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인생 책 네 권을 어떻게 고를지 암담했고, 고민되었지만 알라딘 서재 친구들이나 작가들의 <인생네권>에 자극받아 그냥 쉽고, 가볍게, 의식의 흐름대로 골랐다.

 

페넬로페의 인생네권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은 고전의 전범(典範) 같은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이 인용되고, 응용되며, 다양하게 변형된다. 지금 이 시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가 소름끼친다. 특히 오이디푸스 왕은 삶이 정말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을 인식시켜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가르쳐주는 인생의 지침서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세 번 읽은 책이다. 중학교 때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라스콜니코프가 고리대금업자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도끼로 살해하는 것에 전율을 느꼈다. 그가 이 노파를 살해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했고, 세상의 누군가는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라스콜니코프의 주장에 동의했다. 중학생인 내가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40대에 읽었을 땐, 라스콜니코프가 노파를 살해한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자격이 의심되었다. 그 어떤 이유에도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도덕적인 면이 우선되었다. 50대를 훌쩍 넘어 최근에 다시 읽은 죄와 벌에서는 그저 <인간 라스콜니코프>만 보였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성마르게 하고,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지.그와 환경적으로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은 것 같은 라주미힌은 저렇게도 긍정적이고 활기찬데 왜 라스콜니코프는? 엄마의 마음으로 라스콜니코프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내게 세계를 보는 관점을 바꾸어준 책이다. 물론 그 전에도 세상의 불공평성과 폭력, 이기심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 책은 나를 한 발짝 더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나를 힘 빠지게도 했다. 아무리 아우성치고, 발버둥 쳐도 이놈의 자본주의 세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감에 젖어 누군가가 희망을 얘기할 때, 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관주의자가 된 듯하다. 언젠가 성당에서의 성경 공부 시간에,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난 이 책을 인용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이 없는 곳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ㅠㅠ

 

  

로버트 먼치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는 딸아이가 어렸을 때 밤마다 읽어준 책이다. 아이가 이 책을 너무 좋아해 수백 번 넘게 읽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 아이가 커 가는 모습, 그러다 엄마는 늙어가고 다시 아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습들. 매 순간마다 존재하는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아! 인생, 인생, 나는 늙어가고, 늙어가고.오래된 책 냄새가 많이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어 보니 왜 이리 슬픈지 모르겠다.

 

이번 생은 책과 함께 망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살다 갈 수 밖에.


알라딘 서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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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4-24 15: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생은 책과 함께 망했다. --> 우와아아아 짝짝짝!!!

페넬로페 2024-04-24 16:2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서곡님께서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군요^^

은하수 2024-04-24 15: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과 함께 흥한거 아니구요~~~??^^
책과 함께 하는 페넬로페님의 이번 생 쭈욱 응원할게요 ~~

페넬로페 2024-04-24 16:24   좋아요 2 | URL
책을 사랑한 반어적 표현이었지만, 한편으로 책만 읽어 아쉬운 마음도 조금 있습니다. 앞으로는 책과 함께 흥하는 인생을 살겠습니다. 은하수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곡 2024-04-27 12:08   좋아요 2 | URL
독서 외에 영화 미술 음악 감상 등으로 세계를 좀 더 넓히고 싶다가도 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독서가 제일 쉬웠어요 일까요 ㅎㅎㅎ 책과 함께 흥하는 생 저도 응원하고 또 열망합니다~~

페넬로페 2024-04-27 12:43   좋아요 1 | URL
전에는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왜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의 밀도가 점점 낮아지는 느낌입니다.
서곡님, 응원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4-04-24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 지글러의 책을 넣을까 하다 말았는데 넣었다면 페넬로페 님과 장 지글러로 만났겠네요. 제가 넣으려던 책은 [인간 섬] 이었어요.

페넬로페 2024-04-24 16:4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서 장 지글러의 책을 좋아하신다는 거 알고 있죠~~
<인간 섬>도 읽어보겠습니다^^

stella.K 2024-04-24 1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죄와 벌을 넣고 싶었는데 역시 저는 부활을 거부할 수 없어서...ㅠㅠ

페넬로페 2024-04-24 17:35   좋아요 2 | URL
결국 도스토옙스키냐, 톨스토이냐의 문제군요 ㅎㅎ

Falstaff 2024-04-24 1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포클레스가 제일 앞에!! ㅎㅎㅎ 고스톱 치다가 다 잃고 막판에 쓰리고, 광박 씌운 기분입니다. ^^

페넬로페 2024-04-24 18:46   좋아요 0 | URL
‘오뒷세이아‘를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오뒷세이아보다는 ‘오이디푸스‘나 ‘필록테테스‘, ‘안티고네‘쪽이 더 당기더라고요.
막판에 쓰리고, 광박, 좋습니다 ㅎㅎ

새파랑 2024-04-24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페넬로페님의 네권의 범위가 엄청 다양하네요~!!

저도 1번, 2번 너무 좋아합니다 ㅋ

4번은 의미긴 있는 책이군요 ㅜㅜ

페넬로페 2024-04-24 21:11   좋아요 2 | URL
네 권을 저에게 의미가 있는 책으로 정했어요.
지금 다시 보니까 4번이 찡하네요^^

모모 2024-04-25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잘 보고 있어요, 응원합니다~^^

페넬로페 2024-04-25 00: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모모님!
저도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희선 2024-04-25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와 벌》을 중학생 때 처음 만나셨군요 읽을 때마다 다르게 생각하시다니... 사람 세상에서는 사람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게 잘 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서는 음식이 남아서 버리고 어딘가에서는 없어서 굶고... 따님한테 밤마다 책을 읽어주셨군요 그런 책 기억에 많이 남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04-25 08:26   좋아요 1 | URL
책을 좋아하다보니 책과 관련된 저만의 스토리도 많은 것 같아요.
인생 네 권 고르기 쉽지 않았는데 해 보니 또 재미있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4-04-25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읽다 울었어요 ㅠ

페넬로페 2024-04-25 15:28   좋아요 0 | URL
네, 내용이 슬픈데 주구장창 읽었어요 ㅎㅎ

페크pek0501 2024-04-28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와 벌은 생각나지 않아 인생 네 권에 못 넣었는데 넣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 장편을 읽고 도선생이 천재라고 여겼거든요.^^

페넬로페 2024-04-28 14:06   좋아요 1 | URL
<죄와 벌>뿐만 아니라 도선생님의 작품중에서 경쟁되는 것이 많았어요. 작가의 여러 경험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