'에 대한 오마쥬로 생각 된다.


 그런데 그토록 이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은 그 영화가 미스터리가 아니라 바로 '탐정'에 대한 이야기였고, 무엇보다 탐정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모리어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모팻과 마크가 드라마 셜록에게 원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단순히 뛰어난 추리 기계로써의 셜록이 아니라 피와 살이 있고 희노애락을 겪는 실존적인 존재으로서의 셜록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특히 '왓슨'에게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왓슨을 그저 조수나 셜록의 뛰어난 추리에 감탄하는 관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모팻과 마크에게 왓슨은 엄연히 셜록과 '공동 주연'이었다. 그래서 셜록 이상으로 왓슨 캐릭터를 창조하는데 공을 들였다.


 마크는 존 왓슨을 공동 주연으로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중대한 전략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우리의 프로젝트에서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셜록'이란 이름으로 방영될테지만, 그럼에도 존의 역할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게 무척이나 중요했어요."(p. 26)


 드라마 속 왓슨은 그렇게 세심한 작업 속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내가 드라마 셜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왓슨이 셜록 못지않게 커다란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관계가 왠지 드라마 '엑스 파일'의 멀더와 스컬리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책을 읽고나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 드라마 '셜록'의 인기는 바로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셜록, 그리고 관계 안에서 우리처럼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그를 한껏 드러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셜록 : 크로니클'은 드라마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와 에피소드 그리고 드라마 전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다양한 접근을 도와준다. 이런 점까지 더해 드라마 '셜록'에 대한 가장 좋은 가이드가 아닐까 싶다.


 '셜록 : 크로니클'은 지금까지 방영된 시즌 3까지의 에피소드 9개를 커다란 줄기를 하여 그 때 그 때마다 필요한 정보들을 담는 것으로 하고 있다. 각 에피소드마다엔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원작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이 있고 말미에 각 장면을 찍은 실제 장소를 공개하고 있다.


 시즌 3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가장 위험한 적수 중의 하나였던 마구누스가 있던 저택의 모습이다. 최후 결전의 장소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실제 있는 건물은 아니며 드라마를 위해 새로 지었다고 한다. 첫 에피소드에서 여인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아파트는 실제 있는 건물로, 매물로 나와 있는 아파트를 섭외했다고 한다. 각본대로 멀쩡한 아파트를 부순 다음, 원래 매물이었기에 촬영이 끝난 뒤엔 원상 복구 해 줬다고.

 사진은 바로 그 건물인 '로리스턴 가든스'의 모습. 어떻게 현장을 만들었는지 이렇게 여러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 이야기 뒤엔 그것을 실제 촬영한 장소를 다 설명하고 있다. 꽤나 자세하게 말하고 있어 이것을 근거로 영국에 가게 된다면 '드라마 셜록 투어'도 가능할 지경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세트 대부분은 실제 카디스에 있다고 한다. 런던은 물가가 너무 비싸서 촬영에 돈이 많이 든다고.


 책은 드라마 제작 전반에 관한 정보를 거의 다 담고 있다고 해도 좋다. 편집이면, 편집. 음악이면 음악. 다 설명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배스커빌의 개'에선 CG로 만든 개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것 역시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것 외에, '하운드'의 뜻을 알게 되는 연구실 학자 사진을 찍었는지 하는 것등, 에피소드의 아주 사소한 소품들까지 다 말해주고 있어 드라마를 보다 풍성하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드라마 셜록 사상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던 시즌 2의 마지막 에피소드 '라이엔바흐 폭포'에서 셜록이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같은 것은 실제 콘티까지 삽입하여 이해를 돕는다.



 이밖에 드라마 셜록의 시그니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화면 위로 지나가는 글자와 같은 정보들도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있다. 원래 계획은 휴대폰에 나온 문자들을 클로즈 업 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연출을 맡은 폴 맥기건 감독이 그런 건 시청자들을 너무 지루하게 만들 뿐이니 도저히 그렇게 찍을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정보들을 아예 셜록의 뇌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게 실로 혜안이었다는 것은 드라마를 보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셜록:크로니클'를 봐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삭제 장면이 아닐까 싶다. 각 에피소드마다 삭제되었던 장면들을 이렇게 따로 분량을 할애하여 보여주고 있다.



