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동서문화사 월드북 27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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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에 이 책을 읽고 이 블로그에 리뷰를 쓴 기억이 나는데 찾을 수 없다...


여튼 오랜만에(어쩌면 10년 정도 만에) 쇼펜하우어의 이 대작을 다시 읽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공감을 하느냐 여부를 떠나 읽는 재미를 주는 몇 안되는 철학 저작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저작을 이해하기 위해 미리 읽어놓아야 한다고 일러준 책들을 읽지 못했다. 내 생각에는 그 책들을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제1권의 중반부 정도까지 읽어낼 수 있으면 나머지 부분을 독파하는데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두 가지 형이상학적 사유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첫째는, 세계가 나의 표상은 아닐까, 세계는 내가 꾸는 꿈이 아닐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삶, 이 우주의 드라마는 어떤 우주적인 맹목적인 힘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기본적인 발상을 칸트 철학에서 빌어온 개념과 구도로 짜맞춘다. 쇼펜하우어는 칸트 철학 전문가로 자처하고 있고, 칸트에 많이 빚진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내가 읽기로 그의 철학과 칸트 철학은 별 연관이 없는 것 같다. 개념적으로나 분위기적으로나 둘은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하자면 그의 철학의 주된 기조, 그 뼈대와 분위기는 인도 철학에서 직접 빌어온 것 같다. 인도의 철학자가 서구에 유학하여 칸트 철학을 연구하고 쓴 책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렇게 말하면 쇼펜하우어가 좋아할라나?)


이 책의 백미는 예술론을 다루고 있는 제3권, 그리고 윤리학 일반을 다루고 있는 제4권이다. 3권까지는 어느 정도 도식적이지만 4권의 첫 중반은 매우 풍부한 사상을 담고 있다고 느꼈다. 4권의 나머지 절반은 대놓고 인도 철학적이기 때문에 그다지 흥미를 끌지는 않는다. 4권의 첫 중반이 풍요한 사상적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쇼펜하우어가 그리고 있는 구도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혹은 그러한 구도를 전제하지 않고도 충분히 철학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몇몇 현대 철학자들의 영감의 원천이 거기였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 스스로 말하듯 아주 단순한 사상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책의 부피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니 무수한 반복은 피할 수 없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저자는 페이지 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 템포에 맞추어 아낌없이 하고 있구나. 그러므로 독자로서 이 작품을 최대한 즐기는 방법은 그 여유로움을 느슨하게 따라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여유로움은 도대체 시대착오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툼한 저작을 몇 십 페이지로 요약했을 때, 그 요약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정신적 경험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마치 관광 버스를 타고 지리산 노고단에 오르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것들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경험일 것이다. 노고단에 버스를 타고 오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곱 고비를 기어오르며 거기에 도달하는 길도 있다는 사실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문명의 진화가 이 후자를 삭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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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성'. 물론 폭력적인 말이다. 그러나 그에 너무도 적절한 맥락이 있다면? 


요즘 AI 도구들을 이거 저거 테스트해보고 있다. 어떤 거대 언어 모델을 써서 어떤 책을 요약시켜 보았다. 다음은 그 결론 부분이다. AAA는 그 책의 저자, BBB는 그 책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원저작이다.


"AAA's guide is both an introduction to BBB and a resource for deeper engagement with its [philosophical, psychological 등등 아무 말이든] implications. By unpacking the intricate arguments and addressing potential challenges for readers, the guide fosters a greater understanding of BBB and its significance within the broader landscape of contemporary [philosophy, economics 등등 아무 말이든]."


일단은, AI가 아직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보면서 안도감과 실망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러면서 어떤 윤리적 관념에 예민해진다. 위 인용문에 포함되어 있는 빛좋은 낱말들을 보라. deeper engagement, implications, unpacking, intricate arguments, potential challenges, foster a greater understanding, its significance, broader landscape... 아름다운 말들이지만 내용은 하나도 없다. 말이 아니 되지는 않지만 껍데기 뿐이다.


그리하여 도달한 윤리적 교훈. 타에 대해 피상적이라 지적하게 되는 바로 그 부분에 스스로를 머무르게 해서는 안된다. 간단하게, 피상성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피상성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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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에이아이 도구(거대 언어 모델)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너무 간략하게, 솔직히 말해서, 너무 성의없게 쓴 것 같아 나름 반성을 좀 하게 되었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지만 좀 더 상세하게, 다시 하기로 한다.


