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경합하는 독법들: 서사의 성격

바바라 크리스천 <흑인 페미니즘 비평>

2부 경합하는 독법들: 서사의 성격

페미니스트들은 자연과학에 관해 특별히 할 말이 있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성차별적 학문과 그런 학문의 생산 조건을 비판하는 데주력해야 하는가? 혹은 페미니스트들은 과학적 지식에 관한 모든 측면을 조명하는 인식론적 혁명의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가? - P127

혹은 그 함의에 그리스 학문의 유산과 17세기 과학혁명의 유산에견줄 만한 오늘날 특히 부상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지식 이론이 있는가? 과학적 탐구를 제공하는 페미니스트 인식론이 기존의 재현이론과 철학적 실재론의 가족구성원이 될 수 있는가? 혹은 페미니스트들은 실제 세계와 객관적 관점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부인하는 급진적인 인식론의 형태를 채택해야 하는가? 페미니스트 지식의 기준은 주체와 대상 사이, 혹은 비- 침략적 지식과 예측과 통제 사이의 균열이라는 딜레마를 진정으로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페미니즘은 과학과 인본주의 사이를 연결하는 데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지식과 권력이라는 곤혹스러운관계에 관해 새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가? 이름 짓기에 대한 페미니즘의 권위와 권력은 이 세계에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페미니즘은 주인 학문이될 수 있는가? - P128

길버트와 구바는 이야기를 창작하고 싶어 했던 19세기 여성작가들에게 끼친 밀턴(Milton)의 비범한 영향력을 분석하면서, 밀턴이 그들에게 신의 방식을 정당화했다고 주장한다. 여성작가들은 우리의 결핍과 차이를 표시하는 언어로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는 밀턴의 딸들로서 출발한다고 제시한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1979)는 밀턴의 문학적 딸들이 저술의 권위를 획득하기 위해 두 가지 주요한 전략을 채택했다고 주장한다. 그중 하나는 일단 기원 설화를 바로잡기 위해 다시한번 재해석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반역적으로선언하는 것이다. 그와 대단히 유사한 방식으로, 현대의 기원 설화들말하자면 생물학-의 제작에 책임이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설화를 올바로 세우고, 진화, 뇌, 호르몬에 관한 조잡한 과학을 청소하고, 생물학이 어떻게 이성과 권위의 틈새에서 아무런갈등 없이 제대로 생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려고 노력할 수도 - P129

있다. 혹은 페미니스트들은 보다 더 과감하게 완전히 새로운 탄생을 선언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전략 모두에서, 페미니스트들은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경합한다. 따라서 발화의 조건(terms ofspeech)을 설정하고자 경합하는 수사학적인 전략은 자연과학 분야의 페미니스트 투쟁의 핵심이다. 이 장에서 거론하는 책 네 권은 좋은 학문과 과학을 정의하는 조건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수사학적 전략을 다투기 위한 시합에 참여한 선수 명단으로 무엇보다 우선 읽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이 네 권과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책들이 권위를 입증하려고 채택한 말하기 양식을 검토한후에 우리는 새롭게 귀를 열고 이 장의 도입부 문단에서 제기했던질문으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 P138

사실에는 이론이실려 있다. 이론에는 가치가 실려 있다. 가치에는 역사가 실려 있다. 이런 경우 그런 역사는 특정한 연구자가 일상적이고 경험적인젠더 지배로부터 가능한 멀리 벗어나서 신빙성 있는 젠더 연구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 P140

‘내부‘의 편향을 제거할 수 있도록 고통스러운 과학적 실천을 행하는 것을, 과학의 이야기를 결정하는 ‘외부‘의 사회적 힘이라는관점과 대립시키는 입장을 주장하다 보면 문제가 생겨나는데, 그중 중요한 것은 내부와 외부라는 개념 자체가 잘못된 은유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힘과 매일의 과학 실천은 둘 다 내부에 존재한다. 둘 모두가 공적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의 일부로서, 이 중 어느 것도 순수성이나 오염의 근원이 아니다. - P167

수컷뿐 아니라 암컷과 새끼의 활동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 삶을 설명하는 동물 모델을 주장하면, 이제 더 이상은 과학에서 수용될수 없다. 이 결과는 역사적인 세계 여성운동과 문화적으로 특수한 남성과 여성이 영장류학에서 현장 및 실험실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가시화된 현상 둘 모두의 복잡한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과학적 실천을 통해 최근의 역사에 응답한 것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다인종적인 실천의 장에서, 이야기는 어떤 모습이 될까? - P193

