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손목서가 & 주택공사 아니고, 주책공사

오늘부터 애들이 며칠 집에 없을 예정이라, 지난주 토요일 밤에 오랫만에 와인을 마시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그렇다면 나는 부산을 가야겠어! 하고 바로 숙소와 기차를 예약했다 ㅋㅋ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야, 근데 일은 어쩌지? 휴가 가도 되나? 그제서야 생각,, 취소할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질렀다. 월화 빡시게 일하면 되지 뭐, 못하는 건 금요일에 하고. 부산 갈 타이밍이야. 혼자가 필요해…(그 와중에 돌아오는 기차 당일로 잘못 예약한 거 발견하고 예약 변경;;;)

1-2년에 한번씩 부산에 혼자 간다. 업무 스트레스가 목까지 차올랐을 때, 부산 가고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계획적이라면 하던 일이 마무리되고 2월초쯤? 가야하지만, 이것은 1년 만에 좀 마신 와인 탓인가? 부산인 이유는? 장롱면허 뚜벅이 여행자가 여행하기에 대중교통이 좋으니깐. 바다가 있으니깐.

남편님의 자문을 받아 이번에는 서점과 까페, 실내 위주로, 추우니깐, 그리고 한 서점 1권만 사기!!

오늘은 유진목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영도구 손목서가와 중구에 있는 주책공사^^

지난번에 읽은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에 영감을 준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손목서가에는 맥주는 안팔지만 그뤼바인과 베일리스밀크가 있다. 베일리스밀크 드링킹하며 드링킹 읽기!

서면역에 내려서 걸었는데 햇빛은 따뜻하지만 역시 바닷바람은 차다!! 서울보다 따뜻하다고 방심, 기모바지를 입고 왔었어야 한다.

중앙역 근처 재밌는 이름의 주책공사에서 정희진 선생님의 글쓰기 3부 사고, 커피도 팔아서 커피 마시며 서문과 2꼭지 읽었는데 역시 또 뼈때린다. 물론 통증이 오래가지 않고 금방 망각하는 인간. 자주 맞아야 한다.

짐이 가벼운 여행을 위해 들고 간 책은 쏜살문고 토베 얀손의 ‘두 손 가벼운 여행’, 기차에서 절반 정도 읽었는데 ‘여름의 책’만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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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1-12 23: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햇살님 독립서점 페이퍼닷!!!^^
오늘은 부산 편이네요?
여행 잘하고 가셨나요?^^
손목서가는 프레이야님과 여러 알라디너님들 통해서 알고는 있었는데, 주책공사는 첨 들어본 서점이네요??
중앙역!!!! 음 나중에 기회 되면 한 번 가보고 싶네요^^
부산 바닷 바람 차죠???ㅜㅜ
어젠 바람이 차게 많이 불어 넘 추웠었는데, 오늘은 바람이 안불어서 좀 낫던데..부산은 여전히 바람이 불었나 보군요?ㅜㅜ
그래도 바다 풍경은 참 좋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01-12 23:52   좋아요 3 | URL
내일 가요^^ 내일 더 분발할 예정^^ 제가 아침에 옷 입으며 바닷바람을 잠시 망각했습니다 ㅎㅎ 바다 사랑합니다~ 바다 바람 좀 맞아야 정신이 들어요~

새파랑 2022-01-12 23: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여행가서 독립서점 가는거 정말 부럽네요 ㅋ 오늘은 여행사진이 많군요 ㅜㅜ 저도 이 두 서점 부산 가면 꼭 가봐야할거 같아요 ^^

햇살과함께 2022-01-12 23:55   좋아요 4 | URL
바다 구경하세요~ 프레이야님 얘기처럼 부산에 독립서점 많아졌더라구요^^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당~~

scott 2022-01-12 23: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울은 꽁꽁 나라인데
부산 햇살은 따숩!!
햇살님 부산의 바다 향기 !잔뜩 마시고!
맛나는 거 잔뜩 드세요!

시인부부가 운영 하는 주책 공사 책방 ㅋㅋㅋ

바다는 💓

햇살과함께 2022-01-13 00:11   좋아요 3 | URL
앗, 제가 헷갈리게 썼죠? 유진목 시인과 남편분이 운영하시는 서점은 손목서가이고, 주책공사는 남자 쥔장님^^

mini74 2022-01-13 00: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탈 보는 것만으로도 ㅎㅎ 좋아요. 독립서점 넘 멋있어요. 부산도 날씨가 맑은지. 매번 먹방과 스포츠 관람 목적으로 부산을 갔는데, 저도 독립책방 순례 하고 싶네요 사진은 다들 왜 이리 잘 찍으시는지 ㅠㅠ 햇빛쬐는 고양이 ㅎㅎ 기분 좋아지는 사진이에요 ~

