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당 최남선이 『조선의 상식』에서 조선의 4대 명산으로 금강산과 지리산과 구월산과 묘향산을 꼽으며 서산대사의 의견을 빌어 그 중 최고가 묘향산이라고 한 까닭은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통해서도 에울러 짐작된다. 소설의 한 대목에 작중 인물이 금강산과 묘향산을 비교하다가 "금강산에서는 간혹 사람이 상하기도 하지만 묘향산에서는 그런일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을 덜 다치고 덜 상하게 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덜 상처 주고 덜 상처받는 것이야말로ㆍㆍㆍㆍㆍㆍ좋은 삶이 아닐까?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며칠째 '김별아'의 '괜찮다, 우리는 꽃 필 수 있다'를 들고 이리저리 떼굴거린다.

난 '김별아'의 소설은 잘 모르겠는데...

지난 번에 읽은 산행에세이와 겹쳐 요번 에세이도 찰기어린 것이 먹고 나서 한참 후까지 든든하고 속을 平하게 해주는 찰밥을 먹는 것 같다.

그림도 예뻐 찾아보니, 일러스트 정윤미라고 되어 있다.

솔직히 홈페이지의 것들은 책만큼은 아닌데,

책의 것들은 은근히 시선을 끄는 것이...화려하지 않지만 정겹다.^^

 

내가 이렇게 주절거리고 앉은 것은 "사람을 덜 다치고 덜 상하게 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덜 상처 주고 덜 상처받는 것이야말로ㆍㆍㆍㆍㆍㆍ좋은 삶이 아닐까?"하는 저 구절 때문이다.

그냥 생각했을때는 사람을 덜 다치게 하고 덜 상하게 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라는 저 말이 그럴듯 한데,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니까, 그렇다.

'사람을 덜 다치게 하고 덜 상하게 한다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인간 중심의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자연은, 산은...명산이라는 수식어 따위는 애초에 관심도 두지않았었는데,

인간들이 그들의 편한대로, 그들의 편리대로, 그들에게 이로운 대로 맘대로 이름붙여 놓은게 아닌가 싶다.

 

사람을 덜 다치고 덜 상하게 한다는 건, 기준이 사람이었을 때에만 '덜과 더'를 구분할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자연이나 산은, 사람이 덜 다치고 덜 상하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자연 그대로인것이다.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사람이 덜 다치고 덜 상한다는 건...

자연이, 산이...잘 품어갖는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너무 깊고 깊어 웬만한 사람이 접근할 수조차 없어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않고,

그래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어 명산이 되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산세가 험해서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상하게 하고 자시고 할 것없이 전혀 품어가질 수 없어서 천형 그대로의 산세를 간직하고 있게 되는 것도...자연이나 산의 입장에서는 명산이 될 수 있는 조건이다.

 

갑자기 언젠가 아침  손석희 방송에서 들었던 산악인 엄홍길님의 말이 생각났다.

 

 

 

 

 

 

 

 내 가슴에 묻은 별
 엄홍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3월

 

 

저는 그 동안 많은 8000미터의 산을 도전하면서 수 없이 많은 생과 사를 넘나들었거든요. 진짜 그 과정에 여려 명의 동료들을 잃고 그런 사고를 경험하고 50대를 경험하면서 좌절도 경험하고, 제 자신도 죽을 고비를 수없이 경험하면서 생각할 때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은 어떤 제가 이런 저런 일에 대해서 더 얘기하자면 8000미터 고도라는 것을 만났을 때는 인간의 능력으로 밟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은 결국 산이 저를 받아 줘야하고 산이 허락해야하고, 신이 저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히말라야 모든 어떤 산이든지 마찬가지기 때문에 저는 모든 산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산에 올라갈 때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산에 올라가야지, 순리를 역행하고 거기에 어떤 욕심을 내고, 사심을 가지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절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세를 가질 때에야 산이 선택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항상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이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진인사대천명을 들먹이는 것도...

너무 나이 들어 진인사대천명을 얘기하는 것도...부족하거나 넘친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러고보면, 어쩜 나는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의 시기가 아니라,

'그대들 맘껏 꽃 피워라. 심도를 충분히 낮춰 배경이 되어주겠다'의 시기인것도 같다.

 

무엇이고 사람 위주의 입장에서 바라봤을때는 '덜과 더' '부족하거나 넘치는'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해야 했던 것들인데,

입장을 조금 바꾸어 자연과 산을 그 자리에 대입시켜 보았을 뿐인데, 참 한없이 넉넉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명산의 자리에 '좋은 사람'을 대입해 보는 것도 재미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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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6-24 22:24   좋아요 0 | URL
명산...사람을 덜 다치게 하고,덜 상하게 하는 산이라..
끄덕끄덕~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군요.^^

다비치의 이해리네요? 순간 이해리의 옆모습만 보고서
예전에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의 장혜리라고 생각하면서 들었네요.ㅋㅋ
개인적으로 이해리의 목소리 참 좋더라구요.
책도 책이지만,나뭇꾼님은 노래 선곡도 참 잘하세요.

2012-06-24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6-24 23:02   좋아요 0 | URL
야~ 내가 좋아하는 이해리다~ ㅋ 다비치 좋아요~~ ^^

좋은 사람도... 인간의 욕심으로 얻을 수 없는 거군요. ^^ 그렇네요...

숲노래 2012-06-25 05:23   좋아요 0 | URL
사랑스레 살아가면 좋은 사람이겠지요..

사랑스레 누릴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으면 좋은 산일 테고요..

cyrus 2012-06-25 21:33   좋아요 0 | URL
저는 세월이 변해도 늘푸른 녹음을 유지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줄 주는 아는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요.
글 마지막 이해리 노래 잘 듣고 갑니다. ^^

차트랑 2012-06-26 00:36   좋아요 0 | URL
높은 산을 오르는 분들께서
자연을 대상으로 도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사적으로는 안타까운 표현이라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자연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
인간 스스를 자연에서 소외시키고 있는 것 같아서요^^
자연과 인간은 괴리되어야 할 관계가 아닌데 말입니다.

자연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용어가
저는 바로 그 도전이라는 용어에서 출발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생각을 할 때가 더러 있답니다.

산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어떤 산을 명산이라 말하는 것 처럼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페이퍼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이 마흔의 언저리이다.

공자는 '불혹'이라고 하여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논리대로라면 난 불혹의 나이에 한참 못 미쳤어야 하거나,

벌써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아야 하는데...이도 저도 아니니, 원~--;

그렇다고 공자도 터득하는데 40년이 걸린 그 불혹의 묘를 하루 아침에 터득할 수도 없는 일이고,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고 몸소 체화하여 한걸음 다가가는 수밖에 없다 싶다.

 

공자와 같은 훌륭한 학자도 40년 동안 전력을 다하여 공부하고 갈고 닦아서 도달한 경지인데,

나같은 범인이 마흔 언저리라고 하여 범접할 수 없음은 어쩜 당연지사인듯 하다.

다시 말해, 나이 마흔 언저리에서 '불혹'에 이르지 못했다고 부끄러워 하고 손 놓고 앉아 있을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고 내 삶에 적용 익히고 체화하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이 책을 통한 간접경험이 아닐까 싶다.

 

 

 

 

 

 

 

 

 시인의 서랍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4월

 

 

이 책 이정록 산문집 <시인의 서랍>은 그런 의미에서 펼쳐들게 되었다.

하긴 이 책 뿐만 아니라, 요즘 내가 펼쳐드는 모든 책은 다 그 연상선 상에 있었다.

 

이 시인은 '불주사'라는 시로 처음 만났다.

시가 수려하다기보다는, 꾸밈이 없고 수더분해서 좋았다.

그도 우리네 사람사는 세상의 일들을 고스란히 겪고있는 듯 느껴져...수선스럽거나 호들갑스럽지 않게,

다시말해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않고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문턱이나 경계 따위가 없어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번엔, 그런 그의 산문집이다.

산문집은 시보다 형식적인 면만 보더라도 더 자유스럽다.

하지만, '불혹'을 '자유'와 등가(等價)로 놓기에는 기준과 방향이라는 제재가 따른다.

 

암튼, 그의 글은 시면 시, 산문이면 산문...일단 글이 뛰어나다.

하지만, 뭇사람들이(아니, 쟁쟁한 소설가들이) 그에게 소설을 쓰라고 했을 정도로, 이야기는 더 감칠맛이 난다.

소설을 쓰라는 권고에 대한 그의 대답 또한 일품인데,

"시 속에 소설을 뭉뚱그려 품어보겠습니다."

