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황금지구의
가이도 다케루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과 표지를 보고 흥미로울 거라는 기대감에 선택한 작품이었다. '초특급 범죄 코미디'라는 책소개가 눈길을 끌었지만, 사실 전반적으로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준 작품이 아니었다. 프롤로그를 읽을 때만해도 큰 사건이 터질거라는 기대감이 들었는데, 몇 페이지를 읽고나니 지루한 느낌을 배제할 수가 없었다. '권력층과 소시민의 속고 속이는 치열한 두뇌싸움'이라는 책소개에 걸맞는 긴장감있는 대립이 부족한 탓이리라.

권력층에 대한 비리에 대해 좀더 신랄한 비판이 있었다면, 읽는동안 통쾌함을 맛보았을텐데 그 점에서도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더불어 각각 개성있는 캐릭터이긴 했지만, 좀더 신비로워야 할 존재인 글라스 조에 대해 중반부에 예측이 가능한 내용을 수록한 점은 내용에 대한 아쉬움을 더한다.

 

때는 1988년 어느 날, 사상 유례없는 거품경리로 들끓고 전 세계 시장으로부터 금이 격류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은 국고에 흘러넘치는 처치 곤란한 돈을 잽싸게 분배해버리라는 듯이 단순하고도 난폭하고 화려하고 질 낮은 만행이 이루어졌다. (본문 10p) 정권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일률적으로 복권 최고 당첨금에 맞먹는 1억 엔이라는 돈을 내주기로 결정했는데, 사쿠라노미야 시청은 1억엔 상당의 금덩이를 구입하여 '황금지구의'를 제작하여 '사쿠라노미야 수족관 별관.심해관의 중앙홀에 안치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3년, 세계 이곳저곳에서 일어난 국지전쟁의 반작용으로 금시세사 상승한 탓에, 금괴 50kg은 1억 5천만 엔으로 값이 뛰었다. 이제 히라누마 하이스케가 황금지구의와 엮이기 전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30대 초반, 하이스케는 '히라누마 철공소'라는 소규모 공장의 영업부장 겸 임시 공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사장은 아버지 고스케, 경리과장은 아내 기미코다. "아, 지겨워"를 연발하는 그에게 8년 만에 친구인 히사미츠 조지, 통칭 글라스 조가 찾아오게 된다. 그는 각지에서 잇달아 금으로 만든 기념물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불안한 상황을 틈타 사쿠라모니야 수족관의 황금지구의를 훔치자는 제안을 해오고, 아이러니하게도 사쿠라노미야 시청 관재과 고니시 키이치로 과장으로부터 수족관의 경비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게 된다. 전적으로 '히라누마 철공소'에 불합리한 계약임을 알게 된 하이스케는 황금지구의를 강탈하자는 글라스 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황금지구의를 강탈하기 위한 작전을 세우고 결행되고(사실 이 부분은 좀 지루한 느낌을 준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비리와 맞서게 되는데, 사실 전반적으로 이야기 전개가 조금 허술하게 돌아가고 억지로 짜맞추려는 느낌이 강한지라 몰입도가 약했다.

 

등장인물들은 개성있는 캐릭터들이지만 그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느낌이다. 블랙 코미디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는 소위 코미디라 할 수 있는 부분에 그다지 공감할 수 없었고, 공무원, 고위층들의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의 통쾌함도 크지는 않았지만, 고위층의 비리에 맞서는 소시민의 엉뚱함에 대해서는 응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힘없는 소시민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 앞에서 결코 평등하지 못한 나약한 존재이다. 하이스케는 다소 엉뚱하기는 하지만 소시민을 대표하는 평범한 인물로 고위층의 비리에 맞서는 당당함(사실 당당한 느낌은 부족했다)을 보여주었기에 비록 법에 어긋나는 강탈이었지만 그가 꼭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을 갖게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도둑에는 도둑. 미디어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사쿠라노미야 시청의 범죄 행위를 폭로하는 거야. 경비가 소홀한 황금지구의를 훔쳐내면 추가분의 경비비용을 어디다 썼는지 지적받을 테고, 시청은 찍소리 못하게 되지." (본문 62p)

 

'지하드 다이하드(성전에 살고 성전에 죽는다)' 이들의 터무니없는 계획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게 되는 것은, 바로 나 역시도 공무원들의 끊이지 않는 비리에 답답해하고 화가 나는 비권력층의 소시민이기 때문이다.

