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글쓰기 수업을 같이 들은 듯한.

문지혁의 강의에서 다룬 소설들 외.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애러비]
안톤 체호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
카프카의 <변신>
요르크 슈타이너, 요르크 뮐러의 그림책 <난 곰인 채 있고 싶은데…>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폴 오스터의 짧은 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인생이란 고약한 농담을 즐기는 친구 같아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예기치 못한 표지를 과거로부터 길어 올려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너, 이거 아직 기억하니? 하고 묻는 것처럼.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맥베스」의 대사를 떠올리던 2012년의 여름에도 나는 그 단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은 날마다 아주 느린 속도로 기어가 기록된 마지막 음절에 다다른다는 그 대사에서, 셰익스피어가 쓴 ‘마지막 음절‘이란 구절의 원래뜻은 죽음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세월의 책‘에 기록된 마지막 음절은과연 뭘까?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그 몇십 분이 나에게는 영원히 흐르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 P14

그렇다면 한국어에서는 어떨까요?
생명과 인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한글 단어 ‘삶‘을 보면 흥미로운 자음들이 보입니다. ㅅ,ㄹ, ㅁ인데요. 미국에서 한국어 수업 시간에 이 단어를 처음 알려 주었을 때 학생들이보였던 반응이 생각납니다. 간단한 단어에 뭐가 이렇게 많이 들어 있냐는 거였죠. 어떤 학생은 그러더군요. 압축파일 같아요! 맞습니다. ‘생(生)‘이라는 한자어도 있지만 ‘삶‘은 보다 복잡하고 복합적이죠. 정보값이 많습니다. 네모 칸을 꽉 채우잖아요. 이걸 풀어 볼까요? - P21

만약 A가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왔다면 아마 A는 A‘가 되어 있을 거예요.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겪게 되는 거죠. 진짜여행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이야기는 결말에 변화가 들어 있어야만 해요. 작품의 주제,작가의 최종 메시지가 거기 들어 있으니까요. 왜 직접 말하지 않냐고요?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습니다. 그래선 안 돼요. 그저 주인공의 마지막 변화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독자와 관객에게 ‘보여 주는‘ 거죠. 돈텔, 벗 쇼. 앞으로 지겹게 듣게 될 말일 거예요. 말하지 말고 보여 줘라. 직접 들이밀지 말고 간접적으로 넌지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소설이란 하고싶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거예요. 다른 좋은 예술도 마찬가지고요.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들면 끝나는 거죠. - P38

우리의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쓰는 한 우리는 모두 영웅이에요. ‘써야 한다‘는 소명을 갖고 책상 앞에 앉지만, 언제나 써야 하는 이유보다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죠. 소명을 거부하다가 어찌저찌 ‘문지방‘(학교 다닐 때 제 별명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참 못됐죠.)을 넘어 글 속으로 들어가면 거기에서부터 진짜 고난과 시련이 시작됩니다. 세상에 술술 써지는 글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의 영웅, 나의 글 쓰는자아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옛 용사들이 용과 싸워 이긴 것처럼 용보다 더 무섭고 포악한 ‘하얀 여백‘ 혹은 ‘데드라인‘ 아니면 ‘성적‘ 같은 괴물들과 맞서 싸운 다음 승리를 거두죠.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면 여러분은 문지방을 넘어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빈손이라고요? 아닙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약이 여러분의 두 손에 쥐어져있어요. 쓰기 전의 나와 쓴 다음의 나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말했잖아요? 우리는 A에서 A‘가 되었으니까요.
..... 저기, 저기 자고 있는 영웅 좀 깨워 주시겠어요? - P47

2주 차 수업에서 나는 앞으로 다시 말할 기회가 많지 않을 글쓰기의 기본 원칙들을 강조한다. 그중 하나는 문장부호에 관한 것인데, 이를테면 느낌표(!)나 물음표(?), 말줄임표(………), 심지어는 쉼표(,)조차 너무 많이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 P48

것은 문맥을 통해 의미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부호를 통해 손쉽게 ‘말해 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복하거나(!!!!!!) 섞어 쓰는 것(?!?!)은 당연히 더욱 좋지 않고, 이런일이 반복되면 글의 수준은 처참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문장부호는 마침표뿐입니다. 제가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어요. ‘제자리에 찍힌 마침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 P49

