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이 책을 읽을 때, 집으로 엄청난 양의 택배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전공하는 딸아이가 졸업 작품을 찍는데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이번 작업에서 PD로 참여한 딸아이는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원활한 진행을 맡아야 한다. 계획된 모든 것이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하고, 참여하는 스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적당한 시간에 세끼의 식사를 배달시켜야 하고, 간식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해 그들이 지치지 않게 해야 하며, 심지어 흡연자를 위한 담배 피우는 시간과 스텝들이 커피를 마시는 시간까지 일과표에 넣어야 한다.

 

택배상자에는 여러 가지 간식, 핫팩(날씨가 그리 춥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기 스토브와 주전자, 각종 테이프, 심지어 쓰레기를 담는 비닐 등 수많은 자질구레한 물품들이 가득했다. 남편은 이 많은 물건을 은평구 증산동의 촬영장까지 차로 실어주어야만 했다. 전쟁으로 치자면 딸아이는 보급품을 지원하는 병참장교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30분짜리 영화를 찍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관객이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느라 많은 다른 의견의 조율을 통한 수정작업이 필요했다. 제작, 연출, 촬영, 미술을 맡은 헤드와 스텝들은 단 며칠간의 촬영을 위해 몇 달 전부터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 엄청난 회의를 해야만 했다. 흡사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처럼 작전, 총사령관, 장교, 병사, 무기, 보급품, 차량 등이 그들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24명의 스텝이 움직이기 위해 이렇게 많은 물품이 필요하다면, 1941열등한 슬라브족을 몰살시키고 볼셰비즘을 박멸하기 위해 친 추축국(親 樞軸國)의 부대를 합쳐 400만 병력을 소련으로 이동시킨 독일의 총사령관 히틀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1812년 나폴레옹 군대가 처절하게 패배해 퇴각한 곳을 다시 점령하고자 하는 히틀러의 시나리오에는 어떤 것이 들어 있었고, 우리는 무엇을 납득할 수 있을까?

 

1933년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군비 확장과 동시에 국민 생활을 수준 이상으로 유지시키려는 말도 안 되는 의지가 있었다. 당연히 이런 무리한 정책은 부작용을 가져오기 마련이고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공업부문의 노동력 부족현상이 일어났고, 이것은 서비스업이나 항만 노동자 등, 다른 곳의 노동력 부족과 농업 인구의 감소로 이어진다. 독일의 모든 것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석유가 필요했다. 소련보다 먼저 선점한 루마니아에서 석유를 얻는 독일은 소련의 루마니아 공격을 우려했고,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코카서스의 유전까지도 필요했다. 이런 여러 가지 위기로 독일은 외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타국 병합에 의한 자원과 외화 획득, 점령한 국가의 주민 강제노동으로 독일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군비확장 경제를 유지했다. 물론 이러한 내치적 요인으로 추진된 영토 확장정책은 타국과의 분쟁을 고조시키는 것이었지만, 나치 독일은 위기극복을 위해 전쟁에 돌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제2차 세계 대전은 시작되었다.......

사실 프랑스 등 각국을 정복한 후 독일의 점령정책은 자원과 공업제품 징발, 노동력의 강제 동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독일 국민의 생활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1944년에 전쟁 판세가 급격히 패배로 기울기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들은 초기 제국주의적 수탈정책으로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누린 공범자였던 셈이다. -p128~129, ‘독소전쟁’]

 

독일이 소련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은 세계관, 절멸, 통상 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두 마리도 아닌 세 마리의 토끼를 쫓겠다는 욕심과 나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서 가차 없이 빼앗아 내 가족을 배불리겠다는 뻔뻔한 생각이 동시에 있었다. 이런 파렴치한 히틀러와 절대로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스탈린이 맞붙은 독소 전쟁은 양쪽에 엄청난 손실을 주었고, 그 어떤 것에서도 도덕과 관용,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문짝을 부수면 썩은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이다!(p.54, 스탈린그라드)”라고 소련을 과소평가한 히틀러는 9~17주 정도 만에 소련 침공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망상에 불과한 희망사항이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소련의 저항이 강해 독일은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데 실패한다. 작전을 바꾼 독일은 코카서스의 석유를 포기하지 못해 스탈린그라드로 향했지만, 결국 독일 제6군은 그곳에서 완전히 소련군에게 포위당한다. 히틀러는 끝까지 항복이나 퇴각 명령을 내리지 않았지만 파울루스 원수는 소련에게 항복한다.

 

독일의 소련 침공에 대한 앤터니 비버의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굉장히 미시적인 접근으로 서술된 책이다. 독일 현대사를 전공한 오키 다케시의 독소전쟁은 거시적인 관점으로 일목요연하게 독소전쟁을 잘 정리해 놓았다. 예상과 달리 앤터니 비버보다 오키 다케시의 책에서 이 전쟁에 대한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앤터니 비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번 여름에 읽은 저자의 다른 책인 베를린 함락 1945때문이었다. 어떤 이유로 소련 병사들은 독일에 대해 복수의 칼날을 갈았으며, 그들이 왜 그렇게 끔찍한 집단 강간을 저질렀는지 궁금했다. 책의 여러 부분에서 계속 언급된 집단 강간과 독일군이 러시아에서 한 짓’, ‘독일군이 소련에서 저지른 만행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렇다면 독일군은 소련 침공 시 강간을 하지 않았을까? 이 책(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강간이란 단어는 딱 한군데에서만 언급된다.

 

[98일자 스탈린그라드 전선 소식지 스탈린코에 즈나미아에는 사지가 묶인 채 겁에 질린 소녀의 사진이 실렸다. 설명은 이러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딸이 파시스트들에 의해 이렇게 묶여 있다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렇다. 그들은 이 어린 아이를 무참히 강간한 다음 전차 밑으로 던져 버릴 것이다. 전진하라, 전사들이여. 적을 쏘라. 범죄자들이 여러분의 딸을 강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임무다.

-p.192]

 

저자는 이 문장에 대한 주석으로 ‘1942년 늦은 여름의 이 강간을 모티프로 한 선전이 1944년 말과 1945년 붉은 군대가 독일의 영토로 진격하면서 집단 강간을 저지른 것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후, 그들은 엄청난 양의 곡식과 가축, 원료와 노동력을 수탈했다. 히틀러는 출동부대라는 특수기동대를 투입해 유대인과 코미사르, 소련군 포로를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900일 동안 봉쇄한 레닌그라드에는 굶주리다 못해 인육을 먹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된 독일군 역시 나중에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인육을 먹는 군인이 있었다. 인생사 새옹지마이다.