햇살과함께 2022-01-13 08:56   좋아요 2 | URL
일탈은 10대만 하는 건 아니라는 ㅎㅎ 손목서가 앞에 사는 고양이인데 사진 찍으라는 듯이 정물처럼 움직이지도 않아서 너무 귀여웠어요~

청아 2022-01-13 00: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책공사ㅎ에궁~ 부러워요ㅎㅎ저도 여행 떠나고 싶네요~♡♡ 정희진 읽으시는군요!! 뼈 많이 때리죠?^^*

햇살과함께 2022-01-13 09:02   좋아요 2 | URL
네!! 뼈!! 정희진 선생님 책은 다 읽어보려고요, 미미님 읽으시는 두꺼운 책은 아직 도전못해봤지만^^

페넬로페 2022-01-13 0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산 좋아해요~~
역시 책을 좋아하시는 분은 책방으로^^
혼자만의 여행도 낭만적이고
책과 커피는 멋지고
바다는 언제나 경이로움입니다^^

햇살과함께 2022-01-13 09:03   좋아요 3 | URL
바다보며 멍때리기~ 역시 좋아요^^

프레이야 2022-02-09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아니 요 페이퍼를 이제 보게 되네요.
손목서가 짱!!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더 짱!
주책공사는 첨 들어봐요. 다음에 가봐야겠어요.ㅎㅎ
이름이 재미나네요.
책이 있어 좋지요 정말.

햇살과함께 2022-02-09 13:37   좋아요 2 | URL
ㅎㅎ 손목서가 2층 전세내서 하루종일 음료 마시며 책 보다 바다 보다 하고 싶어요! 창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너무 멋지더라구요~
 

I drank when I was happy
and I drank when I was anxious
and I drank when I was bored
and I drank when I was depressed. - P12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능동적으로 상대의 단점에 눈을 감는다. 그 무렵, 그러니까 30대에 나는 코와 뺨의 실핏줄이 하나하나 터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먹은 것도 없이 토했으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수전증은 점점 나빠져서 어떤 때는 온종일 떨기도 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모른 척하려고 몸부림쳤다. 마치 차가워진 애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의미를 잘알면서도, 진심은 그게 아닐 거라고 온 힘을 다해 다른 해석을 찾는 애처로운 여자처럼. - P25

이들은 대부분 대인관계가 좋고 친구도 많다.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들은 주변에 아주 흔하다. 이들은 직장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식품점 계산대에 얌전히 줄 서 있다. 의사, 변호사, 교사, 정치인, 화가, 심리치료사, 증권거래인, 건축가 등 전문 직업인도 많다. 이들을 지탱하는 힘, 다시 말해서, 이들이 밤마다 술에 빠지고, 다음 날 아침 숙취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살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들이 ‘진짜‘ 주정뱅이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P28

밖으로 보이는 나와 현실의 나. 외부와 내부. 나는 술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이 없고, 전화로 병결을 통보한 적도 없으며, 숙취로 조퇴한 적도 없다. 하지만 내부의 나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안팎의 부조화가 너무 컸다. - P30

주변 사람들이 볼 때 나와 엘리스 K는 그렇게 동떨어진 인물이 아니었다. 나 또한 잘못된 삶을 벗어나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었으니, 내가 만든 인물의 두려움은 나 자신의 두려움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동료들도 나도 제대로 몰랐던 것은 그 모든 불안이 알코올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두 가지를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 P31

우리 앞에 둘러쳐진 지성과 전문성의 휘장 뒤에는 두려움의 대양이 넘실거리고, 열등감의 강물이 흐른다. 언젠가 AA 모임에서 알코올 중독을 ‘삶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간략하게 정의하는 말을 들었다.
간략하지만, 상당히 정확한 표현이었다. - P33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알코올 중독이라는 건 진행성질환이니 말이다. 그것은 조심조심 낮은 자세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손아귀에 사로잡힌 지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에 십상이다. - P35

‘휴식이 필요해. 좀 마셔도 돼’
이것은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들의 전형적인 논리 전개 방식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에게는 술 자체가 중요한 보상 역할을 한다. 하루를 온전히 버틴 데 대한 크나큰 보상, 그것도 그렇게 훌륭하게 버텨낸 데 대한. - P38

심심치 않게 숙취를 달고 출근하면서도 나는 배울 것을 배우고 잘못된 점을 교정했으며, 내 한계와 발전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개인 생활과 달리, 직장에서 내 눈은 그렇게 흐려지지 않았다. ‘직장에서 술 마시지 않기‘는 내가 끝까지 굳게 견지한 첫째 원칙이었다. 이런 일은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들에게는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나와 같은 유형의 술꾼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서 자신의 직업 영역을 보호하고, 그것을 증거 삼아 내 인생은 아무 문제 없다는 환상을 유지한다. 그리고 바로 그 힘이 그들의 인생을 지탱해준다. - P39

