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오스카 와일드 <레딩 감옥의 노래>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루스 랜들 <활자 잔혹극>
치누아 아체베 <더 이상 평안은 없다>
레이 브레드버리 <화씨 451>
크리스토퍼 몰리 <파르나소스 이동서점>
미셸 푸코 <성의 역사>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조이스 <율리시스>

프롤로그

나는 책을 쓸 때마다 출발점으로, 첫 경험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친 감정으로 돌아간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글쓰기란 우리가 글을 쓴 뒤에 무엇을 썼는지 발견하려고 애쓰는 일이라고 한다. 마치 발밑에 있는 바닥이 금이 가는 걸 느끼듯이 말이다. - P11

마케도니아인들은 자긍심을 지닌 사람들이었으나 외부에서는 자신들을 하찮은 부족사회로 치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의 속주였으며 아테네인이나 스파르타인의 혈통 아래에 위치해있었다. 마케도니아인들은 전통적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던 반면에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대부분 훨씬 복합적인 통치 형태를 경험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케도니아인들은 여타 민족이 이해하기 힘든 방언을 사용했다. - P35

알렉산드로스는 보편성과 지식에 대한 의욕과 융화에 대한 독특한 열망으로 자신의 가장 중요한 꿈이던 도서관을 현실화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경계가 없었다. 그곳엔 그리스인, 유대인, 이집트인, 이란인, 인도인의 언어가 평화롭게 공존했다. 그 정신적 영토는 그들 모두가 환대받는 유일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 P47

그렇지만 오늘날의 독자에게 바벨의 도서관은 가상세계, 즉 검색 알고리즘에 따라 나타나는엄청난 정보와 텍스트의 네트워크에서 우리를 미로 속 환영처럼 헤매게 만드는 거만한 인터넷에 대한 예언적 알레고리이다. - P49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놀라움과 불안 사이에서 경련하던 헬레니즘 문명에 상반된 충동이 나타났다. 찰스 디킨스의 말처럼, "최고의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회의주의와 종교적 맹신, 호기심과 편견, 관용과 배척이 동시에 발생했다. 자신을 세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민족주의에 함몰된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사상들이경계를 넘어 전파되면서 쉽게 뒤섞였다. 그리하여 절충주의가 나타났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를 가로지르는 스토아 철학은 평정과금욕과 내적 강화를 통해 번뇌를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마치 불교 신자들이 행하던 수행처럼 말이다. - P61

아마도 그렇기에 우리처럼 읽게 된 초기 사람들, 다시 말해 침묵속에서 작가와 말 없는 대화를 하게 된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읽는 걸 보고 호기심을 느꼈으며 이 사실을 「고백록』에기록했다. 누군가 자기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처음 봤다고 한다. 그는 주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책을 읽는 그의 눈이 페이지를 훑어가며 글을 이해해갔다. 하지만 입은 꾹 다물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교가 물리적으로 가까이있으면서도 실은 자기 옆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주교는다른 세계로 달아나 있으며 움직이지도 않은 채 찾을 수 없는 곳을여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장면은 당황스러웠으며 동시에 그를매료시켰다.
따라서 당신은 아주 특별한 독자로서 혁신자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것이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당신과 나의 자유롭고 비밀스러운 대화는 엄청난 발명품이다. - P73

장갑을 끼고 두 손에 양피지를 들던 그 순간, 인간의 잔인함이 떠올랐다. 오늘날 좋은 품질의 가죽옷을 만들려고 새끼 바다표범을 몽둥이로 내리쳐 죽이듯이 중세에도 가장 비싼 필사본은 극도의 잔학함을 요구했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아주 하얀 가죽으로 만든 아름다운 양피지가 있는데, 바로 ‘송아지 가죽‘이다. 갓 태어난 새끼나 어미의배 속에서 유산된 태아의 가죽이다. 과거의 말이 이 시대까지 이를 수있도록 수 세기 동안 피 흘린 동물들을 생각했다. 정교한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양피지 속에는 상처받은 가죽과 그들이 흘린 피가 숨겨져 있다. 우리는 진보와 아름다움이 고통과 폭력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인간의 그런 모순적 행동 속에서 무수한 책들이 사랑과 선과 동정에 대한 현자들의 말을 세계로 퍼트리는 데 활용됐다. - P100