 

히틀러가 이렇게 소련인들을 가볍게 학살할 때, 스탈린은 그들을 구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독일을 이길 수만 있다면 자국 국민들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소련군 포로는 전쟁이 끝난 후에 굴라크로 가야만했다. 군인들이 전사하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또 다른 국민이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고 전투에 동원되었다. ‘굶어 죽어가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p.75)

 

[한 독일군 장교는 러시아인들이 자기 동포의 시체를 발가벗기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와 병사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얘기했다. 하지만 독일군 병사들은 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옷과 장화를 빼앗은 다음 얼어붙은 허허벌판으로 쫓아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내쫓긴 러시아인들은 대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모스크바 퇴각 때 독일군 병사들은 농가에서 닥치는 대로 가축과 식량을 빼앗아 갔다.

-p.86]

 

이런 독일의 만행으로 러시아인들은 분노와 원한을 키웠고, 그들에게 절대 질 수 없다는 결의를 다졌다.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된 제6군에게 항복을 원하지 않으며 끝까지 싸우라고 한다. 그들의 패배를 확실히 인식했을 때, 각 사단에서 두 명의 병사를 차출해 원래의 6군에서 나온 상징적인 씨앗으로 새로운 6(p.14)’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히틀러판 노아의 방주(p.14, 스탈린그라드 전투)’였다. 히틀러의 소련 침공으로 붉은 군대가 입은 피해는 사상자 110만 명, 그 중 사망자는 48만 이상이었다. 민간인 피해자의 정확한 수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스탈린그라드 참사 뒤 유일하게 밖으로 터져 나온 불만의 표시는 백장미라는 소규모 뮌헨 학생 그룹에게서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함부르크,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빈의 다른 학생들에게로 전파되었다. 조피 숄과 한스 숄 남매는 218일 나치 체제의 전복을 호소하며 전단지를 살포하고 벽에 슬로건을 쓴 뒤, 뮌헨의 무트비히-막시밀리안 대학교에서 다시 전단지를 뿌리다가 체포되었다. 남매는 게슈타포에게 고문을 당한 뒤 뮌헨 인민 재판소 특별 재판에서 폴란트 프라이슬러에게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을 당했다. 철학 교수 쿠르트 후버를 비롯하여 그들 그룹의 다른 많은 인원들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p.562, 스탈린그라드 전투]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거리는 온통 떨어진 낙엽으로 덮여 있다. 그 길을 걸으며, 낙엽을 밟으며 이 낙엽들이 전쟁으로 고통스럽게 죽어 간 인간의 생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개개인에게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라는 엄청난 것이지만 권력을 가진 자에게 이 죽음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는 술잔보다도 가벼웠을 것이다. 가진 것 없고, 약하기만 민중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목숨을 바쳤을까? 나 역시 아무것도 아닌 민중이기에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지금 당신은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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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11-09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에서 독소전 당시 독일군이 러시아 사람들을 불태워죽였던 게 떠오릅니다 생지옥이죠...백장미단 이야기가 이 책에도 언급되는군요 따님 영화 잘 찍으시길 응원합니다~

페넬로페 2023-11-09 09:51   좋아요 2 | URL
독일군들이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하게 수탈을 했더라고요.
그들에게 필요 없는 것도 무조건 빼앗고 집도 불태우고~~
생각지도 않게 이 책에서 백장미단이 언급되어 있었어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coolcat329 2023-11-09 1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오랜만이에요~
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 저도 읽어야 하는데 사놓고 그냥 방치네요.
스탈린그라드 전투 저 책도 사야겠어요.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룬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소련 병사 두 명 당 총 한 자루만 주고 앞서가던 총 든 병사 죽으면 뒤에 총 없이 따라가던 병사가 총 주워서 돌격하던 장면이 넘 충격적이었어요.
어차피 죽을 거 총을 아까자는 거죠. ㅠ

페넬로페 2023-11-09 13:06   좋아요 2 | URL
쿨캣님, 요새 많이 바쁘신가 봐요. 그래도 책은 꾸준히 읽으시는 것 같아요.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알라딘에서 품절이라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베를린 함락 1945‘가 훨씬 더 짜임새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쿨캣님께서 알려주신 영화를 저도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보기에 힘들 수도 있겠어요 ㅠㅠ
어쨌든 히틀러와 스탈린은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인데 그 두사람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참 슬퍼요.

얄라알라 2023-11-11 02:17   좋아요 1 | URL
책도, 영화도
맥락을 알고 봐야 오래 기억난다는 당연한 진리를 페넬로페님 글과 coolcat님의 댓글로 다시 생각해봅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보았어도, 그 역사적 배경도 기억에서 희미하고
coolcat님 말씀하신 장면도 희미하고.

[피에젖은 땅]이며, [돗소전쟁]이며 높은 고지처럼 보이지만 외면하면 안 되겠네요.
맥락 없는 이해는 빈 깡통과 같음을 깨닫기에

페넬로페 2023-11-11 08:17   좋아요 0 | URL
쿨캣님께서 말씀해주신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보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4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언급된 저격수에 대한 내용이더라고요.
실제로 목동 출신의 이 저격수가 유명했다고 했어요.
영화 소개해주신 쿨캣님께 감사드려요.
책을 읽고 보니 이해가 넘 잘 되었어요. 얄라님 말씀처럼 배경과 맥락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쿨캣님 말씀하신 장면은 영화의 거의 첫 장면인데 전장에 도착하자마자 총 한 자루만 주면서 바로 적진으로 뛰어가라는 장면이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레삭매냐 2023-11-09 1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성해 주신 글에 오류가 있어
알려 드립니다.

한스와 조피 숄 남매는 교수형이
아니라 단두대에서 기요틴 처형
되었습니다.

<베를린 함락>에도 나온 것처럼
파시스트 짐승의 소굴로 진격하던
붉은군대의 전사들이 동프로이센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걸 보고 놀랐다
고 하지요.

이렇게 잘 먹고 잘 살면서 상대적
으로 못사는 우리를 왜 침공했나
하고 말이죠.

우리는 잠시 유예된 평화 속에
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주
무감각하게.

페넬로페 2023-11-09 13:12   좋아요 3 | URL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제가 대학 다닐 때 읽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교수형도 아닌 단두대에서 처형했다니 ㅠㅠ
아마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네요.

베를린 함락에서 저도 그 부분 읽으면서 공감했고, 소련인들이 당한 고통도 이해했지만 꼭 그런 방법이어야 했었는지 경악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갑자기 전쟁이 찾아온다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레이스 2023-11-09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급품 얘기를 하니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이 생각나네요. 벌써 졸업작품 찍을때가 됐네요.
세월 빨라요...;;;

페넬로페 2023-11-09 13:18   좋아요 2 | URL
무기의 그늘~~
읽었는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요즘 머리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아요.

딸아이 동네 친구들은 벌써 취업도 많이 했어요. 제가 딸아이에게 취업도 그렇고 남친도 없어서 씁쓸하다고 했더니 가만히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 모습이 좀 짠하기도 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요.

