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맞춤 - 유기장이 삶을 가꾸는 사람들 꾼.장이 9
김명희 지음, 최정인 그림,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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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 출판사(당시는 언어세상이었다.)의 <똥떡>을 보고 환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단순히 재래식 화장실에 사는 귀신을 이야기해서가 아니다. 자투리 문화라는 말답게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분야에 관심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꾼 장이 시리즈'를 내놓아 또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주인공 꼬마 아이는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시골 내려가서 우연히 헛간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향로를 발견하지만 그 가치를 알지 못하다가 꿈에서 제대로 알게 된다는, 조금은 진부한 줄거리지만 주인공의 꿈속 여행을 함께 하다 보면 유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유기로 유명했다는 안성의 5일장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안성맞춤이라는 단어의 유래까지 알 수 있다. 만들 유기와 똑같이 나무 모형을 만들고 개펄 흙으로 나무 모형을 넣고 거푸집을 만들어 쇳물을 부어 만드는 과정이 글과 그림으로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지식책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어서 자칫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다행히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꿈 속을 나타내는 장면은 연기가 배경으로 깔려서 약간 몽환적인 느낌도 난다. 

집에서는 거의(아마도 '전혀'가 아닐는지) 사용하지 않는 유기. 솔직히 나도 유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드는지 잘 모른다. 아니, 몰랐다. 그저 그릇을 닦기 위해 엄청 고생했다는 얘기를 가끔 들었을 뿐이다. 간혹 어떤 식당에 가면 놋그릇을 사용하는데 그냥 놋그릇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가볍게 치부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비로소 했다. 놋그릇은 찬음식은 차갑게, 더운 음식은 더운 상태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니 말이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구나. 또 상한 음식이나 독이 묻으면 색이 쉽게 변하기 때문에 안전하기까지 하단다. 

모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이제는 서서히 사라지다시피 하는 유기에 대해 이렇듯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도록 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뭐, 이 시리즈 전체가 그렇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마치 국시 꼬랭이 시리즈가 우리 문화를 다시 돌아보는데 일조를 했듯이, 이 책도 지금은 별로 대접받지 못하지만 한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지금 아이들은 전통이라고 하면 무슨 고리타분한 것으로 생각한다. 학교에서 배워도 단순히 외워야 하는 대상일 뿐 이해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아이들만 탓할 게 아니다. 생활에서 직접 볼 기회가 없으니 당연히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현재 아이를 키우는 부모 세대도 전통에 대해 모르는 게 많기 때문에 직접 보여주거나 알려줄 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그 '부모 세대'에는 나도 포함된다. 어느 순간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깨달은 후에 전통 관련 책을 열심히 보여준다. 비록 나도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무작정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면서 나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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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쿠스토 - 생명의 바다를 기록한 최초의 해저 탐험가 문학동네 세계 인물 그림책 5
제니퍼 번 글, 에릭 퓌바레 그림, 유범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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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의 인물 그림책을 보고 프리다라는 인물을 처음 만났다. 그 후로 프리다에 대한 정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분명 그러한 정보가 있었겠지만 내게는 그저 무의미한 정보였을 뿐이다. 그러다 프리다라는 인물을 알고 나서 그녀와 관련된 정보들이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쿠스토라는 인물을 만났다.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프리다처럼 말이다. 

1910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쿠스토는 어려서부터 바다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고 함축적이며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쿠스토의 어린 시절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호기심이 많았을 테고(그러니까 새로 산 카메라를 분해했겠지.) 모험심이 강해서 무슨 일이든 직접 실험해 보고자 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 카메라로 직접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니 이러한 것들이 훗날 쿠스토가 영화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바닷속은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분야다. 그러니 쿠스토가 생활하던 시기는 말할 것도 없겠다. 그야말로 바닷속은 미지의 세계이자 경이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소설에도 바다를 그리는 것들이 많았을 테고. 여하튼 지금은 그래도 상당 부분 해저의 비밀이 드러났는데 그게 모두 쿠스토 덕분이란다. 지금 깊은 물속에 들어가기 위해 사용하는 스쿠버 장비가 바로 쿠스토가 발명한 것이라니 말이다. 그가 이러한 것을 발명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실패를 거듭하지 않았을까. 그림책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하긴 프리다의 경우도 이렇게 만나고 좀 더 관심이 가서 자세한 책을 찾아 읽었으니 아마 쿠스토도 그럴 것 같다. 