였단다.

 

             불주사

                          - 이 정 록  

 


내 왼 어깨에 있는 절이다

낭떠러지에 지은 절이라서

탑도 불전도 사라지고 없다

눈코 문드러진 마애불뿐이다

귀하지 않은 아들 어디 있겠냐만

어머니는 줄 한 번 더 섰단다

공짜라기에 예방주사를 두 번이나 맞혔단다

그게 덧나서 요 모양 요 꼴이 됐다고

등목 해줄 때마다 혀를 차신다

보건소장이 아주 좋은 거라고 해서

한 번 더 맞히려했는데 세 번째는 들켰단다

부처님도 자라는 흉터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이것 때문에 가방 끈도 군대 삼년 소총 멜빵도

흘러내리지 않아 좋았다 말씀 드려도

내가 네 몸 버려놨다고 무식한 어미를 용서하란다

인연이란 게 본래 끈이 아닌가

내 왼 어깨엔 끈이란 끈

잘 건사해주는 불주사라는 절터가 있다

어려서부터 난 누군가의 오른 쪽에서만 잔다

하면 내 인연들은 법당마당 탑신이 아니겠는가

내 왼 어깨엔 어머니가 지어주신

불주사가 있다 손들고 나서려고만 하면

물구나무 서버리는 마애불이 산다

'불주사'말고 내가 아끼는 시는 '더딘 사랑'이라는 시인데,

시인 스스로가 읽고 또 읽어 건진 다섯 문장 중에 들어가는 시라는 걸 알게 되자 더욱 더 애착이 간다.

 

               더딘 사랑
                          - 이 정 록 -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암튼,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여기저기서 어머니가 무게있게 등장한다.

'불주사'란 시에서도 그랬었고,

이 '시인의 서랍'이란 산문집의 첫머리에서도 그렇다.

그의 어머니가 등장하는 책의 1/3까지는 시인과 어머니의 대화가 선문답 같은것이 너무 재밌어서 책속에 머리를 박고 헤어나지를 못했던 반면, 나머지 2/3는 책장을 설렁설렁 바람을 일으키며 넘겼다.

그러고 보면, 그의 불혹은, 다시 말해, 그가 쓰는 글의 원천은 아무래도 어머니인가 보다.

아니면, 어머니는 모든 불혹(= 미혹되지 아니함)의 원천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세상 모든 말의 뿌리는 모어母語다'라는 부분에서부터 어머니는 기선을 제압하고 들어간다.

표준어로 구사하여, 모든 사투리는 통역이 필요한 나의 경우에도,

'농사천재'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따옴표 처리가 되어 책에 글자로 들어가 박혀 있는게 아쉬웠다.

첫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오디오 북 같은 것이나 보이스 레코더로 따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리얼버젼으로 듣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진다.

물론 글에서 그런 느낌이 들게 했다는것만으로도 충분히 글쓴이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거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의 시 또는 산문 모두 소재의 일정 부분을 어머니가 담당하고 있고,

그런 그의 글들을 읽는 독자라면, 어머니를 향하여 새록새록 솟아나는 관심과 흥미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어머니는 '농사천재'일뿐만 아니라, 어찌보면 인생에 도통한 '도사'이시다.

 

가로등에서 빛이란 걸 배웠다고 했다가는 이내,

"인생 농사도 그늘 농사라고 혔지. 아내 그늘, 자식 그늘, 지 가슴속 그늘! 그 그늘을 잘 경작혀야 풍성한 가을이 온다고 말이여."

라며 그늘 예찬론자로 말을 바꾸지만,

그런 당신을 향하여,

"왜 이랬다 저랬다 말을 바꾸고 그러세요~?"

하며 툴툴거리게 되지는 않는다.

행여 이리 저리 늘어놓으시던 감칠맛 나던 얘기들이 쏙 들어가지나 않을까 그게 조심스럽다.

조용히 멍석을 내다 펴게 만드신다.

"그늘이 짙으면, 노을도 되고 단풍도 되는 거여. 사과도 홍시도 다 그늘이 고여서 여무는 거여. 뭣도 모르는 것들이 햇살에 익는다고 허지. ㆍㆍㆍㆍㆍㆍ."

이런게 제대로 된 불혹(= 미혹되지 아니함)이라고 하겠다.

 

그의 글에선 어머니 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일정 역할을 담당해 균형(=불혹)을 잡아주고 있다.

아버지의 지팡이에 새겨진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글귀가 아버지의 유언이 되는 까닭은 그래서이다.

지팡이를 떠받들고 있는 걸레를 보고,

'그려, 걸레가 돼야지. 걸레는 저렇게 숭엄하지.'하는 것도 그렇고,

그가 쓰는 시는

'지팡이, 걸레, 행주, 발수건이지. 내가 쓰는 시는 이 네가지에다 주소를 둬야지. 그러다보면 시보다도 어렵다는 삶이란 녀석도 지팡이 짚으며 따라오겠지.'

라며 마음을 다잡는것도 불혹(= 미혹되지 아니함)에 다름 아니다.

 

난 여기서 지팡이의 종류와 효용에 대해서 잠깐 생각을 했다.

'걸을 때에 도움을 얻기 위하여 짚는 막대기'를 '지팡이'라고 한다.

크게 피켈(pikel)이라고 불리우는 등산용 지팡이와 노인용 지팡이로 나눌 수 있다.

등산용지팡이는 끝이 뾰족하게 되어 있어서, 짚는 용도 외에,

계곡의 물 깊이나 설산의 눈 깊이, 낙엽의 쌓임 정도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고,

무엇보다 설산이나 빙벽을 오를 때 발판을 만들어주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노인용 지팡이는 짚는 게 가장 큰 역할이다.

 

때문에 등산용 지팡이와 노인용 지팡이를 효용에 맞게 골라 드는게 중요하다.

등산객들이 노인용 지팡이를 드는 경우는 흔치 않으나,

개중에 나뭇가지를 아무렇게나 꺾어 짚는 용도로도 보조적 역할만 할뿐이고,

가늠하는 역할도, 작업용 삽 또는 곡괭이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지팡이의 종류와 효용을 들먹인 이유는, 후자때문이다.

노인용 지팡이는 짚는 역할만을 담당한다.

신선이 드는 이리저리 꼬인 지팡이라면 한번쯤 멋스러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려나?

미적 기능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노인이 짚는 거니 우선 가벼워야 하겠고 그리고 체중을 지지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야 하겠다.

우리나라에선 '청려장'이라고 하여 명아주라는 한해살이 풀을 잘 말려 지팡이의 재료로 사용하곤 한다.

 

노인용 지팡이를 등산용 지팡이처럼 끝을 뾰족하게 하면 짚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보통은 고무캡을 씌워서 지지면을 넓히고 마찰을 최대화하여 잘 짚도록 하는데,

사용하면서 고무캡이 닳아 없어진 것을 방치하였다가 미끄러져 넘어져 다치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세심한 관찰과 배려가 필요하겠다.

 

책의 다음 부분에서 한참, 아주 오래 머물렀다.

요즘 내 서재대문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안전거리 확보'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억지스러운지 모르겠지만, '안전거리 확보' 또한 내겐 불혹(= 미혹되지 아니함)으로 작용한다.

 물끄러미, 마음속 하늘을 들여다본다.

 누구에게나 눈물 몇 모금의 웅덩이는 있는 것이어서, 언제고 세상의 미꾸라지와 개구리는 내 안에서만 흙탕물을 일으킨다. 가슴속 하늘에는 황사 구름이 사철 부옇게 서려서, 도대체 이놈의 마음에 언제 모내기를 하고 추수를 마친단 말인가.

 하지만, 누추한 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대견하고 고즈넉한 일인가. 내 마음에 안치해놓은 풍경 위에 나를 덧대어, 새로운 풍경으로 감싸 읽는 것은 얼마나 위무적인 일인가. 풍경은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 부단한 치유의 능력을 보여준다.

 

 오래도록 마음속 왜가리의 목덜미와 진흙 묻은 부리를 어루만질라치면, 못자리에 뜬 하늘처럼 나도 우련히 깊어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부끄러운 지난날들의 흙탕물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마음의 앙금 안쪽에 실뿌리가 뻗는다. 부유하는 삶은 흐리다. 정처가 없다. 정처가 없으면 뿌리가 내리질 않는다. 뿌리를 기르지 않는 풍경은 힘이 없다. 바닥이 없다.

 오늘 나는 작은 거울에 입김을 불어 넣고 이 말을 쓴다.

 '물끄러미!'