새파랑 2023-11-09 1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요즘 역사 책 많이 읽으시는거 같아요~!!

요즘 러시아는 안그런데 예전 러시아는 점령이 쉽지 않은거 같아요. 땅도 척박하고 날씨도 안좋고 ㅋㅋ

날씨가 추워졋니 코트를 꺼냈습니다 ㅋㅋㅋ

따님이 피디라니 뿌듯하실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3-11-09 13:21   좋아요 3 | URL
러시아는 워낙 날씨가 추워 그것이 그 나라를 돕는 것 같아요.
책 한 권을 읽으면 다른게 궁금해 또 다른 책을 읽게 됩니다.
딸아이는 아직 학생인데 취업 생각하면 많이 암울해요 ㅠㅠ

서니데이 2023-11-09 2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영화전공하시는군요. 러닝타임이 길지 않은 단편영화를 찍는 것도 큰 일이라고 들었어요.
전체과정에서 가장 할 일이 많고 어려운 역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페넬로페님, 내일 아침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고 해요.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3-11-10 00:21   좋아요 2 | URL
네, 짧은 단편영화, 그것도 학생들이 찍는 영화인데도 너무 할 일이 많고, 제작비도 많이 들더라고요. 고생한 만큼 좋은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니 맘도 추워지는 느낌입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건강 유의하시기 바래요^^

꼬마요정 2023-11-09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영화 찍으시는군요. 너무 멋져요!! 영화는 종합예술이잖아요!! 정말 대단해요!! 정말 자랑스러우실 것 같아요^^

전쟁은 너무 잔인해요. 쿨캣 님이 말씀하신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진짜 저도 충격이었어요. 두 사람이 한 조인데 한 명은 총 한 명은 총알… ㅠㅠ 지금도 러시아를 포함해서 여러 곳에서 전쟁 중인데 부디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랍니다ㅜㅜ

페넬로페 2023-11-10 00:27   좋아요 3 | URL
옆에서 보니 극장에 걸리는 영화 한 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갔는지 알겠더라고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곳에 들어가도 일을 잘 해낼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마침 왓챠에 ‘에너미 앳 더 게이트‘가 있어 보기 시작했어요.
그 어떤 이유에도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책을 통해 또 한 번 실감했어요^^

희선 2023-11-13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러 사람이 한 가지 일을 하려면 많은 게 있어야겠습니다 전쟁은 더하겠습니다 그런 걸 다른 곳에서 빼앗다니... 예전 싸움에서는 전쟁에 쓰는 물품을 옮기는 길을 막아버리기도 했네요 세계 전쟁이 일어났을 때라고 그런 일이 아주 없지 않았겠습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말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전쟁을 하는 사람은 피해 입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걸지... 사람을 죽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되면 안 될 텐데... 지금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 건 피해 입는 사람을 별로 생각하지 않아서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11-13 08:32   좋아요 1 | URL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한 두개가 아니잖아요.
그것이 전쟁터라고 해서 필요해지지 않는것도 아니고~~그런것을 민간인들이나 침략국의 포로들의 노예 노동에 의존한다는 게 더 큰 폭력과 원한을 가져오는 것 같아요 ㅠㅠ
폭력은 더 큰 폭력을 가져올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독서괭 2023-11-15 1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따님이 영화 찍으시는군요! 앞으로 좋은 영화를 많이 찍어주시길 바라봅니다. 영화 찍는 얘기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전쟁 얘기로 넘어가셔서 깜짝..ㅎㅎ 전쟁 책은 읽기 너무 힘들 것 같은데 열심히 읽고 남겨주시는 거 대단해요 ㅠ

페넬로페 2023-11-15 19:15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의 응원, 감사합니다.
전쟁에 대한 책은 정말 읽기 힘들어요. 사람 목숨이 너무 가볍게 취급되니 참 씁쓸하더라고요. ㅠㅠ
제발 전쟁이 없어지면 좋겠는데 그저 제 희망사항인 것 같습니다.

미미 2023-11-17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어요. (보일러를 돌리지 않아 거실이 마침 썰렁해서 더ㅋㅋㅋㅋ)
<피에 젖은 땅>에서도 스탈린이 군에게 강간을 부추기는 듯한 내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ㅜ.ㅜ
저는 자국민까지 학살하고 방치했기에 늘 히틀러보다 스탈린이 더 밉더라고요. 게다가 스탈린의 악행은 히틀러보다 더 잘 숨겨진 측면도 있어보이고요.

그나저나 페넬로페님 따님이 영화를 전공하신다니 이번에 PD로 참여한다니 너무 멋진걸요?! 페넬로페님의 리뷰를 읽으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지금 전쟁이 얼른 좀 끝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꾸 뉴스를 찾아보게 되네요.


페넬로페 2023-11-17 18:01   좋아요 1 | URL
정말 스탈린과 히틀러의 만행은 읽으면 읽을수록 끝이 없습니다.
그저 국민은 전쟁 기계에 불과하고요 ㅠㅠ
자국민에 대한 선처나 애정도 전혀 없더라고요. 스탈린과 히틀러는 자존심 싸움만 했던 것 같아요.

딸아이가 영화전공하는데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던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세상 모든 곳에 평화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희선 2023-12-09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축하합니다 여전히 전쟁은 끝나지 않는군요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사는 게 전쟁이다 하기도...

페넬로페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넬로페 2023-12-10 10:37   좋아요 0 | URL
여전히 전쟁은 진행중입니다 ㅠㅠ
빨리 끝나기를 매번 희망합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17일엔 누구의 소행인지(양쪽 다 상대방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자 지구의 한 병원이 공습을 당해 500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들 사이의 반목은 워낙 뿌리가 깊고,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을 벌이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제는 누가 옳고 그른지도 잘 모를 정도로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폭력적인 복수만 되풀이되고 있다. 어느 한 편이 그 땅을 떠나야만 약간의 평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얼마 전에 일어난 이 암울한 소식을 들으며, 마침 잠자냥님의 소개로 읽고 있는 하워드 진역사의 힘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소제목이 홀로코스트를 기리며인데, ‘프로그레시브에 실린 이 글에 엄청난 반응(긍정과 비판)이 일어났다고 한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저자는 유대인 모임의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에 관한 강연 요청을 받았다. 그는 그 제안을 수락했고 강의를 했지만 정작 강의의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유대인 600만 명의 대량 학살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하워드 진은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에서 죽어 간, 미국 정책의 희생자들인 수십만 소작농들에 관해 그날 강의를 했다.