좀더 긴장감을 주고, 엉뚱한 캐릭터를 좀더 잘 살려내고, 억지로 짜맞추려는 느낌이 배제된다면 더욱 재미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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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알렉시 젠트너 지음, 이나경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2008년 오 헨리 상 수상 작가, 2009년 최고의 미국 단편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한 작품이니만큼 기대감은 컸지만, 사실 읽기에는 좀 지루한 느낌을 준다. 과거와 현재가 쉴새없이 반복되는 구성이 이야기의 흡입력을 떨어뜨리지 않았나 싶다.

<<터치>>는 대자연 속에서 너무도 약한 인간의 모습, 대자연의 위엄, 가족, 생존 등을 판타지를 가미하면서 신화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데, 그보다는 환상적인 부분을 좀 배제하고 사실적인 부분을 통해서 가족, 성장에 중점을 두었으면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주인공 스티븐은 아빠, 엄마 그리고 여동생 마리와 소박하면서도 평화로운 유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벌목장을 하는 아버지는 일이 없는 겨울이면 아이들에게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스티븐에게 아버지은 거대한 거인처럼 느껴지곤 했다. 아버지가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를 거인처럼 느끼는 것처럼.

스티븐이 열 살이 되던 그해에는 겨울이 일찍, 사납게 시작되었다. 오래전 눈 때문에 꼼짝못하게 된 그 옛날, 겨울을 보내기 위해 당나귀를 잡아먹고 심지어 그보다 더 흉흉하게 더 무서운 고기를 먹었다는 오래전 겨울처럼 혹독했다.

아버지, 마리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 강에 가던 날,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진 마리, 마리를 구하려고 순식간에 물속으로 뛰어든 아버지 두 사람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양아버지와 함께 살던 스티븐 앞에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할아버지 자노가 나타난다. 엄마는 여길 떠난지 30년이 다 된 지금(아들이 떠난 뒤)에야 돌아온 것에 대해 타박하지만 스티븐은 할아버지가 좋아졌고, 그동안 들어온 온갖 이야기처럼 할아버지가 숲이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던 마법과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가능성을 어느 정도는 의식하고 돌아온 것이 아닌가에 대한 기대를 가졌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 의도가 무엇이냐고? 소가멧에 어째서 돌아왔냐고? 왜 지금 온 거냐고? 마르틴을 데리러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았다.

"네 할머니를 데리러 왔다. 죽은 자를 일으키러 온 거란다." (본문 45p)

 

이제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6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채찍처럼 앙상하고 철사처럼 강인한 열여섯 살의 소년이었던 자노는 마녀에게서 훔친 개 한마리를 데리고 이곳 소가멧에 들어오게 된다. 개의 도움으로 금덩어리를 찾고, 프랭클린과 마르틴 남매를 만나게 되고, 결혼과 벌목 사업을 하게 된다.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식량이 점점 줄어들어 모두들 예민하던 때 자노는 러시아 광부인 그레고리를 살해한다. 인육을 먹으며 겨울을 지내고 아들 피에르를 낳으며 평온한 삶을 보내는 듯 하지만, 결국 그레고리의 복수로 자노는 아내를 잃고 아들을 버린 채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그 아내를 데리러 30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네 할머니는 이미 여기, 숲에 나와 있으니. 그 사람을 찾아 집에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본문 87p)

 