 아, 저녁 같은 이 말의 촉촉함에 나를 비빈다. 내치는 것도 아니고, 와락 껴안는 것도 아니다. '물끄러미'라는 말속에는 적정한 거리가 있다. 대상이 녹아서 나에게 스며들 때까지의 묽은 기다림이 있다. 째려보는 것도 아니고 쏘아보는 것도 아닌, '넌지시'가 있다. 몰아세우고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안쓰러운 나를 보리밥에 열무김치처럼 비비는 것. 비빔밥 옆 찬물 한 그릇의 눈을, 가슴에 들이는 것!

 물끄러미, 오래 젖을 것! 풍경에 나를 덧대고, 내 안에 서려온 그늘이나 설움을 오래 문대며 들여다볼 것!(163~165쪽)

책을 통한 간접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의 그것들이 내게 깨달음을 주는 이유는...앞에서도 얘기했었지만,

그도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지지고 볶고 사람사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고,

사람 사는 세상의 일들을 겪은 그대로 꾸밈없이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내가 책을 통해 하는건 간접경험이지만,

이 시인이 하고 책에 적어내려간 것은 생생한 날 것, 직접적인 체험이어서...내게 감동적으로 와닿았던 것 같다.

 

공자같은 훌륭한 학자도 불혹이라는 것을 터득하고 체화하는데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모든 것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였을때에만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결과를 낳더라도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구절은 내게 '불혹'이고 '지팡이'이고,

때문에 'insure safety distance'인 셈이다.

 그러나 손길은 바로 곁에 있을 때만 유효하다. 손길이 닿아야 할 곳이 멀다면 그곳까지 손을 옮길 수 있는 것은 발길이다. 가닿아야 할 손길이 사랑의 편지이거나 책과 옷을 묶은 소포라면, 그 발길은 우표와 우체부가 대신할 것이다. 빨리 뛰어가야 할 손길이 돈이라면, 금융기관의 온라인과 체신부의 우편환이 발길이 되어줄 것이다. 빈손으로 가는 가난한 손길이라면 그 손길의 따뜻함은 다리품만이 온전히 가지고 갈 수 있다.(167쪽)

그런 후에야 '파파로티와 친구들'이나 'live like horses'따위를 들먹이지 않고도, '불혹'과 '지팡이'를 맘껏 얘기할 수 있겠다.

 

 

 

 

 

 

 

 

 

 

 

  4집 For War Child - 1996년 실황 /ABCD006
  유니버설뮤직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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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2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5-23 14:32   좋아요 0 | URL
등을 등짝이라고 표현하신건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인가요?
좌우대칭의 개념으로 짝이란 표현을 사용하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부위를 구체적으로 집어주시구요.
아프신 시간대가 있는지요.
또는 그동안 안 드시던 음식을 드시는 건요.

위 내용만으론 집작하기 어려운데, 부자나 초오 쪽으로 과한 약을 드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건 우리나라 동해 해풍을 받아 말린 황태로 끊인 황태국이요~^^

2012-05-23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3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5-23 14:35   좋아요 0 | URL
위 댓글로 궁금증을 일갈 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
고명, 박후...저도 덤으로 새기겠습니다.고맙습니다~^^

글샘 2012-05-23 08:54   좋아요 0 | URL
공자가 살던 당시에... 인간 수명이 40세쯤 됐을 거예요.
그러니 50이면 벌써 하느님 맙소사~(지천명)가 나오죠. ^^
지금은 100세쯤 됐으니 말입니다. 80세쯤 불혹으로 하죠~
아직 마흔이시면 '물혹'이나 조심하시고~ ㅋ

손길의 따뜻함...을 읽다 보니, 길손,이란 단어가 생각나네요~
물끄러미 보니깐 왠지...
우리가 걷는 길~ 누구나 길손이잖아요. 따뜻한 손길은 길손에게 참 큰 위안이 되겠다는...

2012-05-23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5-23 14:3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책도, 약(오름)도, 손길의 따뜻함도~
'뭇'과 '최대화' 수정했습니다, 꾸벅(__)

설렘나라 2012-05-23 10:36   좋아요 0 | URL
지은이 이정록입니다.
감지덕지한 찬사와 후춧가루같은 꾸짖음 감사합니다.
이리도 유연하고 멋진 독후감이 있군요.
자신의 이야기와 책의 내용을 잘 비벼서
참기름만 치면,맛난 비빔밥이 되겠네요.
메주에 구슬끈이군요.
저는 님의 독서에 비하면, 쇠꼬리에 마른 소똥, 소똥 위에 쇠파리 정도랄까?

이정록 두손

양철나무꾼 2012-05-23 14:52   좋아요 0 | URL
시인이 직접 왕림하여 주시고, 제가 오히려 설레이는걸요~^^
비빔밥이 될 것을 짐작했었는지,
아무리 되짚어 봐도 후춧가루를 사용한 예는 발견 못했는 걸요.
맛난 비빔밥의 관건은 참기름이 좌우하는건데,
참기름만 치면 이라 하시면...한참을 더 비벼야 할 것 같고,
'막걸리에 마늘꽁에 고추장 척'이 더 가까울 것 같은데...
(마늘꽁이 뭔지 몰라 국어사전을 찾아봤습니다여.)
죄송합니다,마늘꽁을 못 먹는다는~--;

암튼, 무한 영광입니다. 꾸벅(__)

감은빛 2012-05-23 15:30   좋아요 0 | URL
우와! 정말 멋진 시인에, 정말 멋진 글이로군요!
"시 속에 소설을 뭉뚱그려 품어보겠습니다."
저 한마디에 저도 이 책을 꼭 읽고 싶어졌습니다.
바빠서 시도 소설도 못 읽고 사는 요즘.
어디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졸다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인이 직접 칭찬의 댓글까지!
역시 양철님 대단하셔요~! ^^

oren 2012-05-23 23:20   좋아요 0 | URL
지팡이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를 쭈욱 읽다보니 도산서원에서 보았던 퇴계선생님께서 생전에 쓰셨던 (신선 할아버지가 던져준 게 아닌가 싶을만큼 멋진) 명아주 지팡이도 떠오르고, '왼 어깨에 있는' 불주사와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는 돌부처에 관한 시를 읽어보니 어느새『월든』 속의 '쿠우루의 지팡이'에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든든한 지팡이 하나만 있어도 불혹 이전에 이립(而立)이라도 제대로 한번 해볼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 * *
쿠우루에 완전을 갈구하던 한 장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지팡이를 만들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완전한 일에는 시간이 한 요소가 되겠으나 완전한 일에는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는, 비록 한평생 딴 일은 아무것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점에서 완벽한 지팡이를 만들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부적당한 재료를 써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으므로 그는 재목을 구하러 즉시 숲으로 떠났다. 그가 쓸 만한 나무 하나하나를 살피다가 퇴짜를 놓는 사이에 그의 친구들은 점차로 그의 옆을 떠났으니, 그들은 각자의 일을 하다 늙어서 죽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늙지 않았다. 한 가지 목표를 추구하는 그의 결심과 숭고한 믿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영원한 젊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과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았으므로 시간은 그의 길에서 비켜나 그를 굴복시키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멀리서 한숨만 지을 뿐이었다. 그가 모든 점에서 알맞은 재목을 찾아냈을 때는 쿠우루는 폐허가 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는 그 폐허의 어느 흙 둔덕에 앉아 지팡이를 깍기 시작했다.