 주요 배역들을 맡은 배우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있다. 사진은 드라마에서 셜록을 짝사랑 하는 법의학자로 나왔던 루이즈 브릴리.


시즌 3의 마지막 에피소드 '마지막 서약'에서 왓슨이 병원에서 사라진 셜록을 찾고 있을 때, 그녀는 주소 하나를 말하며 거기에 비밀 숙소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곳은 바로 그녀의 집. 셜록에게 언제든 자신의 침대를 쓸 수 있다고 말한 것을 털어놓는 그녀가 귀여웠다^^



 '셜록 : 크로니클'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도록 하지 않는다. '감사의 말' 옆에 이렇게 스티커가 있으니까 말이다. 어릴 때 이렇게 책 뒤에 스티커가 있으면 바로 뜯어 가방이나 공책 곳곳에 붙이기도 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얼른 어디에 붙여야 할 지 모르겠다. 하하. 그래도 어쨌든 스티커가 있으니 좋다^^


 이렇게 '셜록 : 크로니클'은 그야말로 '기억의 궁전'이라 할 만하다. 셜록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마음 속 '기억의 궁전'에다 저장한다. 그와 똑같이 '셜록 : 크로니클'은 드라마 '셜록'에 대한 모든 것을 빠짐 없이 차곡차곡 다 저장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드라마 '셜록'에 대해서라면 가장 충실한 가이드가 아닐까 싶다.



 그럼, 이제 셜록이 시즌 4로 모처럼 돌아왔기도 하니, '셜록 : 크로니클'과 함께 다시 한 번 드라마 셜록의 세계로 풍덩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 드라마의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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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7-02-08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금가지에서 이번에 130주년 기념판 나왔대서 사려구요. 셜록은 애 키우느라 1도 못봄요 ㅠㅠ

ICE-9 2017-02-15 00:5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 130주년 판 봤습니다. 이미 셜록 전집을 두 개나 가지고 있지만 또 소장하고픈 욕구가 무럭무럭 생기더군요ㅠ ㅠ. 아니, 아직 셜록 드라마를 못 보셨다니, 육아에서 여유가 생기시면 꼭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네요. 저는 시즌4 에피소드2까지 봤는데, 세 네번 생각해도 버릴만한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네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출판사 열린책들 알라딘 서재지기입니다.

여러분, 설 잘 보내셨나요.

2016년 한 해 동안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 2017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책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2017년 서평 이벤트를 시작할 첫 책은 바로, <동급생>입니다.


두 소년의 아름답고 슬픈 우정 이야기를 담은

짧지만 완벽한 걸작, 불후의 우정 소설!


프레드 울만 지음 |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영미문학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은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의 우정을 그리는 중편 소설로, 나치즘과 홀로코스트 시대를 다룬 소설 중 가장 유명하고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책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에 2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유럽에서만 매년 10만 부씩 판매되는 스테디 고전으로, 한국에서는 처음 소개됩니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 p.21 중에서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더 많은 독자들이 읽어야 할 놀라운 작품. – 이언 매큐언(작가)


이 책의 결말은 몇 줄에 걸쳐 걸작 내에서도 걸작이다. 대단원을 이루는 행들에서 나는 싸움을 포기하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 장 도르메송(작가, 저널리스트)


어떤 책을 평하는 데 있어 완벽하다는 표현을 쓰는 일은 거의 없지만 이 책에 대해서라면 나는 그 표현을 쓰는 걸 망설이지 않겠다. – 레이철 시퍼트(작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며, 정말로 감동적이다. – 존 보인(작가,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원작자)


주변 사람을 테스트할 수 있는 책.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했는데 만약 싫어한다면 그냥 깨끗하게 절교해라.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든지. – 사라 페리(작가, 저널리스트)


