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병동 병동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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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을 무대로 벌어지는 땀내 나는 스릴러. 이 소설을 이렇게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치넨 미키토의 '가면 병동' 얘기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건비를 줄이고 싶은 병원과 벌이가 시원치 않은 의사들이 서로 죽이 맞아서 야간 당직을 서는 의사를 정식으로 고용하지는 않고  7ㅕㅕㅕㅕㅕㅕㅕㅕㅕㅕㅕㅕㅕ65555555555(이건 전화 받는 사이에 정말로 저희 집 고양이가 누른 것입니다.ㅠ ㅠ) 다른 병원에 있는 의사들을 아르바이트로 쓰는 게 말이죠.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외과의사인 하야미즈 슈고도 그 중 하나 입니다. 선배 의사의 소개로 일주일에 한 번 요양 병원에서 야간 당직 서는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요양 병원이라고 하지만 거의 몸져 누워 있는 환자가 대부분인데다 위급 상황도 별로 없어서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안 하면서도 돈은 벌 수 있는 그렇게 꿀을 빨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자기가 서는 날은 아니었지만 선배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그 대신 당직을 맡게 된 어느 날 밤, 그는 삶에서 가장 최악의 시간을 경험합니다. 모두가 퇴근한 뒤, 일하는 사람이라고는 여성 간호사 둘과 당직을 맡은 자신 밖에 없는 병원 로비에 피에로 가면을 쓴 범인이 권총을 든 채, 총상을 당한 젊은 여성 하나를 인질로 잡고 나타난 것입니다.


 소설은 바로 거기서 시작합니다. 이런 저런 사전 설명 같은 거 없이 단도직입으로 독자를 이야기 한 가운데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 뒤로 옆 한 번 안 돌아보고 이야기 끝까지 내처 달립니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하튼 범인이 다른 데도 아니고 병원에 찾아온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총상을 입은 여인을 치료해 달라는 것. 자기가 강도이긴 하지만 살인자까지 되기는 싫다고 말이죠. 총으로 위협 당해서가 아니라 의사로서 다친 사람을 외면하는 게 도리가 아니어서 슈고는 최선을 다해 부상당한 여인을 수술하고 결국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살려냅니다. 슈고는 여성에 대한 치료를 마친 뒤, 이 같은 상황을 경찰에게 알리려 하는데 퇴근한 줄 알았던 병원 원장이 갑자기 나타나 신고하는 슈고를 말립니다. 경찰이 개입하면 범인이 더욱 궁지에 몰려 무자비한 짓을 벌여 환자들을 위험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슈고는 그래도 신고하려 했지만 두 명의 간호사까지 원장 편을 들자 어쩔 수 없이 신고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강도까지 아예 지금 병원을 나가면 수색 중인 경찰에 잡힐 위험이 있으니 수색이 잠잠해지는 새벽 5시까지 기다리기로 합니다. 그 때가 되면 스스로 나갈테니 그 때까지 얌전히 인질이 되어달라고 부탁까지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되어, 병원은 누구도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는 밀실 같은 곳이 되어 버립니다. 띠지에 나온, 밀실 미스터리는 방이 아니라 병원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방을 대상으로 하는 밀실 미스터리는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하룻밤 새의 인질극만이 이 소설이 담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게 곧 밝혀집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게 어떤 비밀이 존재하고 있다는 게 서서히 드러나기 때문이죠.



 제목의 '가면병동'은 바로 그래서 나온 것 같습니다.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병원이라는 것을 나타낸다는 뜻으로. 그런 의미에서 슈고는 그 밤, 두 가지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 셈입니다. 하나는 인질범에게서 살아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갑자기 드러난 병원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것이죠. 소설은 이 두 가지를 기본 줄기로 하여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어요. 슈고 외에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고 병원이라는 공간 역시 그런 게 넘쳐나거든요. 


 이외에 독자의 흥미를 잡아끄는 부분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인질로 잡혀 온 여성 환자에 대한 것인데요, 이름이 미나미입니다. 그런데 꽤 미모의 여성이에요. 슈고는 주로 이 미나미와 많이 같이 있게 됩니다. 즉 젊은 총각 의사와 더 젋은 미인 여성 단 둘이 위험한 밤을 보내게 되는 것이죠. 이쯤되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나요? 네, 그렇습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케미 입니다. 로맨스라는 향신료가 가미되는 것이죠.