지팡이의 모양이 채 갖추어지기도 전에 칸다하르 왕조가 망했다. 그는 지팡이의 끝으로 모래 위에 그 왕조 마지막 왕의 이름을 쓰고는 다시 일을 계속했다. 그가 지팡이를 매끄럽게 다듬어놓았을 때 칼파는 이미 북극성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지팡이 끝에 쇠붙이를 달고 보석으로 장식된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을 달았을 때는 브라마 신은 수없이 잠이 들었다 깼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그의 작품에 마지막 손길이 가해지자 지팡이는 깜짝 놀라는 장인의 눈앞에서 브라마 신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되어갔다. 그는 지팡이를 만드는 가운데 새로운 체계, 충실하고도 균형 잡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옛 도시들과 왕조들은 사라졌지만 그보다도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도시와 왕조들이 그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는 발밑에 수북이 샇여 있는 나무 깎은 부스러기를 내려다보았는데, 그것들이 아직도 생생한 것을 보고 이제까지의 시간의 경과는 단지 하나의 환각에 지나지 않았으며, 브라마 신의 두뇌에서 나온 한 섬광이 인간 두뇌의 부싯깃에 떨여져서 불붙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재료가 순수했고 그의 기술도 순수했으니 그 결과가 경이로운 것 외에 무엇일 수 있겠는가?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월든』 중에서

하늘바람 2012-05-27 11:53   좋아요 0 | URL
범인이라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어떤 범인이신가 하니 너무 비범한 범인이시잖아요.
시인의 서랍이란 말 자체가 참 이븐 거 같아요

차트랑 2012-05-29 09:32   좋아요 0 | URL
하늘 바람님 놀라시면 안되는데~^^

하늘바람 2012-06-03 10:5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친구가 책 몇 권을 보내줬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그랬겠지만,

난 바쁘다는 핑계로 그 중 한권을 제대로 들춰 읽지는 못하고,

'김탁환'의 '열하광인'에 나오는 '명은주' 버젼으로 연모하는 사내 대하듯 책에자신의 감정을 옮겼다. 겉표지에 입 맞추고 손바닥으로 쓸고 글자 하나하나를 검지로 만지며 내려가고 옆구리에 끼거나 젖가슴에 댄 채 잠들고 머리맡에 두었다가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냄새 맡고 여백에는 검지로 도장 찍는 흉내를 내며, 이 책과 영원히 함께 머무를게요 맹세만 해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가, 그래도 그럼 안되겠다 싶어 집어든 책이 제일 가벼운 이 시집이었다.

 

 

 

 

 

 

 

 

  다정한 호칭
  이은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시인은 명은주를 흠모하는 내 마음을 엿보았나 싶게...아무렇게나 펼쳐든 시집  구석 구석에서 이런저런 시구절로 나를 유혹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바람의 지문' 부분)

책의 주요기능이 '시각적 효과'를 이용한 '보기'이니까,

바람의 '보이지 않는 지문',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 등으로 미루어 잠시 나도 시각적 효과에 집중 했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읽다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로 미루어 다분히 촉각적, 말하자면 감각적인 시가 되어 버렸다.

책 한 권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보았을 뿐인데,

책 한 권 위를 거쳐간 보이지 않는 당신의 손길과 지문을 느낄 수도 있고,

책 위의 보이지 않는 지문 위로 내 뺨을 댄 건데도,

뺨을 간질이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거다.

내 뺨을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

어느새 바람의 손길에 내 뺨을 내어 맡기는 게 되어버리고,

그렇게 내맡긴 나와 내 뺨을 어루만지고 간 바람(wind)의 손길을 기억하고 싶은 바람(wish)은 어딘가에 '각인'되게 마련이고 그걸 '지문'이라고 부른다.

 

지문은 '오래된 근황'이라는 시에선 마침표 대신이 되기도 한다.

이건 햇볕이나 바람 등 자연이 주는 선물에 오롯이 자신을 내맡겨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축복이다.

그저 비치는 햇살인데 나를 따사롭게 비춰주는 넉넉한 햇살이 되고,

그저 부는 바람인데 '괜찮다, 괜찮다~' 나를 다독여주는 바람이 된다.

그렇게 보면 햇살이, 바람이, 삶이, 그리하여 당신이 그저 고맙다.

 

나를 발명해야 할까

                

 정말 구름을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걸

까 사람들은 조그쯤 회의주의자일 수도 있겠구나 설령 빙하

를 가르는 범선이 난파를 발명했다고 해도 깨진 이마로 얼

음을 부술 거야 쇄빙선에 올라 항로를 개척할 거야 열차가

달리는 이유를 탈선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사람

들은 궤도를 이탈한 별들에게 눈길을 주는 걸 몹시 염려해

평범한 게 좋은 거라고 주술을 멈추지 않지 누군가 공기보

다 무거운 비행기를 띄운 오만함이 추락을 발명했다고 말

한다면 그럴 수도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이동은 늘

매혹적인 걸 나로부터 멀어져 극점에 다다르는 것으로 나

를 발명해야 할까 흐르는 구름을 초대하고 싶은 열망으로

 

'나를 발명해야 할까'라는 시도 좋았다.

이 시는 내게 시점의 전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시점의 전환'이란 쉬운 말로 하자면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정도 되려나?

입장이란 참 오묘한 것이다.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방향만 바뀌었을 뿐인데도...'나로 인함이냐'와 '나로 말미암음'처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시점을 전환시키는거, 즉 입장 바꿔 생각하는 건 쉽지 않을 뿐더러...게다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건 더더욱 쉽지 않다.

긍정주의자와 회의주의자,

데려오는 일과 마중가는 일,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과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 것 등...

 

세상일이란 것이 시점의 전환,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 정도는 가능한 일이라면...

까짓것, 초긍정 자아의 시점으로 전환하고 싶다.

시점만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햇살도, 바람도, 그리하여 삶도 한없이 넉넉해진다는데,

그리하여 구름을 초대할 수도 있다는데,

그 정도 모험을 마다하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건 '허밍, 허밍'이라는 시였다.

입을 벌리지 않고 소리를 내기때문에 소리가 크거나 분명하지 않아,

가사를 전달할 수 없지만 기분은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게 '허밍'이다.

이 콧소리, 허밍은 나의 경험에 미루어 기쁘거나 즐거울 때나 나오지...슬플때는 나와 줄 수가 없다.

 

또 일반적인 음악소리보다는 한참 작기 때문에 보통 합창이나 중창곡에서 많이 쓰인단다.

허밍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만히 있다보면 어느새 기분이 흠뻑 담굼질해 물든 것 같이 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허밍, 허밍

                                               

  종종 구름을 눈에 담는 습관, 당신의 폐활량이 천천히 부

풀 때 그날의 공기를 부러워한 적 있다 구름을 가리키며 바

람의 춤이라고 말하는 당신의 허밍은 입술에 기대는 음악일

까, 기대지 않는 음악일까

 

  바람의 춤이 보인다면 그건 구름의 몸을 빌렸거나 폐활량

이 푸른 여름잎의 소관일 것, 구름은 바람으로 흐르고 바람

은 여름잎으로 들리니까

 

  언젠가 고원의 사라진 호수에 대해 이야기 나눴지 수면을

맴돌던 그때의 구름은 지금 어디 있을까 가장 낮은 하늘을

흐르고있을 호수 저편, 깃털무늬구름이거나 물결무늬 구름

 

  당신은 잠시 구름사전 속 이름들을 덮는다 구름과 노닐기

에 알맞은바람이므로, 구름의 후렴은 음악이다 마지막 소

절이 첫 소절로 흐르는 허밍, 허밍

 

사라진 호수 저편

팔랑, 수면을 깨뜨리는 나비 한 점도 좋을 오후

 

허밍의 연장선상에서 요즘 feel충만하여 듣는 음반 중에 zaz가 있다.

 

 

 

 

 

'제2의 에디트 피아프'라고 불릴 정도로 유럽에서는 이미 유명하다는데,

그녀의 히트곡이라는  'Je Veux(난 원해요)'를 우연히 듣게 된게 시작이었다.



"뭔가를 만든다는 것, 그건 두려운 게 아니다.난 만들고 난 뒤를 생각한다"는 그녀의 소신을 엿보는 일은,

프랑스 대중 음악의 밝은 미래를 예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노래를 듣다보면 중간 중간에 애드 립(ad lib)이 나오는 데, 난 여기서도 이은규의 시'허밍, 허밍'을 떠올렸다나, 어쨌다나?
하긴 중간의 이 애드립은 '허밍'이라기 보단 스캇에 가까울테지만 말이다, 암튼~.

 

암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 가능성을 다방면으로 발휘하는 그녀가 참 멋지다.

zaz를 통하여 재발견하게 된 곡이 있는데, All of me라는 곡이다.

이 곡도 중간에 나오는 애드립이 압권이다.

 

 

zaz 버젼의 이 노래를 듣다가, 이 영화가 생각났다. 

다소 황당하지만, 유쾌했던 이 영화...나른한 이 봄날 오후에 딱인 그런 영화였다. 

 

 

 

영화 (all of me)두영혼의 남자 -첫장면

 

영화 (all of me)두영혼의 남자 -ending 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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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18 16:01   좋아요 0 | URL
나 머리 아파, 나 목 아파, 나 어깨 아파, 나 몸 아파,
코알라도 머리 아파, 코알라도 목 아파, 코알라도 몸 아파,

둘이 멀 했는지, 오늘 정신차리니, 봄이 훅 날아갔더라.... ㅠㅠ

숲노래 2012-05-19 04:41   좋아요 0 | URL
즐겁게 부르는 노래는
온누리를 따사롭게 보듬으리라 생각해요

2012-05-19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총선 관련,

우리 동네의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 중에 한명은 천호선이었고,

그의 상대는 여당의 대표주자 격인 '이재오'여서 다들 박빙의 승부니, 접전을 예상하니 했었다.