나치즘의 시대를 다룬 가장 밀도 있는 작품 중 하나. 청소년 독자들에게 망설임 없이 권할 수 있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르 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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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 28인의 과학자, 생물학의 지평을 넓히다
강석기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존재를 알았을 때 반가웠다. 그동안 유전자에 대한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하지만 너무나 어렵고 방대한 영역이라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선뜻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그것과 만나게 해 줄 길잡이 같은 것이 있었으면 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이 나타난 것이다. 강석기 작가의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바로 그 장본인인데, 이 책은 생명과학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는데 기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논문 28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시작점을 찾아야 한다. 생명과학의 현재 지형도를 가늠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의 모든 성과는 그것의 시작이 되는 논문을 밑거름으로 하여 성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생명과학을 보다 수월하게 이해하게 만들 최적의 안내서로 보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 떨어졌다.



 책은 28편의 논문을 주제 별로 모두 7개의 파트로 나눠 4편씩 담는다. 그 파트란, '현대 생명과학의 탄생', '유전자 사냥', '진화의 진화', '생리학의 재발견', '발생의 미학', '떠오르는 신경과학' 그리고 '상식의 벽을 넘다'이다. 생명과학에 대해선 모르는 것이 많아서 실린 논문 모두가 흥미로웠는데 그 중 가장 내 눈을 빛내게 만든 것은 1957년에 발표된, 조지 윌리엄스의 '노화진화이론' 논문이었다. 노화는 죽음과 함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두려움을 준다. 거기다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노화는 현재 더욱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노화란 무엇일까? '늙는다'는 것은 생명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다윈에 따르면 사실 이런 노화는 오래전에 퇴화되어 사라져야 했다. 정신과 육체 모두 쇠약을 가져오는 노화는 진화의 절대 명령인 생존과 번성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화란 다윈의 자연 선택에 대한 중대한 반대 증거일까? 31세의 젊은 나이로 막 미국 미시건 주립대 교수가 된 조지 윌리엄스는 오히려 노화가 자연 선택의 결과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그것이 노화에 대한 생명과학의 이해 방향을 확 비틀었다. 그는 사람들이 생명의 노화를 사물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노화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노화는 자동차 부품이 닳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조지 윌리엄스에 따르면 노화는 그렇게 마모의 과정이 아니다. 노화는 다만 '인체를 조절하고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정밀도가 떨어지는'(p. 119) 현상이다. 그래서 노화는 늙었다는 말과도 다르다. 나이가 젊어도 조절과 유지 메커니즘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노안'이 생각났다. 노안은 눈을 오래 써서 그 능력이 약화된 것이 아니라 초점을 맞추는 정밀도가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생각하니 조지 윌리엄스의 노화에 대한 이야기가 꽤 신빙성 있게 다가왔다. 피부도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는 것도, 조지 윌리어슴에 따르면, 피부가 닳아서 그런 게 아니라 젊었을 때만큼 피부를 통해 체온을 유지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게 덜 효율적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한 마디로 노화는 생명이 시간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정밀도의 약화는 오히려 반 자연 선택적이지 않나? 여기에 대해서도 조지 윌리엄스는 설명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노화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다면 발현 유전자인데, 주로 성적인 징후를 만들고 번식하는데 유용한 유전자들이 이에 속한다. 다면 발현이란, 유전자가 한 쪽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도 작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성적 유전자들이 그랬다. '개체가 성장해 성적으로 가장 왕성할 때 발현돼 번식 확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유전자가 훗날에는 정밀한 대사 조절 능력을 잃게 해 암이나 심혈관계 질환, 당뇨병 같은 병을 일으키는 등 노화를 촉진'(p. 120)했던 것이다. 즉 노화란 자연 선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 결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부머랭 같은 것이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관점이 워낙 독특하고 글 또한 설득력 있어 이것만으로도 노화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기엔 충분했다.


