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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평점 :
600쪽이 넘는 분량이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다. 빨리 읽히는데 쪽수가 줄어드는 게 아까워 딴청 부리며 아껴 읽었다. 재미있는 책을 만나면 늘 하는 짓(?)이다. 우리 부부끼리 늘 하는 말대로 "난 가끔 딴 생각해" 하며 읽는다. 그런다고 책 분량이 더 늘어나지는 않지만 계속 읽고 싶은 마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매혹적인 소설이다. 이야기 구성과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겨울나라인 노르웨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 호기심 가득하다. 옮긴이는 영국드라마, 셜록의 주인공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에게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유머가 없는 것이 안 닮았다. 그게 좀 아쉽네.
책을 읽는 초반에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인지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 범인이 누구인지는 아주 조금씩 드러난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는데도 재미있단 말이지. 마이클 코넬리 소설이 그렇듯 이야기가 촘촘하면 굳이 "짜잔~" 하며 반전 요소가 크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다. 범인의 심리가 이해는 가는데 어린 녀석이 그토록 잔인할 수가 있나 싶다. 어려서 더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메밀꽃 필 무렵」처럼 살짝 지나가는 장면이 아니라 눈 앞에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을 통해 유전자를 느낀 당사자에게는 그만큼 충격이었으리라. 범죄심리는 자기 해석이 강한 게 문제가 아닐까. 쓰라린 경험을 했으면 제발 사람들과 공유하라고. 따뜻하게 위로받고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딛는 연습을 하고서 상처를 조금 무디게, 흉터가 옅어지도록 애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단 말이야. 그 과정이 없으니 독단적으로 사고들을 치는 것 아니냐.
눈사람을 떠올리면 차가운 눈덩이지만 오히려 따뜻하고 다정하고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모자라기에 더 다가가고 싶은 편안한 존재, 그래서 아이들이 유독 좋아하는 게 아닐까.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닮은 그네들의 작품이기도 하니까. 그런 눈사람이 이 이야기에선 거의 괴기로 변하지만. 눈사람을 범죄현장에 끌어낸 건 북구 특유의 환경 때문이 아닐까. 아이디어가 참 기똥차다. 동심이 파괴되는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자. 교고쿠도 시리즈처럼 해리 홀레 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시리즈를 계속 읽고 싶다. 눈이 내리면 내 기억보다도 조카녀석이 생각난다. 모처럼 함박눈이 와서 경비 아저씨가 눈을 쓸어 한쪽으로 쌓아둔 곳에 그 녀석이 철푸덕 엎어져서 신나게 헤엄을 치던 장면이 자꾸만 생각나 끅끅 웃음이 난다. "눈을 굴려터, 눈을 굴려터 눈따람을 만들자~" 서툰 발음으로 천진하게 부르던 그 녀석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제목을 그냥 『눈사람』으로 할 것이지. 굳이 스노우맨이라 할 필요가 있는지. 그래야 잘 팔리는지. 눈사람이라는 뜻 말고 다른 뜻이 있는지. 번역에 맞는 말이 한국어에 없다면 모를까. 이런 일에 일일이 속 터져 하는 내가 문제인지. 책 만드는 사람들이여, 제발 자각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