이제 총선이 끝났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선거운동 기간 중에 천호선이 보여준 모습은 내게 좀 실망스러웠었다.

 

이재오 측의 과한 고개 숙임으로 인하여,

어쩜 천호선 측이 목에 뻣뻣이 힘을 준 것처럼 보인 걸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 하더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이미지 변신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했을텐데 싶은 마음에서이다.

물론 그의 사람 됨됨이나 그가 내세우는 선거공약 따위가 그의 한 순간 보여지는 태도에 다 반영되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순간적인 인상을 가지고, 그 사람의 전체를 미루어 짐작해 버리는 우리의 경향 상,

그에게 가해졌을 '마이너스 시너지 효과'를 완전 무시해 버릴 수는 없지 싶다.

 

지난 주 언젠가 아침 지하철 역을 지나다 보니, 그런 천호선이 낙선인사를 하고 있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데, 뭐랄까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짜~안'했다.

그의 어깨라도 그러모아 쥐고 '가드올려~'하며 힘을 실어주고 싶었지만, 단지 마음이었을 뿐이고~ㅠ.ㅠ

 

진작 낙선인사 하듯이 제대로 마음이 담긴 인사를 했었다면, 지난  4ㆍ11 선거의 결과가 혹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모두 '예'라고 할때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하는 TV 증권 회사 광고를 본 적이 있다.

 

도떼기시장이나 전쟁터를 방불케했던 요번 선거판에서 이재오 측에서 보여준 전략이 바로,

'모두 '예'라고 할때 '아니요'라고 하는 그 전략'이었다.

목청높여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도 않고,

그 잘하던 가두방송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수(數)적 우위를 과시하던 선거운동도 한 명씩 흩어져 다니며 나지막이 고개 숙이는 걸로 대신했다.

선거때만 되면 가두방송에, 길거리 유세에, 떼거지 과대 공략에...정신이 없던 나같은 유권자들은 참신하다는 생각을 했고,

오히려 그의 선거공약이 무엇일까 찾아보는 수고를 하게 됐다.

이재오, 본인은 또 어땠나?

그는 수행원도 없이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지하철 역에 서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전에 어느 페이퍼에선가 살짝 밝힌적도 있지만,

나를 비롯한 어떤(=일반적인) 사람들은 No라는 대답에 익숙하지 않다.

어떤 물음에 대한 대답이 때론 Yes가 될 수도 있고 때론 No가 될 수도 있는 건데도 불구하고, No가 되었을때 남는 각인이 더 뚜렷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선거판을 Yes의 상황이라고 놓고 본다면,

최대한 몸을 낮추고 조용히 고개 숙였던 이재오가 보여준게,

수많은 Yes의 상황들 가운데 '단 하나' No의 상황이어서 단연 두드러지고 돋보였던 거였을 지도 모른다.

 

만약 천호선의 그것이 이재오 같은 상황이었다면 Yes가 되었든 No가 되었든 간에,

단 하나 의 상황이어서 두드러지고 돋보이는 일 따위는 없었을테니...

처음부터 이재오에게 유리한 싸움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하늘이 주신 기횔 알아채고 잡아낸걸 보면,  하늘은 그의 편이었나 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아니오! 라고 말하지 않는 청춘은 죽은 청춘이다!'라고 외치는 카피라이터, 정철의 책 <나는 개새끼입니다>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일개 기업을 위한 카피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카피를 써서 국민이 광고주인 카피라이터란 과분한 이름을 얻었다고 겸양을 부리는데,

촛불을 응원하고 물대포를 꾸짖는 카피를 써서 '촛불 카피라이터'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단다.

'나는 개새끼입니다', '5월은 노무현입니다' 등 노무현과 노무현재단에 관한 카피를 도맡아 쓰고 있는데,

이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의 경계를 뛰쳐나와 세상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예란다.

 

 

'5월은 노무현입니다'의 현수막, 작년 5월.

 

 

 

 

 

 

 

 

 

 

 나는 개새끼입니다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2월

 정철의 블로그

 

 

암튼, 이 책의 첫장을 펼치자마자...언젠가 no를 refuse로 해석했던 내 해석이 얼마나 잘못되었던건가 깨닫게 되었다.

'no = refuse'의 엉뚱한 등식은 말끔히 지워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아니오!'는 부정인가.

아니다.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의 시작이다.

권력과 허위의식을 허물고

그 위에 새루운 세상을 세우는 가장 긍정적인 한마디다.

 

카피라이터야 원래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쯤되면 그의 기지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다람쥐

 

미안하네.

요즘엔 자네까지 미워보이네.

 

 

ㆍ역사를 배우게 될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한나라 대통령의 별명이 쥐라는 사실은 슬프다 못해 화나는 일입니다.

 

유죄삼인

 

좌파.

 

왼쪽으로 걷고, 왼손으로 밥 먹고. 왼쪽머리로 생각하고, 왼쪽 눈으로 윙크하는 사람. 신체 사용이 한쪽에만 치우쳐 고른 성장에 지장을 주므로 유죄.

 

친북.

 

친척이 북에 있거나, 친구가 북에 있거나, 친정이 북에 있어 늘 북쪽 하늘 바라보며 한숨짓는 사람.남쪽에 있는 친구, 친척, 친정을 외롭게 하므로 유죄.

 

용공.

 

덧셈을 못하는 사람. 뺄셈을 못하는 사람. 곱셈을 못하는 사람. 나누셈만 유난히 잘하는 사람. 나눠 쓰고 나눠 갖자는 공산주의 사상을 닮았으므로 유죄.

나도 '좌파'가 될뻔 하였으나 어렸을 적 할아버지 밑에서 꾸중들어가면서 습관을 고쳐 양손잡이가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왼손으로밖에 하지 못하는 게 딱 두가지가 있다.

퀴즈로 내볼까?

(맞히는 분께 소정의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웃프다

 

웃다 더하기 슬프다.

웃다 더하기 아프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뜻.

웃고 있지만 가슴 한쪽은 아프다는 뜻.

 

왜 이런 말이 만들어졌을까?

왜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 뜻을 단어 하나에 우겨넣었을까?

 

시대가 웃프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웃프다라는

웃픈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충분히

웃프다.(54쪽)

이런 조어가 생성되는 현실이 웃프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내가 우는게 우는게 아니야~

내가 웃픈게 웃픈게 맞~아~

이런 노래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ㅋ~.

 

국가보안법

 

요거,

딱 한 글자만 바꾸면 안 될까?

국가보관법이라고.

 

어디 국립박물관 같은 곳에 보관해두면 될 텐데.

돌도끼나 청동검 곁에.(63쪽)

 

쉼표

청와대 직원이 쓴 위 문장에는 쉼표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은 글을 읽으며 언제 쉼표 나오나 하며 숨을 참고 또 참가 하마터면 질식하할뻔 했을 것입니다. 쉼표 없는 문장은 나뿐만 아니라 남까지 피곤하게 합니다. 쉼표 없는 각하의 노가다정신 역시 청와대 직원들은 물론 국민 모두를 피곤하게 합니다. 좀 쉽시다.

언론은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나 국정을 열심히 챙기는지 중계방송을 합니다. 타고난 일꾼이라느니, 촌각을 아껴 쓴다느니, 왕이 들어도 낯간지로울 용비어천가를 거의 랩 수준으로 편곡하여 노래합니다. 하지만 휴일도 없고 휴식도 없는 이런 부지런은 오히려 일의 능률을 떨어뜨립니다. 제발 국가나 국민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푹 쉬셨으면 좋겠습니다.(69쪽)

 

 

 

11년 12월 이상득 의원 보좌관 구속

형님

 

형님으로 살았다.

이제 형을 살아야 한다.

 

형제는 용감하십니다.

 

 

지우개

 

잘못 쓴 글 한 줄을 지우지 않고 그냥 두면

그 한 줄의 체면을 위해 억지와 허세를 반복하게 된다.

 

부끄러운 건 잘못 쓴 역사가 아니라 이를 지우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 나타나는 모든 억지와 무리와 허세와 과장과 고함과 통곡과 울분과 절망과 분노와 눈물은 잘못 쓴 근대사를 박박 지우지 않아서 생긴 일들입니다.(177쪽)

 

가위

 

분리.

분단.

분열.

분할.

분해.

