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 크로니클 셜록 시리즈
스티브 트라이브 엮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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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난 '셜로키언'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시즌이 거듭될 때마다 더 높은 기대와 더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는 드라마 '셜록'을 처음 보게 되었던 것은 '셜록 홈즈'가 나와서가 아니라 각본을 쓰고 드라마를 제작한 '스티븐 모팻' 때문이었으니까. 나는 모팻을 '닥터 후'를 통해 처음 만났고 'BLINK'를 비롯하여 그가 쓴 에피소드들을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그가 부활의 아이디어를 내고 각본을 썼다고 하니 드마라가 보고 싶었다. 셜록에 대해선 기대가 별로 없었다. 가이 리치가 감독한 '셜록' 영화들이 잘 보여줬듯이, 이미 셜록에겐 날 혹하게 만들 새로운 매력들이 다 고갈되었다고 생각했다. 셜록을 좋아하는 이들은 누구라도 한 번쯤 이런 꿈을 가져봤을 것이다. 셜록으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 스티븐 모팻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오랜 셜록의 팬이었고 특히 30~4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판 셜록들을 대단히 좋아했다. 친구 중에 이와 똑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가 바로 드라마에선 셜록의 형으로 출연하는 마크 게이티스였다. 친한 친구였던 둘은 우정을 나눈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같이 기차를 타고가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사진의 주인공은 드라마 '셜록'의 공동 제작자 마크 게이티스와 스티븐 모팻. 제작 현장에서 셜록의 상징인 헌터 캡과 해포석 파이프를 물고 셜록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굳건한 홈즈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이 헌터 캡과 해포석 파이프는 원래 원작에는 없던 것이라 한다. 헌터 캡은 처음 삽화를 그렸던 시드니 에드워드 패짓이 그냥 그려 넣은 것이고, 해포석 파이프는 윌리엄 질렛이라는 미국인 배우가 한 연극에서 셜록 역을 맡았을 때 처음 썼던 것이라 한다. 책이 밝혀주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홈즈의 모습은 알고 보면 많은 세월에 걸쳐 다양한 경로로 이뤄졌다. 새삼 홈즈가 활자를 넘어 종합적인 문화 현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열심히 셜록과 그 영화들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던 그들은 셜록이 현대화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그 일을 해 줄 사람이 없을까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셜록 현대화의 적임자이며 바로 자신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룰 작정을 한다. 어쩌면 21세기의 대표 드라마 중 하나가 될 지도 모를 '셜록'은 그렇게 아주 우연한 잡담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이 사실을 '셜록 시즌 4'가 방영되기 전에 공개 되었던 특별판 에피소드 '유령신부'의 국내 상영에 맞춰 발간되었던 책, '셜록 : 크로니클'을 읽고 알게 되었다. '셜록 : 크로니클'은 한 마디로 드라마 셜록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책이다.



 시즌 3까지 방영된 드라마 셜록에 대해 궁금한 것은 뭐든지 바로 이 책을 통해 풀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으며 각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구상 되었고 그 장면들은 어디서 찍었으며 또 어떻게 찍었는지 그리고 드라마 속 이야기와 원작은 또 어떻게 차이가 나며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등등. 드라마를 보면서 품었던 아주 작은 의문조차 이 책은 기꺼이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드라마의 공동 기획자, 마크 게이티스가 이 책의 서문에서 한 말 그대로다.


 '이 책에서 여러분은 우리가 셜록을 창안해내고 베이커 가의 사내들을 21세기로 데려온 과정들을 세세하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전세계 시청자들의 주목과 충성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주인공들을 슈퍼스타로 만든 시리즈를 제작한다는 게 힘들지만 얼마나 흥분되고 황홀하던지... 이것은 모험에 관한, 충성심에 관한, 피할 수 없는 위험에 관한, 머리 염색과 커다란 코트와 로맨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무엇보다도 스티븐과 내가 그랬던 것마큼이나 셜록과 존을 사랑하게 되는, 헌신적인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를 만들 때 그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것은, 빌리 와일더 감독이 1970년에 만든 영화 '셜록 홈즈의 사생활'이라고 한다.



 그 영화는 처음으로 셜록의 형인 '마이크로프트'라는 인물을 창조했고 영국 정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도 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설정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마이크로프트', 그대로인 것이다. 이렇게 그들 스스로 고백하듯이 이 영화의 많은 것이 드라마에 직접 인용(p. 20)되었다. 특별판 '유령신부'에서 디오게네스 클럽의 집사 이름이 '와일드'인 것은 아마도 그 영향에 대한 감사 표시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디오게네스 클럽' 자체도 그 영화에서 처음 등장했다. 내 생각엔 '유령 신부' 자체가 영감의 원천이 된 '셜록 홈즈의 사생활'에 대한 오마쥬로 생각 된다.


 그런데 그토록 이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은 그 영화가 미스터리가 아니라 바로 '탐정'에 대한 이야기였고, 무엇보다 탐정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모리어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모팻과 마크가 드라마 셜록에게 원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단순히 뛰어난 추리 기계로써의 셜록이 아니라 피와 살이 있고 희노애락을 겪는 실존적인 존재으로서의 셜록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특히 '왓슨'에게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왓슨을 그저 조수나 셜록의 뛰어난 추리에 감탄하는 관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모팻과 마크에게 왓슨은 엄연히 셜록과 '공동 주연'이었다. 그래서 셜록 이상으로 왓슨 캐릭터를 창조하는데 공을 들였다.