[내 요점은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철조망에 둘러싸이거나 도덕적으로 게토화돼서역사 속의 다른 대량 학살과 고립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그 기억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잔혹함에 맞선 의분분노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유대인들이 겪은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p.84]

 

이 강의로 저자는 다른 유대인 교수의 항의를 받는다. 그 유대인 교수는 홀로코스트는 신성한 기억이며 유일무이한 사건으로서 다른 사건과 비교할 수 없다며 격분했다.


[다른 민족과의 결혼과 동화 탓에 고유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 일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일환으로 홀로코스트를 이용했다. 1967년 전쟁 이래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팔레스타인까지 확장하려는 계획과 사면초가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홀로코스트를 이용했다그리고 비유대계 정치인들은 수는 적지만 영향력 있는 유대인 유권자들한테서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홀로코스트를 이용했다분노로 가득 찬 유대인 유권자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려고 대통령들이 야물카(유대인 남성들이 머리에 쓰는 원형 모자)를 쓴 채 엄숙하게 연설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라-p.85]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유대인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슬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고통과 역사에만 몰입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고, 보상만을 받으려 한다면 그건 이기적인 행동이다. 저자는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가 조금이라도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민족에게 저지르는 그들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비판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의 영향력이 워낙 큰 탓에 그들은 막강한 힘으로 로비를 벌이고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특별함 주위에 장벽을 두르는 것은 인류가 하나이고 우리 모두 피부색국적종교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행복추구의 권리를 누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일이다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일은 세부적으로는 특별할지 몰라도 인류 역사의 다른 많은 사건들즉 대서양 노예무역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인간의 생명을 앞에 놓고도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주의 정신의 희생자가 된 수백만 노동자들의 부상과 죽음 등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을 공유한다.-p.86]

 

어쩌면 하워드 진의 말들이 오해를 불러 올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을 사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가 하려는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분쟁의 이유에는 분명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보상심리도 들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그것에 대한 댓글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양쪽으로 나뉜다.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을, 누군가는 팔레스타인을 나쁘게 보고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각자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하워드 진의 말처럼 그 어떤 것도 게토화 내지는 고립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대한민국은 심하게 양 진영으로 나눠져 있고 각자의 영역에서만 생각하고 인식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이다. 이쯤에서 하워드 진이 한 말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새겨들으면 어떨까? ‘인류는 하나이고,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행복추구의 권리를 누릴 가치가 있다는 것’,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어야만 한다는 것(이것은 나의 말).....폴스타프님께서 무척이나 낭만적이라고 말씀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맥락이 있고, 납득된다면 인간은 언제나 낭만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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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0-19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홀로코스트는 잊지 않아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그 일만 중요하게 여기면 안 되겠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도 억압받고 죽임 당하기도 했는데...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생각하지 않는지...


희선

페넬로페 2023-10-19 08:42   좋아요 2 | URL
이런 이슈가 엄청 민감한 사항인데,
저는 이 글이 주는 메시지가 좋더라고요. 제가 항상 지향하는 생각이기도 하고요.
종교를 앞세운 전쟁이 다 그런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배후에 더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면이 더 많겠죠.ㅠㅠ

독서괭 2023-10-19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일은 세부적으로는 특별할지 몰라도 인류 역사의 다른 많은 사건들, 즉 대서양 노예무역,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인간의 생명을 앞에 놓고도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주의 정신의 희생자가 된 수백만 노동자들의 부상과 죽음 등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을 공유한다˝ => 아, 이 부분 참 좋네요. 피해자가 언제까지 피해자이기만 하진 않는 것.. 단발님의 글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고요.

페넬로페 2023-10-19 09:49   좋아요 2 | URL
인용한 문장 외에도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많았어요. 이 부분 전체를 인용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우리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아니기에 또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되는 부분인것도 같았어요.

그저 평화만을 바랄 뿐입니다 ㅠㅠ

새파랑 2023-10-19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홀로코스트에 대한 색다른 시각이네요. 저는 저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었어서 놀랍습니다~!

어떻게든 피해없이 분쟁이 잘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ㅜㅜ

페넬로페 2023-10-19 14:31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정말 색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얼른 빨리 평화를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미미 2023-10-19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며칠 전에 중고로 구입했어요.^^ 하워드 진의 말은 너무 당연해 보이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쉽지 않은 시각인가 봅니다. 지켜보는 다른 나라의 시민들까지 편이 갈리는걸 보면 해결의 실마리는 더 요원해보이고요. 그나마 최근에는 인근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를 대체로 받아들이는 분이기였다는데(경제 협력도 코앞이었던..)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란측이 테러의 배후라는 설도 힘을 얻고 있더군요.

페넬로페 2023-10-19 17:44   좋아요 1 | URL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홀로코스트가 천추의 한이겠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또 어이없는 일이기도 했구요. 쉽지 않겠지만 뭔가 공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과격단체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옆에서 들쑤시니까 그게 또 문제가 되고~~이란이라는 나라도 참 그렇죠?

이 상황에서 하워드 진의 생각이 무척 참신했어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23-10-20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워드 진의 책을 갖고 있는데 어디 숨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이래서 알라딘 서재를 좋아합니다. 저를 공부하게 만들거든요. 저는 노란색 표지의 책이에요.
평화롭게 살기에도 삶이 만만치 않은데 모든 전쟁이 빨리 종식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페넬로페 2023-10-20 19:1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알라딘 서재를 통해 계속 좋은 책을 알게 됩니다, 이 책도 그렇고요.
전쟁을 겪는 사람들이 엄청 고통스러울 것이고, 특히 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이 걱정되네요. 빨리 분쟁이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보통 두 가지 경우가 생긴다. 책의 내용에 푹 빠져 작가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와 작가를 계속 의식하며 책을 읽는 경우이다. 나는 전자에 속하는 독서를 많이 하는데(주로 소설을 읽어 그럴 것이다), 백래시를 읽으면서는 계속 작가 수전 팔루디가 의식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너무 촘촘하게 서술된 내용에 한 번씩 지치기도 했지만, 마지막 부분쯤 갔을 때,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거대 담론이나 무슨 주의(主義)보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팔루디가 했을 고민과 수고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러 반격에 대한 부당함을 따지고, 세세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듣고, 법원의 판례와 책이나 연설문을 읽었는지가 보였다. 또한 그것을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내 전달하고자 하는 절실함도 있었다. 너무 고생했다고 작가를 한번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저자가 피곤할 정도로 쪼개어 자세히 나열한 사례들은, 이 사회의 거대하고 부당한, 치졸하기까지 한 여성을 향한 반격에 대한 반박이었다. 설득력 있는 저자의 말들은 분명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사람들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백래시의 백미는 팔루디가 반페미니스트 이데올로그들의 주장을 논파할 때 드러나는 깊은 냉소와 서늘한 유머 감각이다. “페미니스트는 재미를 깨는 프로불편러라는 세간의 편견과 달리팔루디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때때로 낄낄거리게 한다책을 읽다 보면 고도로 직조된 빈정거림이 아니라면 페미니즘을 둘러싼 현실을 포착하고 설명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한국어판 해제 중에서]