 

가위는 단 한번도 누구를 껴안은 적이 없다.

맞아도 쌀 짓만 했으니 주먹을 겁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편을 나누는 일에는 천재적인 소질을 발휘하는 우리. 통합이라는 값진 단어를 너무 오래 먼지 쌓이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186쪽)

 

 

 

 

 

 

 

 

 

 

 눈물이란 무엇인가
 심노숭 지음, 김영진 옮김 /

 태학사 / 2006년 5월

 


또 한명, '만약 살아있다면...분 모두들 'Yes'라고 할때 'No'라고 할 것 같은 사람'은 바로 조선 시대의 문인 '심노숭'이다.

그는 서른한 살에 아내를 잃고 환갑이 넘을 때까지 아내를 그리워하고, 그 절절함을 글로 남겼다는데ㆍㆍㆍㆍㆍㆍ.

(근데, 그런 그도 재혼을 하고 쉰이 넘어 아들을 낳긴 하는 걸 보면 아웅~ㅠ.ㅠ이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장)에 있는 것인가? 눈에 있다고 하면 마치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한 것인가? 마음에 있다면 마치 피가 맥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인가? 눈에 있지 않다면, 눈물이 나오는 것은 다른 신체 부위와는 무관하게 오직 눈만이 주관하니 눈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있지 않다면, 마음이 움직임 없이 눈 그 자체로 눈물이 나오는 일은 없으니 마음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마치 오줌이 방광으로부터 그곳으로 나오는 것처럼 눈물이 마음으로부터 눈으로 나온다면 저것은 다 같은 물의 유(類)로써 아래로 흐른다는 성질을 잃지 않고 있으되 왜 유독 눈물만은 그렇지 않은가? 마음은 아래에 있고 눈은 위에 있는데 어찌 물인데도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이치가 있단 말인가?"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이 글 '누원(淚原)'은,

아내와 셋째딸(네살때)을 비슷한 시기에 잃고, 슬픔을 극복하고자 읽었던 많은 책들 중 '능엄경'의 영향을 받아 쓴게 아닌가 싶다.

능엄경 1권의 내용;

  제1권에서는 칠처징심(七處徵心)을 주제로 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제자 아난과의 문답을 통하여 마음을 어느 곳에서 얻을 수 있는가를 밝힌다. 마음은 몸안[在內], 몸밖[在外], 감각기관[潛根], 어둠으로 감춰진 곳[藏暗], 생각이 미치는 곳[隨合], 감각기관과 대상의 중간지점[中間], 집착하지 않는 곳[無着], 그 어느 곳에도 있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내가 그를 그리 짐작하게 된 이유는,

요즘도 아니고 조선시대에 아내를 잃고 맨날 눈물 바람을 하는 걸로도 모자라,

누원(淚原)이라는 절절한 글을 쓸 정도로 감성 충만, feel 충만한 로맨티스트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7대손인데도 불구하고,

"유자 儒者의 의관 벗어버리고 불교의 계율을 받고 싶네"라고 시를  읊조릴 정도로,

궁함과 고통이 극에 달할 때면 유학이 아니라 불교에 의지한 문학인으로서 자유분망한 품성을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옥과 김려의 관계처럼 속마음을 털어놓고 왕래할 친구도 없었으며, 글을 함께 나눠 읽을 글벗도 없었다 한다.

친구라고는 오로지 아내와 동생 노암 뿐이었는데,

아내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동생 심노암은 일찌기 정통 유학자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거문고 소리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친구를 지음이라 했던가.

세상에 그런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그런 사람을 만난 행운을 지금 누리고 있다면 감사하고 볼 일이다.

심노숭처럼 일찌감치 지음을 잃고 "모두 '예'라고 할때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고 하며 다소 까칠하게 살아갈게 아니라면 말이다.

 

지난 금요일 날, 해피바이러스 코알라를 만났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의 딸내미 해피 바이러스를 만나기 위해서 피곤을 무릅쓰고 무리를 했다고 하면 친구가 서운해 하려나?

이 친구를 향하여 아직 '지음'이라고 할 수 있는지 감은 못잡고 있지만, 이 친구도 "모두 '예'라고 할때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부류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겠다.

가면서, '너무 우울하고 기운이 없다'고 문자를 남기자...

'코알라도 그렇다는데, 우리 맛난거 먹고 훌훌 떨쳐버리고 기운 내자.'이런 답 문자를 보내왔다.

 

막상 코알라를 만나자, 맑게 웃으며 지가 어른인양 곰살맞게 챙긴다.

'코알라'라는 닉도 그럴싸하지만, 내가 즐겨부르는 '해피 바이러스'가 딱이다 싶었다.

뷔페여서 엄마가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 둘이 남게 되자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너무 예쁘고 조곤조곤한 거다.

언젠가 읽은 '나니아연대기'의 한구절이 생각났다.

'넌 가정교육을 잘 받은게 틀림없구나. 사물의 긍정적인 점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걸 보니...'

잘 생각나진 않지만, 뭐...이런 뉘앙스의 구절이었던 것 같다.

 

코알라가 해피 바이러스인 이유는,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줄 아는데...

우리 어른들처럼 무조건 '안돼~'하고 부정을 한번 먼저 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조리있게 전달할 뿐더러, 그 방법에 있어서도 지극히 긍정적이어서...

가만히 바라보면 눈꼬리가 점점 내려오고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는 것이...서서히 행복함에 물들어가는것 같다.

다시말해, 해피바이러스에 전염되는 것 같다.

 

해피바이러스, 코알라도 지금...때때로 "모두 '예'라고 할때 '아니요'라고 소신껏 얘기해서" 고초를 겪고 있기도 한가 보다.

하지만, 그런 고초를 겪으면서 부딪히기도 하고, 그 관계 속에서 한뼘 성장해 가기도 할터이다.

 

해피바이러스, 코알라는 이런 얘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정말로 호일에 싸오는지 아닌지 물어보셨어요?"

전에 아들의 김밥을 싸면서 호일에 둘둘 말라는 아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다 풀러서 다시 쌌던 '하이데거, 기획투사'랑 관련해서 였다.

 "정말로 호일에 둘둘만 김밥을 가져오는 아이들이 있니?"

 "네, 거의 다요."

옆에서 코알라의 엄마가 거들었다.

 "아마 버리기 편해서 그렇겠지. 다들 그렇게 가져오는데 자기만 안 그러면 왕따당하는 느낌도 들고 말야~

  그렇지, 코알라?"

 "?"

나는 반 아이들, 거의 전부 호일에 둘둘 말아온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게 아니구요, 그렇게 예쁘게 싸오면요.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해서 부모님께 의존하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부모님께 의존한다는 게 좀 쪽 팔리는 일이라는 거죠."

내가 호일에 둘둘 말아오는 김밥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과는 좀 다른 이유로,

나의 아들과 코알라는 부모로부터 자립과 독립을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아들에게 김밥 싸는 법을 가르칠게 아니라면,

그리하여 스스로 김밥을 싸먹는 묘미를 터득할 게 아니라면,

어쩜 난 아들이 김밥을 호일에 둘둘 말아가든, 김으로 주먹밥을 버무려가든...하고싶은 대로 하게 놔두었어야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성장하여 김밥을 호일에 싸달라고 했으면, 난 딱 그만큼만 준비해주면 됐을텐데...

내 기준으로, 내맘대로 상상하여 판단하여 버리고는...아들을 완전 마마보이로 만들어버린 꼴이 된거다.

 

코알라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상대방이 알아듣기 쉽도록 조곤조곤 전달하고 있었다.

"?"

나는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6학년인 저희가 그런데...고1인 오빠는 더 더욱 그렇겠죠?"

아들녀석이 진작 이렇게 얘기했다면 새벽같이 일어나 '하이데거, 기획투사'해가며 김밥을 싸지도 않았겠지만,

김밥을 내맘대로 싸서 담아놓고, 성의를 무시했다고 서운해 하며 눈물바람을 하지 않아도 좋았을텐데 말이다.

자기가 하고싶은 얘기와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의 접점을 찾아, 조율해가며 예쁘게 얘기할 수 있는게 코알라를 해피 바이러스로 느껴지게 하는 달란트였다.

 

부디 코알라의 장점을 잃지말고, 여기저기 해피바이러스를 퍼뜨려가며...그렇게 그렇게 예쁘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아웅~ㅠ.ㅠ

제가 그동안 바빠 댓글 관리나 알라딘 마실을 등한시 해서 그런가요?