 이 책엔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노화에 대한 앞서의 이야기는 이 책이 내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 대표적으로 밝히기 위해서였다. '스트레스'라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한스 셀리에, '페로몬'의 존재를 처음 거론한 마샤 맥클린톡의 '월경 동기화 현상' 논문들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 처음에 어떻게 밝혀졌던가 알려줘서 흥미로웠고, DNA의 특정 서열을 독립적으로 복제하는 기술을 처음 개발하여 생명과학의 지평을 확 넓혀버린, 허버트 보이어의 재조합 DNA 실험이 29살의 한 실직자 청년에 제의로 어마어마한 자본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밌었다. 역시 성공은 두 가지, 가능성을 꿰뚫어 보는 눈 그리고 그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 용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이 일화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저자가 쉽게 잘 설명하고 있어 대부분은 소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전문 용어들에 대해서 별도의 검색을 통해 알아야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나는 이 책을 통해 전보다는 훨씬 더 가까이 생명과학의 대지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생명과학이 어디까지 왔고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대충은 가늠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는 나처럼 초심자라 하더라고 생명과학이 무엇이고 그 얼개나마 알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각 논문에 대한 글의 분량이 길지 않고 재미도 있어서 더욱 수월하게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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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2-0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체가 아니라 종의 개념으로 보면 노화는 진화의 필수 요소죠. 비정한 말이긴 하지만 노화로 쓸모없는 개체는 빨리 사라져 주고 젊은 유전자 개체가 번식을 담당하는...할머니 이론이 말해 주듯이 성적인 필요성이 사라져도 번식에 필요한 존재론적 가치는 여전히 확보되고 있지만.... 과학 기술이 더 발달해 아무도 늙지 않는다면 이런 구조적 상황은 어찌 달라질까 싶죠. 육아는 사회가 맡는 시스템이 더 확산될테니 안심일까 하면....아직은 멀고 먼 이야기 같은^^;

헤르메스님 서재를 웹으로 보고 있는데 고양이 가득ㅎㅎ.... 즐겁게 글 읽을 수 있는 벽지네요^^
새해 인사 안 드렸던 거 같은데... 새해 건강히 평안히/

ICE-9 2017-02-05 23:10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고 더욱 느꼈는데, 정말 생물학적 관점은 상식적인 관점과 많이 다른 점이 있더군요. 아갈마님 말씀대로 노화가 사라진 세상은 과연 어떠한 사회적 혹은 윤리적이거나 실존적인 문제에 직면할지 궁금해집니다. 요즘엔,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나라야마 부시고‘가 긍정적으로 묘사했듯, 고려장이라는 것도 그 사회에선 나름 합리적인 제도였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 속 할머니가 어린 세대들을 위해 일부러 건강한 이를 스스로 빼면서까지 기꺼이 고려장을 당했듯 노년 세대들도 뒷 세대에 대한 관용과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제가 고양이 집사라 서재를 온통 고양이들로 채워봤습니다. 너무 단순한가요?^^
어쨌든 아갈마님 새해 인사 감사합니다. 아갈마님도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는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
댓글이 너무 늦어 죄송하네요^^;
 
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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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발소에 대한 기억이 그리 좋지 않다. 어릴 때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깎았다. 그런데 엄마가 억지로 끌고 가지 않으면 절대 가지 않았다. 이발소 아저씨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아 잠시 움직이는 것도 가만히 못 보는 그 사람은 내가 꼼지락거릴 때마다 역정을 내었다. 고약한 성미가 가위 질에도 들어가 마구 잘라내는 것 같아서 귓가에 들리는 탁탁 하는 소리가 자못 무서웠다. 조명도 그리 밝지 않은 데다 별로 깨끗하지도 않았던 이발소는 그 무렵 퇴락해가고 있던 동네 목욕탕과 더불어 내가 범접하지 말아야 할 공포의 2대 공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제목에서부터 이발소가 떡 하니 나와 있던 '무코다 이발소'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읽게 되었던 것은 작가가 '오쿠다 히데오'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가의 '남쪽으로 튀어'를 정말 좋아하고 그 작품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이후, 최근 '나오미와 가나코'까지 그의 작품을 자주 만나왔는데 아직 이렇다 할 실망을 별로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믿고 읽어 본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은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서 예리하게 사회 문제를 들춰내는 한 편, 그것에 보편적 공감마저 이끌어내고 있어 마음에 든다. '무코다 이발소'는 제목 그대로 이발소를 중심으로 그려가는 한 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마을의 이름은 도마자와. 도미자와는 겨울만 되면 눈이 지천으로 높이 쌓이는 훗카이도에 있다. 예전엔 광산이 있어 제법 흥했지만 오래 전에 광산이 모두 문들 닫은 지금은 마을의 활력이 많이 사라져, 좋지 않은 재정 여건 속에서 젊은이들은 대부분 근처 삿포로나 다른 대도시로 떠나고 노후를 보내는 늙은이들만 남아 고인 시간 속에서 조용히 쇠락해 가고 있는 중이다. 마을에 남은 청년들과 면의 관리들은 그래도 마을을 부흥시키려 이런 저런 노력을 해 보는 형편이지만 한 번 꺼져버린 심지는 쉽사리 타오르지 않는다.