진실은 고통을 동반한다. 그런 깨달음의 순간마다 완전히 잘못살고 있다는 참담한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뿐, 그런 깨달음을 깊이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그에 따라서 생활 방식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런 느낌은 내부에서 자존감을 부식시키며 종양처럼 곪아갈 뿐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다. 알고 있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인생의 외피들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한(안정된 직장, 전문성의 가면) 그 내부가 통일성과 자부심을 잃고 허물어져, 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 P41

나는 이런 일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분주히 계획을 짜서 술 마실 기회를 마련하는지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그저 여기서 잠깐 한 잔, 저기서 어쩌다 한잔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곁에 있으니 마시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 P46

"잠깐 한잔하는 거 어때요?"
나는 언제나 다른 할 일이 있고, 곧 가야 할 데가 있는 사람처럼 ‘잠깐 한잔‘이라고 했다.
나도 이런 사실을 인식했다. 내가 던지는 말 속에 담긴 간절한 느낌을,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무시했다. 어쩌면 내 안의 한 부분은 정말 ‘잠깐 한잔‘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 속에 담긴 결핍감과 절박함은 나 자신을 포함해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꽁꽁 감춰둔 비밀이었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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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부터 강렬하다. 역시 정희진 선생님이다. 강렬함을 금방 망각하는 인간이기에 자주 읽어야 한다.

"읽을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내 식으로 바꾸면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 P11

공부, 자기 언어를 갖는 것은 피억압 집단에게 가장 필요한 투쟁이다. 남성, 백인 문화는 피억압자의 언어를 두려워하고, 이는 여성 혐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여성들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제 페미니즘은 가치관이 아니라 자기 계발의 하나가 된 것뿐일까. - P14

비평 자체의 독자성, 내용, 다양성에 따라 그 사회의 창작 활동은 큰 영향을 받는다. 창작과 비평을 나누는 사고는 창작이 상상이라는 통념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도 사회 안에서 기존 언어를 기반 삼아 나오는 것이다. - P15

문학은 현실에 대해 말하되, 현실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하나의 비유는 열 개의 해석을 낳는다. 비유를 통해 기존 개념은 이동하고 분화한다. 전이(轉移), 전의(轉意, 轉義)다. 은유(metaphor)는 meta(over) + phora(carrying)를 합친 단어로서 ‘뜻을 나른다‘
는 의미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오만할 자격이 있다. - P15

내게 글쓰기는 입장과 표현이 가장 중요하다. 장르가 곧 내용인 것은 분명하지만 입장 없는 글쓰기는 어느 장르나 불가능하다. 창작으로서 비평, 예술로서 비평을 지향하는 나는 서평과 그 외 글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개는 서평, 독후감에 형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P15

줄거리 요약이 분량의 반을 차지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줄거리 정리는 독후감을 쓰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세미나나 공부 모임, 대학원 수업에서 읽을거리를 요약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식으로는 공부가 늘지 않는다. 텍스트의 내용과 맥락은 참석하기 전에 숙지하고, 모여서는 ‘토론‘을 해야 한다. - P16

서평 쓰기의 첫 번째 훈련은 글의 서두에 한두 줄 정도로 책의 내용을 집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책의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고, 그것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해야 한다. 육화된 책의 내용을 몸속에서 ‘뽑아내는’ 작업이다. - P17

불안한 상황 자체는 병이 아니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책 제목 그대로 불안에 대한 재해석이다. 불안이 질병일 경우에도 단지 아픈 것이지 ‘미친‘ 것이 아니다. - P27

피억압자이면서 억압자들을 치료했던 파농의 딜레마는 이후 그의 탈식민주의 사상의 핵심이 되었다. ‘치료‘(해방)란 예전으로 돌아가는 정상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이다. 고문 경찰 스스로 자기 위치성을 사유하지 못하면 치료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극심한 불안이 따른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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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증언하다 보면 여러모로 외로워진다. 나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으로서 내가 겪은 폭력을 증언해 왔으나 종종 아득해졌다. ‘피해자‘로 호명되는 순간, 내가 가진 다른 정체성들은 빠르게 사라진다.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사건만큼이나 나 자신 또한 납작해지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료하게 나뉘고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해질수록 또다시 외로워진다. 내가, 아니 우리가 겪은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모순적인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얻으려 애쓰고 있다. 피해를 인정받되,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이것이 내게 고통이었음을 말하되, 나를 무너뜨릴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음을 말하기. 별일이 있었으되, 별일이 아니었음을 드러내기. - P161

나는 사람들이 명료해지기보다 함께 흔들리길 바란다. 연루되길 바란다. 선 긋고 피해자와 자신을 분리하는 대신 자신이 이미 선 안에 있던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것은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세상에 많은 좋은 것들이 그렇듯 더 보람찰 것이다. - P162