선물을 드리겠다고 퀴즈를 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저조하여서...의욕상실입니다여~

퀴즈는 답을 발표하고 조기마감합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하늘바람, 차트랑공,된장,마녀고양이,북극곰 님은 원하시는 책 한권과 주소 3종 세트 남겨주시면,

책 보내드리겠습니다.

 

퀴즈의 답은, 지폐 세기, 화투 섞기와 화투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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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4-23 20:08   좋아요 0 | URL
저도 해피바이러스 만나고 싶네요
저도 얼마전 김밥 싸면서 낑낑 끙끙 대었는데 언제 은박지 김밥을 원할지~
웃프네요^^

양철나무꾼 2012-04-24 09:41   좋아요 0 | URL
태은양도 많이 컸겠죠?
태은양도 함 보고싶은데 말이죠~^^

언제 은박지 김밥을 원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가 정답 이겠죠~.
하늘바람님이 웃프시다니, 저도 웃프네요~^ㅠ.

차트랑 2012-04-23 20:35   좋아요 0 | URL
선거 전에는 목의 기부스 완전 풀고,
선거 후에는 목에 다시 완전 기부스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셔요^^

선거 전이나 후 에나 한결같은 분 어디 안계셔요??
그런 분 계시면 소개좀...ㅠ.ㅠ

양철나무꾼 2012-04-24 09:44   좋아요 0 | URL
저어기 천호선 님이 선거전에 고개 빳빳이 들고 어르신 들에게 손 흔들어 카퍼레이드 인사하는 등 시행착오를 많이 겪으셨었죠.
트윗 보니, 이제 좀 정신을 차리신 것 같던데 말이죠~
좋은 경험은 힘이 되기도 할테죠~^^

숲노래 2012-04-23 22:54   좋아요 0 | URL
오늘도 따스하고 좋은 하루가 저뭅니다~
저녁나절 아이들과 예쁘게 쉬셔요~

양철나무꾼 2012-04-24 11:53   좋아요 0 | URL
된장님~
저, 저녁나절 같이 예쁘게 쉴 아이들 없는데...
하나뿐인 아들 고1인데 밤 11시나 되어야 귀가한다는~ㅠ.ㅠ

전 된장님의 사금벼리, 산들보라와의 지금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는~^^

보통은 지나고 있을때는 따스하고 좋은 줄, 그래서 소중한 줄 모른다는데...
된장님은 그 모두를 제대로 만끽하고 계신 듯 하여마냥 부럽습니다.

마녀고양이 2012-04-24 03:34   좋아요 0 | URL
울 코알라를 이렇게 이쁘게 묘사해줘서 너무 고마와...
이 밤에 잠 못 이루어 다시 컴터 켠 보람이 있네. 울 코알라도 나무꾼 이모가 좋대...
이모 이모 하고 부르지 않았어, 그날? 만나기 전에 연습하던데... ^^

즐거운 하루 되기를.

추가로.. 왼손으로 할 수 있는 것, 공 던지기, 과일 깎기.
내가 그렇거든.. 왼손잡이를 어거지로 오른손잡이로 만들어도 두가지는 오른손이 안 됩니다.

양철나무꾼 2012-04-24 11:58   좋아요 0 | URL
코알라, 자기가 키운게 아닌게지.
지 스스로 알아서 큰게지~^^
암튼 참 이뻐, 해피 바이러스야.

코알라가 먹는 걸 보고 있어도,
조곤조곤 하는 얘길 듣고 있는것도,
시시각각 풍부한 얼굴표정이 각양각색으로 바뀌는 걸 보고 있는것도...너무 행복할 것 같애.

자긴 조~오켔다.
(솔직히 자기라고 밝힐 맘까진 없었는데...^^)

마녀고양이 2012-04-24 12:32   좋아요 0 | URL
코알라라고 쓰여있으니.... 머..... 이미 밝혀진거였지. ^^
밝힐 맘이 없었으면 다른 이름으로 쓰지 그랬어, 홍홍.

그런데, 답이 뭡니까? 궁금~

북극곰 2012-04-24 09:43   좋아요 0 | URL
왼손으로만 할 수 있는 것: 가위질, 과일깍기

(간만에 나타나서 정답맞추기 놀이만 하고 사라집니다. 하하하)

양철나무꾼 2012-04-24 12:01   좋아요 0 | URL
우와, 반갑!북극곰님~^^
가위질, 과일깎기, 다 양손가능합니다여.
오히려 오른손이 더 이쁜것 같기도 하다는~.
왼손으로밖에 안되는 건, 저 두가진데...
어른이 될때까지 경험을 못한 것들이라서,
오른손으로 익힐 시간이 없었다는~ㅠ.ㅠ
순전히 왼손으로만 할 수 있는 건 저 두가지 뿐이네요.^^

북극곰 2012-04-24 12:42   좋아요 0 | URL
오홍... 그렇다면, 술 따르기, 술잔 받아 마시기로군요. ㅎㅎㅎ

(또 점심시간에 들어와 이러구 있답니다요. ㅋㅋ)

차트랑 2012-04-24 19:56   좋아요 0 | URL
어구, 북-큭-콤-님~^^ 반갑심더~!

2012-04-26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8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30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4-28 09:47   좋아요 0 | URL
이거 삐치기 있기 없기...'있기' 그 버젼이죠?
모두 '예'라고 할때 '아니요'라고 하시는 분, 님 혼자 뿐이신 거 알까요?

며칠 후도 기약할 수 없는 우리들인데, 몇 년후는 더더욱 장담할 수 없지만여~
암튼, 마지막으로 한번 더 권해보구요, 싫으심~--;

2012-04-27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4-28 09:48   좋아요 0 | URL
알라딘은 5월 2일 발송여서, 따로 구해 보내드릴게요~^^

2012-04-27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4-28 09:48   좋아요 0 | URL
--;

2012-04-28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9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4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5-07 15:35   좋아요 0 | URL
전, 여행 다녀왔어요~^^

아프셨나 보네요? 저런~--;
건강이 젤 중요해요, 잘 챙기세요.

2012-05-06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5-07 15:37   좋아요 0 | URL
님이 좋아하시니, 오히려 제가 더 기뻐요~^^
왠지 제가 센스쟁이가 된 것 같고 말이죠.
님한테 필요한 색일 것 같아 골랐는데, 잘 어울릴지는 장담할 수 없어...
좀 망설였다는~~~.

하늘바람 2012-05-08 04:29   좋아요 0 | URL
망설이셨을거 같았어요. 원래 그렇잖아요
어울릴지, 좋아할지,
센스쟁이 당근 맞으세요
사실 저도바 옆지기가 더 탐을 낸답니다.^^
주황은 에너지가 넘치는 따뜻한 색이어서 그 색의 에너지가 제게 온 것같아 정말 좋답니다.
저도 님꼐 그런 센스를 드릴 수 있어야 하는데~
 

엊그제 밤이 실종됐다.

밤만 실종된게 아니라, 느긋한 아침 시간도 실종됐었다.

아들은 어느새 학교를 갔는지, 침대 위 이불 무덤만 지난 밤의 흔적을 전하고,

어이가 없어 넋을 놓고 앉아 있는 나를 향하여 남편이 한마디 한다.

"걔가 한두살이야? 엄마가 안 챙겨줘도 알아서 잘 해."

"?????"

나는 안 떠지는 눈을 간신히 실눈 뜨고 앉아 있었는데, 그게 보기에 따라서는 째려보는 모습이 되길 바랬었다.
"엄마 닮아서 아침 잠 많은데 어떻게 일어났냐구?
 니가 아침마다 드리던 문안 전화 안드리니까 무슨 일 났는 줄 알고, 아버지가 전화 하셨더라.

 덕분에, 앞으로 니가 종종 늦잠 자거나, 한번씩 알람 고장나도 되겠더라, ㅋ~."

결혼 후 16, 17년동안 빨간 날만 빼고 드린 아침 문안 전화 덕분에 아들은 지각을 면한 모양이다.

"건강 칼럼은?"

"군화,상화, 홧병?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심장 타령이냐?

 내가 싹수 노오~랗다 판단해서 잠이나 제대로 자라고 작년인가 재작년 춘곤증 칼럼 긁어다 올렸어."

여러가지 벌려 놓은 일이 겹쳐 바쁜 중에,

미국에서 오랜 친구가 나왔으나, 내가 제일 가까운 이웃, 친지에 속해 가이드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다.

게다가 마음 쓰는 일까지 있어서 뾰족해질때로 뾰족해진 채로 보낸 20 여일이었다.

마음 쓰고 있던 일을 떨어내고 나니, 홀가분해져서 잠이 밀려들었었나 보다.

