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왜? 나는 여러 번 자신에게 물었다. 절대적인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놓고 왜 여자들은 자신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언어와 감정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여자들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나의 또다른 세상이 통째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자들의 전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바로 이 전쟁의 역사를 쓰고자 한다. 여자들의 역사를. - P18

회상이란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 현실에 대한 열정적인, 혹은 심드렁한 서술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과거의 새로운 탄생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창작물이다. 사람들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삶을 새로 만들어내고 또 새로 ‘써내려간다. 있는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보태고 있는이야기를 ‘뜯어고친다‘. 바로 이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고통은 어떠한 거짓도 녹여내고 없애버린다. 고통은 너무나도뜨겁기에! 확신컨대, 간호사나 요리사, 세탁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꾸미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 이들은 신문이나 책따위에서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는다.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삶에서 뽑아낸 진짜 고통과 아픔을 들려준다. 많이 배운 사람들의 감정과 언어는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시간에 의해 다듬어지기 쉽다. 흔히들 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본질이 아닌 부차적인 것들에 쉽게 물든다. 영웅심 따위에 어떻게 퇴각했는지, 어떻게 공격을 감행했는지, 어느 전선에서 싸웠는지는 ‘남자‘의 전쟁에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그것이 아니라 ‘여자‘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듣고 싶었고,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삶의 영역이 저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 P19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게 여겨지는 곳. 그곳에선 역사보다 더 강력한무언가가 사람을 다스린다. 내 글의 폭을 넓혀야겠다. 전쟁에 대한 진실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책을 써야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물음. ‘사람은 자신 안에 또다른 자신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른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까?‘ 이 물음을 이제 나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악은 분명 매혹적이다. 그리고 선보다 솜씨가 뛰어나다. 마음을 더 잡아끈다. 내가 전쟁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세계에 점점 더 깊이 빨려들어가는 사이, 다른 것들은 모두 빛을 잃고 흐릿해지며 시들해졌다. 거대하고 무자비한 세계다. - P23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 고통은 지난한 삶의 증거이다. 다른 증거따윈 없다. 다른 증거 같은 건, 나는 믿지 않는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했던가.
나는 비밀에 직접 잇닿는, 비밀에 대한 최상의 정보인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삶의 비밀을 간직한 고통을. 모든 러시아문학은 고통에 대해 말한다. 사랑보다 고통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내게 고통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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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 가족이라는 위계 집단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크리스틴 델피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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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혹은 가정 내 노동의 정의 부재 내지 잘못된 정

가정 내 소비에서의 위계를 무시한 가족을 소비단위정의하는 문제


이 모든 지점은 분명 연결되어 있다그러나 가사노동이라는 문제가 관심을 유발하고 많은 글과 책질문이 이를 다루었음에도 근본적인 한 지점이 불명확하게 남아 있다바로 연구 대상인 가사노동의 정의 자체에 대한 것이다. - P9


가사노동의 특징적인 생산 관계가 가사노동에만 해당하지 않고 혹은 가사노동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른 종류의 과업과 노동 역시 특정 지으므로우리는 가정 내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가사노동의 개념을 대체하기를 제안한다연구 대상은 분명 사회학적이고 광범위한 의미의 집에서 무료로 실시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가사노동에 대한 잘못된 정의는더 정확하게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와 기술적 정의 그리고 생산 관계 연구 사이의 모순은 연구에 한계를 불러왔다. 가사 내 모든 과업에 대한 임금 지급요구가 그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비록 한계를 가장 심각하게 드러내는 사례는 아니나 이는 또 다른 문제다-라고 할 수 있다. – P46~47


희생을 굳이 사랑할 필요조차 없다희생은 두 번째 성정이 된다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그 자신도 물론이다마찬가지로 희생 이데올로기가 여성적 본성의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스스로 되뇔 필요도 없다본인의 헌신과 너그러움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보편적인 원칙은 일상생활의 자동화만으로는 행동을 유도하기에 충분치 않게 되는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나 필요해지는 것이다. - P99


우리에게도 익숙하다밥상에서의 위계.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얘들아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지 않았어탕수육이 더 좋을 뿐.



이런 방식으로 가정 내에서 생산되는 서비스를 고려하면가족 소비의 회계적 계산 방식뿐 아니라 가족 생산-이런 서비스는 ‘자가생산되기 때문에ㅡ의 평가 방식도 크게 바뀌게 된다특히생산 차원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가족에 적용되는 ‘단위라는 용어의 의미에 문제를 제기한다이로써 우리는 경제적 제도로서의 가족이 갖는 내적인 기능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P106



흥미롭다. (잠시 쉬고) 계속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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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19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 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 자신도 물론이다>

아... 너무나 딥빡이 몰려오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휴..

