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강화도에 다녀왔다. 바람은 많이 불어 춥고 미세먼지로 공기는 너무 안 좋았던 날.

강화도에 북스테이, 북카페를 함께하는 책방이 많아졌다. 바다가 보이는 뷰에.

가보고 싶었던 곳은 <책방 시점>이었는데, 시점은 3월 한 달 방학이라는 공지가 있어,

마니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책방 국자와주걱>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책방이 있어 가보았다.

시골동네 가운데 있는 시골 집이다. 북스테이도 같이 하고 있다.



입구는 이렇다. 시골 외갓집에 가는 기분?



마당 한쪽엔...



사진을 찍으니 냐옹 냐옹하고 인사하더니 내려와서 몸을 부빈다. 인사성 밝은 냥이.



책은 이렇게 2권, 아니 이슬람 학교는 2권짜리니 총 3권.


<이슬람 학교>는 국내 유일무이한 이슬람 지역 전문가 이희수 교수의 책.

마침 이번달 <정희진의 공부>에서 정윤수님이 언급하신 이희수 교수라 궁금했는데

(그렇다고 이 책을 내가 고른 것은 아님. 아니 2권 중에서 뭐 살까 물어보길래 이걸로 골라주긴 했네)

강의를 책으로 엮었고, 사진도 있고 글자도 커서 청소년부터 읽을 수 있는 수준인 것 같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제목만으로도 끌리는, 많은 분들이 읽은(산?) 그 책.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에 막혀서 일주일 째 헤매고 있다. 어렵다는 말만 계속하게 되는 책.

인상 깊고 핵심을 찌르는 몇몇 쉬운 문장들이 너무 좋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어떻게 연결되는 거야?

왜 이런 얘길 하는 거야? 문장 하나에 너무 많은 걸 담고 있다. 어지럽다.

암튼 주말에 친구네 놀러가기 전에 끝내는 것을 목표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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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3-21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경이 익숙하고 정겹네요. 이희수 교수 방송에서 본 적 있는데 목소리가 참 특이하시더라구요 ㅎㅎㅎ
저도 해러웨이 읽고 있습니다. 햇살님 질문이 모두 다 제 질문입니다 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4-03-21 17:56   좋아요 1 | URL
이희수 교수 유투브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해러웨이는 너무 큰 산입니다. 연초부터 오르지도 못할 높은 산을 기어가고 있네요 ㅎㅎ
 

작년에 첫째가 학교 국어 수업 관련 난쏘공을 읽고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며 엄마가 한번 읽어보라고 하길래 뭐가 이해가 안간다는 거지 하고 궁금해서 - 그러나 반년간 책상 책탑에 쌓여있다가 - 16년 만에 다시 읽어보았다.

표제작을 먼저 읽어보았다. 아 이해가 안간다는 의미를 알겠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난장이라는 것도 소설의 기법도 우화같기도 동화같기도 하다. 화자가 계속 바뀌고 공간도 갑자기 바뀌고 시간도 과거와 현재가 시점이 갑자기 바뀐다. 단락이 구분되지 않은 채 마치 연결되는 대화처럼 묘사처럼 설명처럼.

또한 이 소설은 연작소설이기에 첫편부터 읽는 것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데, 아마 소설 전체가 아닌 표제작만 읽었겠지. 물론 개별 단편들만으로도 독립적인 작품이다.

70년대말 엄혹한 분위기에서도 이 소설을 살아남게 한 힘, 출간된지 45년이 넘은 이 시대까지 300쇄를 넘어 살아있게 한 힘. 그것은 아직도 우리 시대의 난장이가, 꼽추와 앉은뱅이가, 그들의 자식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겠지. ‘더 이상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는 조세희 작가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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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03-18 0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대 시절에 처음 <난쏘공>을 읽었을 때 동화를 보는 듯한 표현이 낯설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끝까지 읽게 만드는 <난쏘공>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독자마다 느낌이 다를 거예요. 의미가 숨어버린 상징적인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테니까요. ^^

햇살과함께 2024-03-18 12:25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읽었는데도 처음에 이게 뭐지 했네요 ㅎㅎ 현실을 너무 뾰족하게 사실적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동화같이 표현하여 더 널리 오래 읽히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2부 경합하는 독법들: 서사의 성격

바바라 크리스천 <흑인 페미니즘 비평>

2부 경합하는 독법들: 서사의 성격

페미니스트들은 자연과학에 관해 특별히 할 말이 있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성차별적 학문과 그런 학문의 생산 조건을 비판하는 데주력해야 하는가? 혹은 페미니스트들은 과학적 지식에 관한 모든 측면을 조명하는 인식론적 혁명의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가? - P127