근 12시간이 블랙 아웃인것 치고는, 큰 말썽은 없었던 듯 하여 숨고르기를 하며 멍 때리는 표정을 추스리려는 나를 향해, 남편은 이런 말로 잠을 완전히 깨웠다.
"요즘 하트가 아니라, 브레인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거 알어?"

"어? 증말...? 어떤 사람도 나보고 그렇게 얘기했었는데...흐흐흐~"

"어이구구, 얘 좀 보게? 나, 너 칭찬한게 아냐..."

이럴때 잔소리를 막는 방법은 말을 끊어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것 뿐이었다.

"줄 거 있음 빨리 줘보지 그래?"

"ㆍㆍㆍㆍㆍㆍ?"

"어제 직원들이랑 점심 먹구나서 디저트로 나온 사탕이라도 챙겨 놨을 거 아냐?"

남편은 이상한 CD를 하나 가져 온다.

 

"설마 이게 for me라는 건 아니겠지?"

"설마...라니? 그럼, 뭐가 돼야 for you가 되는 건데?"

잔소리를 막아볼 요량이었는데, 또 다른 잔소리로 이어지려는 듯 어째 분위기가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니, 요즘 음악이나 책이나 다 특별난 거 없더라. 다 거기서 거기더라...는 얘기지"

빨리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음악이나 책을 탓할 게 아니라, 무뎌진...니 귀랑 니 눈을 개비해야 되겠다.

 어떻게 들어보지도 않고 그래...특별난거 없더라, 다 거기서 거기더라...라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니, 나오길?"

"아니, 나는 남편이 자기 좋아하는 음악 CD를 사면서 기념일 하나가 그냥 묻어 지나갔다 그런 얘기를 한거지.^^"
"옛날엔 취향이 비슷해서 좋다고 하나에서 열까지 갖다 맞출려고 기를 쓰더니 말야...

 이제 같이 살아서 자연 동화되고 닮으니까, 구태의연해서 싫다고 하고 싶어?"

"ㆍㆍㆍㆍㆍㆍ"

"이거, 귀한 CD, 호사스런 귀 위해 힘들게 구한 거거든...전에 버벅거리며 네이버 뮤직 검색하고 난리쳤던 거 기억 나, 안 나?

 무스타파, 무하마드 나오는, 무슬림 음악 좋다고 강요했던 사람이 나였니, 너였니?

 옛날에 도어즈 들을때 혼자 Shaman's blues 귀 터지게 듣던 사람은 누구였더라?"

 

언젠가 우연히 듣게 된 Sami Yusuf는 브리티쉬 싱어송 라이터로 아제르바이젠 출신이란다.

앨범 타이틀은 'Wherever you are'이고, 들어보니 언제 어디선가 'you came to me'라는 곡을 듣고 좋아서 구해달라고 했던 사실을 깨달았지만...한창 나중이었다.

"난 지금 좋고 비싸고 특별한 것만을 좇는 널 갖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예전의, 작고 사소하고 일반적인 것에 특별함을 부여할 줄 알았던 널 이렇게 통속적이고 세파에 찌들게 만든 사람이 난 거 같아서...그게 말야, 속상해."

 

'남편, 미안~

 하지만, 남편...난 말야, 지금 이딴 일로 속시끄러워 지고 싶지 않거든.'

혼자서 중얼거리는 수밖에ㆍㆍㆍㆍㆍㆍ.

 

느끼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느낌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하지만, 느낌이라는 것이 얻기 위해 안달하거나, 타인에게 강요한다고 해서...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느낌을 공유한다는 거 - 공감한다는건, 살면서 몇번 못 만나게 되는 그런 귀중하고 소중한 경험이 아닐까?

그걸, 지금 곁에 있다거나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타성에 눈 멀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안달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함께 출렁거리고, 파도치는 느낌에 휩싸일 때도 있으니,

그걸로 충분히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이겠다.

부부가 되기 살짝 전의 사랑의 격동기이거나, 서로를 궁휼히 여기는 연민기 때의 일이 아닐까?

 

그러니 그건 '대상'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시간'에 관한 문제로 봐야 덜 심각하고 덜 진지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독립연습 
  황상민 지음 / 생각연구소 /

  2012년 3월

 

 

흔히 심리학자가 쓴 심리학 책이라고 하면, 어루만져 준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그저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소 날카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핵심을 꿰뚫는 탐색과 성찰의 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서른이 넘으면 자기 마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구절에 혹했다.

마음도 마음이지만,

이제 어떻게 감정의 독립을 해보리라 다짐을 해보는 날들의 연속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독립이 아니라,

내가 마음으로부터 그들을 놓아주는 거지만 말이다.

사랑이란 허울 아래 난 너무 집착했던 것 같다.

어려서는 할머니의 치맛폭,

아가씨 때는 아빠의 보살핌,

결혼하곤 남편,

아들이 태어나곤 아들,

내가 아들을 키운건 맞지만...

잘 커주는 아들을 보면서 나는 정신적 보상감을 맞보곤 했었다.

 

이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보려고 한다.

여기서 key word는 '내'이다.

내가 주체인 삶,

내가 주체인 삶을 살기 위해서, 내 자신에 책임을 내 스스로 지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난 아직도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할머니를 떠올리거나,

아빠를 찾거나,

남편에게 기대거나,

아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의지를 하려고 한다.

 

그들을 탈탈, 훌훌 떨어 다 보내줘 버리고...

'독립 연습'이 아니라, '독립'을 해 보리라~.

 

남이 해달라는 것을 척척 잘 해줘야 착한 삶일까? 착하게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잘 들어주는 게 아니다. 대인관계가 도를 닦는 일도 아닌데 그건 지나친 생각이다. 제 몫의 일을 해내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착하게 사는 거다. 흥미롭게도 우리 사회는 착하게 사는 것을 남의 뜻에 순종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들이 남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다. (28쪽)

 

현재의 모든 문제가 정말로 트라우마 때문일까? 이것이야말로 프로이트가 만들어놓은 미신이다. 미신은 믿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믿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트라우마가 현재의 나를 괴롭힌다고 믿는 순간 나는 과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과거의 상처를 통해 아픈 마음을 치료하려던 프로이트의 노력이 정확히 반대로 작용하고 마는 것이다. 이제 그만 프로이트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프로이트의 위대함은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이라는 것이 실재한다는 걸 가르쳐준 것으로 충분하다.(106쪽)

 

사람들은 흔히 감정을 공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정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아내의 기분 좋은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하는 게 마땅하다. 비록 콘서트 티켓 값이 비싼 편이긴 하지만 아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오히려 헐값에 가까운 게 아닐까?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비용이 그 정도라면 그건 얼마든지 투자할 만하다. 남편이 이런 방정식을 모를 경우 아내가 가르쳐줘야 한다. (17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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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3-15 16:46   좋아요 0 | URL
공감의 따뜻한 파도에 몸이 둥둥 뜨는 일,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말씀에
격하게 울컥해요.^^ 어쨌든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일까요, 이것도.ㅎㅎ
어제 사탕 하나 못 받은 일인 흑흑 ㅠ

숲노래 2012-03-16 01:06   좋아요 0 | URL
서른에 앞서 열세 살에도 내 마음을 나 스스로 아끼며 사랑해야 하리라 느껴요~

아무개 2012-03-16 09:46   좋아요 0 | URL
페이퍼 읽자마자 바로 주문 했는데 21일나 되야 도착하겠더군요. 주말에 읽고 싶었는데...마흔에 가까워 오는데도 내 마음은 아직도 내 마음이 아닌듯하네요. 감정적독립... 정말 쉽지 않은거 같습니다.

하늘바람 2012-03-16 10:46   좋아요 0 | URL
두분의 대화가 정겨워요
전 이젠 사탕은 꿈도 안꿔요
네가 애야 하니까
이제 40대이니 더더욱 마음에 책임져야하겠지요.
그런데 오늘은 여리고 여리신 양철나무꾼님
껴안아 드리러 가고 파요

마녀고양이 2012-03-16 11:59   좋아요 0 | URL
^^*....... 한번 더 쪼옥~ 쪽쪽쪽~

감은빛 2012-03-22 15:42   좋아요 0 | URL
두 분의 내공이 느껴지는 대화인걸요.
어쩜 저렇게 멋지게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나요?
양철님의 멋진 글을 차근차근 읽어볼 시간이 별로 없어서 아쉽네요.
담에 몰아서 밀린 글들 읽어버려야겠어요.
늘 건강 챙기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