<<터치>>는 스티븐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유년시절의 회상,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다시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현재가 비규칙적으로 진행되며, 판타지가 곁들여진 몽환적인 느낌과 현실이 공존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대자연 앞에서 나약한 인간이지만, 혹독한 자연에 맞서려는 이들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그려졌는데, 그 속에 사랑, 가족, 그리움 등을 녹아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한 감동을 선사하기에는 좀 부족했던 작품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남은 자에게는 큰 고통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고통은 세월에 따라 조금씩 퇴색되어져 가게 마련이다. 스티븐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얼음 구멍에 빠져 손이 거의 닿을 뻔했던 아버지와 동생을 떠올리며 죽은 자를 살려내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나는 할아버지처럼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도 없고, 또 그럴 힘도 없지만, 아버지와 마리가 강물에 빠진 후로 어머니가 믿기 시작한 것을 나도 믿게 되었다. 기억은 죽은 자를 살려내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문 275p)

 

죽은 자를 살려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은 기억에서 비롯된다. 친정 엄마의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웠던 나는 9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무뎌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그리움은 엄마와의 기억 속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 기억 속에서 엄마는 내 옆에 살아났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루한 느낌도 들었지만, 내게는 기억 속에서 살아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알게 해 준 작품이기도 하다. 가혹한 현실과 상실 속에서 사랑, 가족애를 다룬 <<터치>>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 담아낸 판타지로 환상과 현실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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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도 : 연옥의 교실
모로즈미 다케히코 지음, 김소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학교폭력, 왕따 등으로 인한 연이은 학생들의 자살 소식으로 사회면은 참혹했다. 얼마 전에는 훈계하려는 선생님을 폭행한 학생에 관련된 뉴스가 화제가 되면서 점점 무너지는 교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사가 감정에 치우쳐 때린 학생은 뇌출혈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으며, 학생들 앞에서 성적인 모멸감을 주는 폭행도 있었다. 그렇다면 부모는 이들과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훈계를 받은 학생의 부모는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의 권위를 추락시켰고, 학교의 교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문제를 삼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학교는 언제부터 학생의 인성교육, 지식함양이 아닌 폭력의 발생지가 되었나?

중학생 딸아이가 간간히 들려주는 학교의 모습은 예전과는 너무도 다르다.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로 인해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어야하며, 혹시 따돌림을 받지 않을까 걱정해야만 한다.

 

 

 

<<라가도>>는 우리나라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여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놀라운 흡입력을 가진 작품이다. 작가는 진실을 찾는 과정 속에 93개의 반 도면 그림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저 한낱 도면처럼 보이는 단순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더욱 긴박하게 몰아가는 시각적 효과를 준다. 특히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때마다 거대한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추어져가는 느낌을 주는데, 퍼즐이 완성되어가는 순간 이 그림은 더 큰 충격을 선사한다. 마치 책 속의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몰린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섬뜩한 느낌이다.

 

한 사립학교에서 어떤 남자가 한 여학생을 무자비하게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 살인사건으로 인해 두 달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히가키 리나의 죽음이 사건의 원인으로 주목받으면서 두 사망 사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후유시마 야스코 경관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재현에 살해당한 학급의 반장이었던 후지무라 아야 '18번 학생'  역할을 맡게 되지만, 범인 리나의 아버지인 히가키는 사건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죽은 후지무라는 히가키의 돌발행동에 친구들을 향해 '다들 달아나'라고 외쳤고,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나를 대신...."이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겨 많은 이들에게 성녀로 남게 되었는데, 재현 과정에서 후지무라는 리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된다. 후유시마는 사건의 진실과 다르게 재현이 이루어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발하게 되면서 재현을 중단시킨다. 이에 텔레비전 방송국은 후유시마에게 접촉해 경찰보다 훨씬 정확하고 공정하게 범행을 재현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보자는 제의를 한다.

 

연출자 고다의 출현으로 이제 이야기는 사건을 파헤쳐가면서 점점 미스터리적 요소를 갖추어간다. 두 달전 리나의 자살을 둘러싼 공방에서 히가키는 정신적 학대를 받은 리나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고, 학교는 전면 부인했다.