 이런 마을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 있는 지라 읽다보면 소설 속 이야기가 결코 우리와 그렇게 먼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도마자와는 지금 우리나라 시골 마을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가끔 우연히 TV를 통해 그런 마을에 사는 사람들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그 때 도대체 저 곳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보낼까 궁금했었다. 그 속마음을 이번 '무코다 이발소'를 통해 조금 이해하게 된 것도 같다. 물론 마을이 처한 보편적인 상황도. 어쨌든 무코다 이발소는 그런 마을에서 무려 60년 넘게 존속하면서 마을의 소통 공간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한 마디로 터줏대감이라 할 만하다. 그런 이발소를 꾸려가는 사람은 무코다 야스히코다. 그는 원래 도시에 직장을 얻어 마을을 떠났던 사람인데,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이발소 일을 못하게 되자 그대로 낙향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발소 일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자진해서 가업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낙향했던 것은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즉 그의 낙향은 한 마디로 도피였다. 할 수만 있었다면 그는 낙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유년 시절은 도마자와의 쇠퇴기와 그대로 겹쳐서 그에게 도마자와는 늘 종말을 향해가는 마을의 이미지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발소에 대한 애정도 그닥 없어서 그렇지 않아도 수입도 별로 없고 장래도 그리 없는 이발소를 그는 늘 정리하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뒷목을 잡는 일이 생겼다. 대도시에 직장을 가져 마을을 떠났던 아들이 마을을 다시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이발소 가업을 이어 받겠다며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당연히 그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하다. 아들은 자신과 다르게 넓은 세계로 나아가 잘 적응하며 살게 되길 바라건만 아들은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무코다 이발소'는 바로 이 야스히코를 중심으로 하여 모두 6개의 단편이 모여 있는 일종의 연작 소설이다.


 책 내용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마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 있었던 야스히코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마을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오쿠다 히데오 최고의 매력으로 생각하는 '넘치는 현실감'은 이 소설에도 여전하여서 일본 시골 마을의 문제점을 생생히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 두 번째 단편 '축제가 끝난 후'가 인상 깊었다. 친지나 친구들을 보면, 치매와 같은 환자가 발생하면 가족들이 정말 힘들어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 단편은 바로 그런 상황을 매우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단편은 우리보다 훨씬 빨리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 사회가 곧 직면하게 될 문제를 생생하고 깊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층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최근 유력한 대권 주자인 문재인이 치매는 개인이나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서울에 편중된 국공립 치매 전문 기관을 지방에도 늘리고 그 수도 대폭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는데, 이렇게 국가적인 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바로 이 단편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오쿠다 히데오도 아마 그런 식의 대응을 일본에게 바라는 마음에서 썼을 것이다. 이 소설은 어둡기 보다는 밝고,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인데 그렇다고 해서 오쿠다 히데오가 현재 일본이 가진 문제점을 꼬집는데 주저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세 번째 단편 '중국에서 온 신부'는 아직도 짙게 남아 있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정직하게 드러내며 그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도록 권유한다.