햇살과함께 2024-04-19 09:56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빡치는 대목입니다….
 
Big Nate: Game On!: Volume 6 (Paperback)
Peirce, Lincoln / Andrews McMeel Pub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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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Big Nate 시리즈. 농구, 야구, 축구 경기를 통해 엉뚱발랄한 Nate의 고난을 볼 수 있다. 인생이란 sixth-grader에게도 쉽지 않지. 가끔 쉬어가는 영어읽기용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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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눈잡이 아침달 시집 25
이훤 지음 / 아침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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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이자 시인의 ‘양눈’으로 바라본 세상. 고국과 이국의 시선이 담긴 ‘양눈’으로 바라본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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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혹은 가정 내 노동

가사노동에 대한 문헌이 매년 점점더 풍부해지면서, 여러 ‘학파‘가 형성되기에이르렀다. 그러나 대부분이 여성인 저자들사이에는 가사노동의 주요한 경제적 특성에대한 공통의 합의가 존재한다. 하나는 가사노동이 노동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가사노동은 ‘고려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다른 한측면은 가사노동이 무료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를 노동으로 인정하는 일이 간단치않았고, 따라서 이는 학문적인 진일보이자발견이라 할 만하다. - P8

이 모든 지점은 분명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이라는 문제가 관심을 유발하고 많은 글과 책, 질문이 이를 다루었음에도근본적인 한 지점이 불명확하게 남아 있다. 바로 연구 대상인 가사노동의 정의 자체에대한 것이다. - P9

가사노동에 부여되는 경험적인 내용은 이에 대한 이론적인 해석과 무관할 수 없다. 만일 가사노동의 핵심적인 속성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졌더라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은 가사노동 관련 논쟁들이 다른 끝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동의란 연구 대상인 가사노동의 내용에 대해서 더는 경험적이지 않은, 형식적 정의를 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가사노동의 중요한 속성은 경험적인 연구대상을 구조적·경제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에만 발견될 수 있다. - P11

흔히 가사노동이 무료인 까닭은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이고, 생산적이지 않은 까닭은 ‘가치체계에 들어있지 않아서‘, 다시 말 - P24

해 시장을 통하지 않아서라고 주장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그 자체로 빈약하며, 특히 생산성에 대한 정의를 아리송하게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비시장적인 생산들, 즉 생산자들이 직접 소비하는 결과물들이 생산적인 것으로서 집계되고 처리된다는 걸 방금 확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을 통하지 않거나 교환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가사노동의 지위를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국내총생산의 규칙대로라면 가사노동이 생산적임을 밝혀냈다. 부를 증가시키는모든 것을 생산적이라 정의하는 한, 이 규칙은 합당하다. 이런 견해에 따르자면 가사노동은 ‘가정 내 자가소비‘라는 항목에서 집계된 생산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자가소비의 과정은 사실 최 - P25

종적인 소비에 이르는 모든 행위가 생산적이거나, 어떤 것도 생산적이지 않거나 둘 중하나여야 한다(「주적」 참조). - P26

따라서 우리는 엄청난환원 논리를 맞닥뜨린다. 이는 분명 이론적인 교착점이다. 직업노동과 농장에 대한 공식적이고 경제적인 정의가 없다.(이 둘은 상호 되먹임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쪽이 정의를 갖지 못하면 다른 한쪽도 가질 수 없다.)또한 직업노동이 경제적 정의를 가지지 못하면, ‘가사노동‘을 이로부터 공식적으로 구분하는 특징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가사노동 역시 정의될 수 없다. 그래서 분명 서로되먹임 상태에 놓여 있는 이 두 용어는 정의 - P31

되지 않은 채, 자신들이 속해야 하는 경제적논리 속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별개의 개념이아니라 그저 서로 반대되는 경험적 대상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 P32

우리의 가설에서는 가사노동이 생산적이라 여겨지지 않으며 집계되지도 않는이유가 그것이 - 가사의 영역에서 -무료로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사노동은보수를 지급받지 않고, 일반적인 방식으로교환되지도 않는다. 그 까닭은 이 노동을 구성하는 서비스의 성격(이 모든 서비스를 시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이나 이를 제공하는사람의 특성(가정에서 무상으로 갈비를 굽는 여성이 다른 가정에서 같은 일을 하면 곧장 보수를 받는다) 때문이 아니라, 아내라는 - P35