좋은 필사본을 만들려면 한 무리의 가축이 소요될 수도 있었다. 오늘날처럼 책이 많이 출판됐다면 가축이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가 피터 왓슨(Peter Watson)의 계산에 따르면, 가죽 한 장의 크기를 50제곱센티미터로 가정하고 150쪽의 책을 만들려면 열 마리에서열두 마리의 가축이 필요했다. 또 다른 전문가에 따르면 구텐베르크성경을 만드는 데 100장의 가죽이 필요했다고 한다. 따라서 책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양피지 사본을 만드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됐다. 그러니 책을 소유한다는 건 오랫동안 귀족과 종교인들의 절대적인 특권이었다. 한 서기는 13세기 성경에 재료의 결핍을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하늘이 양피지고 바다가 잉크라면 좋았을 것을." - P101

성스러운 책이 없던 세계에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성서에 가까웠다. 호메로스에 열광하던 그리스인 작가들, 예술가들, 철학자들은 종교적 감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호메로스의 작품 세계를비판하고 탐험하고 확장할 수 있었다.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의 비극이 "호메로스의 위대한 연회에 있는 작은 빵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 P108

호메로스의 수수께끼를 풀기란 불가능하다. 호메로스의 그림자는어스름한 대지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점에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더욱 매력적이다. 두 작품은 구전의 시대, 잃어버린 말의 시대에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예외적 작품이다. - P119

영속성을 위한 노력 속에서 그들은 운율적 언어가 훨씬 기억하기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발견을 통해 시가 탄생했다. 낭송할 때, 말의 멜로디는 텍스트가 바뀌지 않고 반복되도록 도와준다. 실수를 저지르면 음악적 연속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너무나도 많은 것을 망각했지만,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시를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 P122

이런 변화는 아주 더디게 진행됐다. 우리는 새로운 발명품이 과거의 것을 순식간에 제거한다고 상상하지만, 그 과정은 광속이 아니라종유석이 만들어지는 속도처럼 더디다. 종유석 끝으로 물방울들이 미끄러지며 석회 성분을 남기듯, 문자는 새로운 의식과 정신을 키워나갔다. 고대 그리스에서 구전성이 사라진 시기는 기원전 8세기에서기원전 4세기경이다. 상당량의 책을 축적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엄밀한 의미에서 유럽 최초의 지식인이었다. - P128

다 자란 지금도 책에 대한 내 감성은 자아도취적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나를 파고들 때, 그 말들이 비가 되어 나를 적실 때, 이야기가고통스럽게 다가올 때, 책의 작가가 내 삶을 바꿔버렸다고 느껴질 때, 나는 그 책이 찾고 있던 독자가 바로 나라는 것을 다시금 믿게 된다. - P133

또 그것은 단 한 명의 관객이 있는 작은 연극이자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기도와도 같았다. 누군가 책을 읽어주며 당신이 기뻐하길 바란다면,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자 삶이라는 전투 속에서의 휴전이다. 당신이 주의를 기울여 이야기를 듣는 동안 서술자와 책은 하나의 목소리로 용해된다. 밤의 어스름속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을 당신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P134

약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 최초의 문자가 나타났다. 그 기원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이집트, 인도, 중국에서문자가 생겨났다. 최근 이론에 따르면 문자 탄생은 소유물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는 실용적 목적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 가정대로라면 우리의 선조들은 문자 이전에 계산법을 먼저 이해했을 것이다. 문자는 소유물이 많은 자들, 통치권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구술의 형태로는 계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설이나 이야기를 쓰는 건 그 뒤의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경제적이고도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우리는 목록 작성 같은 계산을 위한 문자를 만들어낸 뒤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 P138

어쨌든 페니키아인들의 문자 체계에서 이후의 모든 알파벳 체계가 뻗어나갔다. 그 체계 중 가장 중요한 게 아람 사람들의 알파벳이었다. - P141

우리는 그 변화를 기원전 700년경에 자신의 주요 작품을 발표한헤시오도스(Hesiodos)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시의 구술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요소, 즉 오늘날 우리가 팩션(autofiction)이라 부르는요소를 가미했다. 저자이자 서술자이자 인물로 등장한 헤시오도스는자신의 가족과 삶의 경험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어쩌면 그를 유럽 최초의 개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적으로는 프랑스 작가 아니에르노(Annie Ernaux)나 에마뉘엘 카레르(Emmanuel Carrère)의 먼 선조라 할 수도 있다. - P148

