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여성의 몸을 침략하다

미디어는 낙태를 둘러싼 투쟁을 도덕적이고 생물학적인 논쟁(생명은 언제 시작되는가?)으로 규정하곤 했다. - P591

1986년『남자와 결혼』에서 조지 길더는 여성의 출산의 자유에 대한 남성들의 우려 밑에 깔려 있는 두려움을 가장 솔직하게 표출했다. 그는 책에서 산아제한과 낙태의 자유를 요구한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이 성공을 거두면 "성적 권력의 균형이 여성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동하게 되고", 남성의 가부장적인 "정력"이 고갈되며 페니스가 "한낱 노리개"로 전락하게 된다고 밝혔다.
태아의 ‘생명권’을 둘러싼 1980년대의 투쟁에서는, 가정사를 결정할 가부장의 능력이 퇴색된 데 대한 억울함이 배후에서 격하게 분출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이런 억울함은 낙태 반대 운동에서 말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의제였다. - P592

낙태 반대 운동에 참여한 남성들은 그저 이 나라에서 폭주하는 낙태의 속도를 멈추려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낙태율은 늘어나지 않았다. 최소한 지난 100년간 미국 여성들은 세 건 중 한 건꼴로 임신중절을 했다. 낙태 합법화 이후 차이가 있다면 그건 이제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중단할 수있다는 점뿐이었다. 그리고 1973년부터 1980 년까지 합법적인 낙태가 늘어나긴 했지만 곧 안정세를 유지했고 1980년대 초부터는 심지어 하락했다.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낙태율은 6퍼센트 하락했다.
진짜 변화는 여성들이 위험이나 공포를 감수하지 않고 자신의 생식력을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자유는 낙태율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인 행동과 태도 역시 크게 바꿔 놓았다. - P593

낙태 반대 운동은 여성들을 낙태권의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반격의 주장을 강화했다. 여성의 자유라는 대의는 다시 한 번 여성의 고통을야기한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낙태 반대 운동 대변인들은 불행한 여성은 ‘낙태 후 증후군’의 유산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 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신종 질환이 여성들을 괴롭힌다고 목청을 높였다. - P596

‘실수’가 무엇이었든 대가를 치르는 건 여성이었다. - P598

1973년 낙태 합법화 판결 이후 수년간 벌어진 낙태 반대 작전은 이미 유명하다. 낙태 합법화 판결이 있던 바로 그해에만 이 판결의효과를 제한하기 위해 50여 개 법안이 제안되었다. 1974년에는 헌법을 수정해서 낙태를 금지시키려는 시도가 있었고, 1976년에는 연방재정이 낙태에 들어가지 못하게 저지하는 하이드수정안 Hyde Amend- - P604

ment 이 통과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이 점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수백 건의 입법 작전은 30여 개 주에서 금지 규정과 동의, 고지 규정을 넣는 데 성공했고, 낙태 합법화 판결에도전하는 숱한 법적인 시도들은 1989년 대법원의 웹스터 판결에서 절정을 이뤄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독립기념일 전날이었다) 결국주 차원에서 낙태에 제한을 둘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대법원 판결에 힘입어 정부는 연방의 자금 지원을 받는 클리닉들이 임신부와 상담을 할 때 낙태에 대해서는 입에도 올리지 못하게 금지할 수 있게 되었다. - P605

여성들이 아무리 가장 온건한 수준에서 자신의 생식력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도 반대의 불길이 활활 일어나는 건 어쩌면 불가피한일인지 모른다. 교육이든, 일이든, 그 어떤 형태의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든 여성의 모든 포부는 궁극적으로 아이를 가질지의 여부와 가진다면 언제 가질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된다. 이 때문에 출산의 자유는 언제나 모든 일련의 페미니즘 의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주제였고, 반격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거센 공격의 대상이었다. 20세기 초에 페미니즘이 부활했을 때 마거릿 생어가 이끈 산아제한 운동은 계급과 인종 구분을 넘어서 여성운동의 주제 중에서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여성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인 크리스털 이스트먼Crystal Eastman 이 1918년 당대의 페미니즘에 대한 글에서 밝혔듯 "우리가 특별히 추종하는 사람이 앨리스 폴Alice Paul이든루스 로Ruth Law든 엘런 키Ellen Key든 올리브 슈라이너Olive Schreiner는우린 모두 마거릿 생어의 추종자일 수밖에 없다." - P606