나는 내가 해야 할 말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전달했다. 공은 학생들에게 넘어갔고, 이제 이해하고 말고는 그들의 영역이 되었다. 못 알아들으면 니네 손해지 뭐. 나는 생각했고 실제로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수업의 주제이자 목표이자 모든 것인 ‘한국어와 한글‘에 있어 내가 그들 누구보다 권위 있는 존재라는 점도 도움이 됐다.
그런데 여기에선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했고, 같은 문화를 공유했다. 무슨말을 하면 학생들은 내 말에 숨겨진 희미한 뉘앙스, 여백, 서브텍스트까지 모두 파악했고, 심지어는 말하지 않은 것까지 알아차렸다. 서울에서 오느라 늦었다는 내 변명을 듣고 어느 학생은 말했다.
선생님, 저희도 서울에서 와요. - P53

이 짧은 소설의 자서전적 요소들과 그 레퍼런스를 발견해내는 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사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 겁니다. 중요한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작가, 즉현재의 조이스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일 거예요. 어린 소년을 화자로 선택해서 조이스가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은 단순한 기억의 나열이 아닙니다. 사실관계의 확인도 아니죠.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통찰, 깨달음, 더 나아가서는 내 과거에 대한 해석과 논평일 겁니다. 커넥팅 더닷츠, 인생이란 점을 선으로 잇는 과정이라고 하잖아요?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그런 겁니다. 점과 점을 잇는 것. 선을 그리는 것. 그 선이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내는 것.
…… 여러분의 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 P62

물론 2021년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 소설이 적어도 안나에게만큼은 불공평하게 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마다 나는 1899년이라는 ‘시대 보정‘이 필요하며, 이제 여러분이 안나의 이야기를 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학기 강의 평가를 열어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이런 문장이었다.
- 여혐 가득한 빵은 텍스트를 골라 놓고서 변명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수업. - P94

사춘기 시절 내 주된 괴로움 중 하나는 부모가 나에게 각자 털어놓는 서로에 대한 비방이었다. 아빠는 엄마의 집요함과 강박과 히스테리컬함을, 엄마는 아빠의 게으름과 무심함과 계획 없음을 비난했다. 이런 비방들은 부엌에서, 문 앞에서, 조수석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서점과 목욕탕에서, 아무런예고와 맥락 없이 이뤄졌다. 내 반응은 대개 심드렁했는데(당시 나는 이러한 태도가 내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중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야기를 마친 엄마와 아빠는 신기하게도 꼭 같은 말을 했다.
-넌 꼭 니 아빠/엄마를 닮아 가지고.
나는 늘 중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별거 아닌 일 - P114

은 별거 아닌 일로, 보통 일 아닌 일은 보통 일 아닌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중간 네모나 동그라미 말고. 세모 삼각형.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들이 끝내 이혼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직선이 아니라 삼각형이었고, 내가 몰랐던 그들의 세 번째 꼭짓점은 바로,
나였다. - P115

조금 오래된 영화지만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영화를 보면 이 과정이 다소 과장되기는 했으나 잘 드러나 있습니다. 게다가 당시 무대에는 여자가 올라갈 수 없었어요.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죠. 여러분의 동심을 파괴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남자였다는 겁니다. 「햄릿」의 오필리어도, 「십이야」의 바이올라도, 「리어왕」의 코딜리어도 모두모두 남자 배우가 연기해야 했어요. 소년이거나, 여자 흉내를 잘 내거나, 운좋게 변성기를 피해 간 배우들이 이런 역할을 맡았죠. 그래서 셰익스피어 인러브」에서는 무대에 올라가고 싶어서 남장을 하는 허구의 셰익스피어의 여자 친구가 등장합니다. 남장을 한번 하고, 무대에 올라가 다시 여자를 연기하는 거죠. 그러다 누군가에게 발각되는데요, 그가 여자라는 것을 알아챈 관객이 소리를 지릅니다. "저 여자, 여자예요! (That woman, is a woman!)" - P116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에는 ‘평온의 기도‘로 알려진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문이 두 번 등장한다.

