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대전에서 대학동창의 모임이 있었다. 네 명이 만나는 모임이다. 서울에서 같은 대학을 다녔음에도 현재 한 친구는 대전에서 살고, 한 친구는 부산에서 살고, 한 친구와 나만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한 번 모이려면 여간 성의가 필요한 게 아니다. (나만 해도 그날 오전 10시까지 서울고속터미널에 나가야 했다.) 나와 한 친구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고, 한 친구는 부산에서 대전으로 와야 하는 것이다. 대전이 중간 지점이므로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서로 사는 거리가 멀어서 일 년에 두세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만남이라 일단 우리는 만나면 크게 웃으며 껴안는 버릇이 있다. 만난 반가움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마음이 급하다. 당일 코스의 만남이어서 시간이 많지 않은데 할 말은 많은 까닭이다.

 

 

우리 만남에 술이 빠질 수 없다. 막걸리로 시작해서 소주로 그리고 입가심으로 맥주 한 잔씩을 마시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안주로는 숯불에 굽는 소고기로 시작해서 장어구이로 그리고 입가심으로 골뱅이 무침으로 끝이 난다. (절대 술꾼들은 아니다.)

 

 

첫 술은 야외에서 마셨는데, 음식점의 앞마당에 식탁과 의자가 있고 숯불이 있고 게다가 호수가 있고 고운 빛깔의 단풍잎들이 있고, 호수에 비친 단풍잎들이 있어서 무지 죽였는데(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날따라 비가 오기도 했고 햇살이 반짝거리기도 하여 여러 얼굴의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환성을 지를 만큼 아름다웠다. (실제로 우리는 가을 풍경에 반해 환성을 질렀다.) 가는 음식점마다 서로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하는 것도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이다.

 

 

우리는 건배를 할 때 좀 특이하게 한다. 건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이것이 술이오?

아니요.

그럼 뭐요?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댄다.)

....................

 

 

 

마지막 술을 마시기 위해 친구가 아는 호프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우리가 주문하지도 않은 안주가 나왔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골뱅이 무침과 계란탕이었는데, 그것들을 다 먹을 무렵에 무료 서비스의 안주라면서 김치찌개가 나온 거였다.

 

 

우리가 물었고, 그(호프 집의 주인)가 답했다.

 

 

....................

이것이 김치찌개요?

아니요.

그럼 뭐요?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댔다.)

....................

 

 

 

또,

 

“나는 정 주고 떠난 사람이 제일 미워.”라고 말하는 한 친구의 말에 다 같이 깔깔깔 웃어 댔다.

 

 

술을 마시기 전에, 친구가 대전에서 옷가게를 해서 거길 들러서 옷을 팔아 주기도 했다. 나는 두꺼운 울 카디건(가디건이 아니라고 함.)을 구입했다. 더 비싼 옷인데 깎아서 12만 원이라고 한다. 싱글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너도 골라, 내가 사 줄게.”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4만 원짜리의 바지를 골랐다.

 

 

그런데 술을 마시다가 그 친구가 갑자기 내가 사 준 바지를 가방에서 꺼내며 하는 말이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원래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

그 친구 : 이것이 바지요?

우리 셋 : 아니요.

그 친구 : 그럼 뭐요?

우리 셋 :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대기.)

....................

 

 

 

이렇게 말해야 내가 그 친구에게 준 것이 단지 바지가 아니라 ‘정’이다, 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다음과 같이 변형하여 말해서 우리 모두 박장대소했다.

 

 

....................

그 친구 : 이것이 바지요?

우리 셋 : 아니요.

그 친구 : 그럼 치마요?

(깔깔깔. 모두가 박장대소함. 얼마나 웃었던지 눈물이 다 나왔다.ㅋ)

....................

 

 

 

앞으로 친구에게 점심으로 갈비탕을 사 줄 때에도 이런 말을 주고받아야겠다.

 

 

....................

친구 : 이것이 갈비탕이오?

나 : 아니요.

친구 : 그럼 뭐요?

나 :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대기.)

....................

 

 

 

 

 

 

 

 

 

 

 

 

 

 

 

 

 

 

 

 

칼릴 지브란의 책을 언제부터 구입하려고 했는데 미루다가 지난달에 드디어 구입했다. 이런 글이 있다.

 

 

 

 

 

우정을 나눌 때에는 영혼을 깊이 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은 두지 마십시오.

(…)

시간을 적당히 때우기 위해 친구를 찾는다면 그 친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언제나 시간을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 친구를 찾으십시오.

친구는 그대들의 공허함을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그대들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우정의 따스함 속에 웃음이 깃들도록 하십시오.