중국의 딥싴 모델이 화제가 되면서 나도 거대 언어 모델이 어느 정도 발전했는가 알아보고 싶어졌다. 이래 저래 알아보니 클로드에 대한 평판이 가장 좋았다. 나는 거대 언어 모델이 실제 작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쓰고자 하는 책의 서문, 혹은 제1장 부분을 거대 언어 모델이 작성해 줄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았다. 다음은 내가 클로드에 처음 제시한 프롬프트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나는 현대 "스피노자를 찾아서" 라는 책을 쓰고 있다. 그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할 것이다. 헨리 올덴버그가 영국에서 새로운 직장을 얻어 독일 집을 떠나 프랑스의 깔레 항으로 마차를 타고 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였다. 각국은 과학 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영국에선 왕립 협회를 창설했다. 경제적 부흥과 군사적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맹렬히 자라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투기가 일기도 했다. 이 새로운 시대에 올덴버그는 일익을 담당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시대의 지식인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네덜란드 지역을 마차로 지나다, 그의 최신 지식인 목록에 스피노자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스피노자를 만나보고 싶었다. 이상을 참고하여 기다란 글을 써주길 바란다." 


사실 위 프롬프트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좀 더 극적인 서사를 기대하며 만든 프롬프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클로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써주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마차의 창문을 통해 스며들었다. 1661년 초여름, 헨리 올덴버그는 독일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차가 프랑스 깔레 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네덜란드 국경을 통과하는 동안, 그의 눈은 창 밖 풍경을 흘깃거리며 새로운 시대의 징후들을 읽어내고 있었다.


운하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창고들, 멀리 보이는 항구의 돛대 숲, 그리고 바쁘게 오가는 상인들의 모습은 이 시대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특히 네덜란드는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하며, 얼마 전까지 튤립 한 알에 집 한 채 값을 지불하는 광기 어린 투기 현상까지 목격했던 곳이었다.


올덴버그는 자신의 가죽 서류가방에서 조심스럽게 편지 뭉치를 꺼내들었다. 그 안에는 유럽 각지의 학자들과 주고받은 서신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보일, 후크, 라이프니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바뤼흐 스피노자'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이번이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군," 그는 중얼거렸다.


올덴버그는 자신이 특별히 뛰어난 사상가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능력이었다. 영국 왕립학회의 서기로 임명된 것도 바로 이런 그의 재능 때문이었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바뀌었다. 멀리 보이는 교회의 첨탑, 운하를 따라 늘어선 풍차들, 그리고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마을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듯했다. 갈릴레오의 발견으로 시작된 과학혁명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되어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찰스 2세의 후원 아래 왕립학회가 설립되어,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올덴버그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마차가 잠시 멈춰 선 작은 마을에서, 올덴버그는 스피노자에 대한 소문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았다. 렌즈를 갈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 젊은 유대인 철학자는, 이미 네덜란드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의 대담한 사상으로 인해 주목받고 있었다. 특히 데카르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철학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소문이 올덴버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다," 올덴버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상가들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서, 올덴버그는 스피노자를 만나 그의 사상을 직접 듣고, 이를 다른 학자들과 공유하며, 새로운 시대의 지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일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놀랐고, 더 솔직히는 충격을 받았다. 프롬프트를 보면 내가 머리 속으로 어떤 구상을 하고 있었는지 잘 드러난다. 이성, 계몽, 합리, 과학 등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고, 그 새로운 시대 정신을 구축하고 전파하는 학회가 창설되고 있었고, 올덴버그 자신이 그 학회에서 커다란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이제 고향인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그 사명을 받아안으려 여행하고 있었다. (배로 갔는지 마차로 갔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나는 올덴버그가 마차로 여행을 했을 것이라고 상정하고, 이른 아침에 출발한 마차 창문 너머로 흐르는 익숙한 풍경들, 아침의 시원한 공기 등, 새 시대를 드러낼 수 있는 온갖 상투적인 표현들로 첫 부분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이아이가 써 준 글은 나의 이러한 의도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멀리 보이는 항구의 돛대 숲" 같은 표현은 나를 경악하게 했다. 에이아이는 흠 잡을 데 없는 표현들을 적절하게 구사한다.


물론, 위의 글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예컨대, 저때는 올덴버그가 스피노자와 아직 서신 교환을 시작하기 전이다, 등등. 


여튼 나는 바로 OpenRouter라는 사이트에 가입하여 쓰는 만큼 내는 형태의 요금제로 거대 언어 모델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수 많은 거대 언어 모델 중에서 나의 목적에 비추어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클로드인 것 같았다.


다음은 내가 최근에 이용한 프롬프트들(Q)과 그 결과들(A)이다.


"Q) 레이든에서 올덴버그에게 스피노자에 대해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가?


A) 네, Huygens(하위헌스) 형제가 올덴버그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Christiaan Huygens(크리스티안 하위헌스)와 Constantijn Huygens Jr.(콘스탄틴 하위헌스 2세)는:


  • 당시 네덜란드의 저명한 지식인 가문
  • 특히 크리스티안은 유명한 과학자
  • 올덴버그와 서신 교류가 있었음


하지만 정확히 누가 스피노자의 거처를 알려줬는지는 확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올덴버그의 네트워크:


  1. 영국 왕립학회 관련 인물들
  1. 유럽의 지식인들
  1. 네덜란드의 학자들


(이 정보도 추가 확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Q) 보릴은 아니었을까?