 이렇게 여섯 단편을 읽고 있으면 오쿠다 히데오가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조금 짐작하게 된다.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이 꼭 '시골 마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 오쿠다 히데오에게 도마자와는 일본 전체인 것 같다.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하고 쇠락해가고 있는 도마자와의 모습은 그대로 현재 일본과 겹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로 많은 젊은이들이 이제는 생존을 위해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 것 역시 별 것 없는 마을을 떠나는 도마자와의 젊은이들과 닮아있고 말이다. 근본적으로 '무코다 이발소'는 현재의 일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위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일본 국민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우려와 불안이 날로 증가해서인지 일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책, 드라마, TV 프로그램들이 잔뜩 늘어났다고 한다. 하나같이 일본의 좋은 점과 그들의 가능성을 자랑하며 내일이 매우 밝다는 것을 강조한다. 화려한 영광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고, 그것을 나타내는 심지는 언제든 불 붙일 수 있다고 말이다. '무코다 이발소'도 거기에 약간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약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무코다 이발소'는 그래도 냉정한 현실 인식과 문제점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걸 밝히기 위함이다. 이런 경향의 대부분의 책과 프로그램은 그런 것 없이 그저 장점과 가능성만 과장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예리한 현실 비판이 매력적이었던 오쿠다 히데오마저 이런 소설을 썼다면, 현재 일본인들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어둡고 불안한지 간접적으로 증명되는 것 같다. 소설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어두우면, 그 위안이랄까 응원이랄까 아무튼 그런 동기로 자신의 작품이 까만 어둠 속에서 반딧불처럼 작은 희망이 빛이라도 되어 사람들이 혼돈과 공포가 자신을 지배하도록 놔두지 않고 그래도 옳고 바른 것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들기를 바랄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무코다 이발소'는 희망을 일구어내려는 소설이다. 영화 '판도라'가 잘 보여줬듯이, 지금의 일본이 결코 먼 얘기가 아닌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이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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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2017-01-31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어릴적 동네 이발소 주인아저씨가 무서워 아무말 못했더랬죠.
귀가에서 들리는 가위질 소리.
공포였습니다.
그땐 왜 그리 무서웠는지......

잘 읽었습니다.^^

ICE-9 2017-01-31 21:14   좋아요 0 | URL
아하, 쭈니님도 그러셨군요. 저도 이발소의 시간이 정말 공포 체험이었어요^^
 
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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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문유석 작가의 소설 '미스 함무라비'를 읽고 가장 먼저 생각 났던 말이다. '오심즉여심'은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뜻으로 쉽게 표현하자면 몇 해 전에 한 드라마가 유행시킨 대사 그대로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이 말을 알게 된 것도 문유석 작가가 어디선가 했던 인터뷰 때문이었는데, 이 말은 그가 싫으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개인주의자가 되어 자유의 확장을 지향하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분인 판사로서의 책임 또한 다하고자 타인의 말을 타인의 입장에서 잘 헤아리기 위해서 지니고 있는 태도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으나 작가가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자유와 책임을 하나로 융화(融和)시키는 지점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재밌게도 이런 그의 마음은 '미스 함무라비'의 인물 구성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모두 7부에 이르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크게 두 사람이 이끌고 있는데, 한 사람은 제목인 '미스 함무라비'를 별명으로 가지고 있는 박차오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임바른이다. 둘 다 판사로 경력은 짧다. 박차오름은 이제 갓 판사로 부임했지만 권위와 보수(保守)의 굳건한 성채와도 같은 법원 조직 안에서 그런 분위기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거침없이 주어진 선을 뛰어넘는 소신과 패기를 보여 준다. 그야말로 작가가 바라마지 않는, 싫다는 것을 싫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온전히 구현된 것과 같은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임바른은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다. 박차오름과는 달리 임바른은 함부로 재판 당사자들에게 감정 이입하지 않으려 애쓰고 법관으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그런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를 더 많이 신경쓴다. 한 마디로 자신의 자유보다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유와 책임을 박차오름과 임바른이 나눠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그렇게나 다른 이들이 서로에 대해 알며 이해해 나가는, '오심즉여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내게 소설은, 멀리 떨어져선 서로 외면하는 것들을 하나로 연결지어 가까운 곳에서 상호 이해와 포용으로 안을 수 있도록 만드는 매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박차오름과 임바른을 묶고, 그들과 그들의 직속 상관인 부장 판사 한세상을 묶으며,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사법부라는 조직과 옳고 그름을 쉽게 가릴 수 없는 세상을 묶는다.