 이런 저런 재료들이 따로 놀지 않고 잘 버무려져 있기 때문에 소설은 끝까지, 한달음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를 선사합니다. 깜짝 놀랄만한 반전까지 마련되어 있어 뒷 맛을 더욱 깔끔하게 만들어주더군요. 치넨 미키토는 그런 부분에 수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들을 재밌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현재 병원 의사라고 해서, 병원을 무대로 한 미스터리라 의료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미스터리가 나오지 않을까 잔뜩 기대했는데, 그런 것은 없어서 그건 좀 아쉬웠어요. 이왕이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잘 살린 미스터리를 써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 이런 건 정말 의사 밖에는 못 쓰겠구나'할 만한 미스터리를 꼭 한 번 보고 싶으니까요. 아무튼 그의 다른 작품은 어떨까 궁금해지긴 했습니다. 그만큼 치넨 미키토에 대한 첫 인상이라고 할 만한 '가면병동'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겠죠.


 다른 건 하나도 안 따지고 그저 재밌는 미스터리 스릴러 한 편 읽어보고 싶다는 분은 '가면병동' 한 번 만나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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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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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를 읽고 관심이 한껏 높아졌던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

 언제고 한 번은 꼭 읽고 싶었던 데뷔작, '루팡의 소식'이 표지 갈이를 하여 새로 나왔다. 예전 표지는 주요 용의자인 세 사람을 그린 일러스트였는데, 이번 표지는 자정이 얼마남지 않은 벽시계를 전면에 부각했다. 이야기가 사건의 공소 시효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지라 그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여하튼, 히데오의 데뷔작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 읽고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대체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이 뭐냐?' 라는 것이었다. 대관절 어떤 상이기에 이만한 소설이 고작 가작밖에 못 받는단 말인가 하고 내가 요코야마 히데오도 아닌데 괜스레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작가에게 빙의라도 된 듯, 얼른 그 해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을 받은 작품까지 검색했다. 이만한 작품이 가작이니, 대상은 얼마나 대단할까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 작가 돈나 레온의 데뷔작, '라 트라비아타 살인 사건'이 대상작이었다.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은 일본과 해외 작품을 가리지 않고 수상한다. 유감스럽게도 읽어보지 못했다. 거기다 품절마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그 해의 수상이 정녕 공정한 것이었나 하는 것은 후일을 기약해야겠다. 어쨌든 루팡의 소식이 가작을 받은 것은 좀 너무해 보인다.(그런데 책 날개에 보니, 지금 내가 읽은 것은 작가가 15년 만에 전면 개고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원래의 것은 이보다 완성도가 훨 떨어지는 것이었던 걸까? 으음, 진실은 저 너머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장을 비롯하여 세쿠하라 서의 경찰들이 모여 망년회를 하고 있다. 때는 1990년, 12월 8일 밤. 서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느긋하게 송년회를 즐기고 있던 서장 고칸에게 갑자기 긴급한 연락이 떨어진다.


 십오 년 전 여교사 자살 사안 관련

 타살 의혹 농후 유력 정보

 신속 복귀 요망.(p. 11)


 '억' 하는 소리를 낼 사이도 없이 얼른 경찰서로 돌아와 부랴부랴 수사반을 꾸리면서 내막을 확인해 보니, 15년 전에 여교사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에 당시 그 학교에 재학 중이던 세 명의 제자가 학교에 있던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루팡 작전'이라는 것을 한다면서 심야에 학교에 숨어들어와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고칸이 더 놀라웠던 것은 첩보의 발원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의 루트로 들어온 첩보라면 경찰이 이토록 신속하게 수사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나 빨리 수사반이 꾸려진 것은 그 제보가 본청, 그것도 엄청 고위직에게서 직접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너무나 이례적인 것이라 고칸은 사건도 사건이지만 제보의 당사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간 얼른 수사를 해야했다. 만일 그 여교사가 자살이 아니라 진짜 살인이라면 공소 시효가 겨우 하루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다. 급히 '루팡 작전'을 했던 세 명 중의 한 명, 기타 요시오가 경찰서로 체포되어 오고 그의 자백을 통해 기타 요시오 자신도 15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기억 속에 단단히 봉인하고 있었던 사건이 일어난 날의 기억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예전 '루팡의 소식' 표지.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이 '루팡 작전'을 펼친 기타 패거리로 보는 방향에서 맨 오른쪽이 바로 기타, 그리고 중간이 조지 마지막이 다치바나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썬글래스를 쓰고 있는 남자가 바로 '루팡 카페'의 사장 우쓰미다.


