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남편은 신문을 놓지 않았다. 그는 직장에서, 지하도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리고 숱한 배기 가스 속에서 쫓기며 몸둘 바를몰라하는 자신을 느낀다고 말했었다. 그는 또 출퇴근길의 만원 버스 속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몇 대씩 줄을 지어 달려나가는 시청 쓰레기차를 본다고도 말했었다. 신애는 남편의 말을 알아듣는다. 얼마나 많은 정신이 날마다 시청 쓰레기차에 실려나가 버려지는가.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 P35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나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돌아갈 것 같았다. 형도 아버지가 든 술병을 빼앗아버리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 눈을 감는 날의 일을 생각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다. 언덕 위 교회의 목사는 달랐다. 그는 인간의 숭고함. 고통. 구원을 말했다. 나는 인간이 죽은 다음에 또 다른 생을 시작한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수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숭고함도 없었고, 구원도 있을 리 없었다. 고통만 있었다. 나는 형이 조판한 노비 매매 문서를 본 적이 있다. 확실히 아버지만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이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첫번째 싸움에서 져버렸다. - P115

궤도 회전

윤호는 말했다.
"여러분은 십대 노동자 문제를 놓고 삼십 분 동안이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십대 노동자에대해 죄스러운 마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행복동에 살 때 어느 분의 소개로 난장이 아저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동안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아들과 딸이 공장 지대에 가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잡하고 힘든 일을 합니다. 그들의 어린 동료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인간적인 대우를 어떻게 해야 받는지도 모릅니다. 현장 일이 그들의 성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날마다 무지한 생산 계획을 세웁니다. 노동자들은 기계를 돌려 일합니다. 어린 노동자들은 생활의 리듬을 기계에 맞춥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기계에 빼앗깁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생각나죠? 그들은 낙하하는 물체가 갖는 힘, 감겨진 태엽 따위가 갖는 힘과 같은 기계적에너지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처럼 십대 노동자 이야기를 하며 노동이라는 말, 의무라는 말, 자연적인 권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처럼 그들을 돕자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갖는 감상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못 줍니다.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린 동료들이 겪는 일을 보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197×년, 한국은 죄인들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 P166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어머니의 가계부는 이런 내역들로 꽉 찼다. 나는 은강에서의 생존비를생각했다. 생활비가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한 생존비였다. 우리 삼남매는 죽어라 공장 일을 했다. 우리는 우리의 생산 공헌도에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 네 명의 가족을 둔 그해 도시 근로자의 최저 이론 생계비는 팔만삼천사백팔십 원이었다. 어머니가 확인한 삼남매의 수입 총액은 팔만이백삼십일원이었다. 그러나 보험료 · 국민저축 · 상조회비 · 노동조합비 · 후생비 · 식비 등을 제하고 어머니 손에 들어온 돈은 육만이천삼백오십일 원밖에 안되었다. 이 돈을 벌어오기 위해 우리는 죽어라 일했고 어머니는 늘 불안해했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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