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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길 다행이야! -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긍정의 힘 ㅣ 인성교육 보물창고 11
제임스 스티븐슨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별 생각없이 책을 펼쳤는데 그림을 보니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 그제서야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하기에 작가 소개를 봤다. '100권 이상의 어린이책을 지었으며 유머와 어린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카툰 스타일의 그림을 그린다'고 되어 있다. 어쩐지 어딘가 모르게 그림이 재미있을 것 같더라니.
늘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할아버지는 말도 항상 똑같은 말만 한다. 개가 소파 방석을 물어 뜯어도, 손자가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고 해도, 손녀의 연이 나무에 걸려 버렸다고 해도 언제나 그만하길 다행이라고만 한다.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말하는 그림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어린이가 놀 때는 다치기도 하고 장난감이 부서지기도 한다지만 이건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귀찮아서 대충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꼬맹이들도 그런 걸 느꼈는지 할아버지가 모든 일에 시큰둥한 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드디어 할아버지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 때 아이들 머리 위로 느낌표가 있다. 카툰 형식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순간이다. 이후로는 할아버지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큰 새가 낚아채서 산속에 떨어뜨리질 않나, 설인을 만나질 않나, 사막을 걷고 오렌지 잼 덩어리도 만난다. 이 뿐이 아니다. 물속에서도 곤경에 처하지만 거북이를 타고 빠져 나와 신문지 비행기를 타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다.
할아버지가 항상 똑같은 생활을 반복할 때는 그림의 형식도 똑같다. 왼쪽엔 큰 그림에 오른쪽엔 두 컷의 그림. 그러나 할아버지가 모험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형식은 깨진다. 만화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 자주 나온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한 면에 작은 그림을 여러 개 배치해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빨라진다. 이 때는 글보다는 그림에 더 눈길이 간다. 책을 다시 한번 읽을 때는 그림만 봐도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할아버지의 모험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들이 하는 말은 바로 그동안 할아버지가 하던 말이다. 그러니까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도 깨달았던 것 아닐까. 즉 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시큰둥한 게 아니라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 그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직접 예를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느끼게 했다. 걱정스럽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그만하길 다행이라며 할아버지에게 안기는 모습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아이들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처음으로 아이들의 표정이 환하게 그려졌다. 과연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그림을 보면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도 할아버지는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일을 하며 똑같은 말을 하겠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마음은 달라질 것이다. 긍정의 힘에 대한 책이라는 설명과 인성교육 그림책이라는 타이틀이 있는데 작가가 인성교육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쓴 것인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그렇게 분류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처음엔 억지로 꿰맞춘 듯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책을 곱씹어보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정말이지 리뷰를 쓰면서 처음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리뷰를 쓰기 위해 계속 생각하고 정리하다 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느끼기 때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