 그러나 그 매듭이 정말 묶고자 하는 상대는 아마도 우리 독자들일 것 같다. 무엇보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린 현재의 사법부를 곱게 보지 않는 바로 나 같은 사람 말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그 때 탈주한 지강헌이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여전히 한국 사법 현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마음을 강하게 대변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재벌 앞에서 한없이 약한 사법부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던 영화 '베테랑'이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흥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교수가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석궁으로 테러를 가한 사건을 다뤘던 영화 '부러진 화살'도 사법부를 부정적으로 묘사했었는데 300만이 넘는 관객이 들었었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영장 기각에 있어서도 이를 접한 많은 이들이 비난을 쏟아내자 사법부가 법관의 독립을 존중해야 한다고 변호했지만 되려 사람들은 '제발 재벌에게서 독립하라!'고 더 크게 외쳐대고 있는 형편이다. 작가 자신도 책에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2014년 여론조사업체가 실시한 리얼미터 실시한 '국민으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기관'에 관한 설문 조사에서 법원이 5위 군대와 7위 국회 사이에 있었다(p. 141)고. 이토록 법관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우리는 그만큼 더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작가는 그런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현장을 낱낱이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어려움과 고민은 물론 조직 내부의 불합리한 관행과 전관예우 같은 부끄러운 과오까지도 가져와 자신들이 진정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오롯이 보여주려 한다. 이것이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어떻게 잘 좀 봐달라 하는 의미는 아닐 것 같다. 아마도 여기에 깃든 본심은 소설에서 박차오름과 임바른이 제출된 기록이나 서류로는 알 수 없었던 진실들을 재판 당사자들을 직접 대면하고 친히 대화하는 가운데 알게 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바로 그렇게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직접 피부로 경험토록 하는 것이다. 사실 작가 자신의 말마따나 지금껏 제대로 드러난 적이 거의 없었던 판사들의 삶이 아니었던가. 나도 이제야 책을 통해 실제 법관들에겐 법봉이 없다는 것과 골무가 그들의 가장 요긴한 도구이며 미처 읽지 못한 재판 기록들을 집으로 운반하기 위한 도구인 보따리와 캐리어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그들이 '월화수목금금금'의 과도한 노동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이렇게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자 나 또한 그들을 보는 눈이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프로도가 골룸을 곁에서 오래 가까이 지켜보고서 변했던 것처럼 바뀔 수밖에 없었다. 소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얼른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여전히 많은 다수의 법관들이 판사로서의 직업적 양심을 고수하며 정의 구현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도 하면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고 한다면 아직은 희망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고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부장 판사 한세상은 처음엔 박차오름이 자신의 큰 딸처럼 사사건건 말꼬리나 잡고 대드는 데다  거친 풍파나 몰고오는 사고뭉치라서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끝에 가선 그녀의 됨됨이를 믿고는 그녀가 자신을 대신해서 정의를 잘 세워줄 것이라 생각하며 편한 마음으로 사직서까지 내게 된다. 이런 푸근한 아빠의 미소를 나 역시 소설의 말미에서 짓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정녕 오심즉여심을 하려면 나태주 시인의 '풀꽃'과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소설 속의 진실과 신뢰는 바로 그런 시선들을 통해 발견되고 형성된다. 문득 내가 너무 사람과 사물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보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와 안 것은 아니다. 실은 예전부터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는 게 바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이유로 사람과 사물을 내 멋대로 재단하는 나를 방치해 왔었다. 