당시는 서정시의 시대였다. 일리아스』에 비하면 아주 짧았는데, 노래로 부르기 위해 쓴 시였고 고대 시대의 전통적 전설처럼 과거를지향하고 있지 않았다. 최근의 사건을 다루고 있었고 그들이 경험한느낌들을 포착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 여기, 나‘를 말이다.
처음으로 글쓰기가 당시의 시대적 가치와 충돌하는 반역적인 말들과 섞이기 시작했다. 그 놀라운 흐름은 그리스 전사이자 시인으로, 귀족층 그리스인과 야만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 아르킬로코스에서 시작한다. - P167

예속된 세상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롭게살기 위해 배우려 했으며, 자기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어 자신에대한 비전을 향상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고자했다. 미셸 푸코가 『성의 역사를 집필하며 그리스인들을 연구할 때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 바로 이 존재의 미학이었다. 고대의 사유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푸코는 이렇게 피력했다. "우리 사회에선 예술이 개인이나 삶이 아니라 사물에 관련된 것으로 변해 있습니다. 왜사람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없는 거죠? 왜 전등이나 집은 예술작품이 될 수 있고 내 삶은 안 되는 겁니까?" - P183

그런데 2014년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 인구의 97퍼센트가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에 공공도서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스페인에는 4649개의 도서관이 있다.)이 자료는 그동안 도서관이 증식하며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에 나오는 유대인 인민전선의 엉뚱한 회원들처럼, 만약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우리를 위해서 한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분명 도로, 다리, 법률, 민주주의, 극장, 수로 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쩌면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들을 유혹하는 웃통 벗은 검투사의 이야기나 사륜마차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도서관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 P193

책이 쌓인 복도를 지나고 거의 보이지 않는 곳을 돌아다니면서도 보르헤스는 곡예사처럼 길을 열어갔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런 보르헤스에 대한 경외와 모독사이에서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눈먼 수호자 호르헤를 상상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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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멀리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시내에서, 시 외곽에서 운 없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 P22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들은 매달 첫째 금요일에 아동수당을 받으려고 장바구니를 들고 우체국에서줄을 섰다. 시골로 가면 젖을 짜달라고 우는 젖소들이 있었다. 젖소를 돌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다 때려치우고 배를 타고 영국으로 떠나버린 탓이었다. 한번은 세인트멀린스에사는 남자가 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요금을 내러 왔는데,
그 사람 말이 지프를 팔아야 했다고, 빚을 생각하면, 은행에서 압류가 들어올 걸 생각하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어느 이른 아침 펄롱은 사제관 뒤쪽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시는 걸 봤다. - P23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그저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버터와 설탕을 섞어 크림을 만들면서도 펄롱의 생각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내와 딸들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그리고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을 언제어떻게 배달할지, 누구한테 무슨 일을 맡길지, 받을 돈을어디에서 어떻게 받을지에 닿아 있었다. 내일이 저물 때도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 P29

곧 펄롱은 정신을 다잡고는 한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않는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각자에게 나날과 기회가 주어지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라고. 게다가 여기에서이렇게 지나간 날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게, 비록 기분이심란해지기는 해도 다행이 아닌가 싶었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과를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실제로 닥칠지 아닐지모르는 문제를 고민하느니보다는. - P36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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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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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편이 사라진 것들을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는, 마지막 표제작에서 방점을 찍는, 일관된 주제를 관통하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단편집이다. 이토록 다정하고 섬세하고 자상하고 배려심 넘치는 40대 중년 남성을 만난 적이 있던가(책에서라도...) 그의 50대, 60대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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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2-06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공감입니다. 이토록 다정한 40대 남성! 알라딘에서는 좀 보입니다만 ㅎ

햇살과함께 2024-02-07 00:45   좋아요 1 | URL
현실에서는 찾기힘든 ㅋㅋ 책과 온라인에만 있는??
 