리나는 자살하기 직전,

말해버렸어 언젠가 들켜 무서워 말하는 대로 돼 전근해주면 좋을 텐데 다들 그 애의 무서워 (본문 47p)

라는 글을 남겼고, 정신적 학대의 주범은 반의 보스이자 학교 재단인 세오 그룹의 임원이며 학교 법인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노부히코의 아들 13번 쇼가 주목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재단의 비리와 학부모와의 관계가 들러나게 되면서 노부히코 역시 좌불안석이 된다. 노부히코의 충직한 비서인 이자와는 쇼와 노부히코를 위해 이 사건을 철저하게 규명하고자 고다와 손을 잡는다.

그렇다면 <<라가도>>는 무슨 뜻일까? 책 중반부에는 이자와와 고다는 라가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라가도라고 아십니까?"

"라가도? 괴수 영화인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도시 이름지요. 과학자 수백 명이 라가도 시에서 연구를 하는데, 그 연구라는 게 하나같이 공리공론이라 구체적인 성과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겁니다. 방대한 연구비만 헛되이 나가고 있었죠. 이것과 이름이 같은 정보취급기간이 최근 일본에 만들어졌다더군요. 다시 말해서 라가도란 이 기관의 가창인데, 정보기관이 아니에요. 정보 '취급'기관입니다. 정보는 국가 고유의 자원으로 보고 다른 나라와 매매 혹은 정보 대 정보를 교환하는 비즈니스 기관이죠. 이 라가도는 기관이 획기적인 점은 시스템의 초월성에 있습니다."

"그 라가도라는 기간은 그렇게까지 해서 뭘 하려는 거야?"

"정보의 수집, 분류, 그리고 배양입니다." (본문 136,137p)

 

재단의 비리로 노부히코는 회사를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데, 고다는 학생들을 만나고 추리해가는 과정에서 또다른 진실을 알게되고, 담임이었던 시마즈 사토코와 노부히코의 관계, 쇼와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러나 진실은 이들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학생들의 기억 속에서 스멀스멀 떠오르고 있었다.

반전 또다른 반전 그리고 반전.

진실을 추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혹시 범인이 누군지 맞혔다 하더라도, 그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앞에서 별일 아닌 듯 툭 내뱉었던 대사 속에는 중요한 실마리가 있기에, 어떤 대사도 놓칠 수 없다. 점점 책 속에 빨려가는 기분이다. 신인 작가라고 하기에는 굉장한 흡입력을 가진 필력을 가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가도>>는 '정보' 그리고 '공기'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작품을 다룬다. 가끔 무거운 공기로 짓눌린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집단의 분위기는 그 집단의 '공기'로 인해 좌우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공기'는 어떤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라가도>>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져 있는 무거운 '공기'를 생각해보게 한다.

 

(사진출처: '라가도-연옥의 교실'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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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하지 않을래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
클로딘 르 구이크프리토 지음, 최정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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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블리 누나가 '잘 잤니?'라고 물었을 때 한 번.

- 휠체어에 앉혀주었을 때 한 번.

- 수건을 내 손이 닿는 곳에 놓아주었을 때 한 번... 등

총 아홉 번. 학교에 가기도 전에 고맙다는 말을 벌써 아홉 번이나 했다! (본문 9p)

 

동생 빅토리는 두 번밖에 안 했을 고맙다는 인사를 아홉 번이나 해야하는 테오는 어느 날 갑자기 문득 갑자기 '저기, 부탁인데요'라고 굽실거리며 부탁하기가 싫어졌다. 그랬다. 테오는 선천적으로 한 쪽 팔과 양쪽 다리에 장애를 안고 태어나 휠체어(휠체어의 이름 '알베르'로 테오가 지어줬다.)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현재는 가족을 떠나 특수센터에서 생활하고 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책가방을 챙기지 못했다. 테오의 반란은 그렇게 특별한 이유 없이 평소와 다름없이 시작된 그 날부터 시작되었고, 고맙다는 말을 줄이기로 결심한 지 2주가 지난 어느 날, 결국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테오의 이런 행동에 대해 심리 상담 선생님은 '거부 행동'이라고 말했는데, 생활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훈계를 듣고, 부모님까지 호출되어 왔지만, 테오의 거부 행동은 끈질기게 이어져갔다.

