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줄을 서 있다. 이곳의 방문자들은 내게 새 글을 빨리 올리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아 블로거로서 글을 써야 하고(이런 착각을 한다.ㅋ),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독서논술’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매주 수업 프로그램을 짜야 하고(게다가 강의계획서, 공개수업지도안, 학생개별평가서 등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잡무도 많다.), 친정 부모님은 ‘우리 딸 언제 또 오나’하면서 나를 기다리는 것만 같아 외동딸로서 친정에 자주 들러야 하고(일주일에 두 번은 들른다.), 집안에선 내 손길이 닿아야 하는 일들이 있어서 주부로서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고, 또 추가하자면 읽을 책들이 쌓여 있다. 아, 바쁘다 바빠!!!
바쁜 티를 내지 않고도 일을 잘 해 나가는 것이 유능한 사람인데, 난 바쁜 티를 내는 것으로 보아 무능한 사람이 맞다. 내가 궁금한 건 이렇게 바쁘다고 생각하는 게 행복한 사람일까 아닐까, 이다. 행복이란 어떨 때 느끼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일이 많아서 즐거움(행복)을 얻을 때도 있지만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불행)를 받을 때도 있으니, 그게 알쏭달쏭하다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 외 지음, <마음의 과학>을 읽다가 ‘행복 쳇바퀴(happiness treadmill)’라는 말에 눈이 멎었다. 진화심리학자 도널드 캠벨이 말한 것으로 “명성, 부 등을 얼마나 많이 획득하든 간에, 행복 수준은 결국 처음과 같아진다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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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절대 기준 같은 것은 없습니다. 구석기 시대 수렵채집인은 운동화나 중앙난방이나 페니실린이 없다고 짜증을 냈을 리가 없어요. 뇌는 추구할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뇌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남들이 얼마나 풍족한지 살필 수 있습니다. 그들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죠. 남들은 우리의 행복 등급을 정하고, 나 자신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루기를 희망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안타깝게도 그 방식은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하는 행복의 한 가지 특징을 빚어냅니다. 즉 자신이 주변의 모든 사람보다 좀 더 나으면 행복하고 좀 못하면 불행해지는 것이죠. 월급봉투를 보고서 월급이 5퍼센트 오른 것을 알면 기뻐하겠지만, 다른 모든 동료의 봉급이 10퍼센트 오른 것을 알면 망연자실할 겁니다.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마음의 과학>,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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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행복할지, 행복하지 않을지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남들과의 비교’라는 것이다.
마틴 셀리그먼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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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에 나는 낙관주의 대 비관주의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낙천적인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지는 비율이 비관적인 사람들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낙천적인 사람들은 예외가 있긴 했지만 우리가 조사한 모든 직업에서 더 성공을 거두었다. 낙천적인 사람들은 비관적인 사람들보다 면역계가 더 활발하고 더 양호했으며, 좀 더 오래 사는 듯했다.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마음의 과학>, 175쪽~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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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인간의 행복은 재산이나 명예보다 인격과 개성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이를 달리 말하면, 행복은 재산이나 명예보다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 된다. 즉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시마 유키오는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되도록 자만심을 가질 것’을 주장하나 보다. 그에 따르면 “겸손이란 것은 결실 없는 과일일 때가 많고, 또 세상에서 겸손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고 있는 자는 대개가 위선적이다.” 그리고 자신감과 자만심을 비교하면, “자신감이란 실질을 거느리는 귀찮은 자격”이며 “누구나 쉽게 자신감이 생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만심이라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오늘부터라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자만심이 행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그의 글을 통해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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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걸리는 대개의 병들은 보통 거리에서 만난 낯모르는 여자가 자기와 같은 옷을 입고 있다거나, 더구나 그녀가 자기보다 더 잘 어울리고 미인이라는 데에서 기인되는 경우가 많다. 여자가 이런 일을 계속해서 두세 차례 당하면 틀림없이 드러눕고 만다. 이런 때라면,
“뭐야, 내 흉내를 내고 있잖아. 어울리지도 않는 주제에.”
하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 자만심이 있다면 병이 날 걱정도 없다.
남자의 병이란 것도, 회사에서 저 녀석은 분명히 나보다 잘한다, 나보다 출세가 빠를 것 같다, 저 녀석이 먼저 과장이 될 것은 틀림없다 라는 종류의 열등감에서 기인되는 경우가 많아서 결국은 간장이 나빠지거나 한다.
