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이야기 - 시와 그림으로 보는 백 년의 역사 Dear 그림책
존 패트릭 루이스 글, 백계문 옮김, 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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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든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 자체는 명백하다. 모 시트콤에서 잠깐 나왔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작가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예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그 전부터 인노첸티의 그림에 반해서 그의 책을 모으고 있었다.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좁은 땅덩어리에서 많은 사람이 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집은 주거의 개념보다 재태크의 개념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런 개념에서 벗어나 순수한 기능인 주거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다고 해도 예전의 집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평생을 살 집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아무래도 아파트의 수명이 길지 않다 보니 그러한 생각이 더 만연해 있는 듯하다. 또 한 가지는 점점 넓혀 가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한 집에서 애착을 가지고 평생을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의 집에 대한 이런 개념 때문에 이 책을 보며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아주 오래 전에 지어졌지만 한동안 사람이 살고 있지 않던 집이 우연히 산으로 모험을 나온 아이들에게 발견되어 다시 '집'의 기능을 하게 된 집 이야기다. 그와 동시에 한 세기에 걸쳐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동일한 장소를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질곡 많은 현대사를 이야기한다. 묵묵하게 서 있는 집 한 채를 통해 20세기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 집이 백 년'밖에' 안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656년에 지어져서 20세기를 보내고 있다니 족히 몇 백 년은 되었다.  

그러나 지난 시기와 이 책의 마지막인 1999년의 모습을 보면 뭔가 다르다. 지금까지는 집의 외형은 그대로 둔 채 필요에 의해 조금씩 넓히거나 보수를 하는 수준이었다면 마지막은 완전히 리모델링을 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던 모습이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불과 30 여년 사이에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이 이처럼 변한 것일까. 기본 골격은 그대로지만 완전히 변해 버린 마지막 집을 보며 쓸쓸함을 느낀 이유다. 

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집을 통해, 사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사실 처음에는 멋진 그림에 빠져 이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산에서 살면 얼마나 마음이 평화로울까에 집중하며 읽었다. 식구가 늘어나자 조금씩 집을 증축하는 모습을 보며 예전 우리 부모들이 시골에 살면서 집을 수리하던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게 된다. 정지된 그림을 통해 그들의 역동적인 삶을 만나는 신기한 경험도 한다. 그냥 산속의 집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특정 번지로 표시되는 것을 보며 이때부터 관리 시스템이 변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이처럼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수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계속 똑같은 집을 보여주지만 같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그게 바로 이 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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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쥐 가족의 새집 에코그림책 1
이인 지음, 우덕환 그림 / 어린른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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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부터 그린이니 에코니 하며 모든 곳에 환경 관련 용어가 붙는다. 과연 그것들이 얼마나 자연을 생각하고 환경을 걱정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일 게다. 물론 개중에는 실제로는 환경을 보호하거나 지키는 게 아니라 개발하는 곳에도 이런 단어를 붙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현 시대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단어는 환경이 아닐까 싶다. 

동화나 그림책에서 환경을 다룬 책은 많다. 그러나 이처럼 '에코 그림책'이라는 타이틀을 붙여가며 본격적으로 환경을 이야기하겠다는 책은 보지 못했다. 이게 첫 번째 그림책이니 앞으로도 계속 나올 모양이다. 

우선 그림이 멋지다. 사람의 심성을 자극하는 한가로운 숲속 그림을 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을 가라앉는다. 하양쥐 가족은 이처럼 멋진 곳에서 자연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나무가 베이고 공사를 하더니 놀이공원이 들어선다. 자연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쓰레기가 많아져서 음식물 찌꺼기도 많아졌다. 하양쥐 가족도 그 맛을 보고 먹으러 가지만 먼저 와서 자리를 차지한 쥐들에게 쫓겨난다. 그렇지만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주는 선물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숲속으로 돌아간다. 이게 바로 작가가 말하고자 한 내용 아닐런지. 

