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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알렉시 젠트너 지음, 이나경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2008년 오 헨리 상 수상 작가, 2009년 최고의 미국 단편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한 작품이니만큼 기대감은 컸지만, 사실 읽기에는 좀 지루한 느낌을 준다. 과거와 현재가 쉴새없이 반복되는 구성이 이야기의 흡입력을 떨어뜨리지 않았나 싶다.
<<터치>>는 대자연 속에서 너무도 약한 인간의 모습, 대자연의 위엄, 가족, 생존 등을 판타지를 가미하면서 신화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데, 그보다는 환상적인 부분을 좀 배제하고 사실적인 부분을 통해서 가족, 성장에 중점을 두었으면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주인공 스티븐은 아빠, 엄마 그리고 여동생 마리와 소박하면서도 평화로운 유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벌목장을 하는 아버지는 일이 없는 겨울이면 아이들에게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스티븐에게 아버지은 거대한 거인처럼 느껴지곤 했다. 아버지가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를 거인처럼 느끼는 것처럼.
스티븐이 열 살이 되던 그해에는 겨울이 일찍, 사납게 시작되었다. 오래전 눈 때문에 꼼짝못하게 된 그 옛날, 겨울을 보내기 위해 당나귀를 잡아먹고 심지어 그보다 더 흉흉하게 더 무서운 고기를 먹었다는 오래전 겨울처럼 혹독했다.
아버지, 마리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 강에 가던 날,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진 마리, 마리를 구하려고 순식간에 물속으로 뛰어든 아버지 두 사람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양아버지와 함께 살던 스티븐 앞에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할아버지 자노가 나타난다. 엄마는 여길 떠난지 30년이 다 된 지금(아들이 떠난 뒤)에야 돌아온 것에 대해 타박하지만 스티븐은 할아버지가 좋아졌고, 그동안 들어온 온갖 이야기처럼 할아버지가 숲이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던 마법과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가능성을 어느 정도는 의식하고 돌아온 것이 아닌가에 대한 기대를 가졌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 의도가 무엇이냐고? 소가멧에 어째서 돌아왔냐고? 왜 지금 온 거냐고? 마르틴을 데리러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았다.
"네 할머니를 데리러 왔다. 죽은 자를 일으키러 온 거란다." (본문 45p)
이제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6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채찍처럼 앙상하고 철사처럼 강인한 열여섯 살의 소년이었던 자노는 마녀에게서 훔친 개 한마리를 데리고 이곳 소가멧에 들어오게 된다. 개의 도움으로 금덩어리를 찾고, 프랭클린과 마르틴 남매를 만나게 되고, 결혼과 벌목 사업을 하게 된다.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식량이 점점 줄어들어 모두들 예민하던 때 자노는 러시아 광부인 그레고리를 살해한다. 인육을 먹으며 겨울을 지내고 아들 피에르를 낳으며 평온한 삶을 보내는 듯 하지만, 결국 그레고리의 복수로 자노는 아내를 잃고 아들을 버린 채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그 아내를 데리러 30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네 할머니는 이미 여기, 숲에 나와 있으니. 그 사람을 찾아 집에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본문 87p)
<<터치>>는 스티븐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유년시절의 회상,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다시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현재가 비규칙적으로 진행되며, 판타지가 곁들여진 몽환적인 느낌과 현실이 공존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대자연 앞에서 나약한 인간이지만, 혹독한 자연에 맞서려는 이들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그려졌는데, 그 속에 사랑, 가족, 그리움 등을 녹아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한 감동을 선사하기에는 좀 부족했던 작품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남은 자에게는 큰 고통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고통은 세월에 따라 조금씩 퇴색되어져 가게 마련이다. 스티븐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얼음 구멍에 빠져 손이 거의 닿을 뻔했던 아버지와 동생을 떠올리며 죽은 자를 살려내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나는 할아버지처럼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도 없고, 또 그럴 힘도 없지만, 아버지와 마리가 강물에 빠진 후로 어머니가 믿기 시작한 것을 나도 믿게 되었다. 기억은 죽은 자를 살려내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문 275p)
죽은 자를 살려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은 기억에서 비롯된다. 친정 엄마의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웠던 나는 9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무뎌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그리움은 엄마와의 기억 속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 기억 속에서 엄마는 내 옆에 살아났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루한 느낌도 들었지만, 내게는 기억 속에서 살아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알게 해 준 작품이기도 하다. 가혹한 현실과 상실 속에서 사랑, 가족애를 다룬 <<터치>>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 담아낸 판타지로 환상과 현실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