 

책을 읽으며 어이없고 기가 차서 나도 낄낄거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백래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2016년에 출간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를 보고 나서이다. 이 소설과 영화에 대한 수많은 논란은 다 제외하고(페미니즘이든, 백래시든),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김지영이 왜 나도 살지 않았던 삶을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궁금증이었다. 그리고 너희들만 그렇게 힘드냐?”고 말하며 시작된 젊은 세대의 남성들이 보인 여성에 대한 혐오의 원인이었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면, 더구나 골수보수정부가 집권하고 뉴라이트가 기승을 부리는 이 즈음에 198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지금과 상황이 비슷한 이 책이 어떤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전 팔루디가 밝힌 반격의 이유와 움직임은

 

-평등에 대한 남성들의 반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저항

-남성들의 경제적사회적 안녕을 위협한다는 불쾌감

-여성들이 거둔 대체로 소소한 성과(혹은 그저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인식)에 발끈

-여성들의 근근한 진보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잉 반응

-여성들의 정치적 발언을 막아 버림

-반페미니즘이라는 트렌드를 미디어가 교묘하게 주도함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여성들의 삶의 역설반격에서 핵심으로 자리하게 될 그 역설을 처음으로 주류 청중들에게 제시하고 해설한 집단이 바로 언론이었다는 점이다그 역설이란 바로 여성은 많은 성과를 손에 넣었지만 대단히 불만스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반격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대신 이를 유포하는 쪽을 택했다.]

 

-헐리우드의 합류(소심하게 체제 순응주의를 택함)

-반격의 출생지인 뉴라이트 집단의 혹독한 응징

-“여성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믿음

-여성들이 학대를 좋아한다는 주장(구타당하는 여성들을 가정폭력을 자초하는 마조히스트로 취급

 

이러한 반격은 여성을 공격하기 위해 여성을 이용하고, 미스아메리카대회나 미용 산업으로 여성의 관심을 돌리려고 했다. 페미니즘을 옹호했던 사람들도 자신의 입장을 뒤집어 반격의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여성의 신비를 쓴 베티 프리던도 자기가 직접 쌓은 탑에 흠집을 내는페미니스트였다.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13일터14장의 부분이다. 여성들이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생각과 여성은 태생적으로 저소득 일자리를 선호한다는 편견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특히 블루컬러계층에서의 직장에서의 차별은 심각했다. 저소득층 남성들은 아내가 일하는 것을 원치 않음에도 그들의 수입 없이는 생활을 지탱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술을 마셨으며 일하러 나가는 것을 방해했다. 어떤 남성은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아내가 다니는 직장에 취업해 그녀를 괴롭히고 폭력을 가했다. 여성들은 같은 직장의 남성들로부터 성희롱과 폭력, 성폭행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일하는 여성의 가장 큰 적은 직장 내 남성 동료들과 남편이었다. 언론계에서 일하는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사방이 온통 바리케이트로 막혀 있다는 기분만 들어요노란 불빛이 번쩍이는 바리케이트요그리고 한 발짝 떼려고 할 때마다 그들은 또 다른 바리케이트를 내 앞에 던져 놓죠.” 하지만 법적인 싸움에서 패하고공포를 통해 군림하던 남편은 비참하게 죽고설거지나 하는 굴욕적인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자 했던 자신의 결심은 절대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 우린 이걸 바꿔야 해하고 말했다가 해고당했다면 그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가정사를 결정할 가부장의 능력이 퇴색된 데 대한 억울함은 여성 스스로가 출산을 통제할 기회를 빼앗았다. 여성들의 성적인 자유도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유타에서는 입법가들이 낙태 시술자들을 최고 5년까지 징역에 구형할 수 있게 만들려 했다루이지애나에서는 입법부가 10년의 강제 노동을 요구했고매사추세츠에서는 전기의자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안이 두 차례 제출되었다]

 

1800년대도 아닌 198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이렇게 낙태 반대와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낙태 비용 지원 보조금이 줄어들자 여성들은 불법시술을 받았고 멕시코까지 가야만 했다. 거기서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는 여성도 많았다. 복지 수급자였던 아이다호에 사는 열세 살 소녀 스프링 애덤스는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해 임신을 하였다. 그녀의 엄마는 낙태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 포틀랜드의 저렴한 클리닉으로 딸을 데려가려고 했지만, 스프링은 낙태에 반대하던 아버지에게 총을 맞고 죽었다. 이것이 인간인가?


[1980년대에 낙태 반대의 상징은 아기 엄마가 아니라 태아였다.

태아는 산전 수술실에서는 주요 환자가법률 서적에서는 완전한 시민이법정에서는 핵심 원고가 될 판이었다실제로 1980년대 말경 태아는 어떤 영역에서는 살아 있는 아이보다 법적 권리를 더 많이 가졌다.]

 

임신한 여성의 건강보다 태아의 권리가 더 우선시 되었다. 하지만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인체에 유해한 환경의 작업장에선 여성 노동자들에게 불임수술을 강요했다. 산업 독성 물질 접촉이 남성에게도 똑같이 영향을 주는 것임에도 여성들만 일자리와 자궁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반격이 직장 여성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행위를 은밀히 진행했음에도 시어스 소송이 있었고,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근 10년간의 전투를 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한 다이앤 조이스, 팻 로랜스, 잔 킹의 사례를 읽는 동안 대학 1학년 때의 은사가 생각났다. 이 여성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였지만 그 선생님도 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내 전공이 아닌 교양수업의 시간강사였던 선생님은 강의 도중에 한 번씩 자신의 처지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곤 했다. 가족 수가 많은 시댁에서 살고 있었던 그녀는 어린 아이가 있음에도 공부를 하며 강의를 나온다고 했다. 시댁에서 해야 할 집안일이 많아 보통 와이셔츠를 두벌씩 겹쳐 다린다고 했다. 시집살이가 녹록지 않지만 그녀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말함으로써, 힘들지만 계속 해 나가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던 건 아닌지... 겨울이 되고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어스름 속에 뛰듯이 종종걸음치며 교문을 나서고 있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수업을 마친 우리들은 맥주를 마시러 갈 예정이었고 선생님은 급하게 시댁으로 달려가야 했을 것이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불쑥 선생님에게 자아실현 하세요!”라고 외쳤다. 선생님은 자신 앞에 있는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아실현 하셨을까? 아님 잔 킹의 말처럼 지더라도 시도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수전 팔루디는 백래시의 에필로그에서 단도직입적인 의제와 대중행동, 그리고 완전한 물리적 저항이 결합되어야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고단언한다. 어떤 여성들은 착한 인내심을 가지고 소심하게 도전했다. 하지만 이런 저항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적극적이며 당당하게 전략을 구사하며, 여성들이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해결책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책이다.