 '루팡 작전'. 그것은 학교에 대한 반항심에서 비롯된 장난이랄 수 있었다. 시험 치기 전 날 밤에 학교에 몰래 잠입해 교장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시험지를 몰래 빼내오는 것. 그것이 바로 '루팡 작전'이었다. 공부에 별로 뜻이 없는 것 뿐인데 학교로부터 '불량'이라는 낙인을 받은 것에 대한 분풀이였다. 그런데 왜 작전에 루팡이라는 이름을? 절도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들이 작전을 모의했던 장소가 그들의 아지트라고 해도 무방한 '루팡 카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장이라는 사람이 수상하다. 일단 칠 년 전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삼억 엔 강탈 사건의 범인의 몽타주와 너무나 흡사한 용모인데다 범행 수법과 사장의 취미가 비슷하고 범인이 습격할 때 '스가모'란 지명을 입에 올렸는데, 사장이 카페를 연 곳 또한 '스가모'인 것이다. 이런 면들 때문에 사장은 기타패거리에게 '대도 삼 억'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그런데 실제 이 사장을 삼억 엔 강탈 사건의 범인으로 강력하게 의심하는 경찰이 있었다. 그가 바로 현재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강력범 조사 4계장 '미조로기 요시'다.


 공교롭게도 루팡 작전이 거행되고 여교사가 죽었던 날은 삼억 엔 강탈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미조로기 요시는 그 날,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경찰서로 체포까지 했다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해 그가 경찰서를 유유히 걸어 나가는 것을 지켜봐야했다. 그런 아픔까지 있어 새로운 증거의 발견으로 다시 그 옛날의 사건 수사에 임하는 미조로기 요시의 각오는 남다르다. 절도 모의 장소가 '카페 루팡'인 지라 미조로기 요시는 사장 우쓰미를 중요 참고인으로 소환한다. 이제는 스가모를 떠나 다른 먼 지역에 살고 있었기에 우쓰미가 소환에 응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예상을 뒤엎고 선뜻 응한다. 경찰서까지 몸소 찾아온 우쓰미를 보고 미조로기 요시는 그 날처럼 다시 한 번 경찰의 무능을 비웃으려고 찾아온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게 '루팡의 소식'은 15년 전 루팡 작전을 감행했던 기타와 조지의 고백을 커다란 뼈대로 하여 세부를 붙여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는 한 마디로 꽤나 재미있다. 진행될 수록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과 뒤집어지는 진실들이 속출해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 가서 진범이 밝혀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것이 공소시효가 거의 다 된 시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긴박감까지 더해져 더욱 카타르시스를 높인다.(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환상의 여인'은 무죄라 주장하는 주인공이 사형당할 시간을 얼마 앞두지 않고 진행된다. 아예 챕터의 제목이 '사형 집행 몇 시간 전'으로 되어 있어 긴박감을 높인다.)


 그러면서도 휴머니즘까지 놓치지 않고 가미하고 있어 재미도 재미지만 가슴에 뭔가 촉촉한 여운까지 남긴다. 기타와 다치바나가 누구의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마냥 방치되어 있는 소마의 어린 여동생을 위해 놀아주고 같이 라면도 먹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기타는 원래 부모의 이혼으로 만나지 못하는 여동생에 대해 언제나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렇게 소마의 여동생을 위해 뭔가를 해 줌으로써 소마의 여동생 뿐만 아니라 자신도 치유 받는다. 구원은 결국 타인을 향한 이타적인 사랑을 통해 찾아온다는 것일텐데 이것은 죽은 여교사가 갖고 있었던 진실과 당시 어른들의 부정과 범죄의 동기와 대비되어 선명하게 부각된다.