어쩌면 나는 소설에 나오는 성공충 판사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내 식대로 이해하고도 전혀 부끄러움을 몰랐으니. 최근 왠지 모르게 우울에 깊이 물드는 때가 자주 있다. 사람들에게 이것을 고백하면 갱년기가 온 게 아니냐면서 놀리기 바쁘다. 그런데 '미스 함무라비'를 읽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불현듯 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우울한 것은 전적으로 나 때문인데, 나는 남을 위해선 얼마나 우울을 느꼈거나 눈물을 흘렸던가?' 하고 말이다. 결국 내가 꽤나 타인의 상처와 아픔에 둔감해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소설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타인에게 행패를 부렸던 노인처럼 나 역시 내게 있는 이기적인 모습을 정당화시키려고 타자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신중한 이해도 없이 멋대로 단정하고 단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깊고 좁은 우물처럼 내 내부로만 파고드는 시야를 밖으로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처럼 아프고 힘든 이들을 담을 수 있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정의라는 것도 누군가 우리 대신 실현시켜주거나, 우리에게 쥐어주기 보다는 우리가 삶에서 스스로 실천할 때 보다 온전하고 확고하게 세워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악이 이기는 것은 딱 하나, 선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로 모두가 삶의 근본적 태도로써 정의를 일상에서 실천해 나간다면 그런 악들은 더이상 범접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마도 이 소설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배심원인 일반인들이 주된 역할을 하는 국민참여재판인 것도 바로 이것을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런 정의를 구현하는데 있어서도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타인의 처지를 내 것처럼 여기는 '오심즉여심'일 것이다. 나와 너가 다르지 않으며 너의 문제가 나 또한 같이 짊어지고 해결해야 할 것이라면 항상 실천을 유보시키는 대표적인 핑계들이라 할 수 있는 이것들을 -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나 '나 하나 안 한다고 별 티가 나겠어?' 혹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뭘.' - 생각하는 것조차 부끄러워서 더이상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미스 함무라비'는 신기한 소설이다. 나를 자신에게 묶었다가 슬며시 풀어주고는 나로 하여금 다른 이와 묶게 만든다. 작가 역시 오랜 재판 경험을 통해 깨달았던 것 그대로, 우리 모두가 실은 연약하며 상처받기 쉬운 존재라는 점에서 공동 운명이라는 자각 속에서 말이다. 이제 내 삶과 아픔을 주시하는 것처럼 타인의 삶과 아픔도 세밀하게 오래도록 바라볼 것이다. 그렇게 신화 속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에 유혹 당하지 않으려고 돛대에 자신을 단단히 결박시킨 것과도 같이 나를 기꺼이 '오심즉여심'에 나를 묶어둘 것이다. 미니스커트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박차오름 때문에 생각난 말인데, 이탈리아 작가 다차 마리이니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진지한 말을 하려 들면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그녀의 허벅지가 유창한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외면의 허벅지보다 존재의 내면을 들려주는 입을 더 눈여겨 보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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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01-25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을 재미있게 지었네요 이 책 나왔을 때 라디오 방송에 나온 걸 들었어요 저는 우연히 그런 걸 듣기도 하는군요 그때 법봉 얘기했어요 실제로는 없다고... 그런 거 드라마나 영화에는 나오잖아요 예전에는 없었을까요 말만 하면 좀 심심할 것 같기도 한데...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네요

힘 있는 사람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만, 힘 없는 사람을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희선

ICE-9 2017-02-05 23:13   좋아요 0 | URL
오, 라디오에서 소개된 책이었군요. 희선님은 라디오를 자주 들으시는군요. 저는 예전엔 주로 새벽에 듣곤 했는데 요즘은 통 안 듣고 있네요. 맞아요. 지금도 드라마에는 판사가 법봉을 두드리는 장면이 나와서 저는 당연히 있는 걸로 알았는데 진실은 없다네요. 힘 없는 이들 편에 쓰는 판사들이 소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많다는 걸 저 역시 믿고 싶어요. 그렇지만 보이는 현실은 참 많이 다르죠. 특히 특검이 신청한 영장들이 말도 안되는 사유로 기각 당하는 걸 보노라면 ㅠ ㅠ. 그리고 댓글이 너무 늦었네요. 요즘은 왜 이리 서재 들어오기가 힘든지 흑흑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