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부는 육사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다른 말로 그가 공산주의자(공산당 활동)라는 이유로 육사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슈가 없었다면 나에게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와 한 쌍을 이루는, 역사책에서 만난 인물로만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홍범도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바뀌는 정부마다 홍범도에 대해 내리는 평가가 다르다는 것은 결국 그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홍범도는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사망했고, 2018년 육사 교정에 그의 흉상이 건립되고 명예졸업장이 추서되며 2021년에 그의 유해가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소설 나는 홍범도는 홍범도가 27세쯤 김수협을 만나 의병활동을 시작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50대 초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장군과 연합해 청산리에서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두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픽션으로 만났기에 홍범도의 스토리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그의 생애는 소설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1868년 평양의 가난한 집에서 홍범도는 출생한다. 아이를 낳고 7일 만에 그의 어머니는 죽고 8세에 아버지가 사망한다. 머슴살이로 생계를 유지하다 15세에 자원입대한다. 군대에서 차별에 대한 불복종으로 탈영하고 종이공장에서 일하다 폭력적인 주인을 때려눕히고 도주한다. 금강산 신계사에서 삭발승이 되지만 이웃 절의 비구니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임신시킨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달패의 습격으로 만삭의 아내와 헤어진다. 상심한 홍범도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포수가 되어 짐승을 사냥하며 산다. 그 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분노해 김수협과 의기투합해 의병 생활로 들어선다.

 

[맞아요. 내가 잡아볼까 하는 호시기는 조선을 향해 총질 해댄다는 왜국 종자들입니다.”

, 왜요? 그건 나라가 할 일이잖아요?”

나도 그리 생각하는데, 나라가 그걸 못하는 것 같잖아요. 점점 더 못할 성싶고요.”

-‘나는 홍범도‘, p.34~35]

 

기회 있을 때마다 러시아, , 일본에 도움을 청하는 나라는 이미 힘을 잃어 자력으로 나라를 지킬 여력이 없기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결성된다. 안중근 의사가 포수였듯 홍범도도 뛰어난 사격술을 가진 포수였다. 화승총이나마 한 자루씩 지녀야 그나마 일본군과 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의병 구성원에 포수 출신이 많다. 홍범도는 일본군과 대개 이기고 때로 진(p.382)’ 높은 승률의 승리로 그들에게서 무기를 전리품으로 가져와 다시 싸웠고, 친일파의 집을 습격해 군자금을 얻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병에 대해 정작 조선은 그들을 반란군으로 여기고 일본군과 함께 그들을 탄압했다.

 

반일 의병대가 무장봉기하자 일본은 그것을 빌미로 조선에 더 많은 수의 군인을 투입한다. 점점 압박해오는 일본군과 무기와 탄약의 부족, 의병 활동으로 인한 양민들의 고통으로 인해 국내활동이 어려워지자 홍범도는 1910년에 러시아로 망명한다. 연해주에서 활동한 홍범도는 당연히 그곳에서 공산주의와 맞닥뜨려야 했을 것이다. 그는 한인 사회주의자들과 연계했고 1927년에 소련 공산당 당원으로 가입한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조선독립군적 성격이 훨씬 더 강했다.

 

[그러나 홍범도의 생애와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평가가 여러 지역에서 모두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의 사상과 특정 시기의 행각을 놓고 일부 견해차를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한학계에서는 대체로 홍범도를 투철한 민족주의자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에 북한과 중국 연변 그리고 구소련(러시아)의 한인학자들은 그를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전향발전한 대표적 사례와 영웅적 인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출신 성분과 성품, 행적을 미루어 추측해볼 때 그가 체계적으로 완비된 사회주의 이론이나 사상에 입각하여 행동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러한 이념에 동조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으리라고 본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 p.12/236]

 

레닌과 스탈린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고 한인들은 소련에서 활동하기 어렵게 되었다. 의병활동이 여의치 않았던 홍범도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19378월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고,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에서 생을 마감한다.

 

뒤늦게 만나본 홍범도의 삶은 한 사람의 생애가 이렇게 파란만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그가 평생에 걸쳐 항일 투쟁을 했다는 것은 확실하고, 우리가 어디에 더 큰 비중을 두어 그를 평가해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딸아이가 혼자 독일의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을 때,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 가서 어떤 느낌을 받았냐고 물었을 때 딸아이는 이런 대답을 했다.

 

...울림이 크지만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에 갔던 때만큼은 아닌 것 같아....”

 

지금도 친일파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며 그들이 남겨준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지인이 기가 차서 말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뼛속까지 나라를 잃었던 고통이 남아 있고,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의 잔재도 여전하다. 홍범도와 친일파가 있었지만 그 뒤엔 항상 양민들이 존재했다. 누가 오든 그들은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국가는 이런 사실을 잊지 말고 언제나 사심이 아닌 대의를 위한 선택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홍범도는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인 189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의병과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20여 년이 넘는 오랜 기간을 줄기차게 일제와 싸웠던 대표적 무장투쟁가였다. 따져 보면 홍범도처럼 오랜 기간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국내는 물론 만주와 러시아령 연해주 등지를 주름잡으며 초지일관 항일투쟁을 벌인 인물도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남한과 북한, 중국 연변지역 그리고 현재 중앙아시아의 한인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되고 지속적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

-1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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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9-08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울 출판사에서 <홍범도 장군>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요! 실제 홍범도 일지를 번역하고 연구자가 주해를 달았더라고요! 것도 추천해봅니다!!

페넬로페 2023-09-08 22:28   좋아요 1 | URL
네, 참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23-09-09 0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생에 걸쳐 항일 투쟁을 한 사람... 이걸 먼저 생각해야 할 텐데, 다른 걸 보고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홍범도 장군은 나라를 생각하고 여러 가지 했는데... 지금 다르게 말하기도 하다니... 친일파 정리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희선

페넬로페 2023-09-09 09:48   좋아요 2 | URL
홍범도 장군이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여러 곳을 전전했고, 그곳에 사는 동안 당연히 그러한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던 나라가 원망스럽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구국을 위해 싸운 그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책읽는나무 2023-09-09 1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봉오동 전투 영화는 본 적 있어요.
홍범도 장군 역할이 나왔던가? 기억이 가물합니다.
암튼 그건 그거고...목숨을 바쳐 의병활동을 한 장군 흉상을 이전한다는 것은...참 할말이 없네요. 이전하자고 하는 자들을 빨리 끌어내렸음 싶습니다.
홍범도 장군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린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21세기인 지금....ㅜㅜ

페넬로페 2023-09-09 14:28   좋아요 2 | URL
‘봉오동 전투‘ 영화 초반에 월강추격대가 양민들 학살하는 것 보고 못 보겠어 지금 멈춘 상태예요 ㅠㅠ
영화 끝에 잠깐 등장하는 최민식 배우가 홍범도 장군이라 하더라고요.
홍범도 장군처럼 오랫동안 의병활동한 사람이 드문데 책읽기님 말씀처럼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게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아요.

미미 2023-09-09 1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려고 예약한 책을 받아왔는데 반가운 페넬로페님의 글!
대전 현충원 앞 홍범도로도 폐지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대요.
뉴스 보기가 겁이 나는 요즘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페넬로페 2023-09-09 14:31   좋아요 2 | URL
저도 그 소식 들었습니다.
그저 한 곳만 보고 일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지우는 것이 정말 납득이 되지 않아요.
요즘 뉴스를 저도 거의 안 보고 있어요 ㅠㅠ
안도현 시인의 시, 제발 가슴에 좀 새겼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