혹은 그 함의에 그리스 학문의 유산과 17세기 과학혁명의 유산에견줄 만한 오늘날 특히 부상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지식 이론이 있는가? 과학적 탐구를 제공하는 페미니스트 인식론이 기존의 재현이론과 철학적 실재론의 가족구성원이 될 수 있는가? 혹은 페미니스트들은 실제 세계와 객관적 관점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부인하는 급진적인 인식론의 형태를 채택해야 하는가? 페미니스트 지식의 기준은 주체와 대상 사이, 혹은 비- 침략적 지식과 예측과 통제 사이의 균열이라는 딜레마를 진정으로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페미니즘은 과학과 인본주의 사이를 연결하는 데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지식과 권력이라는 곤혹스러운관계에 관해 새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가? 이름 짓기에 대한 페미니즘의 권위와 권력은 이 세계에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페미니즘은 주인 학문이될 수 있는가? - P128

길버트와 구바는 이야기를 창작하고 싶어 했던 19세기 여성작가들에게 끼친 밀턴(Milton)의 비범한 영향력을 분석하면서, 밀턴이 그들에게 신의 방식을 정당화했다고 주장한다. 여성작가들은 우리의 결핍과 차이를 표시하는 언어로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는 밀턴의 딸들로서 출발한다고 제시한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1979)는 밀턴의 문학적 딸들이 저술의 권위를 획득하기 위해 두 가지 주요한 전략을 채택했다고 주장한다. 그중 하나는 일단 기원 설화를 바로잡기 위해 다시한번 재해석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반역적으로선언하는 것이다. 그와 대단히 유사한 방식으로, 현대의 기원 설화들말하자면 생물학-의 제작에 책임이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설화를 올바로 세우고, 진화, 뇌, 호르몬에 관한 조잡한 과학을 청소하고, 생물학이 어떻게 이성과 권위의 틈새에서 아무런갈등 없이 제대로 생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려고 노력할 수도 - P129

있다. 혹은 페미니스트들은 보다 더 과감하게 완전히 새로운 탄생을 선언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전략 모두에서, 페미니스트들은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경합한다. 따라서 발화의 조건(terms ofspeech)을 설정하고자 경합하는 수사학적인 전략은 자연과학 분야의 페미니스트 투쟁의 핵심이다. 이 장에서 거론하는 책 네 권은 좋은 학문과 과학을 정의하는 조건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수사학적 전략을 다투기 위한 시합에 참여한 선수 명단으로 무엇보다 우선 읽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이 네 권과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책들이 권위를 입증하려고 채택한 말하기 양식을 검토한후에 우리는 새롭게 귀를 열고 이 장의 도입부 문단에서 제기했던질문으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 P138

사실에는 이론이실려 있다. 이론에는 가치가 실려 있다. 가치에는 역사가 실려 있다. 이런 경우 그런 역사는 특정한 연구자가 일상적이고 경험적인젠더 지배로부터 가능한 멀리 벗어나서 신빙성 있는 젠더 연구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 P140

‘내부‘의 편향을 제거할 수 있도록 고통스러운 과학적 실천을 행하는 것을, 과학의 이야기를 결정하는 ‘외부‘의 사회적 힘이라는관점과 대립시키는 입장을 주장하다 보면 문제가 생겨나는데, 그중 중요한 것은 내부와 외부라는 개념 자체가 잘못된 은유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힘과 매일의 과학 실천은 둘 다 내부에 존재한다. 둘 모두가 공적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의 일부로서, 이 중 어느 것도 순수성이나 오염의 근원이 아니다. - P167

수컷뿐 아니라 암컷과 새끼의 활동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 삶을 설명하는 동물 모델을 주장하면, 이제 더 이상은 과학에서 수용될수 없다. 이 결과는 역사적인 세계 여성운동과 문화적으로 특수한 남성과 여성이 영장류학에서 현장 및 실험실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가시화된 현상 둘 모두의 복잡한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과학적 실천을 통해 최근의 역사에 응답한 것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다인종적인 실천의 장에서, 이야기는 어떤 모습이 될까? - P193