실루엣

굉장히 힘들긴 해도 보람이 크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보람인지는 설명하기가 힘들다고. 새로 부모가 된 많은 사람들이저지르는 큰 실수 중 하나는 지나친 기대라고 그들은 말했다. 린지는 그들 부부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지금은 기대를 낮추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러고는 개릿을 돌아보며그의 손을 꽉 쥐었다.
"부모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 어쩐다 다들 얘기하잖아요."
린지가 말했다. "뭐, 물론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흔히 떠올리는 변화와는 다를 뿐이죠. 뻥 뚫린 마음이 채워진다거나 하진 않아요. 무언가를 해결해주진 않죠. 그저 달라질 뿐이랄까요? 때로는 더 좋게, 때로는 더 나쁘게.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전과 다르게."
린지가 개릿을 돌아보며 그가 읽었다는 행복과 육아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 논문 얘기를 해보라고 채근했다. 그러자 개릿은, 전문적인 내용까지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맞는다, 대학원생과 교수로 이루어진 연구팀이 행복과 육아의 관계에 대해 꽤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했는데 실제로 부모가 된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은 부모가 되면, 적어도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더 불행해진다는 상당히 강력한 증거도 있다, 라고 말했다. - P181

포솔레

언젠가부터 나는 주문을 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바텐더들은 나를 알았고 내가 왜 거기에 있는지도 알았다. 그들은내가 바 끄트머리에 나타나면 빙긋 웃고 고개를 끄덕인 뒤주문을 넣었다. 몇 분 뒤에는 막 끓인 포솔레 그릇이 내 앞에놓였다.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 어린아이가 둘 있어서 아내와 나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사십오 분 동안 수프를 먹고 신문을 읽고 가끔은 와인을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식당은 어둡지만 편안했고, 배경음악은 주로 경쾌한 어쿠스틱 멕시코 음악으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나온 오래된 곡들이었다. 손님들도 대체로 나이가 많거나 그렇게 보이는들, 모르긴 해도 이십년, 삼십년 동안 이곳에 드나들었을사람들이었다. - P232

히메나

그해 봄에는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은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히메나와 함께 있으면 늘 다시 보이는 존재가 된느낌이었는데, 아마 그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히메나는 젊었고, 어쨌든 나보다는 젊었고, 나를 바라봐주었다. 아마도 그 눈길에 연애 감정은 없었겠지만ㅡ나 역시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진 않았다―같은 인간으로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후회에 휩싸인 채 인생을 망치지 않으려 애쓰며 이 땅위를 걷는 사람으로서 나를 바라보았다.
비록 나는 정말로 인생을 망치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혼자 궁리하며 내 인생을 수습하거나, 적어도 영화 작업이나 다른 프로젝트에 매진해야 할 시간에 히메나와 마냥 노닥거리면서 인생을 망치고 있었다. - P267

사라진 것들

내가 어쩌다 한 번씩 함께 뭔가 하자고-저녁을 먹거나 술을마시러 나가자고 제안했을 때도 타냐는 당장은 사람 많은 곳에 갈 만한 마음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어도 더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저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정신적 외상을 일으키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나는 성격상 그것에 대해 - P304

말하고 마음을 털어놓는 편이었지만 타냐는 훨씬 더 내향적이고 안으로 숨어드는 사람이었다. 타냐의 성정은 주위에 벽을 쌓고 담요를 누에고치처럼 둘둘 감은 채 소파 위에 누워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니얼의 실종 이전에도 우리 사이는 이미 벌어지고 있었기에 나는 문제가 더 악화될까봐 걱정스러웠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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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의 spin off story. <Auggie & me>


3개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 Auggie에게 가장 'mean'했던 무리의 우두머리였던 Julian과 그의 프랑스 할머니 이야기

- Auggie와 아기 때부터 베프였으나 커가며 점점 어색해진 친구 Christopher와 그의 엄마의 교통사고 이야기

- Auggie의 학교 Welcome buddy이며, 항상 남들에게 neutral하고 nice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Charlotte과 친구들의 우정 이야기


이 책에는 Auggie가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Auggie와의 만남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데, 그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영어책 읽으며 울다니... 더 감동적이야...


Being Kind, Kindness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다음 책은 <The one and only Ivan>의 작가 Katherine Applegate의 <wish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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