주디스 허먼 Judith Herman은 그의 책 『트라우마』(2012, 열린책들)에서 성인기에 외상을 경험하면 이미 형성된 성격이 파괴되지만, 아동기에 외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성격이 파괴되는 것만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 P172

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일대일 로맨틱 연애 서사의 해로움을 절감했다. 우리는 한 사람과의 로맨틱한 사랑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한다. 애인은 성적으로 매력적이면서도, 부모처럼 헌신적으로 날 돌보아 주어야 하고, 친구처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일관적으로 지속되길 바란다. 사랑의 열정은 무척 달콤하고 짜릿한 것이지만 금세 사라지고 흘러가 버리며, 사실 바로 그 속성 때문에 달콤하고 짜릿하다. - P182

사랑을 받는 일은, 사랑을 주는 이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곁에서 사라지면 멈춰진다. 사랑을 주는 일은, 우리 마음안에 타인을 향한 사랑이 남아 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히 외로워지지 않는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2014, 마음산책)에서 신형철이 썼던 글을 인용하며 이번 장을 마무리하고 싶다.

이제 여기서는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이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P186

이삼십 대 여성은 도대체 왜 우울할까.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건강연구센터 김새롬 연구활동가(예방의학 전문의)는 "이삼십 대 여성은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 사이의 균열이 가장 큰 세대, 그래서 추락하기도 쉬운 세대"라고 봤다. - P191

그러나 반복되는 가난은 공동체가 베푸는 호혜마저 두렵게 만든다. 호혜를 되돌려 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도 정말 돈이없을 때는 타인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것을 갚을 수 없을 같았다. 또한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에 그 상황이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한 달 뒤, 두 달 뒤를 바라볼 수 있는 비상금이 쌓인 후에야 조금씩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가난은 일상의 모든 부분에 침투한다. 필요한 소비에도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인간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삶을 개선해 보려는 모든 시도를 주저앉힌다. - P215

"지하철 1호선에서 화가 난 할아버지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 참 나 말고도 아픈 사람이 많다. 나만 되게 힘든 줄알았는데, 아프고 힘든데도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구나.’ 특히 앞 세대를 보면 더더욱 느껴요. 아빠들이 그렇게 술 마시고 뭐 부수고 그러잖아요. 저 사람들이 참 외롭고 아프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분노하는구나….
불안이나 결핍이 오래 쌓이면 망상이나 피해의식이 심해지죠. 분노도 강해지고, 어떤 사람은 분노로, 어떤 사람은 무기력으로, 양극단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여자들 나와서 행동하잖아요. 혜화역 시위에서 목소리 내잖아요. 폭발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이 쌓였구나 싶어요.
항상 생각하지만 여자들이 똑똑해요. 지금 이삼십 대가 병원에 찾 - P221

아가고 심리 상담하고 책 찾아보고 하는 것이 ‘내게 문제가 생겼다‘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만큼 예민한 촉이 있기 때문이에요. 부정적으로 기사화되는 게 많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치료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은 건 맞으니까요. 자기 가정사나 사생활도 거리낌 없이 쓰잖아요. 그런 용기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죠.
어떻게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될 것인지, 스스로를 컨트롤하면서 자립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그럴 때 부모에게도 의지해 보고, 남자친구나 회사에도 의지해 보지만 ‘결국에 다 소용없구나, 내 주관대로 살아가야지‘ 하고 가장 먼저 깨우치는 사람은 이삼십 대 여성인 것 같아요."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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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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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이 일

초판이 출간된지 30년이 넘었고, 책에 수록된 최초의 글은 무려 45년이 지난 것도 있지만, 전혀 낡은 느낌이 없다. 이토록 쓸쓸하면서도 최승자 시인을 계속 살게 한 것은 무엇일까. ‘담배와 커피와 외로움과 가난과 그리고 목숨을 하루종일 죽이면서도 그대로 살아있기로’ 한 것은 무엇일까.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실체화된 죽음이, 관념의 죽음에 대한 환상을 죽인 것인가. 삶과 연결된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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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1-11 07: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분 시집은 하나 있는데, 이 산문집도 너무 고독한 느낌일 것 같아 읽기 두렵네요^^; 많이들 좋다 하시니 사둘까 싶다가도요.

햇살과함께 2022-01-11 09:04   좋아요 3 | URL
쓸쓸하지만 또 쓸쓸하지만은 않아요^^

mini74 2022-01-11 07: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며 도서관 가서 시집 하나 빌려왔습니다. 담배와 커피와 외로움 가난 최승자시인의 단어들 같아요. ㅠ

햇살과함께 2022-01-11 09:02   좋아요 2 | URL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한 문장이에요. 저도 시집 찾아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