1967년에 워시번 부계의 아들인 도널드 린드버그(Donald Lindberg)는 다윈 이래로 알려진 사실, 즉 암컷의 성선택을 강조했다. 동물 암컷이 일반적으로 누구와 짝짓기를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린드버그는 이 원칙을 영장류의 생리학적 특성과 진화에 대한 논쟁의 맥락에 위치시켰다. 몇 년이 흐른 후 딸인 에이드리엔 질먼이 린드버그의 요소를 가져와서 인간의 생활 방식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생리학적 조건에 대한 이야기로 편입시켰다. 이 생활방식은 채집 - 공유의 생계 경제 혁명과 인간 진화에 기초적이고 안정적인 여성 중심의 사회집단과 협동하는 방법을 아는 남성을 선발하게끔 하는 변경된 생식 관행의 맥락에서, 여성이 자신의 성욕을 더 많이 통제함으로써 가능해졌다. 16나는 이 새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또 나는 이 이야기가 발정기에 대한 과학적 논쟁에서 어떤 것이 유효한지 가늠하는 규칙들을바꾸었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최소한으로만 말하더라도, 저자가될 권위를 지녔고 과학적 담론의 규칙에 따라 작업하는 누군가가들려주는 이야기가 다양한 지면에 출판되고 있다. 그는 워시번의계보에 있는 다른 딸인 제인 랭커스터로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학술지 [인간 본성(Human Nature)]](1978)에 기고했다. 이 논문은 널리 읽히는 인기 많은 논문이다. 이야기는 퍼져 나간다. - P195

나의 핵심 논점은 공적담론에서 과학적 의미들이 출현하는 과정을 탈신비화할 것을 주장하는 데 있었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의미를만든다. 이는 영장류의 본성에 따른 것이다. - P196

연계된 경험이라는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영역을 매개로, 페미니스트들은 연결을 시도하고 운동에 가담한다. 복합성, 이질성, 특수한 입장성, 권력으로 충전된 차이들은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와 같은 것이 아니다. 경험은 기호학이며 의미의 체현이다[드로레티스(de Lauretis), 1984]. 페미니스트들이 반드시 표명해야 하는 차이의 정치학은 경험의 정치학에 근거해야 하는데, 이런 경험의 정치학은 자기 자신의 끝없는 차이에 대해 심리학적이고 자유주의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특수성, 이질성, 연결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집단적인 것이다. 차이는정치적이다. 말하자면 차이는 권력, 설명가능성, 희망에 관한 정치다. 경험은 차이와 마찬가지로, 모순적이고 필연적인 연결에 관한 것이다. - P198

그런 점들은 오드리 로드(AudreLorde)의 「자미(Zami)](1982)*에 나타난다. 「자미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인 자전신화는 역사, 전기, 신화가 혼합된 것이라고, ‘장르‘를 읽어 낸 케이티 킹(Katie King)은 강력하게 주장했다(1988). 읽기는 무엇이 여성의 경험으로 간주될 만한 것인가를 구성하는 테크놀로지로 기능할 수 있다. - P206

아마도 수많은 식민주의 담론이 그랬던 것처럼, 에메체타의 픽션은 응코와 같은 여성들이 그들의 몸이라는 영토 위에 타자가 써 내린 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을 막아 내고자 한 분투로 읽어 내야 한다. - P223

우리가 누구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읽기 자체 속에서 생산된다. 모든 읽기는 잘못된 읽기이자, 다시 읽기이며, 편파적인 읽기이자 강제적 읽기이며 상상된 텍스트의 읽기이기도 하다. 텍스트는 원래부터궁극적으로 그냥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세계가 원래부터 무너져 있었던 것처럼, 텍스트는 이미 언제나 서로 경합하는 실천과 희망으로 뒤엉켜 있다. 여성 의식을 표시한 당대의 지도 위에서 대단히 특수하고 순수하지 못한 지역적/지구적, 개인 - P224

적/정치적인 우리의 위치에서 비롯된, 이들 각각의 읽기야말로 교육적 실천이다. 그런 실천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여성 경험‘이라는 막강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권력으로 충전된 차이, 특수성, 친화성이라는 호명을 통해 작동한다. 만회 불가능한 하나라는 환상의 상실은 차이 속에 자리한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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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나는 책을 읽기 위해 자주 노동자 교회에 갔다.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들을 목사가 찾아주었다. 공포심이 우리의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을 목사는 강조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일반 교회의 목사들이 그공포심을 이용한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었다. 노동자 교회의 목사는 달랐다. 그도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사회조사연구회‘라는 모임에 끌어들였다. 지부장은 공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표 복사본만 게시판에 나붙었다. 은강방직 노조는 조용히 침몰해가고 있었다. - P221