1967년에 워시번 부계의 아들인 도널드 린드버그(Donald Lindberg)는 다윈 이래로 알려진 사실, 즉 암컷의 성선택을 강조했다. 동물 암컷이 일반적으로 누구와 짝짓기를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린드버그는 이 원칙을 영장류의 생리학적 특성과 진화에 대한 논쟁의 맥락에 위치시켰다. 몇 년이 흐른 후 딸인 에이드리엔 질먼이 린드버그의 요소를 가져와서 인간의 생활 방식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생리학적 조건에 대한 이야기로 편입시켰다. 이 생활방식은 채집 - 공유의 생계 경제 혁명과 인간 진화에 기초적이고 안정적인 여성 중심의 사회집단과 협동하는 방법을 아는 남성을 선발하게끔 하는 변경된 생식 관행의 맥락에서, 여성이 자신의 성욕을 더 많이 통제함으로써 가능해졌다. 16나는 이 새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또 나는 이 이야기가 발정기에 대한 과학적 논쟁에서 어떤 것이 유효한지 가늠하는 규칙들을바꾸었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최소한으로만 말하더라도, 저자가될 권위를 지녔고 과학적 담론의 규칙에 따라 작업하는 누군가가들려주는 이야기가 다양한 지면에 출판되고 있다. 그는 워시번의계보에 있는 다른 딸인 제인 랭커스터로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학술지 [인간 본성(Human Nature)]](1978)에 기고했다. 이 논문은 널리 읽히는 인기 많은 논문이다. 이야기는 퍼져 나간다. - P195

나의 핵심 논점은 공적담론에서 과학적 의미들이 출현하는 과정을 탈신비화할 것을 주장하는 데 있었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의미를만든다. 이는 영장류의 본성에 따른 것이다. - P196

연계된 경험이라는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영역을 매개로, 페미니스트들은 연결을 시도하고 운동에 가담한다. 복합성, 이질성, 특수한 입장성, 권력으로 충전된 차이들은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와 같은 것이 아니다. 경험은 기호학이며 의미의 체현이다[드로레티스(de Lauretis), 1984]. 페미니스트들이 반드시 표명해야 하는 차이의 정치학은 경험의 정치학에 근거해야 하는데, 이런 경험의 정치학은 자기 자신의 끝없는 차이에 대해 심리학적이고 자유주의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특수성, 이질성, 연결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집단적인 것이다. 차이는정치적이다. 말하자면 차이는 권력, 설명가능성, 희망에 관한 정치다. 경험은 차이와 마찬가지로, 모순적이고 필연적인 연결에 관한 것이다. - P198

그런 점들은 오드리 로드(AudreLorde)의 「자미(Zami)](1982)*에 나타난다. 「자미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인 자전신화는 역사, 전기, 신화가 혼합된 것이라고, ‘장르‘를 읽어 낸 케이티 킹(Katie King)은 강력하게 주장했다(1988). 읽기는 무엇이 여성의 경험으로 간주될 만한 것인가를 구성하는 테크놀로지로 기능할 수 있다. - P206

아마도 수많은 식민주의 담론이 그랬던 것처럼, 에메체타의 픽션은 응코와 같은 여성들이 그들의 몸이라는 영토 위에 타자가 써 내린 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을 막아 내고자 한 분투로 읽어 내야 한다. - P223

우리가 누구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읽기 자체 속에서 생산된다. 모든 읽기는 잘못된 읽기이자, 다시 읽기이며, 편파적인 읽기이자 강제적 읽기이며 상상된 텍스트의 읽기이기도 하다. 텍스트는 원래부터궁극적으로 그냥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세계가 원래부터 무너져 있었던 것처럼, 텍스트는 이미 언제나 서로 경합하는 실천과 희망으로 뒤엉켜 있다. 여성 의식을 표시한 당대의 지도 위에서 대단히 특수하고 순수하지 못한 지역적/지구적, 개인 - P224

적/정치적인 우리의 위치에서 비롯된, 이들 각각의 읽기야말로 교육적 실천이다. 그런 실천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여성 경험‘이라는 막강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권력으로 충전된 차이, 특수성, 친화성이라는 호명을 통해 작동한다. 만회 불가능한 하나라는 환상의 상실은 차이 속에 자리한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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