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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도 : 연옥의 교실
모로즈미 다케히코 지음, 김소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학교폭력, 왕따 등으로 인한 연이은 학생들의 자살 소식으로 사회면은 참혹했다. 얼마 전에는 훈계하려는 선생님을 폭행한 학생에 관련된 뉴스가 화제가 되면서 점점 무너지는 교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사가 감정에 치우쳐 때린 학생은 뇌출혈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으며, 학생들 앞에서 성적인 모멸감을 주는 폭행도 있었다. 그렇다면 부모는 이들과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훈계를 받은 학생의 부모는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의 권위를 추락시켰고, 학교의 교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문제를 삼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학교는 언제부터 학생의 인성교육, 지식함양이 아닌 폭력의 발생지가 되었나?
중학생 딸아이가 간간히 들려주는 학교의 모습은 예전과는 너무도 다르다.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로 인해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어야하며, 혹시 따돌림을 받지 않을까 걱정해야만 한다.
<<라가도>>는 우리나라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여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놀라운 흡입력을 가진 작품이다. 작가는 진실을 찾는 과정 속에 93개의 반 도면 그림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저 한낱 도면처럼 보이는 단순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더욱 긴박하게 몰아가는 시각적 효과를 준다. 특히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때마다 거대한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추어져가는 느낌을 주는데, 퍼즐이 완성되어가는 순간 이 그림은 더 큰 충격을 선사한다. 마치 책 속의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몰린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섬뜩한 느낌이다.
한 사립학교에서 어떤 남자가 한 여학생을 무자비하게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 살인사건으로 인해 두 달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히가키 리나의 죽음이 사건의 원인으로 주목받으면서 두 사망 사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후유시마 야스코 경관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재현에 살해당한 학급의 반장이었던 후지무라 아야 '18번 학생' 역할을 맡게 되지만, 범인 리나의 아버지인 히가키는 사건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죽은 후지무라는 히가키의 돌발행동에 친구들을 향해 '다들 달아나'라고 외쳤고,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나를 대신...."이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겨 많은 이들에게 성녀로 남게 되었는데, 재현 과정에서 후지무라는 리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된다. 후유시마는 사건의 진실과 다르게 재현이 이루어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발하게 되면서 재현을 중단시킨다. 이에 텔레비전 방송국은 후유시마에게 접촉해 경찰보다 훨씬 정확하고 공정하게 범행을 재현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보자는 제의를 한다.
연출자 고다의 출현으로 이제 이야기는 사건을 파헤쳐가면서 점점 미스터리적 요소를 갖추어간다. 두 달전 리나의 자살을 둘러싼 공방에서 히가키는 정신적 학대를 받은 리나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고, 학교는 전면 부인했다.
리나는 자살하기 직전,
말해버렸어 언젠가 들켜 무서워 말하는 대로 돼 전근해주면 좋을 텐데 다들 그 애의 무서워 (본문 47p)
라는 글을 남겼고, 정신적 학대의 주범은 반의 보스이자 학교 재단인 세오 그룹의 임원이며 학교 법인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노부히코의 아들 13번 쇼가 주목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재단의 비리와 학부모와의 관계가 들러나게 되면서 노부히코 역시 좌불안석이 된다. 노부히코의 충직한 비서인 이자와는 쇼와 노부히코를 위해 이 사건을 철저하게 규명하고자 고다와 손을 잡는다.
그렇다면 <<라가도>>는 무슨 뜻일까? 책 중반부에는 이자와와 고다는 라가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라가도라고 아십니까?"
"라가도? 괴수 영화인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도시 이름지요. 과학자 수백 명이 라가도 시에서 연구를 하는데, 그 연구라는 게 하나같이 공리공론이라 구체적인 성과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겁니다. 방대한 연구비만 헛되이 나가고 있었죠. 이것과 이름이 같은 정보취급기간이 최근 일본에 만들어졌다더군요. 다시 말해서 라가도란 이 기관의 가창인데, 정보기관이 아니에요. 정보 '취급'기관입니다. 정보는 국가 고유의 자원으로 보고 다른 나라와 매매 혹은 정보 대 정보를 교환하는 비즈니스 기관이죠. 이 라가도는 기관이 획기적인 점은 시스템의 초월성에 있습니다."
"그 라가도라는 기간은 그렇게까지 해서 뭘 하려는 거야?"
"정보의 수집, 분류, 그리고 배양입니다." (본문 136,137p)
재단의 비리로 노부히코는 회사를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데, 고다는 학생들을 만나고 추리해가는 과정에서 또다른 진실을 알게되고, 담임이었던 시마즈 사토코와 노부히코의 관계, 쇼와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러나 진실은 이들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학생들의 기억 속에서 스멀스멀 떠오르고 있었다.
반전 또다른 반전 그리고 반전.
진실을 추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혹시 범인이 누군지 맞혔다 하더라도, 그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앞에서 별일 아닌 듯 툭 내뱉었던 대사 속에는 중요한 실마리가 있기에, 어떤 대사도 놓칠 수 없다. 점점 책 속에 빨려가는 기분이다. 신인 작가라고 하기에는 굉장한 흡입력을 가진 필력을 가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가도>>는 '정보' 그리고 '공기'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작품을 다룬다. 가끔 무거운 공기로 짓눌린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집단의 분위기는 그 집단의 '공기'로 인해 좌우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공기'는 어떤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라가도>>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져 있는 무거운 '공기'를 생각해보게 한다.
(사진출처: '라가도-연옥의 교실'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