1980년대에 낙태 반대의 상징은 아기 엄마가 아니라 태아였다. 낙태 반대 운동의 문헌, 사진, 영화, 그 외 선전 도구에는 ‘태어나지 못한 아기‘의 전신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자궁에 둥둥 떠 있다. 태아는 의식이 있고 심지어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꼬마지만 엄마는 수동적이고 형체가 없으며 생명이 없는 ‘환경‘이다. 태아는 거주자고 엄마는 임시 거처다. 어떤 생명권 위원회는 심지어 "태어나지 못한 아기"의 일기를 펴냈는데, 여기서 조숙한 태아는 꽃에 대한 깊은 사색을 펼치고 "난 케이시라고 불리고 싶다"고 고백한다. 윌크의 설명서에서는 운동 참여자들에게 태아를 지칭할 때는 반드시 "이 작은 녀석 같은 인간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엄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거처’ 같은 표현을 사용하라고 지시한다. - P615

릭스의 남편은 처음에는 아내의 새로운 금전적 능력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삼갔다. "내가 처음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땐 모든 게 ‘그의 돈’이었어요."릭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급여일이 되면 그 남자는 나한테 수표에 서명을 하게 한 다음에 ‘이게 당신이 이번주에 번 돈이군’ 하고 말하곤 했어요. 그리고는 ‘아무한테도 당신이 얼마나 버는지 말하지 마‘ 하고 말했죠." 그는 릭스가 일하는 동안 아들을 보살피길 거부함으로써 가족 내 경제력의 변화에도 맞섰다. 심지어 남편이 실직 상태였을 때도 그녀는 돈을 들여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해야 했다. 그리고 릭스의 회상에 따르면 "남편이 자꾸 베이비 시터에게 손을 대는 바람에 난 계속 새로운 사람을 구해야 했다."
결국 남편은 더 직접적이고 야만적인 전략을 취했다. 그는 릭스를 집에 감금하거나 구타를 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 힘들 정도로 멍이 들게 만들었다. 어느 날, 릭스는 마침내 행동에 들어갔다. 남편이주방 바닥에 그녀의 머리를 찧어 기절시키고 난 다음이었다. 집을 나와서 이혼 신청을 했다. 하지만 릭스의 탈출에 남편은 더욱 난폭해졌다. 별거에 들어간 직후 남편은 그녀와 같은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점점 공포스러운 방식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어느 날 밤엔 퇴근을 하려고 주차장에 갔더니 차가 불타고 있었다. 또 다른 날엔 야간 근무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안료 부서에 몰래 들어와서 살금살금 그녀 뒤로 다가가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남편은 릭스의 안경이 깨질 때까지 얼굴을 때렸다.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고 릭스는 회상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멀뚱히 서서 지켜봤어요. 감독은………… 그냥 방에서 줄행랑을 쳤어요. 증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녀는 회사의 안전 담당자에게 폭행에 대해 보고했지만, 이 안전 담당자는 남편에게 ‘말로 경고‘를 하는 데 그쳤다. - P645

이 여성들에게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형편 때문에, 믿을수 없는 남자들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했고 자립과 자존감의 기본적인 원천이기도 했다. 이들은 일을 해야만 했고 또 원했다. 하지만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고용주들도, 옆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남성 노동자들도, 혹은 같은 침대를 쓰는 남성들마저도, 그 누구도 이들이 일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을 계속하면 사무실에서 모욕을 당했고, 샤워실에서 공격을 당했고, 집에서 구타를 당했다. 하지만 사회적 신호에 복종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면 굶어 죽었을 것이다. - P655

에필로그

반격의 1980년대에는 여성의 진보를 좌절시키기 위한 운동이 끈질기고 고통스럽게, 부단히 전개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반격이 뉴라이트의 맹비난을, 레이건 시절의 법적인 퇴보를, 미국 재계의 강력한 저항을, 미디어와 할리우드의 무한 영속하는 신화 생성 기계를, 매디슨가의 ‘신전통‘ 마케팅을 동원해도 여성들은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 P657

심지어 어떤 여성들은 반격의 제방을 쌓아올리는 데 조력하는 동시에 그 제방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 P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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