 원래 모리스 르블랑의 '루팡'은 비록 범죄를 저지르긴 하나 동기엔 타인을 위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것이야 말로 루팡이 독자들에게 정말 전하고 싶었던 '소식'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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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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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점 탈레망의 사건 수첩'의 작가 오카가지 다쿠마의 새로운 작품, '도연사 쌍둥이 탐정일지'.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커피점 탈레망의 사건 수첩'을 읽었기 때문도, 작가 때문도, 미스터리 소설이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도연사'라는 절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죠. 예전부터 일본 절의 생활이 궁금했습니다. 일본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만화도 그렇습니다. 보다 보면 꼭 한 번은 절이 나옵니다.

 선남선녀가 밀회를 나누거나 아니면 그와 정반대인 공포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이능력을 가진 이들이 자웅을 겨루는 무대가 되기도 하지요. 일본에서 나오는 미디어를 접하면 접할수록 절만큼 익숙해지는 장소도 또 없습니다. 분명 밤마다 도시를 묘지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교회만큼, 사람들의 생활 공간 깊숙이 들어와 있기에 그럴 겁니다. 자주 보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일본 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말이죠. 일본 절은 우리나라 절과는 또 다르죠. 일단 일본에서 만들어진 대처승 전통이 강하게 자리잡아, 대대로 절은 종단이 아니라 가문이 소유합니다. 거기다 자식에게 세습도 가능하죠. '쉘 위 댄스'로 유명한 일본의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의 예전 영화 중에 '팬시댄스'라는 게 있는데, 거기 주인공이 주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현재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친구들이 여간 그를 부러워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들은 힘든 취업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는 아버지의 절만 물려받으면 되기 때문이죠. 실제 일본에서 절을 물려받게 되는 남자는 혼인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평생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으니까요. 뭐, 그런 차이들이 있어서 실제 절에서 사는 삶이 나오는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소설에도 그런 남자가 나오더군요. 구보야마 잇카이라고. 이제 막 서른이 된 남자로 아직 미혼입니다. 현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절을 잘 맡을 수 있도록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한창 스님의 일을 수행 중입니다. 그에겐 란과 렌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진짜 피붙이는 아닙니다. 란과 렌이 갓난 아기 때 절 앞에 버려져 있는 것을 거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바로 잇카이였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 보다 란과 렌에게 더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셋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역들입니다. 모두 네 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데, 다들 잇카이가 장례식이나 13주기 혹은 '미즈코 공양' 같은 스님의 일을 하다가 만나게 되는 사건들이 미스터리가 됩니다. 그리고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게 바로 렌과 란이죠. 이제 중학생인 남녀 쌍둥이입니다. 이 소설의 탐정들인 것이죠. 네, 여기엔 두 명의 탐정이 등장합니다. 쌍둥이이지만,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과 극이죠. 남자인 렌은 '절 옆에는 귀신이 산다'는 생각으로 사람에겐 악의가 가득하다고 여기는 반면, 란은 세상에 있는 모두는 선하다는 '불천인신천인'이란 말을 신조로 사람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여깁니다. 이처럼 사람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른 그들은 미스터리도 다르게 풀어 갑니다. 렌은 악의에 출발점을 두고, 란은 선의에 시작점을 두죠. 재밌는 것은 둘 다 모든 사건을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렌이 왓슨의 역할을 하게 되고, 또 어떤 때는 란이 그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악의로 봤던 사건인데 실은 선의로 봐야 할 사건이었고 또 선의로 해석했던 사건인데 실은 악의로 봤어야 하는 사건이었던 것이죠. 덕분에 잇카이의 걸음만 분주해졌습니다. 렌과 란의 추리를 믿고 그대로 가족들에게 전했다가(렌과 란은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라 추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늘 잇카이의 몫입니다.) 나중에 또 렌과 란이 그것을 뒤집는 추리를 내놓으면 잘못된 추리를 알려준 책임이 있으니 얼른 달려가서 제대로 된 것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죠. 이것이 이 소설의 주된 얼개입니다.



