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17일엔 누구의 소행인지(양쪽 다 상대방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자 지구의 한 병원이 공습을 당해 500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들 사이의 반목은 워낙 뿌리가 깊고,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을 벌이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제는 누가 옳고 그른지도 잘 모를 정도로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폭력적인 복수만 되풀이되고 있다. 어느 한 편이 그 땅을 떠나야만 약간의 평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얼마 전에 일어난 이 암울한 소식을 들으며, 마침 잠자냥님의 소개로 읽고 있는 ‘하워드 진’의 『역사의 힘』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소제목이 《홀로코스트를 기리며》인데, ‘프로그레시브’에 실린 이 글에 엄청난 반응(긍정과 비판)이 일어났다고 한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저자는 유대인 모임의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에 관한 강연 요청을 받았다. 그는 그 제안을 수락했고 강의를 했지만 정작 강의의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유대인 600만 명의 대량 학살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하워드 진은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에서 죽어 간, 미국 정책의 희생자들인 수십만 소작농들에 관해 그날 강의를 했다.
[내 요점은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철조망에 둘러싸이거나 도덕적으로 게토화돼서, 역사 속의 다른 대량 학살과 고립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기억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잔혹함에 맞선 의분, 분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이 겪은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p.84]
이 강의로 저자는 다른 유대인 교수의 항의를 받는다. 그 유대인 교수는 ‘홀로코스트는 신성한 기억이며 유일무이한 사건으로서 다른 사건과 비교할 수 없다’며 격분했다.
[다른 민족과의 결혼과 동화 탓에 고유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 일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일환으로 홀로코스트를 이용했다. 1967년 전쟁 이래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팔레스타인까지 확장하려는 계획과 사면초가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이용했다. 그리고 비유대계 정치인들은 수는 적지만 영향력 있는 유대인 유권자들한테서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이용했다. 분노로 가득 찬 유대인 유권자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려고 대통령들이 야물카(유대인 남성들이 머리에 쓰는 원형 모자)를 쓴 채 엄숙하게 연설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라-p.85]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유대인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슬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고통과 역사에만 몰입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고, 보상만을 받으려 한다면 그건 이기적인 행동이다. 저자는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가 조금이라도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민족에게 저지르는 그들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비판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의 영향력이 워낙 큰 탓에 그들은 막강한 힘으로 로비를 벌이고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특별함 주위에 장벽을 두르는 것은 인류가 하나이고 우리 모두 피부색ㆍ국적ㆍ종교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행복추구의 권리를 누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일이다.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일은 세부적으로는 특별할지 몰라도 인류 역사의 다른 많은 사건들, 즉 대서양 노예무역,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인간의 생명을 앞에 놓고도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주의 정신의 희생자가 된 수백만 노동자들의 부상과 죽음 등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을 공유한다.-p.86]
어쩌면 하워드 진의 말들이 오해를 불러 올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을 사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가 하려는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분쟁의 이유에는 분명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보상심리도 들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그것에 대한 댓글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양쪽으로 나뉜다.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을, 누군가는 팔레스타인을 나쁘게 보고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각자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하워드 진의 말처럼 그 어떤 것도 게토화 내지는 고립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대한민국은 심하게 양 진영으로 나눠져 있고 각자의 영역에서만 생각하고 인식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이다. 이쯤에서 하워드 진이 한 말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새겨들으면 어떨까? ‘인류는 하나이고,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행복추구의 권리를 누릴 가치가 있다는 것’,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어야만 한다는 것(이것은 나의 말).....폴스타프님께서 무척이나 낭만적이라고 말씀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맥락이 있고, 납득된다면 인간은 언제나 낭만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