읽기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만, 분량이 많고 도중에 다른 책을 읽어야 해서 거의 세 달에 걸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가 이 책에 여러 사례를 집어넣고 그것에 대해 끈질긴 반박을 했기에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읽기는 쉽지 않았다. 집 안에서, 카페에서,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KTX에서도 읽었다. 변화와 실천은 정확한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계속 되새겼다.

 

-[ ]표시는 책의 내용을 인용했으며 페이지는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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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10-09 14: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한 책이라는 말씀에 아프게 공감합니다. ‘변화와 실천에는 정확한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에도요. 저는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엄두를 내지 못해 미루고 있었는데 페넬로페님, 읽는 제가 후련하게 잘 정리해 주셨네요 >.< 이 책 저도 ..무거운 내용임에도 많이 웃었어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10-09 17:47   좋아요 3 | URL
이 책에 나오는 사례마다 할 말이 많았는데 그걸 다 적으려니 끝이 없을 것 같아 적당히 정리했습니다. 와, 정말 졸렬하고 비열하고~~아직 멀었지만 또 하나의 인식을 한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3-10-09 17: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멋진 리뷰입니다.
저도 중간부분까지는 낄낄거리며 웃었어요. 뒷부분으로 갈수록 좀 마음이 안좋았었는데 인용해주신 부분들을 읽으니 기억이 새록합니다.
‘적극적이며 당당하게 전략을 구사하며 실천하기‘가 저항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말씀 꼭 기억해야 할 명언이네요.
e북으로 읽기! 페이지 수가 많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고생많으셨어요.^^

페넬로페 2023-10-09 17:52   좋아요 3 | URL
정말 기가 차서 웃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으리라 믿으려고요.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연대하며 움직이라는 팔루디의 말을 새겨 넣었어요. e북이 어디 다니기는 확실히 편했어요^^그리고 저에게 주는 칭찬, great도 슬쩍 넣었습니다. ㅎㅎ

독서괭 2023-10-09 18: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겨우 완독하고 리뷰는 못 쓰고 있는데 페넬로페님 넘 잘 정리해주셨네요!! 저도 작가의 노력이 참 고맙더라고요.
그 강사님… 시집살이에서의 도주에 성공하셨기를 ㅠㅠㅠㅠ

페넬로페 2023-10-09 18:10   좋아요 2 | URL
책은 잘 읽었는데 넘 내용이 많아 정리를 잘 못했어요. 작가가 저널리스트라 그런지 확실히 논리적으로 반박을 잘 하더라고요~^

저는 그 강사님이 자아실현 하셨을거라 믿고 있습니다^^

은하수 2023-10-09 1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페넬로페 님 리뷰와 모든 댓글에 좋아요 남기는 것으로 응원 대신합니다.
저도 곧 읽기에 동참해 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3-10-09 19: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은하수님께도 유익한 독서되시면 좋겠습니다^^

얄라알라 2023-10-11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페넬로페님, 멋지세요.

˝자아실현 하세요.˝
와이셔츠를 두 장씩 다리시던 그 선생님께 오래 기억될 응원이었을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3-10-11 11:57   좋아요 0 | URL
그때 ‘자아실현‘이란 말을 많이 사용했던 것 같아요. 그 말의 뜻을 잘 모르면서도 마치 궁극적인 목적인 듯 남발했어요 ㅎㅎ 그것이 무슨 의미든 간에 아마 그 강사님은 제가 열심히 응원한다는 것을 아셨겠지요!

yamoo 2023-10-14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페넬로페 님 시계에 눈이 가네요..
잘 어울리십니다요!!ㅎㅎ

페넬로페 2023-10-14 12:24   좋아요 0 | URL
아주 오래된 시계인데요.
제가 시계를 좋아해요~~
요즘 나오는 스마트워치보다 저는 그냥 시계가 좋더라고요.
yamoo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2023-10-17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7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7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5, 한가람 미술관에서 라울 뒤피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뒤피는 내게 생소한 화가였다. 검색해보니 뒤피는 1877년 프랑스 르아브르에서 태어나 1953년에 생을 마감한 작가였다.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겪은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 당시에 워낙 유명한 화가가 많았는데 뒤피의 그림은 어떨까?’라는 호기심도 생겼다.

 

직접 본 뒤피의 그림은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면서도 특이했다. 그림에서 받는 느낌이 독특해 생각보다 뒤피의 그림 앞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뒤피가 만든 작품이 엄청 다양해 이 작가의 이력이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지껏 다닌 전시회장에서 이렇게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본 건 처음이었다. 뒤피가 디자인한 옷을 입은 마네킹까지 있을 정도였다. 영상으로 보는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의 <전기 요정>도 멋있었다.

 

라울 뒤피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르아브르에서 9남매중 둘째로 태어났다.(p.25) 가정 형편이 어려워 14세에 브라질 커피 수입상에 취업해 일찍부터 일을 해야만 했다. 그 뒤 미술학교를 다니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책의 삽화, 장식 미술, 직물 패턴 디자인, 일러스트, 연극 무대 세트와 의상 담당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했다. 1937,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한 <전기 요정>이라는 제목의 250개의 패널로 된 거대한 벽화도 그린다. 그때 스페인 대표로는 피카소가 참여했었다. 피카소는 이때 게르니카를 출품했다. 나치 독일과 소련도 참여해서 신경전을 벌이며 경쟁을 했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 있는 르아브르는 모네가 유년과 소년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모네는 외젠 부댕을 만나 인상주의 화풍에 대한 기틀을 다졌었다. 르아브르 태생인 뒤피도 당연히 처음에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는다. 모네는 평생 인상주의에 머물며 그 속에서 자신의 그림을 발전시켰지만, 뒤피는 세잔의 그림에 더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에서 야수파로, 그 뒤 입체파의 화풍까지 가져온다. 뒤피의 그림은 이 세 가지가 섞여 있어 묘한 느낌을 준다. 뒤피는 르아브르와 노년에 정착한 남프랑스의 바다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뒤피의 그림엔 바다가 많다. 르아브르와 생트-아드레스의 해변, 여러 곳에서의 레가타(요트 경기)를 소재로 한 그림엔 뒤피가 얼마나 바다를 사랑했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정겨움과 따뜻함이 있다.


마담 뒤피의 초상화(p.211~225)

 

대부분 화가의 아내는 화가의 뮤즈이자 모델이 되어준다. 뒤피는 패션디자이너인 외제니-에밀리엔과 결혼하지만 나중에 별거를 했다. 그 후 베르트 레이즈를 만나 동거한다. 뒤피는 이 두 여인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예술가와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그림으로 남겨진다는 것이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생활에 예술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좋을라나? 그림으로 남겨져 누군가가 계속 나를 쳐다봐 주는 것이?