 책의 표지입니다. '도연사' 툇마루에 앉은 란과 렌의 모습을 담고 있네요. 그림에서 란은 앙꼬가 가득 든 과자를 들고 있는데, 사실 란은 도라에몽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란은 오직 하나 말고는 세상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도라에몽처럼 앙꼬가 가득 든 과자거든요. 낯선 사람들이 오면 방에 콕 박혀 나오지도 않을만큼 사람들을 피하는 그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그리고 가녀린 몸으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 먹어대지요. 어쩌다 그렇게 단맛에 푹 빠져 버리게 되었는 지는 나오지 않는데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나중에 밝혀지겠죠. 한편, 렌은 스마트 폰을 들고 있는데 게임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방과 후 시간 대부분을 그는 게임으로 보내니까요. 그렇게 그들은 자신만의 뭔가에 하나씩 빠져 있습니다. 군식구로써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면서도 보통 아이들처럼 주지 할아버지나 잇카이에게 응석을 부릴 수 없는 탓에 혼자 견뎌오느라 그렇게 된 것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의탁할 수 있는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을 테니까요. 사람에 대한 시각 역시 그렇게 형성된 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저는 아직 이 작가의 대표작인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스타일이 작가의 주류적 스타일인지는 모릅니다. 이 소설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작가는 '란'에 가까울 듯 합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되거든요. 첫 에피소드엔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이 낸 조의금 봉투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선 아버지를 여윈 딸이 아침마다 가게 앞의 쓰레기를 줍는 게 미스터리가 되며 세 번째 에피소드엔 일본에는 '미즈코 공양'이라고 해서 유산이나 낙태 등의 사정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린 태아를 기리며 공양하는 전통이 있는데 그 미즈코 공양을 의뢰해 온 여인이 실은 유산이 아니라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하루는 잇카이와 란과 렌 모두 긴 머리에 낭창낭창한 몸매를 가진 여인의 꿈을 꾸는데 혹시 란과 렌의 친모가 아닐까 다들 생각하는 참에 마침 그와 비슷한 여인이 사고로 죽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 묘사의 속도는 느릿하고 또 차분합니다. 그리고 어느 사건에 있어서도 타인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누군가의 독니 보다는 지키고 보살펴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합니다. 하여 읽다보면 저 표지처럼 문득 마음 속에 따스한 봄 햇살이 비춰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니, 아무래도 사람을 근본적으로 선하게 보는 이가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 일지'는 그런 소설입니다.

 누군가의 선한 마음이 그립다면 그것을 이 소설에서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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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아르테 미스터리 10
오리가미 교야 지음, 서혜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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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건, 기억의 집적이다. 사는 것에 우리의 선택이 없었던 것처럼 어떤 기억을 갖느냐에 있어서도 우리의 선택은 허용되지 않는다. 싫은 기억, 부끄러운 기억, 그저 빨리 잊어버리고만 싶은 기억들도 우리는 지니고 살아야 한다. 더구나 사람이 창조될 때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인지, 좋고 기쁘며 행복한 기억보다는 나쁘고 슬프며 불행한 기억들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미소의 여운은 잠시지만 고통의 잔영은 너무나 길다.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음울한 기억의 그늘 아래서 오래도록 신음하다 보면 언젠가는 바라게 된다. 누가 이런 기억 따위 지워줬으면 좋겠다고. 정말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 것을 소설로 풀어낸 책이 바로 변호사 출신 작가 오리가미 교야의 '기억술사'이다.



 주인공은 현재 대학생인 료이치. 그는 신입생 환영회 때 '교코'라는 여자 선배를 만나 그만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 만다. 하지만 그녀에겐 커다란 어려움이 있었으니 과거 치한에게 당한 일 때문에 밤에 혼자 집밖에 있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료이치는 사랑의 힘으로 교코가 과거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도록 열심히 돕는다. 그런데 어느 날, 교코가 자신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아예 기억조차 못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류이치는 직감한다. 교코가 싫고 아픈 기억을 지워준다는, 괴담 속 존재인 기억술사를 만났음을. 