쿠스토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해저 세계의 신비로운 광경을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바닷속에 있던 유물을 발견해서 역사를 새로 쓰게 했다. 또한 바다 밑의 환경오염이 심각한 것을 깨닫고 환경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스쿠버와 수중카메라를 발명한 것만이 아니다. 해양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고 무엇보다 바다를 오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 1위에 꼽히는 것일 게다. 오늘 새로운 인물을 만났다. 그것도 권력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열정과 정신 때문에 존경받는다는 사람을 만나서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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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해도 괜찮아 그림책 보물창고 51
케이트 뱅크스 지음, 신형건 옮김, 보리스 쿨리코프 그림 / 보물창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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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또 그러면서 경험도 쌓고 발전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어린이 책 중에는 실수에 관한 책이 많다.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느냐의 차이일 뿐 결론은 비슷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언제 어디서나 그다지 새로울 게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책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 때로는 참신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우개는 실수했을 때 꼭 필요한 물건이다. 그러니까 실수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부엉이와 악어, 돼지는 연필 끝에 달려있는 지우개다. 그들의 주인이 실수를 하면 잽싸게 가서 지우는 게 그들의 일이다. 특히 악어는 숫자에 밝고 부엉이는 글자에 밝다. 일종의 역할 분담이라고나 할까. 물론 돼지는 여기서도 먹는 것을 좋아해서 무엇이든 지우려고 한다. 대신 자기보다 큰 동물을 무서워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들의 주인인 맥스는(그러고 보니 이 작가의 주인공은 모두 맥스다. 두 권 밖에 안 보긴 했지만, 여하튼 둘 다 맥스다. 즉 <낱말 수집가 맥스>의 작가다.) 어느 날 커다란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이제부터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셋은 맥스가 그리는 길을 지우고(아이가 그림 그릴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무서운 호랑이의 이빨을 지우고 성난 파도를 약하게 하기 위해 지운다.  

이쯤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아이가 지우는 건지, 지우개들이 스스로 지우는 건지 말이다. 어찌보면 맥스가 그림을 더 멋지게 표현하기 위해 지우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지우개들이 각자 좋아하는 걸 그리고 싫어하는 걸 지우는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지우개들이 SOS라는 글자를 만들자 맥스가 그 신호를 알아차리기까지 하니 더욱 헷갈린다. 하지만 누가 지우고 누가 그리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지우개와 맥스는 함께 그림을 아주 열심히 그렸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헷갈린다. 분명 앞에서는 큰 종이에 그림을 그렸는데 마지막엔 종이가 조각조각 흩어져서 돌아다니니 말이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는 맥스가 보인다. 솔직히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깊게 생각했나 보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상황을 상상해가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텐데. 어쨌든 무서운 이빨이 지워진 호랑이 모습은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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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과 마법사 압둘 카잠 노란상상 그림책 1
안젤라 맥앨리스터 지음, 김경연 옮김, 그레이엄 베이커-스미스 그림 / 노란상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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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주 이기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림작가가 손수 그린 그림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요즘은 컴퓨터 그래픽 작품이 많다. 손으로 그리더라도 그래픽을 겸한다. 추세가 그렇게 가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린이의 손길이 묻어나는 그림이 좋다. 직접 그려야 하는 작가의 수고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내가 너무 독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해도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 책을 처음 펼쳐 본 순간, 아니 표지를 보는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너무 화려하기 때문이다. 일단 화려한 그림은 우리 눈을 사로잡으니까. 특히 표지를 펼치자마자 만나는 부분, 멋지다.


바로 이 그림이다. 금빛 장식의 화려함에 감탄한다. 마법을 믿지 뿐더러 마술을 볼 때도 신기하다는 생각은 조금이고 과연 어떻게 했을까에 더 신경쓰는 성격상 책의 내용은 뒷전이다. 뭐, 마법은 어차피 실제가 아니니까. 

