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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ㅣ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오래전 완독했는데 이 책을 책장에서 발견할 때만 해도 이 책의 어떤 글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고양이에 대한 글이 있었던 것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책을 다시 들춰 보니 내가 밑줄 그은 문장들이 보였고 재독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문장이 많았다. 그중 일부를 옮겨 적고 단상을 적어 보았다.
이 책 속에 담긴 일련의 상징들은 삶의 에피소드, 무대 장치, 오락...... 따위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남은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 보이고 있다.(21쪽)
⇨ 이 책은 에세이다.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 보이고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소설의 핵심은 ‘인간의 모습’이다. 즉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은 어떤 모습을 하는지 보여 주는 장르가 소설이라는 뜻이다.
영화 타워링(1977년 개봉)은 135층의 빌딩에 화재가 일어나서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과 빌딩에 갇힌 사람들이 탈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타워링이 영화가 아니라 소설이라면 왜 작가는 초고층 빌딩에 화재가 발생하게 했을까? 그 이유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그 본색이 드러나는 법이니까.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33쪽)
⇨ 나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 일이 있기 위해 그 일이 일어났던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곤 한다. 만약 내가 경험한 것들을 점으로 그려서 그 많은 점들을 알파벳으로 표기한다면 A라는 점과 R이라는 점을 연결시킬 수 있고, C라는 점과 Y라는 점을 연결시킬 수 있다. 가령 A라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R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함이었고, C라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Y라는 결과에 도달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 무관한 일들이었는데 인과 관계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그런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에게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한 순간에 늘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보편적인 생각들만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들이라야 이른바 그들의 <지성>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57쪽)
⇨ 이 글을 읽으니 대학 시절 미팅에서 맘에 드는 파트너를 만나 들떠 있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우리들 앞에서 전날에 만난 남자 파트너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또 자기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이 얼마나 귀여운 짓을 하는지를 흥분해 말하곤 하던 이도 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본인에게만 중요할 뿐이다.
우리는 듣는 입장에서 자신의 지성을 필요로 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듣는다.
그러나 한편 그 고양이가 이제는 불구의 몸이 되어 눈이 멀고 개체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으며, 더군다나 제가 무슨 까닭으로 얻어맞은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꼼짝달싹도 못하며 지내야 할 것을 상상하니 차라리 그를 위해서라도 죽는 쪽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는 다름이 아니라 그 고양이 자신을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굳이 믿으려 애를 썼다. 그런데 실제로는 내가 사랑하던 한 존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견디기 어려워서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이다.(66쪽)
⇨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것인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에 빠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쩌면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대상에 화려한 옷을 입혀 만든 환상을 사랑하는 것인지 모른다.
여름도 다 끝나갈 무렵, 결국 물루(고양이의 이름)의 운명에 대해서도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그를 데리고 떠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오래 걸리는 여행인 데다가 도착 장소도 불확실했고 여러 군데에 기착하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데리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누군가에게 주고 가는 일이었다.(67쪽)
하여간 그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와 같이 지내는 데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았다. 이때 습관이란 말은 사랑이란 말과 동의어다.(69쪽)
⇨ 고양이를 다른 이에게 맡겨야 하는데, 고양이와 같이 지내는 데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단다. 여기서 습관은 사랑이란 말과 동의어라고 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고양이에게 보조를 맞춰 사는 습관이 있는 사람일 것이므로.
고양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다. 연인이나 배우자를 사랑하면 상대편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싶을 것이므로.
사랑은 자기를 따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보조를 맞추는 것.
도대체 인간은 무슨 특권을 가졌기에 짐승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다.(71쪽)
⇨ 위의 글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개를 파마하거나 염색해서 다니는 걸 보면 개를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다. 그것을 개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닌 건 분명하기 때문이고, 개의 속마음은 하기 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쁘게 파마한 개를, 예쁘게 염색한 개를 키우고 싶은 견주의 욕심 때문에 개를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데 내가 애완견을 키운다면 나 역시 예쁘게 꾸며 놓고 싶을 것 같다. 그러니 똑같은 상황이 아니면서 남을 흉을 보는 것은 금물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병이란 여행과도 같은 값을 지닌 것이며 병원 생활이란 그 나름의 으리으리한 고대광실 생활이다. 만약 부자들이 그걸 알았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병에 걸리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91쪽)
⇨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환자가 되어야만 노동을 하지 않고 쉴 수 있으니 병상 생활만이 휴식 생활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 글을 읽으니 모파상의 단편 소설 ‘승마’가 떠오른다. 가정부로 일하는 65세의 노파가 빠르게 달리는 말에 부딪힌다. 이 사고로 노파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병상 생활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 나온다. 사고를 낸 사람이 병원비를 대어 주니 당장은 가정부로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어 그야말로 즐거운 휴식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변할 수가 없다고 누가 말하는가? 인간은 지금까지 변화밖에 한 것이 없다. 기독교의 성인은 고대의 현자와 닮은 것도 아니고 현대의 시민과 닮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어떤 새로운 인간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159쪽)
⇨ 인간은 어떤 측면에선 변하기도 하고 다른 측면에선 변하지 않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이 변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고전을 읽다 보면 옛 사람들이 느끼는 생각이나 감정이 지금의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섬」은 저자의 제자인 알베르 카뮈가 쓴 서문으로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서문의 마지막 구절을 옮기는 것으로 이 리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14쪽)
(59쪽) 헤이그 시의 거리거리를 누비고 다니면서 앓는 고양이들을 실어다가 병원에 데려가곤 하던 그 칸막이 합승트럭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질병과 사고로부터 안전이 보장되고 하루 종일 따뜻한 방 안에 들어앉아서 운하를 따라 나룻배를 저어가는 뱃사람들의 동작을, 그대 영혼의 움직임과 잘도 조화되는 그 동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지낼 수 있는 고양이들은 행복하여라!
(60~61쪽) 레닌은 옛날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그 접촉을 통하여 새로운 힘을 얻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부질없는 문제에 대하여 박학해진다는 것은 마음에 든다.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갓 수증기라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살아가는 데,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견디어 내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단 한 가지의 대상을 정하여 그것에 여러 시간씩 골똘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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