 기억술사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괴인이다. 기억술사를 불러내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기본적으로 기억술사는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앞에 스스로 나타난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도시 전설 가운데 해외로부터 수입된 것이 적지 않은데, 기억술사 이야기는 일본, 그것도 도쿄 인근 이외의 곳에서는 들을 수 없다. 여고생을 중심으로 극히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분류하자면 '괴인 빨간 망토'나 '입 찢어진 여자' 등으로 대표되는 '괴기 괴인 계열' 도시 전설에 속한다.(p. 34)


너무나 아끼던 사람에게서 기억되지 않는 아픔을 심하게 겪어버린 료이치는 기억술사가 옳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한다. 그 생각을 그만 졸업생 초청 강연회에 강사로 온 변호사에게 털어놓았다가 그에게서 기억술사에 대해 좀 더 듣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된다. 얼마 후, 료이치는 변호사에게서 저번에 만나 기억술사에 대해 말해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는다. 료이치는 거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료이치는 변호사를 만난 기억도 없고, 전화번호조차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료이치는 또 다시 깨닫는다. 자신도 모르게 기억술사를 만나버렸다는 것을.


 기억술사에게 직접 당하기까지 한 그는 더욱 열의를 다해 기억술사를 사방으로 찾아 나선다. '기억술사'는 연작 형식이다. 기억술사에게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료이치를 중심으로 연속되고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는 료이치가 만난 변호사가 주인공이다. 이름은 다카하라. 그 역시 갑자기 닥쳐 온 일신상의 사정과 자신과 관계된 한 사람 때문에 기억술사를 찾는다. 세 번째 이야기는 사라진 기억 때문에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여고생 사사 미사오가 중심이다. 료이치는 이 여고생의 존재를 기억술사의 정보를 모으기 위해 가입한 한 괴담 전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고, DD, 이코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들과 함께 과연 여학생의 사라진 기억이 기억술사 때문인지 조사한다.


 '기억술사'는 제22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에서 독자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 이야기까지 읽으면 이 소설이 왜 호러 독자상을 탔는지 잘 알수가 없다. 왜냐하면 소설이 보여주는 주된 분위기가 호러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기억술사 괴담이 나오긴 하지만 공포와는 무관하고 이야기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흥건하게 스며들어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에 이르면 이 소설이 왜 호러 독자상을 탔는지 납득하게 된다. 마지막은 소름이 돋는다. 그도 그럴 것이 료이치와 함께 기억술사를 추적하던 이들이 어느새 그에 대한 기억들을, 료이치 자신까지 포함하여 모조리 잃어버린 것이다. 료이치는 기억술사가 자신을 뒤쫓고 있으며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의 기억을, 괴담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두 먹어치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소꿉 친구이자 친 여동생처럼 아끼는 '마키'가 있다. 료이치는 기억술사가 마키의 기억마저 먹어치우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있는 힘껏 마키를 기억술사에게서 보호하려 한다. 그런 료이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반전의 진실이다.


  마지막의 섬찟함과 반전 때문에 첫 번째 이야기의 결말에서 확 올라갔다가 두 번째와 세 번째에선 다소 쳐지던 기대를 다시 한 번 높이 솟구치게 하여 끝내 2편과 3편의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게 만든다. 읽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재밌는 작품인 것은 틀림없다. 그건 그렇고, 작품의 감상에서 벗어나 좀 더 사회적인 측면을 끌어들이면 나는 '기억술사'가 현재 일본인들의 무의식적 소망을 은연 중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일본은 2011년에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을 겪었고 그 여파는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이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일본의 미래는 한없이 불안하다. 이것은 거꾸로 일본의 대중 매체들이 그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지우기 위해 드라마든 책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어떻게든 일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주입하려 한다는 것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소설에서 하필이면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현재의 밤이 무척이나 공포스러운 교코가 처음에 나오는 것이 내겐 참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교코의 그러한 모습이 실은 현재 많은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교코만큼이나 오늘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원전 대재앙이 있었다는 기억 자체를 지우고 싶어 한다. 기억술사는 그들의 무의식이 정말로 바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료이치처럼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엄연히 존재하는 과거의 비극을 그저 잊는 것으로 현재와 미래의 안정을 도모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어둔 과거를 그저 잘라내 버리는 것은 원전 대재앙 이후에 아베 정권이 자행했던 것 그대로인지라 더욱 그렇다. 료이치는 반대한다. 그 이유에 대한 이러한 그의 말은 새겨둘만하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도 어쩌면 몇 년쯤 뒤에는 좋은 추억으로 바뀌거나 싫은 기억인 채로 있더라도 그게 계기가 돼서 변할 수 있거나.. 할 지도 몰라. 그렇지 않아? 하지만 지워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야. 그 뒤의 가능성이 제로가 돼. 길을 도중에 차단하는 거나 같아. 그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걸어온 길까지 지워버리는 일이야. 기억을 지우는 것이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그 순간만으론 알 수 없다는 얘기야.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야." (p. 352)