 
역시 이 그림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서커스가 마을에 오자 아이들이 마술을 보러 가지만 네 명의 아이들은 각기 성향이 다르다. 톰은 믿지 않고 피트는 아예 비아냥거린다. 그나마 리틀모는 약간 믿는 듯하고 레온만이 마법을 온전히 믿는다. 즉 마법의 세계로 떠나는 사람은 당연히 레온이 될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양면이 까만 상태에서 몇 개의 불빛만 나오는 그림 다음에 이처럼 화려한 커튼이 나오니 감탄뿐만 아니라 놀라기도 한다. 이 화사한 그림이란. 그러다 문득 이게 만약 손으로 직접 그린 것이라면 더 감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픽으로 한다고 해서 노력이 덜 들어갔단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을 보고 진짜 부드러운 천의 느낌을 보며 감탄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별 생각없이 글을 읽을 때는 마치 살아있는 동물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니 나무로 만든 인형이란다. 그러니까 방주로 올라가는 동물들도 모두 인형이라는 얘기다. 노아의 방주부터 우주선까지 과거와 현재 내지는 미래가 공존한다. 글을 읽으면 하나로 정리가 안 된다. 마치 마법의 세계를 믿는 사람만이 이야기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하튼 마법 세계의 입구인 상자로 들어간 레온이 그곳에서 환상적인 모험을 하고 돌아오는데 그 그림 역시 멋있다. 아직 현실 세계의 부름을 듣지 못한 토끼를 안고서. 레온은 불쌍한 토끼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에 토끼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물론 표지에 있는 토끼가 바로 그 토끼다. 서커스가 끝나고 어둑어둑한 길을 돌아가는 네 명의 아이들 위로 마법사 압둘 카잠의 얼굴이 비치는 건 무얼 뜻하는 걸까. 굳이 의미를 따질 필요는 없다. 멋진 그림을 보며 환상세계로 떠났다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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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서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19
쥘리에트 소망드 지음, 이주희 옮김, 에릭 퓌바레 그림 / 봄봄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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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다만 행복의 기준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형태로 표현되는 것 뿐이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결론은 대부분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있음을 깨닫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도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첫 장을 읽는 순간 뭔가 끌리는 게 있었다. 안 그래도 아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하고 있던 차에 만난 문장이라 끌렸나 보다. 

조심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이 아무도 없단다. 나라 이름에서 보듯이 모두 조심하기 때문이다. 망칠까 봐 과자를 만들지 않고 망가질까 봐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도 않으며 길을 잃을까 봐 여행을 떠나지도 않는단다. 심지어는 옛날이야기도 안 된단다. 무서운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야말로 온실 속 화초처럼 고이고이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게 과연 진짜 불행하지 않은 걸까. 아니 행복한 걸까. 행복한 게 아니라 의욕이 없어 보인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아이가 있다. '마누'라는 아이다(작은따옴표를 안 하니 이상하게 읽힌다). 


행복해지든 불행해지든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말 거라고 생각한 마누에게 금조가 나타나 따라오라고 한다. 새 이름이 낙원이다. 행복의 나라로 간다는 낙원의 말을 듣고 무작정 따라나서 고생고생하다 도착한 곳이 맛의 나라다. 그러나 마누는 그곳이 행복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마누는 원래 습관대로 걱정을 하며 열매를 선뜻 못 따먹지만 나중에는 '경험'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지레 걱정해서 아예 시도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직접 경험해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마누는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맛있는 것도 있고 맛없는 것도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만약 조심의 나라였다면 맛없는 것은 애초부터 걸러내고 맛있는 것만 줬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아무리 행복한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평범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행복은 절대적인 경우보다 상대적인 경우가 훨씬 많다. 마누는 이제야 그걸 느꼈다. 그것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배웠으니 귀중한 경험을 한 셈이다. 



마누가 행복의 나라라고 생각한 곳에서 진짜 행복을 느끼지만 낙원은 계속 다른 곳으로 떠난다. 마누는 가는 곳마다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그걸 받아본 할아버지도 조금씩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용기가 없어 선뜻 나서지 못한다. 마누는 가는 곳마다 행복해하며 틀림없이 행복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낙원은 어김없이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 그러다 도착한 곳은 결국-당연하게-마누의 집이다. 

그러나 이젠 예전의 할아버지가 아니다. 전 같으면 모든 것에 조심했을 테지만 이제 마누와 작은 행복을 찾아 떠날 용기가 생겼다. 행복은 가만히 앉아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행복은 내 주변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보다 껍질을 깨는 용기에 대해 더 비중있는 이야기를 하리라 기대했다. 사실 할아버지가 그 부분을 칭찬해 주길 기대했는데 그냥 넘어가고 마누의 입을 빌어 가장 큰 행복은 여기 있다고 결론을 내려서 약간 아쉬웠다. 아마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그래도 새로울 것이 없어보이는 소재인데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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