음식물이 더 많아지자 쥐들이 점점 몰려들어 아예 쥐들이 터전을 삼았다. 아무리 자연을 이야기한다지만 솔직히 쥐가 우글거리는 모습은 편하지 않다. 특히 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인식이 강하고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만큼 쥐가 늘어난 장면은 자연을 그대로 두자는 생각보다는 주변 환경을 깨끗이 해야한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결국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쥐는 하양쥐 가족이 살고 있는 숲속으로 도망치고 쓰레기는 깨끗하게 치워진다. 아니, 먼저 쓰레기가 치워지고 쥐들이 도망간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이쯤에서 갈등이 생긴다. 이건 어느 쪽에 시선을 고정시켜야 할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줘야 할 것 같은데 쥐들이 이리저리 쫓기는 장면이 더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하양'쥐'가 주인공이니까. 그러니 쓰레기를 버린 인간의 무관심과 이기심에 눈을 돌릴 틈이 없다. 그렇다고 쥐를 없애겠다는 사람들에 맞서 생명체를 함부로 죽이면 안된다고 생각해야 할까. 그런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인간 위주로 자연을 바라보면 안된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쥐는 해로운 동물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동정심을 갖자니 그 또한 뭔가 어색하다.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무리인데. 이렇듯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할지 모르는 사이에 쥐떼는 숲속으로 들어가고 쓰레기는 치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쥐떼에게 마음을 줄 수가 없다. 차라리 인간과 적이 아닌 동물을 택했으면 이런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딴지 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는데 자연을 이야기한다면 개나리가 활짝 핀 가지를 인간의 욕심에 따라 잘라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하는 생각도 든다. 어린이 책에서는 특히 사물을 대하는 작가의 관점이 일관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그림책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처럼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몇 가지 때문에 내용에 완전히 빠져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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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더 주세요! - 중국집 요리사 일과 사람 1
이혜란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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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만만한 음식이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인 짜장면. '자장면'이 표준어라지만 이상하게 어색하다. 제목에도 그냥 '짜장면'이라 쓴 것으로 보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듯하다. 중국 음식이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이곳에서 먹는 짜장면을 먹을 수 없다거나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서 건강에 안 좋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좋아한다.  

재료를 직접 고르는 과정부터 배달하고 설거지하는 과정, 장부 정리하는 하루 일과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부부가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꾸려나가기 때문에 바쁠 때는 아이들도 일손을 보탠다. 주방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도 엄마의 손을 거치면 금방 깨끗이 정리되고 3분이면 배달 완료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괜히 숨차다. 정말이지 숨 돌릴 틈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하루 일이 끝나고 방에 들어얹아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 비록 몸은 고단해도 살아가는 '맛'이 느껴지고 가족의 사랑이 묻어난다. 

'일과 사람'시리즈 첫 번째 그림책으로 중국집 요리사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가장 많은 사람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일 게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결과물인 짜장면만 먹을 때와 이렇게 음식을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고 먹을 때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막연히 직업으로서 관찰하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과 어른으로서의 생각이 함께 이야기된다면 독자는 훨씬 공감하기 쉬울 것이다. 바로 이 작가가 그런 경우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중국집 식당(이렇게 쓰고 보니 말이 좀 이상하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단어가 아닐런지.)을 하셨기 때문에 그 기억을 되살리며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게다. 

문득 우리는 경험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직간접 경험을 많이 하라고 하는가 보다. 이 작가도 전작인 <우리 가족입니다>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모두 경험이 아니었으면 나오기 힘들었을 이야기다. 구체적인 그림을 보며 어느 동네일까 궁금할 정도였다. 혹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이 이 그림책을 보았다면 당장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직업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런 책의 시도가 무척 마음에 든다. 모두 위로만 올라가려고 할 때 내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아보도록 하는 책이다. 이 시리즈는 그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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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는 법 그림책은 내 친구 22
콜린 톰슨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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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영원히 산다면 기분이 어떨까? 솔직히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도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잖은가.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며 두려움도 없지 않을까. 우리가 그토록 의학과 과학에 매달리는 이유도 생명 연장에 대한 희망 때문인데 영원히 산다면 인간의 희망이 실현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진시왕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애썼고, 많은 사람들이 신선이 되어 영생을 꿈꾸지 않던가 말이다. 