  아프고 싫은 기억들이 그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당장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봐도 그런 기억들이 우리를 좀 더 성장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패의 기억은 좀 더 노력하게 만들고 실연의 기억은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만들며 상실의 기억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깊이 깨닫게 한다. 진정한 성장의 한 걸음은 언제나 아픈 반성과 혹독한 성찰 속에 내딛을 때가 많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그대로, 보다 성장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자아의 껍질을 깨는 고통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술사에게 동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기억술사는 자신의 행위가 치유라고 말하지만 그건 그저 모르핀을 놓아주는 것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치유는 언제나 고통을 정면으로 관통할 때 이뤄진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모르핀의 약효가 떨어지면 이전의 고통이 곧바로 소환되는 것처럼, 단순한 망각은 무수한 반복만 부를 뿐이니까 말이다. 기억술사 자신이 이렇게 고백했던 것처럼.


  "같은 일의 반복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한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p.354)


 아직 2편과 3편의 이야기를 읽지 못했기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오리가미 교야의 '기억술사'는 일본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망각의 획책에 맞서 기억과 그것을 통한 성찰을 강조하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과거의 잘못과 아픔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정직하게 응시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오롯이 감내하며 꾸준히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한다는.

 잇따른 망각 앞에서 공포를 느꼈던 료이치의 마음은 어쩌면 일본 주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한 작가 자신의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망각과 무책임의 유혹이 우리와도 결코 멀리있는 것이 아니기에 '기억술사'를 더욱 허투루 볼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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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5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5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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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관한 6개의 단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소설의 제목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다. 맞다. 모차르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로 그 곡, '밤의 소야곡'이 제목인 것이다. 이사카 고타로 최초의 연애 소설집이라 한층 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이 책의 제목이 하필이면 바로 그것이 된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것이 사랑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소설에서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해진다.


 "저번에 말이야, 애를 재우고 있는데 바람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야. 시끄러운 소리는 아니고, 조용했는데 계속 들리는 거야."

 "무슨 얘기야?"

 "아까 했던 얘기 말인데, 결국 만남이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게 뭔데?"

 "그때는 뭔지 몰라서, 그냥 바람 소리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깨닫게 되는 거야. 아, 그러고 보니 그게 계기였구나, 하고. 이거다, 이게 만남이다, 딱 그 순간에 느끼는 게 아니라.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거."

 "작은 밤의 음악처럼?"

 "맞아, 그거." (p. 35)


 그러나 이것이 꼭 사랑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연애소설집이라고 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보다 훨씬 더 넓어보인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보다 근본적인 면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인생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생의 의미란 언제나 그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뒤늦게 발견되는 것이니 순간 순간에 너무 좌우되어 일희일비 하지말자가 이 소설에 실어 보내는 작가의 진심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의 필요성은 첫 단편 '아이네 클라이네'부터 나타난다. 그 단편의 주인공 사토는 길거리에서 설문 조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토의 회사는 원래 인터넷 조사가 전문이었다. 그런 회사의 직원인 사토가 회사가 결코 하지 않았던 설문 조사를 하게 된 것은 후지마란 직장 선배가 아내와 뜻하지 않게 별거하는 바람에 성질이 나 그만 자신의 책상을 발로 차는 바람에 마침 사토가 그 때 들고 있었던 커피를 서버에 엎질렀고 그 때문에 데이터가 몽땅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후지마 선배는 그 일로 휴직을 하고 커피를 엎지른 죄 아닌 죄로 그는 그만 이렇게 결코 자신이 하리라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인 설문 조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삶은 이렇다. 뜻하지 않은 때에 전혀 예측할 수 없던 곳에서 타격을 가한다. 마치 나심 하메드가 날리는 요상한 펀치처럼.