 마크는 존 왓슨을 공동 주연으로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중대한 전략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우리의 프로젝트에서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셜록'이란 이름으로 방영될테지만, 그럼에도 존의 역할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게 무척이나 중요했어요."(p. 26)


 드라마 속 왓슨은 그렇게 세심한 작업 속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내가 드라마 셜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왓슨이 셜록 못지않게 커다란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관계가 왠지 드라마 '엑스 파일'의 멀더와 스컬리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책을 읽고나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 드라마 '셜록'의 인기는 바로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셜록, 그리고 관계 안에서 우리처럼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그를 한껏 드러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셜록 : 크로니클'은 드라마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와 에피소드 그리고 드라마 전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다양한 접근을 도와준다. 이런 점까지 더해 드라마 '셜록'에 대한 가장 좋은 가이드가 아닐까 싶다.


 '셜록 : 크로니클'은 지금까지 방영된 시즌 3까지의 에피소드 9개를 커다란 줄기를 하여 그 때 그 때마다 필요한 정보들을 담는 것으로 하고 있다. 각 에피소드마다엔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원작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이 있고 말미에 각 장면을 찍은 실제 장소를 공개하고 있다.


 시즌 3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가장 위험한 적수 중의 하나였던 마구누스가 있던 저택의 모습이다. 최후 결전의 장소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실제 있는 건물은 아니며 드라마를 위해 새로 지었다고 한다. 첫 에피소드에서 여인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아파트는 실제 있는 건물로, 매물로 나와 있는 아파트를 섭외했다고 한다. 각본대로 멀쩡한 아파트를 부순 다음, 원래 매물이었기에 촬영이 끝난 뒤엔 원상 복구 해 줬다고.

 사진은 바로 그 건물인 '로리스턴 가든스'의 모습. 어떻게 현장을 만들었는지 이렇게 여러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 이야기 뒤엔 그것을 실제 촬영한 장소를 다 설명하고 있다. 꽤나 자세하게 말하고 있어 이것을 근거로 영국에 가게 된다면 '드라마 셜록 투어'도 가능할 지경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세트 대부분은 실제 카디스에 있다고 한다. 런던은 물가가 너무 비싸서 촬영에 돈이 많이 든다고.


 책은 드라마 제작 전반에 관한 정보를 거의 다 담고 있다고 해도 좋다. 편집이면, 편집. 음악이면 음악. 다 설명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배스커빌의 개'에선 CG로 만든 개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것 역시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것 외에, '하운드'의 뜻을 알게 되는 연구실 학자 사진을 찍었는지 하는 것등, 에피소드의 아주 사소한 소품들까지 다 말해주고 있어 드라마를 보다 풍성하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드라마 셜록 사상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던 시즌 2의 마지막 에피소드 '라이엔바흐 폭포'에서 셜록이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같은 것은 실제 콘티까지 삽입하여 이해를 돕는다.



 이밖에 드라마 셜록의 시그니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화면 위로 지나가는 글자와 같은 정보들도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있다. 원래 계획은 휴대폰에 나온 문자들을 클로즈 업 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연출을 맡은 폴 맥기건 감독이 그런 건 시청자들을 너무 지루하게 만들 뿐이니 도저히 그렇게 찍을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정보들을 아예 셜록의 뇌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게 실로 혜안이었다는 것은 드라마를 보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셜록:크로니클'를 봐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삭제 장면이 아닐까 싶다. 각 에피소드마다 삭제되었던 장면들을 이렇게 따로 분량을 할애하여 보여주고 있다.



 주요 배역들을 맡은 배우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있다. 사진은 드라마에서 셜록을 짝사랑 하는 법의학자로 나왔던 루이즈 브릴리.


시즌 3의 마지막 에피소드 '마지막 서약'에서 왓슨이 병원에서 사라진 셜록을 찾고 있을 때, 그녀는 주소 하나를 말하며 거기에 비밀 숙소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곳은 바로 그녀의 집. 셜록에게 언제든 자신의 침대를 쓸 수 있다고 말한 것을 털어놓는 그녀가 귀여웠다^^



 '셜록 : 크로니클'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도록 하지 않는다. '감사의 말' 옆에 이렇게 스티커가 있으니까 말이다. 어릴 때 이렇게 책 뒤에 스티커가 있으면 바로 뜯어 가방이나 공책 곳곳에 붙이기도 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얼른 어디에 붙여야 할 지 모르겠다. 하하. 그래도 어쨌든 스티커가 있으니 좋다^^


 이렇게 '셜록 : 크로니클'은 그야말로 '기억의 궁전'이라 할 만하다. 셜록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마음 속 '기억의 궁전'에다 저장한다. 그와 똑같이 '셜록 : 크로니클'은 드라마 '셜록'에 대한 모든 것을 빠짐 없이 차곡차곡 다 저장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드라마 '셜록'에 대해서라면 가장 충실한 가이드가 아닐까 싶다.



 그럼, 이제 셜록이 시즌 4로 모처럼 돌아왔기도 하니, '셜록 : 크로니클'과 함께 다시 한 번 드라마 셜록의 세계로 풍덩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 드라마의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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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7-02-08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금가지에서 이번에 130주년 기념판 나왔대서 사려구요. 셜록은 애 키우느라 1도 못봄요 ㅠㅠ

ICE-9 2017-02-15 00:5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 130주년 판 봤습니다. 이미 셜록 전집을 두 개나 가지고 있지만 또 소장하고픈 욕구가 무럭무럭 생기더군요ㅠ ㅠ. 아니, 아직 셜록 드라마를 못 보셨다니, 육아에서 여유가 생기시면 꼭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네요. 저는 시즌4 에피소드2까지 봤는데, 세 네번 생각해도 버릴만한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