결국 테오는 심리 상담 선생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스포츠를 시작하게 되었고, 스포츠 담당인 파트리스 선생님에게 맡겨졌다. 첫날 파트리스 선생님은 테오에게 방으로 돌아가 소지품을 챙겨 오라고 했으며, 신발과 양말을 벗고, 티셔츠를 갈아입으라고 했다.

 

진짜로 머리가 돈 게 틀림없었다. 나더러 어떻게 혼자 하라는거지? 한 손만으로 양쪽 신발을 모두 벗으라고? (본문 28p)

 

겁먹은 티를 내고 싶지 않았던 테오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좀더 쉬운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파트리스 선생님과 함께 탁구를 하면서 체력이 길러졌고, 점차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났다. 결국 테오는 자연스레 고맙다는 말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될 경우는 어린 친구들을 도와주며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던 테오는 산책을 나갔다가 휠체어에 혼자 오르지 못하면서 좌절을 겪게 된다.

 

나는 작은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 처음부터, 태어날 때부터 전쟁에서 졌다. 나는 나쁜 패를 뽑았다.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내 장애를 받아들이기 싫다. 왜 내가 바라지도 않은 것을, 불편하기만 한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본문 56,57p)

 

"너는 의존적으로 사는 것을 싫어했지. 네가 장애가 없는 사람처럼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해. 네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어. 반대로 네가 할 수 없는 일들도 있지.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도 다행이지 뭐냐. 그러니 한계에 맞닥뜨릴 때마다 낙심해서는 안 돼. 우리는 모두 한계를 지니고 있단다."

"네, 알아요. 하지만 제 한계는 너무 커요."

"그렇지 않아. 사실 한계치고는 별것도 아니야. 사실 한계와 가능성은 우리의 몸에만 있는 게 아니란다. 영혼에도 있고, 지성에도 있어. 네 영혼과 지성은 별로 한계를 갖고 있지 않을 게다." (본문 69,70p)

 

테오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로인해 자신을 자주 찾아오지 않는 아빠에 대한 원망을 가졌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찾아오는 미안해하는 엄마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가졌다. 다행스럽게도 할머니를 통해 자신이 태어났을 때 엄마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테오는 그 원망과 미움이 조금 잦아들었다.

 

장애인 자식을 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해심이 많아야 하지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 단호해야 하지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장애인 자식을 다른 아이와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 우리 엄마 아빠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그렇게 하도록 돕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본문 19,20p)

엄마 아빠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 아빠가 행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본문 131p)

 

<<고마워하지 않을래>>는 장애 아동인 테오가 자립해가는 과정을 통해 장애 아동의 성장을 다룬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장애 아동의 생각, 그들의 삶을 잘 녹아내고 있는데, 그 외에는 장애 아동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장애 아동을 둔 가족이 겪어야 하는 혼란과 슬픔 그리고 마침에 장애아를 받아들이고 오롯이 사랑할 수 있는 과정까지 너무도 잘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관심과 동정이 다르듯 그들을 향한 시선은 오히려 불편하고 힘겹게 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에 대한 테오의 생각을 통해서도 그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거 같다.

 

자존심이 강한 테오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특히 서로 너무 사랑하지만,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틈새로 인해 힘겨웠던 이들이 소통을 통해서 그 틈새를 메워가는 과정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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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래 뭐였는지 알아? - 전통문화 편 사회와 친해지는 책
정유소영 지음, 남주현 그림, 임재해 감수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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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나 텔레비전 사극을 보면 아이들에게 생소한 물건들이 등장한다. 과학의 발달로 사람들은 보다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예전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물건들은 옛 선조들이 지혜를 담아 만들어내고 사용한 물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지혜가 없었다면 현재의 발전도 없지 않았을까. 이에 우리가 옛 것을 기억하고, 그를 통해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퍽 중요한 일이 되었고, 따라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의도 그만큼 크다 할 수 있겠다.
제15회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 수상작인 <<내가 원래 뭐였는지 알아?>>는 옛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옛날 살림살이를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작품이다.


