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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평점 :
연말이 되면 으레 올해도 내게 주어진 1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무의미하게 보냈구나...라는 생각에 한없이 울적해진다. 새해가 되면 올 한해는 열심히 보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보지만 어김없이 반복되는 연말의 악몽을 맞이한다.
그렇게 훌쩍 보내버린 시간이 벌써 38년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딸에게 시간에 대한 나의 후회스러움을 되물림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나처럼 시간을 놓치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느 날은 24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지고, 어느 날은 24시간이 너무도 짧게 느껴진다. 어느 날은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고 또 어느 날은 시간이 훌쩍 흘러 10년 후의 미래였으면 싶은 날도 있다.
시간 은행이라도 있다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저축해놓았다가, 부족한 날에 꺼내 쓸 수 있기라도 할텐데, 책 제목 <<시간을 파는 상점>>처럼, 시간을 사고 팔 수 있다면 헛되이 보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절약할 수 있을텐데...시간 앞에 괜한 투정을 해 본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지만 흘러간 시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시간의 힘. 분명한 것은 시간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 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절망의 시간을 우리는 희망을 속삭이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책 소개글 中)
책을 선택할 때, 괜시리 수상작에는 더 눈길을 주게 된다. 그렇게 관심을 둔 책에 적힌 소개글, 시간이라는 소재가 마음에 끌렸다. 연말마다 자책하는 나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딸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내용일 듯 싶어 선택한 작품이다.
시간을 어떻게 사고 팔수 있을까? 호기심이 묻어나는 제목이다. 이 작품은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청소년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릴 디딤돌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시간의 양면성을 재미있게 엮어낸 소설이라고 하니 책을 받은 후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더욱 커진다.
시간은 돈이 될 수 있으니 시간을 팔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본문 39p)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시간의 경계를 나누고 관장하는 크로노스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 카페 상점을 연 온조는 첫 번째 의뢰인 '네곁에'로부터 도난당한 PMP를 다시 주인의 자리에 놓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1년 전 MP3를 훔치고 들통이 나자 자살을 한 친구와 같은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의뢰였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조는 일을 무사히 처리한다.
주인공 온조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빠의 성격을 빼다 박았았으며, 옳지 못한 일을 보면 우르륵 끓어넘치는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졌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5주기를 맞이한 온조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 곱상하게 생긴 정이현을 짝사랑하는 단짝 친구 난주가 있고, 난주를 믿고 사랑하는 엄마가 있다. 온조는 소방관이었던 아빠의 못다 이룬 뜻을 되새김질하면서 시간을 파는 상점을 설계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 임무를 무사히 마친 후 행과 불행을 가르는 기회의 신으로 시간 너무, 의미를 관장하는 뜻을 가진 카이로스의 두 번째 의뢰를 맡게 된다.
의뢰인 대신 할아버지와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 임무였는데, 온조는 할아버지를 통해 시간, 속도로 인해 범한 오류를 듣게 된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헤치며 왔을까 싶네. 그러다가도 꿈결처럼 아스라한 옛일이 되어 현실감이 나지 않기도 해. 요즘은 속도가 너무 빨라. 왜 이리 빠른지 모르겠어. 빠르다고 해서 더 행복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오히려 속도 때문에 사고가 나는 데도 말이야. 기계든 사람의 관계든 지나치게 빠르면 꼭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어. 온조 양도 명심하게." (본문 62p)
정이현을 짝사랑하는 난주 때문에 온조를 두 사이를 중개하려다, 정이현이 1학년 가을 체육대회 날, 잠깐 스친 온조와의 과거에 시간을 묶어 두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온조는 시간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는데, 엄마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온조는 시간에 대한 또다른 갈등을 맞이한다.
"엄마는 늘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 시간은 어떤 예고도 없이 사라져버렸어. 늘 바쁘다고 하면서 필요 없는 시간들을 너무 많이 소비하면서 시간 없다고 한 거라는 것을 알았어. 엄마는 다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엄마는 소중한 사람드로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그게 결국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어.......엄마 옆에 새로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아빠와의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본문 15p)
PMP 사건이 다시 문제가 되면서 온조와 네곁에는 한바탕 소란을 겪게 되는데, PMP를 훔친 범인 역시 과거의 시간에 묶여 힘겨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과거라는 시간에 스스로를 묶어 둘때가 있다. 절망적이었던 시간들은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를 옭아매고 미래의 시간까지도 과거에 묶어둔다. PMP를 훔친 아이는 이 시간의 모습을 너무도 잘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말처럼 시간은 생각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과거의 시간에 후회를 하고 있던 할아버지는 나름대로의 시간을 만들었고, 과거의 불행했던 시간을 결국 행복이라는 시간으로 변화시켰으니 말이다.
온조, 의뢰인들을 비롯해 우리는 모두 시간의 굴레에 묶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로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때가 있고, 때로는 묶여진 과거의 시간에서 나와야 할 때도 있다. 가족, 친구 그리고 의뢰인들의 문제를 풀어가면서 우리는 시간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과거, 지금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생각해보는, 꼭 필요했지만 해보지 않았던 의미있는 시간을 가져보게 된다.
시간이라는 것이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궁금하다.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이 바람은 또 어딘가로 내달릴 것이고 그 자리에는 난생처음 맛보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시간이 늘 처음인 것처럼. (본문 219,220p)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이라는 시간에 희망을 갖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행복한 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면, 지금의 시간을 과거에 붙잡아두지 않는다면, 지금의 시간은 다른 미래를 선사할 것이다. 온조가 보여주는 시간의 여러가지 모습을 통해서 '지금'이라 이름 붙혀진 시간에 새로움을 담아보게 되었다. 올 연말에는 똑같았던 연말과는 조금 다른 시간을 맞이하게 될 듯 싶다. <<시간을 파는 상점>>을 통해 시간이 가진 마법의 비밀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되었으니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회환을 많이 남기는 것,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소한 것은 모두 집어삼키고, 위대한 것에는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는 그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본문 43p)
그 해답은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진출처: '시간을 파는 상점'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