“뭐 저런 녀석쯤은 내 손톱의 때만큼도 못한 녀석이지.”
이 정도의 자만심만 있다면 그렇게 병약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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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자만심으로 행복해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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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코는 왜 이렇게 낮을까.”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내 코는 왜 이렇게 귀엽게 생겼을까? 미국에서의 성형수술이란 모두가 너무 큰 코를 깎는거야.”
라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좋다.
-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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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코는 왜 이렇게 낮을까.”라고 생각하면 열등감이 생기고, “내 코는 왜 이렇게 귀엽게 생겼을까? 미국에서의 성형수술이란 모두가 너무 큰 코를 깎는거야.”라고 생각하면 자만심이 생길 것이다.
자만심이 있는 사람과 열등감이 있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 친구로 삼아야 한다면 나는 전자를 택하겠다. 나도 어느 부분에선 열등감을, 어느 부분에선 자만심을 가지고 있는데, 자만심을 가지고 있을 때가 훨씬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기에,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열등감이 있는 문제에선 마음이 좁아져서 과잉 반응을 보이기 쉽다. 또 열등감은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있어서, 열등감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배려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상대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심한 열등감에 한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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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미워하는 것은 단지 그의 모습을 빌려 자신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미워하고 있는 것과 같다. 자신 안에 들어 있지 않는 것은 결코 당신을 흥분시키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남을 미워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저, <세상을 보는 지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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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향한 비난은, 많은 경우 비난하고 있는 사람 자신의 콤플렉스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비난하는 사람의 불행한 심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비난하는 사람이 오히려 애처롭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 혜민 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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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너도 어른이 되어 보면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게 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게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 위기철 저, <아홉살 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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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세 사람이 다르게 표현했을 뿐, 같은 뜻의 말을 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행복할 수 있고 남에게 관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그것이 자만심이 아니겠는가. 자만심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자만심과 행복과의 관계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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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모님, 모처럼 만난 동창들과 신나게 놀다 보니 저녁때가 되었다. 집에서 저녁을 기다리는 남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재미있게 놀던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왔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모님 너무 재미있게 놀다온 여운이 남아 멍하니 있으니 남편이 물었다.
남편 : 왜? 친구들이 돈이 많아?
아내 : 아니.
남편 : 그럼 친구들이 차가 좋아?
아내 : 아니.
남편 : 그럼 친구들이 가방이 다 명품이야?
아내 : 아니.
대답하지 않는 아내에게 남편이 다시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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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 에이씽... 나만 남편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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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이, 그의 친구들은 남편이 다 죽어서 친구들과 노는 일에 방해받는 일이 없는데, 자신만 남편의 저녁상을 차리러 집에 가야 하는 것에 불만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아내들이 젊었을 땐 그 남편과 열렬히 연애를 했고, 신혼 생활을 할 땐 질투로 인해 사랑싸움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이 얘기를 듣고 몇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어쩌다 남편들의 신세가 이 지경까지 딱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 둘째, 인간은 변심하는 존재라는 것. 셋째,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건 ‘남들과의 비교’라는 것. 넷째, 행복과 불행에 대한 느낌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
결론적으로,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의 문제에서 남들과의 비교는 필수일 수밖에 없는 것. 남들과 비교하되, 남편이 있는 여자들은 외롭게 하지 않는 남편이 있다는 것에 자만심을, 남편이 없는 여자들은 밥상을 차려 줘야 하는 남편이 없다는 것에 자만심을 가지고 살면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 내가 할 일이 많아 바빠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무료한 삶을 살지 않아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것에 자만심을 가져야겠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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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자만한 사람은 재수 없게 보일 수 있어서 겸손한 사람이 되자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 페이퍼를 쓰면서 자만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남들이 느낄 정도로 자만심이 밖으로 튀어 나와선 안 될 것 같고, 마음속에서만 자만심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쇼펜하우어의 글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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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세계란 무엇보다 각 개인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그 때문에 정열적인 사람은 현실 속에서 흥미진진한 갈등만 보고, 조용하고 침착한 사람은 무의미만 보며, 우울한 사람은 비극만 보게 되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저, <쇼펜하우어 인생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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