20, 21, 24, 63, 68, 71, 76, 뒤피의 자화상(p.55~63)

 

뒤피는 어린 나이에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세계 제 1, 2차 대전을 겪은 사람이다. 노년엔 류마티스 관절염에 시달렸다. 그의 삶에 분명 힘든 시기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에 인류의 재앙이나 자신의 병도 담기길 원치 않았다.(p.342)’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오로지 작가가 결정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 꼭 시대를 그대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 폭력과 폐허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환희는 분명 존재한다. ‘라울 뒤피라는 예술가가 안주하지 않고 계속적인 변화에서 자신만의 뒤피스타일을 완성해가는 모습에 그저 감탄한다.

 

 

이소영 작가의 책,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뒤피에 관한 이야기가 풍성하다. 뒤피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고, 그림도 많이 수록되어 있어 전시회에서 보지 못한 뒤피의 그림을 감상하기에 좋았다.

 

[그가 남긴 말인 삶은 나에게 미소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지었다”, “내 눈은 추한 것은 지우게 되어 있다하는 문장을 곱씹어 보면 그가 죽는 날까지 그림에 고통과 슬픔보다는 희망과 행복, 낙관을 담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다. 뒤피의 삶과 작품을 보면 세상은 끝끝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p.343]


동물 시집표지와 내지(p.190~192)

 

1911년 뒤피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동물 시집의 삽화를 목판화로 그린다. 이 책의 목판화는 별면 삽화 4점과 텍스트에 들어가는 삽화 26, 30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1880년에 태어나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3일 앞두고 전쟁에서 입은 상처와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기욤 아폴리네르의 동물 시집은 하나의 에피소드이다.(‘알코올’, 열린책들, 황현산 옮김, 역자 해설 중에서) 30편의 짧은 시와 30편의 목판화가 실려 있는 이 책의 내용은 동물들의 특징과 가치, 이미지들을 상징과 비유를 통해 서술되어 있다. 오르페우스의 등장과 그의 노래와 리라 소리를 듣기 위해 모여 든 동물들을 표현했다. 보통의 언어로 쓰여진 시가 아니라서 그런지 작가 자신의 주석과 번역자의 주석이 함께 있다.

 

평소에 시를 잘 읽지 않기에 라울 뒤피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아폴리네르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물이 주는 상징이나 신화를 조금 알고 있으면 좋지만, 그런 것을 떠나 그냥 읽어도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시에는 위트도 있어 재미있다. 이번에 토끼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산토끼의 암컷은 이중임신이 가능하다고 한다.

 

[고양이

 

내 집에 두고 싶은 것 :

사리를 아는 여자 하나,

책 사이를 거니는 고양이 한 마리,

하루도 거르고는 살 수 없는

사계절의 친구들.

-p.19]

 

사리를 아는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역자의 해설에서 아폴리네르는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에 결혼했고 고양이는 집에 두지 못했지만 친구들은 늘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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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0-04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 여름에 안산에 있는
어느 김밥집에 갔다가 이 작가
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것 참...

프랑스 출신이었군요.
‘바다‘ 그림이 정말 멋졌던 것
으로 기억합니다.

페넬로페 2023-10-04 23:06   좋아요 1 | URL
저는 어느 식당 화장실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과 만난 적도 있어요 ㅎㅎ
김밥집 사장님의 안목이 높으신 것 같습니다.

뒤피의 바다그림, 좋았습니다.

바람돌이 2023-10-04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울 뒤피는 바다그림요. 어지러운듯 신나 신나 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
이 책도 지금 보려고 줄세워놨는데 언젠가 보겠죠. ^^

페넬로페 2023-10-04 23:11   좋아요 1 | URL
제가 바다를 좋아하다보니 뒤피의 바다그림이 눈에 바로 들어 오더라고요.
파도를 삼각형 모양으로 그린 것도 좋았어요.
이 책이 쉽고도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유익했어요.
바람돌이닝, 바쁜 일정 끝나서 자주 뵀으면 좋겠어요^

희선 2023-10-05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울 뒤피는 힘들 때도 그림에는 밝은 걸 나타내려고 했군요 그 시대를 담는 것도 있고 희망이나 꿈처럼 밝은 걸 담아도 괜찮죠 라울 뒤피는 여러 가지를 하다니 그것도 대단한 듯합니다 그런 거 하려고 해도 못할 것 같은데 그만큼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잘 하기도 했겠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3-10-05 09:29   좋아요 1 | URL
한 사람이 타고난 재주가 엄청 많더라고요. 그림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들을 시도한 작가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어쩌면 편견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힘들때도 밝고 좋은 것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힘도 길러야 겠더라고요.

새파랑 2023-10-05 10: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뒤피는 처음 들어보는데

그림이 매력적이네요~!!

페넬로페님 요즘 그림에 빠지셨군요~!!

그래도그림으로라도 남겨진다는건 좋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3-10-05 12:50   좋아요 3 | URL
저도 라울 뒤피 작가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림이 좋더라고요.
기회가 있을때마다 그림을 보려고 하는데 거기서 더 이상 들어가지는 않으려고 해요
그냥 감상만으로만 ㅎㅎ

서곡 2023-10-05 1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명하십니다 뭐든 그렇겠지만 정보만 상세히 찾으려고 해도 시간도둑 개미지옥...라울 뒤피 잘 봤습니다 환절기 조심하시고 이 달 잘 보내시길요!

페넬로페 2023-10-05 19:36   좋아요 2 | URL
예, 요즘 워낙 다양한 정보가 있지만 그걸 찾아 정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듯 싶어요.
날씨가 갑자기 왜이런지 ㅠㅠ
본래 이 시기가 이렇게 추운건지 항상 이맘때면 헷갈립니다.
서곡님, 감기 조심하십시오^^
 














최근에 정부는 육사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다른 말로 그가 공산주의자(공산당 활동)라는 이유로 육사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슈가 없었다면 나에게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와 한 쌍을 이루는, 역사책에서 만난 인물로만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홍범도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바뀌는 정부마다 홍범도에 대해 내리는 평가가 다르다는 것은 결국 그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홍범도는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사망했고, 2018년 육사 교정에 그의 흉상이 건립되고 명예졸업장이 추서되며 2021년에 그의 유해가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소설 나는 홍범도는 홍범도가 27세쯤 김수협을 만나 의병활동을 시작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50대 초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장군과 연합해 청산리에서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두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픽션으로 만났기에 홍범도의 스토리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그의 생애는 소설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1868년 평양의 가난한 집에서 홍범도는 출생한다. 아이를 낳고 7일 만에 그의 어머니는 죽고 8세에 아버지가 사망한다. 머슴살이로 생계를 유지하다 15세에 자원입대한다. 군대에서 차별에 대한 불복종으로 탈영하고 종이공장에서 일하다 폭력적인 주인을 때려눕히고 도주한다. 금강산 신계사에서 삭발승이 되지만 이웃 절의 비구니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임신시킨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달패의 습격으로 만삭의 아내와 헤어진다. 상심한 홍범도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포수가 되어 짐승을 사냥하며 산다. 그 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분노해 김수협과 의기투합해 의병 생활로 들어선다.