노인은 간단히 말했다.
"아주 좋아질 거야. 거기다 동그라미를 쳐줘."
학생들은 나무껍질 문 앞에 서 있었다. 뜻밖의 대답이라는 표정을 그 아이들이 지었다.
"나는 곧 죽을 거야."
애꾸눈 노인이 말했다. 어머니는 그 노인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죽은다음에야 평온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찾아온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생활은 아주 나빠질 것이다"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불안해했다. 어머니는 내가 질 싸움을 시작했다고 믿었다. 나는 어머니가 저목장에 나가는 것이 못마땅했다. - P237

클라인씨의 병

"죽기가 살기보다 쉽지."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얘들 아버지를 원망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우."
"그러시겠죠." - P247

"아버지는 꼽추가 아녜요. 앉은뱅이도 아니구요. 아세요?"
"안다."
아버지는 다시 말했다.
"나는 벌레야." - P252

"그래서, 뭘 얻었니?"
"눈을 떴어요."
"너는 처음부터 장님이 아니었어!"
지섭이 큰 소리로 말했다.
"현장 안에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깥에 나가서 뭘 배워? 네가 오히려 이야기해줘야 알 사람들 앞에 가서 눈을 떴다구? 장님이 돼버린 거지, 장님이, 그리고, 행동을 못 하게 스스로를 묶어버렸어. 너의 무지가 너를 묶어버린 거야. 너를 신뢰하는 아이들을 팽개쳐버리구."
"그렇진 않아요."
내가 말했다. - P256

추위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 어느 날 나는 과학자를 찾아갔다. ‘클라인씨의 병‘은 그의 방 창가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병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알았어요."
빠른 목소리로 나는 말했다.
"이 병에서는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입니다. 안팎이 없기 때문에 내부를 막았다고 할 수 없고, 여기서는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벽만 따라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죠.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예요."
과학자는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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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남편은 신문을 놓지 않았다. 그는 직장에서, 지하도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리고 숱한 배기 가스 속에서 쫓기며 몸둘 바를몰라하는 자신을 느낀다고 말했었다. 그는 또 출퇴근길의 만원 버스 속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몇 대씩 줄을 지어 달려나가는 시청 쓰레기차를 본다고도 말했었다. 신애는 남편의 말을 알아듣는다. 얼마나 많은 정신이 날마다 시청 쓰레기차에 실려나가 버려지는가.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 P35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나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돌아갈 것 같았다. 형도 아버지가 든 술병을 빼앗아버리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 눈을 감는 날의 일을 생각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다. 언덕 위 교회의 목사는 달랐다. 그는 인간의 숭고함. 고통. 구원을 말했다. 나는 인간이 죽은 다음에 또 다른 생을 시작한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수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숭고함도 없었고, 구원도 있을 리 없었다. 고통만 있었다. 나는 형이 조판한 노비 매매 문서를 본 적이 있다. 확실히 아버지만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이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첫번째 싸움에서 져버렸다. - P115

궤도 회전

윤호는 말했다.
"여러분은 십대 노동자 문제를 놓고 삼십 분 동안이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십대 노동자에대해 죄스러운 마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행복동에 살 때 어느 분의 소개로 난장이 아저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동안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아들과 딸이 공장 지대에 가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잡하고 힘든 일을 합니다. 그들의 어린 동료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인간적인 대우를 어떻게 해야 받는지도 모릅니다. 현장 일이 그들의 성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날마다 무지한 생산 계획을 세웁니다. 노동자들은 기계를 돌려 일합니다. 어린 노동자들은 생활의 리듬을 기계에 맞춥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기계에 빼앗깁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생각나죠? 그들은 낙하하는 물체가 갖는 힘, 감겨진 태엽 따위가 갖는 힘과 같은 기계적에너지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처럼 십대 노동자 이야기를 하며 노동이라는 말, 의무라는 말, 자연적인 권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처럼 그들을 돕자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갖는 감상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못 줍니다.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린 동료들이 겪는 일을 보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197×년, 한국은 죄인들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 P166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어머니의 가계부는 이런 내역들로 꽉 찼다. 나는 은강에서의 생존비를생각했다. 생활비가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한 생존비였다. 우리 삼남매는 죽어라 공장 일을 했다. 우리는 우리의 생산 공헌도에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 네 명의 가족을 둔 그해 도시 근로자의 최저 이론 생계비는 팔만삼천사백팔십 원이었다. 어머니가 확인한 삼남매의 수입 총액은 팔만이백삼십일원이었다. 그러나 보험료 · 국민저축 · 상조회비 · 노동조합비 · 후생비 · 식비 등을 제하고 어머니 손에 들어온 돈은 육만이천삼백오십일 원밖에 안되었다. 이 돈을 벌어오기 위해 우리는 죽어라 일했고 어머니는 늘 불안해했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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