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신과의 대화

백지의 공포를 아는가? 

작가가 절필하는 이유를 아는가?


이 두 가지를 나는 알 것 같다. 이 달이 칼럼 연재 23개월째인데 나는 마감 날까지 글이 써지지 않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글이 써지지 않고 마감 날이 닥치고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4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일이 이번처럼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글감을 찾느라 나의 머릿속은 바빴지만 좀처럼 글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페크1 : 계속 이렇게 글을 쓰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페크2 : 그러면 신문사에 글을 못 보내는 거지.

페크1 :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페크2 : 망신은 나의 것이지. 신문사에 민폐를 끼치는 거고. 

페크1 : 미리 신문사에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이번엔 칼럼을 제출할 수 없다고 말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신문사 측에서 내 글을 대신할 다른 글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거니까. 

페크2 : 그것도 망신은 나의 것이지. 신문사에 민폐를 끼치는 거고. 

페크1 :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페크2 : 써야지. 무조건 써야지. 이번엔 네 이야기를 쓰는 건 어때? 다른 데서 글감을 찾지 말고 너의 이야기를 써 봐. 


이리하여 페크는 드디어 자기 이야기를 써서 칼럼의 초고를 완성했다. 앞으로 4일간 퇴고를 열심히 해서 더 나은 글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2. 대구에 갔다 오다

바쁜 와중에 시아버님 제사가 있어서 대구에 1박 2일로 갔다가 어제 왔다. 가기 전날 반찬 세 가지를 만들어 친정어머니에게 갖다드렸고(주 2회로 반찬을 갖다드린다)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잘랐다. 파마를 하고 싶었으나 그럴 시간은 없었다. 


다음 날 갑자기 추워져 겨울 코트를 꺼내 입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플랫폼에서 케이티엑스를 기다리는데 공기가 차서 겨울 코트를 입기 잘한 것 같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3.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

글감을 찾기 위해 책 몇 권을 샀다. 그중 하나가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이다. 


쇼펜하우어는 일평생 열한 권의 책을 썼고, 그중 생전에 출판된 저서는 여덟 권이다.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1만 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는 그의 도서들과 편지, 일기 등에서 쇼펜하우어의 삶에 대한 통찰과 정곡을 찌르는 인생 조언을 모아 엮은 책이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1만 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이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망령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우울의 망령에 완전히 정복당하고 나면 사람의 영혼엔 오직 분노만이 남게 된다. 외로워서 화가 나고, 피곤해서 화가 나고, 남들이 행복해서 화가 나고, 마침내 화만 나는 내가 싫어서 미칠 듯이 화가 난다. 그래서 그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이 세계 전부를 희생시켜도 값싸다는 논리에 봉착한다. 우울의 끝에서 열광이 태어나는 것이다.(30~31쪽)


⇨ 이 글을 읽으니 여성 20명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온라인에 게시하는 등의 ‘살인 예고’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사건들이 떠오른다. 쇼펜하우어의 예견이 적중한 것일까. 



내가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뭔가를 얻기보다는 뭔가를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것이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난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해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병에 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즐겁게 놀기보다는 욕을 먹거나 비난받지 않도록 한다. 이것은 다분히 현실적인 생활수칙이다. 이 수칙들을 지킨다면 작지만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머릿속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제거하면 이 수칙들을 좀더 쉽게 지킬 수 있다.(67쪽)


⇨ 고통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함으로써 행복의 기준을 낮추면 행복할 수 있겠다.

 


인생은 불행해지기는 쉬워도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위선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 선택이 지혜의 시작이다. 인생의 지혜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크게 놀라지 않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 중용의 미덕이다. 크게 실패해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는다. 크게 성공해도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게, 사실 크게 휘둘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68쪽)


⇨ 행복의 비결은 자기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행복을 포기하면 오히려 행복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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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텔게우스 2023-11-12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페크pek0501 2023-11-12 16: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 역시 베텔게우스 님을 응원하겠습니다.^^

2023-11-12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13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13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15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11-12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그래도 결국엔 마감 전에 멋진 글을 쓰실거라 확신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페크pek0501 2023-11-13 14:25   좋아요 1 | URL
하하~~ 그것이 저의 희망 사항입니다.
제가 좀 유능했으면 좋겠어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yamoo 2023-11-13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펜하워는 대부분 아포리즘으로 접하고 이후에 인생론을 읽게되죠. 물론 아포리즘으로도 쇼펜하워의 사상을 음미할 수 있고 읽으면 꽤 유익하죠. 하지만 위지와표상으로서의 세계 만큼 암팩트가 약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안타깝게도 의지와표상은 인생론만큼 번역이 류려하지 않아 읽는 멋이 떨어지고 처음 100여 페이지 넘어가는게 힘이 들긴합니다. 오쨌거나 쇼펜하워 아포리즘을 페크님 서재에서 보니 반갑네요..

저도 마감에 맞춰 페크님이 멋진글을 생산해 낼 거라 의심하지 않습니다요~~ㅎㅎ 걱정이 깊을수록 좋은 글이 나오게되죠..^^

페크pek0501 2023-11-15 11:49   좋아요 0 | URL
쇼펜하우어의 책은 이번 책이 네 번째예요. 오래전 읽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안 나고 어려웠던 것만 기억해요. <사랑은 없다>가 위의 책처럼 구성이 돼 있어서 잘 읽혔고 <쇼펜하우어 인생론>은 소제목이 조금밖에 없어서 가독성이 높지 않았어요. 위의 책과 <사랑은 없다>만 읽어도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아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아포리즘은 제가 좋아하는 것임.

걱정은 깊으나 글이 별로여서 걱정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올려 보겠습니다. 창피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글 쓰는 자의 숙명...^^

모나리자 2023-11-16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그렇게 써 내셨잖아요.ㅎ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걱정보다는 원고를 잘 마무리해서 신문사에 보내고 기뻐하는
페크님의 모습을 떠올리세요.ㅎ 제가 마음공부에서 배운 걸 적용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맨 위의 인용글은 현대인들은 허공에 대고 마구 주먹질을 한다, 는 말이 떠오릅니다. 실체가 없는 자신의 관념과 싸운다는
뜻이지요. 쇼펜하우어의 책 제목만 보아도 그의 삶의 자세와 태도를 엿볼 수 있고 배울 바가 많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한번의 원고쓰기가 남은 거네요.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랄게요. 추워진 날씨 건강 잘 챙기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11-16 22:02   좋아요 1 | URL
걱정 만당이었어요. 얼마나 공포스럽던지...ㅋㅋ
오! 배운 걸 적용한 말씀, 훌륭한 조언이십니다.
허공에 대고 마구 주먹질을 한다, ㅋㅋ 재밌는 표현이네요.
또 저는 다음달 원고를 걱정해야 할 처지네요. 앞으로 연재하시는 분들을 부러워하지 않겠습니다. 능력자분들은 빼고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마음만은 따뜻한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