마음은 하찮은 이슬 한 방울에서도 아침을 발견하고 생기를 되찾기 때문입니다.

-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65쪽~66쪽.

 

 

 

그날 우리는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우정의 따스함 속에 웃음이 깃들도록 했고, 마음은 하찮은 이슬 한 방울에서도 아침을 발견하고 생기를 되찾았다.

 

 

 

 

 

그대들 가운데 어떤 이는 즐거움이 전부인 것처럼 추구하다가 비판을 받고 질책을 받습니다.

허나 나는 이들을 비판하거나 질책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즐거움을 추구하도록 이들을 격려하겠습니다.

이들이 즐거움을 찾더라도 즐거움 하나만을 얻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은 일곱 자매를 두었는데, 그중 가장 어린 자매도 즐거움보다는 아름답습니다.

정녕 그대들은 듣지 못했습니까.

뿌리를 캐다가 땅속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를.

-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78쪽.

 

 

 

 

어느 책에서 읽은 것 같다. 좋은 인생을 사는 비결은 ‘주위에 좋은 사람들만 배치하기’라고. 내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배치해 놨더니, 많이 웃게 만들어 건강에 좋은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날을 보냈다. 웃음으로써 즐거움을 주고받은 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날에 주고받은 것이 어찌 즐거움뿐이랴.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즐거움을 찾더라도 즐거움 하나만을 얻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추신.

 

 

페크의 서재에 여러분이 쓰신 댓글이 정녕 댓글이란 말이오?

아니요.

그럼 뭐란 말이오?

그건 情이오.

 

(여러분이 깔깔깔 웃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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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11-0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는 두개의 신체에 깃든 한개의 영혼이라는 금언도 있습니다. 제가 우정에 대해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의 존경 없이는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죠.

페크pek0501 2012-11-07 16:55   좋아요 0 | URL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댓글이 아니라 정으로 접수합니다. ㅋㅋ
좋은 하루 되세염.

숲노래 2012-11-0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돈을 내겠다 한다면...
저라면
"나는 돈을 안 내겠소~" 할까 싶어요~

페크pek0501 2012-11-07 22:22   좋아요 0 | URL
그것도 좋지요. 우린 돈 내기 싫어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 줍니다.
고맙습니다. 님은 가을 풍경 속에서 사시겠네요. ^^

oren 2012-11-0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댓글입니까? / 아니오.
그럼 정(情)이오? / 아니오.
그럼 무엇이오? / 그렇게 말랑말랑한 게 아니요. '웃음'에 대해서조차 '철학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논문으로부터의 '인용'이오.ㅋㅋ

* * *

웃음의 기원

웃음의 기원에 대하여 여기서 논하는 것이 본론의 진행에 방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웃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개념과 그것에 의해 어떤 관계 속에서 실재하는 객관과의 모습을 갑자기 알아차렸을 때에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웃음도 이 모순의 표현에 불과하다. 이 모순은 흔히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실재적 객관들이 '하나의' 개념에 의해 사고되고, 그 개념의 동일성이 이들 객관에 옮겨지는데, 그 다음에 그 밖의 점들에 있어서는 이 객관들과 개념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개념이 오직 일면만으로 이들 객관과 상응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中에서

웃음의 팽창력

웃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웃음을 유발하는 밑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익살꾼의 찌푸린 얼굴, 재치있는 말솜씨, 보드빌(vaudeville:가벼운 오락용 희극)의 착각, 하이코미디 장면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떤 증류법(蒸溜法)을 사용하면 저렇게 종류가 잡다한 산물(産物)에 독한 향기를 감돌게 하는, 언제나 같은 그 엑기스를 채취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훌륭한 사상가들이 이 사소한 문제에 몰두해 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언제나 그 노력을 비웃듯이 빠져나가고 비껴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철학적 사색에 던져진 비위에 거슬리는 도전이라고나 할까.
- 앙리 베르크손,『웃음』 中에서

페크pek0501 2012-11-07 22:23   좋아요 0 | URL
재밌는 댓글을 쓰셨는데요.ㅋㅋ 감사합니다.

oren 2012-11-0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핑커의 책에서 읽었던 '우스운 이야기' 하나만 덧붙일께요.
* * *
웃음, 목메임, 헐떡거림, 아우성

전 세계 대부분의 위트는 알공킨 원탁모임보다는《애니멀 하우스》에 더 가깝다. 샤농은 야노마뫼족의 가계조사를 시작할 때, 저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그들의 터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샤농은 피조사자들에게 저명한 개인의 이름과 그 친척들의 이름을 귀에다 속삭이라고 요청했고, 그 때문에 어색한 과정을 몇 번씩 반복한 후에야 이름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이 거론된 사람이 샤농을 노려보고 구경꾼들이 킥킥대고 웃으면 샤농은 안심하고 그의 진짜 이름을 기록했다. 몇 달에 걸쳐 정성스럽게 가계를 정리한 후 이웃 부락을 방문하던 중에 샤농은 자랑삼아 그곳 추장 부인의 이름을 불쑥 꺼냈다.