 "오언은 이따끔 요상한 펀치를 날리거든. 경험이 어디까지 통할지 모르겠네."

 "요상한 펀치?"

 "허리를 뒤로 젖히거나 뒤로 물러나면서 묵직한 펀치를 날리거든. 예전에 일세를 풍미했던 나심 하메드처럼."

 "그게 누군데? 나흐트무지크?"

 "그건 누군데?" (p. 306)


 여기서 작가는 왜 나심 하메드의 이름을 마치 나흐트무지크처럼 들렸다고 쓴 것일까? 바로 그것이 제목에 담긴 의미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 나심 하메드의 특기였던 어디서 올지 모르는 요상한 펀치처럼, 인생의 어떤 순간도 정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랬기에 6개의 단편엔 모두 그런 순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토록 미래가 기대되었던 청순 미녀가 왜 가장 한심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남편을 택해 스스로 퇴색해 버렸는지, 또 원치 않았던 만남을 그저 소개해 준 이에 대한 예의로 계속하고 있었을 뿐인데 오히려 그것이 삶의 단 하나의 사랑을 가져다 준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경멸해마지 않았던 아버지가 뜻하지 않았던 우연의 인연으로 달리 보게 된다든지 거기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많이 괴롭혔던 동창을 우연히 만나 복수를 할지 말지 기로에 섰는데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복수가 이뤄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 없었던 순간들은 그들의 10년 후를 다루는 마지막 단편인 '나흐트무지크'에 가서야 비로소 전모가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순간의 펀치가 시합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권투 선수이자 세계 챔피언이었던 오노는 성공과 실패를 오르락 내리락 했던 자신의 삶을 마치 단번에 정리라도 하는 것처럼 이렇게 고백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무엇이 전환점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긴 하죠."(p. 321)


 바로 이 말에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되도록 삶을 여유롭게 대하자는 이사카 고타로의 조언이 말이다. 그러므로 정말 이 소설이 그의 연애소설이라고 한다면 그 연애란 바로 자신의 삶과의 연애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은 그 연애에 있어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사랑에 서툰 아이처럼 조급해하지도 말고, 불안해하지도 말며 그저 사랑하는 모든 순간에 충실하라고 말이다. 아마도 그가 이렇게 조언하는 것은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도 크게 한 몫 했을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로 일본인은 날로 극우가 되어가는 아베 정권 아래에서 극심한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작가는 이 소설로 조금은 걱정과 불안을 잊고 삶을 껴안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조언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무작정 긍정할 경우 아베로 인해 더 크게 돌아올 위험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긍정과 여유가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한 무관심과 무사유가 되도록 해서는 안되고 그와는 반대로 더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로 나아가게 만들 필요가 있다. 바로 거기에 대해 작가는 타자의 삶에 보다 많은 관심이란 방법을 내세우는 것 같다. 6개의 단편들이 모두 다른 이들의 삶으로 채워지고 타자의 입장에서 그런 삶에 관심을 갖고 호기심을 풀어 가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으로 보인다. 흔한 바람 소리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되었던 것이 들었던 이의 깊은 관심과 반복된 생각 때문이었듯이 말이다.


 재밌는 소설이었다. 이사카 고타로의 이야기 구성하는 솜씨가 꽤나 능숙해졌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네번 째 단편 '메이크업'이 그랬다. 현재와 과거, 대화와 기억을 교차시키는 기교가 뛰어났다. 그런데 제목이 재밌다. 이중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단편 주인공이 화장품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기에 '메이크업'이 화장을 뜻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히는 이에게 복수를 할까 말까 하는 이야기의 측면에서 보자면 '메이크업'이 복수한다는 의미에서 보상을 뜻하기도 하니까 말이다.그러고 보니 단편의 제목이 모두 이중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이 역시 모든 삶엔 우리가 모르는 이면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어떤 순간이 삶의 전환점이 될지 모른다는 주제를 형상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작가가 공들인 티가 난다. 그래서 더 만족스럽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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