이름의 노동자가 가정에서 그의 ‘주인‘과 맺는 계약의 특수한 속성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노동의 무보수성은 가사노동만이 아니라 자가소비를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도 해당한다. 어떤 저자들은 가사노동이 생산적이고 필수적이며 보수를 지급받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가 자가소비를 위한것이라고 칭하는 모든 가사노동생산 자체를 위한 모든 노동-이, 부당하게 보수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무료라고 결론지었다(Dalla Costa, James 1973). - P36

가사노동의 특징적인 생산 관계가 가사노동에만 해당하지 않고 혹은 가사노동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른 종류의 과업과 노동역시 특정 지으므로, 우리는 가정 내 노동이 - P46

라는 개념으로 가사노동의 개념을 대체하기를 제안한다. 연구 대상은 분명 사회학적이고 광범위한 의미의 집에서 무료로 실시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에 대한 잘못된 정의는, 더 정확하게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와 기술적 정의 그리고 생산 관계 연구 사이의 모순은 연구에 한계를 불러왔다. 가사 내 모든 과업에 대한 임금 지급요구가 그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비록 한계를 가장 심각하게 드러내는사례는 아니나 이는 또 다른 문제다-라고할 수 있다. - P47

가족과 소비

듀발(Duvall 1957)의 유명한 문장인 "가족은 생산에서 소비로 이동했다"라는 말은 이러한 방식의 사유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겠다. - P56

소비라는 단어의 사용은 개인의 소비를 연구한다는 함의를 갖고 있다. 소비-모든 소비와 가계와의 관계를 관찰할 때는, 반드시 분배가 연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분배를 다룬 연구 문헌이 무척 적다는것을 알 수 있다. 관련 연구가 존재하지 않을뿐 아니라 해당 주제는 이론적 측면에서조차 다루어지지를 않았다. 마치 분배에 대한연구가 쓸모없기라도 한듯, 전부 금지되다시피 했다. - P64

한편 공동체, 합의체, 가족 소비에 깃함의는 고려되는 가족의 소득이 낮을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이런 믿음은 구체적인분석에 근거하지 않으며, 대신 불평등이 ‘최저 생계비‘와 관련되었을 때보다 ‘잉여‘와 관련되었을 때 인간적으로 덜 잔인하다는 도덕적 감정에 근거한다.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생각해낼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생각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이 감정은 소비라는 제한된 틀을 벗어난다. 엥겔스(Engels 1972)와 이후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49)가 노동자 가족 내의 위계에서, 위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그저 - P74

본질적인 ‘불행 속의 평등‘평등은 불행을완화하며 유일하게 이로부터 경험적 사실을해석해내게 한다-을 퇴색시킬 뿐인 ‘난폭함의 잔재‘만을 보았다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도덕적 감정은 또한 가족이라는 틀에서도 벗어난다. 마르크스주의 저자들은 소위 ‘생계형 사회 내부에서 마주치게 되는 위계를 계급 즉 착취로 해석하기를 거부했고, ‘재분배 권력‘이라는 기능주의적인 개념으로 완곡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잉여와 사회적 불평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경험적인발견이 아니라 잉여의 발생이 불평등의 등장을 설명한다는 도그마의 한 요소다(Terray1972). - P75

소비 격차는 사실상 관습이나 다름없다. 이는 관계된 사람들이 그 제약을 내면화하고 마치 즉각적인 행동처럼 재생산한다는뜻이다. 수많은 격언, 속담, 신념이 각자가맡은 역할의 내용을 가르치고 그 역할을 정당화한다. - P83

‘크고‘ ‘작은‘ 노동의 분류 기준은 그것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이의 지위에 따른다. 남성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큰‘일로 여겨지는 특정 노동은 어떤 지역에서는 여성의몫이다. 그리고 이때 이 일은 중요성을 잃는다. 성별화된 많은 노동 가운데 극히 일부를예로 들자면 감자캐기, 사역 동물 관리 등이있다. - P88

희생을 굳이 사랑할 필요조차 없다. 희생은 두 번째 성정이 된다. 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 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 그는 이렇게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 자신도 물론이다. 마찬가지로 희생 이데올로기가 여성적 본성의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스스로 되뇔 필요도 없다. 본인의 헌신과 너그러움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보편적인 원칙은 일상생활의 자동화만으로는 행동을 유도하기에 충분치 않게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나 필요해지는 것이다. - P99

이런 방식으로 가정 내에서 생산되는서비스를 고려하면, 가족 소비의 회계적 계산 방식뿐 아니라 가족 생산-이런 서비스는 ‘자가생산되기 때문에ㅡ의 평가 방식도크게 바뀌게 된다. 특히, 생산 차원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가족에 적용되는 ‘단위‘라는용어의 의미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로써 우리는 경제적 제도로서의 가족이 갖는 내적인 기능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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