순간 싸늘한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온 마을이 걷잡을 수 없는 웃음, 목메임, 헐떡거림, 아우성에 빠졌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비사시테리의 추장이 "털 많은 성기'와 결혼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뿐 아니라 나는 추장을 '기다란 음경'으로, 그의 형제를 '독수리 똥'으로, 그의 한 아들을 '병신 같은 놈'으로, 그의 딸을 '방귀 냄새'로 부르고 있었다. 다섯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가계조사를 한 결과가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관자놀이에 피가 솟구쳤다.

페크pek0501 2012-11-07 22:24   좋아요 0 | URL
정말 웃게 만드는 글이군요. 덕분에 하하하 웃습니다. ^^

프레이야 2012-11-0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유쾌한 페이퍼 읽다가 정 한 줄 드려요.
이건 댓글이 아니라 정!!!

그리고 예언자,에서 인용하신 우정에 대한 글이 팍 안깁니다.
저 책 저도 주문했는데 좀 전에 받았어요.
여고시절 사서 처음 보고 상당한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지요.
검정표지였는데 그 책은 어디로 갔는지...

페크pek0501 2012-11-07 22:25   좋아요 0 | URL

저도 정 한 줄의 답글 드려요. 좋은 가을날 보내세요, 프레이야 님.^^

앞으로도 유쾌한 글을 쓰고 싶은데, 이런 글감이 날마다 생기는 게
아니라서요. ㅋㅋ

글샘 2012-11-0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오'가 아니오.
아니요...라고 써야 맞소.
이 댓글도 초코파이 정일까요? ㅋ

페크pek0501 2012-11-07 22:27   좋아요 0 | URL
아, 글샘 님이 교정 보신 거면 이젠 안심해도 되는 것인가요?
님의 말씀 대로 고쳤어요.ㅋㅋ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맞춤법을 찾아보고 수정해야지, 했는데 잊어 버렸어요.
다른 데를 수정하느라고요.
우정은 정이오, 인지, 우정은 정이요, 인지...
이것이 술이오? 인지, 이것은 술이요? 인지... 헷갈렸는데
그래도 아니오, 하나밖에 안 틀렸네요. 키득키득키득~~~
이젠 확실히 알았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공부해 두었어요. 감사~~~

다크아이즈 2012-11-0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고 웃다가 배꼽 날려버렸습니다.
페크님만이 쓸 수 있는 글이옵니다.
남들 다 정을 남길 때, 저는 너무 웃다 댓글만 살짝 남기고 사라집니다.^^


페크pek0501 2012-11-07 22:37   좋아요 0 | URL
혹시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우리를 술꾼이라고 할까, 걱정이 되옵니다.
저로 말하면 제 별명이 집순이인데(집에만 있는다고 해서) 집순이에서 술꾼으로 변경되는 게 아닐까요?
제가 참 오랜만에 외출다운 외출을 했는데, 그 외출에 대해 남편과 아이가 반가워하더군요. 집에만 있지 말라면서요.
팜므느와르 님, 반가웠습니다. 님 같은 분이 있어 더 좋은 가을날입니다.

순오기 2012-11-10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게 읽었는데, 비로그인으로 읽어서 댓글이 늦었습니다.
늦은 댓글도 정이오!ㅋㅋㅋ

페크pek0501 2012-11-12 12:21   좋아요 0 | URL
당연히 늦은 댓글도 정이죠. 저 접수했어요.

늦은 답글도 정이오, 라는 정 한 줄 드리옵니다. 받으십시오. ㅋㅋ

마태우스 2012-12-1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힝, 순오기님 사흘쯤 늦은 건 늦은 것도 아니어요. 한달 늦은 저도 있는데요 뭐.
정말 멋지게 사시네요. 역시 제 추측이 맞았어요.^^
님과 님을 이해하는 친구분들이 있어서 좋으시겠다...

페크pek0501 2012-12-15 22:53   좋아요 0 | URL
어머낫!!! 이렇게 늦게 갑자기 나타나시면 어떡합니까.
그러면 제가 너무 반갑잖아요. 호호~~

마태우스 2012-12-1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참참 뒤늦게 마이페이퍼 상타신 거 축하드려요

페크pek0501 2012-12-15 22:53   좋아요 0 | URL
감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