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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대다수의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국가, 사회, 도덕, 법률이 정해놓은 길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 길이 자신의 신념과 맞는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 삶은 피곤해진다. 결론도 나지 않으며 다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작가 이언 매큐언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현상유지(p.23)’하며 사는 것이 적당하고 편안한 것이다.
59세의 고등법원 가사부 판사인 ‘피오나 메이’는 종교나 신념 등에서 현상유지에 실패해 법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정을 내려주어야만 한다. 이들의 문제점은 타협의 여지가 없고, 양극단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면 다른 쪽에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피오나가 내린 판결에 의해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고, 특수한 공동체나 종교 단체의 기본 원칙이 부정당할 수도 있다. 그런 결과가 피오나에게 항상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부부간의 이혼소송, 교리 실천에 대한 신념이 달라 딸의 교육 문제에 대한 분쟁이 있는 유대인 부부, 하레디(세속 문화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초정통파 유대교) 공동체 출신인 번스타인 부부의 싸움 등 피오나가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한 아이만 살려야 했던 샴쌍둥이의 운명처럼 이미 판결한 사건에 대한 생각과 회의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트라우마가 계속 그녀를 괴롭힌다.
[이상한 차이, 특별 청원(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말하는 일방적인 진술), 내밀한 반쪽의 진실, 희한한 비난이 난무하는 고등법원 가사부. 법의 모든 분과가 그러하듯 판사는 상황의 미세한 특이점을 신속하고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했다. -p.9~10
이 모든 슬픔은 주제도 비슷하고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요소들도 비슷했지만 피오나는 끊임없이 그 슬픔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절망적인 상황에 합리적인 시각을 제시해준다고 믿었다. 그녀는 가족법 조항들을 대체로 신뢰했다. 낙관적일 때는 아이의 필요가 부모의 필요에 우선함을 법령에 명시하는 것이 문명 진보의 중요한 표지라고 여기기도 했다.
-p11]
직업적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피오나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35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동갑인 남편이 그녀에게 개방결혼을 제안했다. 더 늦기 전에 육체적 열락(悅樂)을 느끼고 싶다는 철없는 남편의 투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황당해한다. 남편인 잭의 바람은 젊었을 때처럼 피오나와 열정적인 잠자리를 원하는 것인 동시에, 그것이 안 되면 지금 썸을 타고 있는 젊은 여자와의 연애를 눈감아 달라는 이중적인 메시지였다. 자기연민에 빠져 자신만을 생각하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과 또한 사회적으로 이뤄놓은 명성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서도 그녀는 남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백혈병에 걸린 17세 소년 애덤 헨리는 급히 수혈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이기 때문에 남의 피를 받기를 거부한다. 피오나의 판결에 의해 애덤 헨리의 생사(生死)가 결정되는 급박한 순간부터, 애덤과 피오나의 연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고 많은 여운이 남았다.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결할 때.…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p.50)’는 아동법 제1조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쓴 ‘이언 매큐언’ 작가는 매 순간, 우리들에게 딜레마적 상황을 보여주며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아동(청소년)에게 ‘자기 삶의 결정권을 주는 것이 맞는가?’와 판사나 법의 판결이 그들에게 꼭 합리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아동의 복지를 우선으로 한 판결이 그저 판결만으로 끝나며 그 다음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남는다.
내가 목격하고, 나를 찾아 온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전교하러 다닐 때, 꼭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였다. 심지어 유모차에 어린 아이를 태우고 우리 집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들의 교리와 종교적 신념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일단 아무런 힘과 결정권이 없는 아이를 이용한다는 것이 내가 이 종교를 아주 싫어하는 이유이다. 사랑과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종교는 한편으로 이기적인 것이기도 하다. 백혈병을 앓는 애덤에게 ‘여호와의 증인‘은 수혈을 통해 생명을 주기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앞세워 자신들의 교리를 실천할 수 있는 성스러운 순교를 원했다.
‘Anchor Books’와 ‘Random House’의 『THE CHILDREN ACT』 표지이다.
피오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그레이즈인 스퀘어에서 왕립재판소까지 걸어서 출근한다. 비 오는 어느 날,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다른 손에는 우산을 들고 걸어가며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을 머릿속으로 연주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클라리사 댈러웨이’처럼 그녀 역시 의식의 흐름 속에 잠겨있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어이없어 자존심이 상하고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다는 것, 여지껏 남편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에게 아이가 없다는 점에서, 아니 자신이 남편에게 아이를 안겨주지 못했다는 것에 결국 발목이 잡히는 느낌을 받는다. ‘설움과 불만, 분노(p.63)’로 가득 찬 59세의 피오나는 자기연민에 빠진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이 피오나와 애덤에 대한 내용이지만 난 원서의 표지에 압축되어 표현된 60페이지에서 69페이지까지의 내용이 너무 좋았다. 바흐 음악의 흐름대로 피오나의 변화되는 감정을 따라가며 그녀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생각들에 완전 몰입할 수 있었다. 어딘가로 멈추지 않고 급하게, 계속 가야할 것 같은 한 여자의 삶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는 얼마 전에 읽은 『속죄』와 조금 결이 다른 소설이지만, 어딘가는 닮고 연결된 느낌도 든다. 여전히 문장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영어권 작가 특유의 위트가 있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어도 여전히 해결된 것은 없다. 무엇이 옳은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작가는 도망쳐버렸고, 난 계속 딜레마적 고민과 의식의 흐름에 푹 빠져있는 상태다.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예이츠,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