하나님,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언제나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P122

라이언은 과묵해 보이는 거구의 사내였지만 실제로는 달변이었고, 심지어 서툰 한국어도 한두 문장씩 섞어가며 능숙하게 이야기를 이끌었다. 미국에서 끝까지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스몰토크였는데, 저렇게 별것 아니면서 무해한 이야기를 처음 만난(그것도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들과 두 시간 넘게 계속할 수 있다니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31 - P141

"지혁아,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선생님은 내 말을 잘랐는데, 말을 잘랐다는 사실보다 이말은 보통 정말로 기분 나쁜 말을 하기 전에 하는 말이라는점에서 나는 긴장했다.
"난 솔직히 걱정된다. 니가 책 낸 사람이 될까 봐."
솔직히 나는 그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지? 난 이제 책 낸 사람이 될 건데? 그가 말한 ‘책 낸 사람‘이 ‘작가‘의 반대편에 있는 멸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 책을 내면 작가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적어도 그의 세계에서, 책을 낸 모든 사람이 작가는 아닌 것이다. 제대로 등단해서, 제대로 된 출판사에서, 제대로 된 작품(아마도 장르문학은 아닐)을 내지 않는사람은 책을 낸다 하더라도 작가가 아닌 책 낸 사람에 머문다. 책 낸 사람과 작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 - P150

제가 추천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일상을 쓰는 거예요. 우리가 글을 쓸 때 실패하는 이유는 자꾸만 멋지고 근사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플롯을 짜고, 비유를고민하고, 문장을 다듬고………… 이런 게다가 아니에요. 좋은글은 거기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좋은 글은 뭐예요? 내가 잘 아는 글입니다. 나를 잘 드러내는 글입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글이에요. 그러러면 어쩔 수 없이 나자신, 내 주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곧 텍스트예요. - P154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되풀이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
되풀이만이 사랑할 만하다.
되풀이만이 삶이다. - P162

팩트 체크 :
사실 내 책상에는 다른 문구가 붙어 있다.

"이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비극만이 존재하네.
하나는 자기가 원하는 걸 갖지 못하는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마침내 갖는 비극이지.
두 번째가 훨씬 나빠 이게 진짜 비극이라고!"*

*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중에서. - P167

두 번째 빵은 늦은 밤 앤과 하워드 부부에게 빵집 주인이대접하는 시나몬롤빵입니다. 찾아가지 않은 스코티의 케이크를 두고 부부와 감정 대립을 벌이던 빵집 주인은 스코티가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부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죠. 그리고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오븐에서 갓 구운 따뜻한시나몬롤빵과 방금 내린 커피를 대접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요.
"아마 뭘 좀 먹는 게 좋을 겁니다. 여기 갓 나온 따뜻한 롤빵을 드셔 보세요. 계속 먹고 힘을 내야 합니다. 이럴 땐 먹는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도움이 되는 법이니까요."
‘어 스몰 굿싱(A Small, Good Thing)‘이라는 소설의 원래제목이 바로 여기서 나왔어요. 우리말로는 이렇게 번역할 수있겠죠. 작지만 좋은 것. 대단치 않지만, 쓸모가 있는 것. 이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시나몬롤빵인 셈이죠. - P215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위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단걸 많이 먹으면 물리거든요. 롤빵으로 잠깐의 배고픔을 해결한다해도 결국은 더 큰 허기와 갈증이 찾아옵니다. 이전보다 더공허해지기도 하죠. 그렇다면 그다음 단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거기에 검은 덩어리가 있습니다.
‘뜯어 먹기 힘들지만, 맛은 풍부한 인생 그 자체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 이 단계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행운도 불운도쾌락도 고통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니까 ‘좋다, 싫다‘가 아니라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냥 사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을 두 팔 벌려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부는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은 이 빵을 먹죠. 더 이상 먹지 못할 정도로 먹습니다. 먹는다는 건 그걸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거잖아요? 이 검은 덩어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건 바로…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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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9-20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급보다 초급이 더 좋기는 했어요. 훗.

햇살과함께 2023-09-20 13:34   좋아요 0 | URL
저는 문학 얘기가 많아서 중급이 조금 더 좋네요^^
좋아하는 카버 단편이 자세히 나와서 더 좋아요.
세 번째 검은 빵은 잘 기억이 안나 다시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