 

[맞아요. 내가 잡아볼까 하는 호시기는 조선을 향해 총질 해댄다는 왜국 종자들입니다.”

, 왜요? 그건 나라가 할 일이잖아요?”

나도 그리 생각하는데, 나라가 그걸 못하는 것 같잖아요. 점점 더 못할 성싶고요.”

-‘나는 홍범도‘, p.34~35]

 

기회 있을 때마다 러시아, , 일본에 도움을 청하는 나라는 이미 힘을 잃어 자력으로 나라를 지킬 여력이 없기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결성된다. 안중근 의사가 포수였듯 홍범도도 뛰어난 사격술을 가진 포수였다. 화승총이나마 한 자루씩 지녀야 그나마 일본군과 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의병 구성원에 포수 출신이 많다. 홍범도는 일본군과 대개 이기고 때로 진(p.382)’ 높은 승률의 승리로 그들에게서 무기를 전리품으로 가져와 다시 싸웠고, 친일파의 집을 습격해 군자금을 얻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병에 대해 정작 조선은 그들을 반란군으로 여기고 일본군과 함께 그들을 탄압했다.

 

반일 의병대가 무장봉기하자 일본은 그것을 빌미로 조선에 더 많은 수의 군인을 투입한다. 점점 압박해오는 일본군과 무기와 탄약의 부족, 의병 활동으로 인한 양민들의 고통으로 인해 국내활동이 어려워지자 홍범도는 1910년에 러시아로 망명한다. 연해주에서 활동한 홍범도는 당연히 그곳에서 공산주의와 맞닥뜨려야 했을 것이다. 그는 한인 사회주의자들과 연계했고 1927년에 소련 공산당 당원으로 가입한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조선독립군적 성격이 훨씬 더 강했다.

 

[그러나 홍범도의 생애와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평가가 여러 지역에서 모두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의 사상과 특정 시기의 행각을 놓고 일부 견해차를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한학계에서는 대체로 홍범도를 투철한 민족주의자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에 북한과 중국 연변 그리고 구소련(러시아)의 한인학자들은 그를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전향발전한 대표적 사례와 영웅적 인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출신 성분과 성품, 행적을 미루어 추측해볼 때 그가 체계적으로 완비된 사회주의 이론이나 사상에 입각하여 행동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러한 이념에 동조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으리라고 본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 p.12/236]

 

레닌과 스탈린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고 한인들은 소련에서 활동하기 어렵게 되었다. 의병활동이 여의치 않았던 홍범도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19378월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고,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에서 생을 마감한다.

 

뒤늦게 만나본 홍범도의 삶은 한 사람의 생애가 이렇게 파란만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그가 평생에 걸쳐 항일 투쟁을 했다는 것은 확실하고, 우리가 어디에 더 큰 비중을 두어 그를 평가해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딸아이가 혼자 독일의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을 때,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 가서 어떤 느낌을 받았냐고 물었을 때 딸아이는 이런 대답을 했다.

 

...울림이 크지만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에 갔던 때만큼은 아닌 것 같아....”

 

지금도 친일파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며 그들이 남겨준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지인이 기가 차서 말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뼛속까지 나라를 잃었던 고통이 남아 있고,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의 잔재도 여전하다. 홍범도와 친일파가 있었지만 그 뒤엔 항상 양민들이 존재했다. 누가 오든 그들은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국가는 이런 사실을 잊지 말고 언제나 사심이 아닌 대의를 위한 선택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홍범도는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인 189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의병과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20여 년이 넘는 오랜 기간을 줄기차게 일제와 싸웠던 대표적 무장투쟁가였다. 따져 보면 홍범도처럼 오랜 기간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국내는 물론 만주와 러시아령 연해주 등지를 주름잡으며 초지일관 항일투쟁을 벌인 인물도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남한과 북한, 중국 연변지역 그리고 현재 중앙아시아의 한인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되고 지속적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

-1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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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9-08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울 출판사에서 <홍범도 장군>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요! 실제 홍범도 일지를 번역하고 연구자가 주해를 달았더라고요! 것도 추천해봅니다!!

페넬로페 2023-09-08 22:28   좋아요 1 | URL
네, 참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23-09-09 0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생에 걸쳐 항일 투쟁을 한 사람... 이걸 먼저 생각해야 할 텐데, 다른 걸 보고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홍범도 장군은 나라를 생각하고 여러 가지 했는데... 지금 다르게 말하기도 하다니... 친일파 정리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희선

페넬로페 2023-09-09 09:48   좋아요 2 | URL
홍범도 장군이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여러 곳을 전전했고, 그곳에 사는 동안 당연히 그러한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던 나라가 원망스럽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구국을 위해 싸운 그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책읽는나무 2023-09-09 1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봉오동 전투 영화는 본 적 있어요.
홍범도 장군 역할이 나왔던가? 기억이 가물합니다.
암튼 그건 그거고...목숨을 바쳐 의병활동을 한 장군 흉상을 이전한다는 것은...참 할말이 없네요. 이전하자고 하는 자들을 빨리 끌어내렸음 싶습니다.
홍범도 장군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린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21세기인 지금....ㅜㅜ

페넬로페 2023-09-09 14:28   좋아요 2 | URL
‘봉오동 전투‘ 영화 초반에 월강추격대가 양민들 학살하는 것 보고 못 보겠어 지금 멈춘 상태예요 ㅠㅠ
영화 끝에 잠깐 등장하는 최민식 배우가 홍범도 장군이라 하더라고요.
홍범도 장군처럼 오랫동안 의병활동한 사람이 드문데 책읽기님 말씀처럼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게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아요.

미미 2023-09-09 1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려고 예약한 책을 받아왔는데 반가운 페넬로페님의 글!
대전 현충원 앞 홍범도로도 폐지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대요.
뉴스 보기가 겁이 나는 요즘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페넬로페 2023-09-09 14:31   좋아요 2 | URL
저도 그 소식 들었습니다.
그저 한 곳만 보고 일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지우는 것이 정말 납득이 되지 않아요.
요즘 뉴스를 저도 거의 안 보고 있어요 ㅠㅠ
안도현 시인의 시, 제발 가슴에 좀 새겼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