너무 못생겨서 마을 사람들에게 '도깨비 색시'라는 놀림을 받는 세 딸을 둔 정 아무개라는 선비는 집안에 틀어박혀 공자 왈 맹자 왈 어려운 책만 읽어 대는 통에 집안 일에는 도통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서생이 어느 가을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산에 올라갔다가 도깨비들의 꼬임에 빠지게 된다. 서생은 '도깨비 색시'라는 놀림을 받는 못생긴 세 딸을 두고 있었는데, 도깨비 색시가 마음에 든 도깨비들이 일을 꾸민 것이 아닌가. 결국 서생은 낮과 밤의 모습이 다른 도깨비들이 낮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알아맞히는 내기를 하게 되고, 도깨비가 준 귀띔이 적힌 두루마리를 통해 세번의 답을 맞춰야 한다.
서생은 첫째 딸 일영, 둘째 딸 이영, 막내 딸 삼영과 함께 귀띔 속 답을 찾기 위해서 지혜를 모으게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독자는 옛날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살펴보게 된다.

첫 번째 귀띔을 통해 이들은 남자가 생활하는 방인 사랑방에서 물건을 찾아보게 된다. 펼쳐보는 페이지에는 옛 사랑방의 모습을 그림으로 잘 표현해냈는데, 귀뜸 속 답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서생과 딸들을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의 쓰임새를 알아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행히 문제의 답을 찾아내고 두 번째 귀띔을 받게 되고, 이번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용하던 안방을 둘러보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 펼쳐보는 페이지에는 옛날 여자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엿볼 수 있었다. 물건을 찾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세 딸의 이야기 속에는 물건에서 보이는 선조의 지혜까지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장은 더 크게 만들지 않는 걸까요? 크면 물건을 더 많이 넣을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그건 우리가 보통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이야. 만약 장과 농이 아주 크다면 일어섰다 앉았다를 자주 해야 하니까 힘이 들잖아. 그런데 이 정도의 높이의 장과 농이라면 아래층은 바닥에 앉아서도 쓸 수 있고, 위층은 무릎을 꿇고 선 자세 정도면 물건을 넣었다 뺏다 할 수 있어." (본문 72,73p)


두 번째 문제도 무사히 맞춘 이들은 세 번째 귀띔을 받게 되고, 이번에는 부엌을 살펴보게 된다. 옛날에는 '남자는 바깥사람, 여자는 안사람'이라 해서 남자는 안의 일을, 여자는 밖의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으며, '군자는 어진 마음을 지녀야 하기 때문에 살생을 하며 음식을 만드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맹자>에 쓰인 글 때문에 부엌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었다. 양반 체면을 중시하던 서생은 세 딸을 도깨비에게 시집보낼 수 없는 마음에 부엌을 들어가게 되고, 부엌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게 된다. 부엌에서는 우리 조상의 지혜가 잘 담겨진 온돌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고, 물건마다 담겨진 의미 역시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옛이야기 형식으로 살펴본 옛날 살림살이를 구경하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수록되었는데, 권위적인 아버지와 딸들의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도 따뜻하게 수록하여 동화적 메시지 또한 전달한다.


이야기 곳곳에는 물건에 대한 자세한 그림, 쓰임새, 그 속에 담겨진 의미까지 자세히 수록되어 있지만, 매 장이 끝날 때마다 옛 생활도구의 사진과 쓰임을 깊이있게 다루어주어 백과사전식 지식도 전달하고 있다.

<<내가 원래 뭐였는지 알아?>>는 정 서생과 세 딸이 도깨비와 내기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재미와 함께 생소하고 낯선 선조들의 생활모습과 지혜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양한 그림과 사진, 이야기 속에 묻어나는 어렵지 않는 쓰임새 등의 이야기가 마치 옛이야기를 읽는 듯 재미있는 작품인데,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가다보면 보다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내가 원래 뭐였는지 알아?'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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