그러나 과연 영원히 사는 게 좋을까. 이 책을 읽어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굳이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문제다. 피터는 우연히 고양이를 찾으로 갔다가 기록카드를 발견했는데 <영원히 사는 법>이다. 제목만 봐도 혹하겠다. 당연히 피터가 그 책을 찾아보았지만 없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이 보관되어 있는 도서관인데 말이다.


도서관 문이 닫히고 경비 아저씨도 잠들면 책장은 살아난단다. 빼곡하게 꽂혀 있는 책장을 들여다 보는 것도 흐뭇한데 사이사이에 적힌 제목을 읽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들어본 책제목이랑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다. <나바론의 요리>라던가 <파이대왕>, <오즈의 조련사> 등 기존에 알고 있는 책이나 영화를 살짝 바꿨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책들 사이에 계단이 생기고 나무가 있으며 마을이 보인다. 총천연색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줄 모른다.


여긴 또 어떻고. 어떤 책에서 본 유럽의 어느 도서관이랑 비슷한 느낌이 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꿈꾸는 곳 아닐런지. 피터와 고양이 브라이언은 2년 동안 매일 그 책을 찾았지만 여전히 없다. 도대체 어디 간 걸까. 간신히 그 책의 존재를 아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는 그냥 돌아온다.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살아가는데 혼자 그대로 머문다면 과연 행복할까. 그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한 메시지로 전달한다.


아이에게 영원히 산다면 어떨까 적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지루할 것 같단다. 뭐든지 끝이 있는 법인데 끝이 없으니까. 과연 그 상황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고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도 그게 결코 옳은 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아는 듯하다.


접으면 왼쪽 별처럼 아귀가 딱 맞아야 하는데 약간 어긋났다. 아무래도 겉과 안의 색을 다르게 하기 위해 한지를 한 겹 붙였더니 두꺼워서 정확히 접을 수가 없어서 그랬나 보다.  

이 작가는 색맹이라는데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색상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모르겠다. 화사한 그림과 그 안에 숨겨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찾다가 어느 순간 만나는 심오한 메시지. 새로운 작가의 멋진 책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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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할아버지 우리나라 그림책 5
송언 글, 고광삼 그림 / 봄봄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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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신화란 일정 부분 사실에 허구적 요소가 곁들여진 이야기다. 한때는 단군신화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일정 부분 사실이 들어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이야기의 특성을 알고 난 지금은 조금 이해가 된다. 이런 걸 진작 알았더라면 역사를 배울 때 생생하고 재미있게 배웠을 텐데. 그러나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억울해 하진 말아야지. 

다양한 단군신화 이야기가 있는데 또 다시 단군이다. 신화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친근하게 단군 할아버지라고 말한다. 이야기의 처음은 여느 단군신화와 다르지 않다. 환웅이 태백산(대개 백두산이라고 하지 않나?)으로 내려가 다스리다가 곰 부족의 여인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는다는 이야기다. 중간중간 약간 다르긴 하지만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다만 기존의 신화에서는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이라 말하지 않고 곰과 호랑이로 이야기하는데 여기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 후에는 단군이 태어나 조선이라 이름을 정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검은 용이 나타나면 단군 할아버지의 딸이 무찌르고 황룡이 나타나거나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이 나타나면 태백장수가 물리친다. 뒷표지에 있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단군 할아버지가 직접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우리는 대개 용을 성스러운 동물로 여기는데 여기 나오는 용은 모두 괴물 같은 취급을 받는다.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땅속 나라 도둑 괴물>이 연상되기도 했다. 어차피 옛이야기는 새롭게 조합해도 누가 뭐랄 수 없으니 그건 그렇다쳐도 그림에서 걸리는 게 있었다. 단군신화는 조선,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조선을 말하는데 여기 나오는 그림들은 다양한 시대를 보여준다. 칠지도 비슷한 칼이 나오고 고구려의 옷이 나오는가하면 성벽은 도저히 당시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신화적 상상력은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정 부분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활자로 인쇄된 것은 적어도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믿으니까.


환인 임금님이 태백산을 보며 감탄하는 모습이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는 대개 호랑이와 곰이라고 표현했는데 여기서는 부족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그림에서는 여전히 호랑이와 곰으로 표현했다. 하긴 부족을 그림으로 표현하긴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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