A) 네, Borel(보릴)이 올덴버그에게 스피노자를 소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Adam Boreel(아담 보릴):


  • 네덜란드의 신학자, 학자
  • 라이덴에서 활동
  • 콜레기안트(Collegiants) 그룹과 연관
  • 스피노자와도 교류
  • 올덴버그와도 교류가 있었음


실제로:


  • 보릴은 올덴버그의 네덜란드 방문 시기에 라이덴에 있었음
  • 스피노자의 거처와 활동을 알고 있었을 것
  • 당시 지식인 네트워크의 중요한 연결점


앞서 하위헌스를 언급한 것은 제 실수였습니다.

보릴이 더 유력한 중개자였을 것 같습니다." 


위 과정을 보면 거대 언어 모델의 약점과 가능성이 동시에 드러난다. 잘 알려진 에이아이의 약점은 에이아이가 틀린 답변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의 경우 에이아이는 정확한 답을 몰랐고, 그러므로 여러 가능성들을 고려하여, 예컨대 올덴버그와 스피노자가 동시에 알았던 인물들 중에서, 아마도 호이헨스가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것 등등에 주의하여 그를 중개자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이아이는 답을 전혀 몰랐고, 나는 에이아이가 제시한 인물보다 보릴 등이 더 '유력한 중개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에이아이보다 더 신빙성 있는 답을 알고 있었을까? 그것은 단순히 나는 관련 문헌을 읽었고 에이아이는 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클로드, ChatGPT, DeepSeek 등등으로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어떤 거대 언어 모델도 내가 읽은 그 문헌을 읽은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 관점과 기준에서라면 거대 언어 모델은 이제 거의 정상에 다다른 셈인 것 같다. 웹에 쌓인 정보들을 그동안 충분히 소화했다면 이제 도서관으로 가서 책들을 게걸스럽게 먹어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현재 최고 성능의 언어 모델도 철학적 사변을 전개하는 데는 극히 피상적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곤 했다. 나는 그것을 언어 모델 자체의 한계 등등의 기술적 문제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 그것은 거대 언어 모델이 도서관에 비치된 고전들과 관련 연구 문헌 등등을 충분히 읽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문헌들을 섭렵하는 것은 이제 단지 시간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 온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질문하는, 기획하는, 총괄하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영화 감독이라는 사람은 각본도 쓰지 않고 촬영도 하지 않고 편집도 하지 경우가 많다. 거대 기업의 CEO는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최근 며칠 동안 언어 모델을 사용하면서 내가 받은 압박이 그런 것이다. 내 앞에 거대한 슈퍼 컴퓨터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도구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더하기 빼기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진보는 거대한 낭비에 불과할 수 있다. 이 거대한 도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내뿜어낸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의 양을 정당화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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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을 기초로 블로그 글을 작성하라: 딥시크 뉴스를 계기로 에아이의 성숙 정도가 궁금해졌다. 이러 저러 검색을 해보고 글쓰기에 특화되어 있다는 클로드를 선택하여, 내가 구상하고 있는 "스피노자를 찾아서" 라는 책의 서문 부분을 작성해보도록 하였다. 놀라웠다. 내가 머리 속에서 그리고 있던 장면을 그대로 출력한 듯 했다. 나는 더 테스트해보았다. 이번에는 요즘 읽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나의 요약을 제시한 후 이를 토대로 글을 써보도록 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나 자신의 개인적 관점, 해석 등등이 쇼펜하우어에 대한 일반적인, 피상적인 지식과 섞여 희석된 것이었다. 나는 나의 요약에 좀 더 충실한 글을 작성하도록 제약을 주었다. 그러자 내가 쓴 요약 정도의,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만들어졌다. 더 풍부해지지도 더 생생해지지도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에이아이가 적어도 철학을 논함에 있어 창발성을 드러내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구나. 그러나 문학적 서술 등에 있어서는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문서를 작성하거나 소설을 쓰는데는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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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이번 포스팅을 작성하기 위해 클로드 에이아이 모델에 프롬프트로 제시한 것이다. 원래는 클로드가 출력해준 그대로를 붙여 놓으려 했는데 그 결과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포기했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에이아이가 아직 영혼을 갖고 있지는 않구나. 에이아이가 쓴 글에서는 급하게 짜깁기한 대학 레포트 과제물 냄새가 난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도 에이아이는 좋은 사실주의 작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소설가들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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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에서 쿠데타가 가능한가? 답은,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쿠데타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복합체로서의 한국 일반은 분명 쿠데타와 양립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쿠데타를 수용가능한 옵션으로 생각하는, 비례적이지 않은 특정 영역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군부가 그렇고 민정당계 역사를 공유하는 정당들이 그렇다. (예컨대, 군 지휘관들 중 박정희, 전두환을 영웅화하고 있는 이들의 비율은 국민 평균을 훨씬 상회할 것이다.) 이들이 정치적 사법적으로 실존적 위기를 겪는 권력자와 결탁되었을 때 쿠데타는 쉬운 탈출구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쿠데타가 가능할까?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는 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왜 영국에서는 쿠데타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일까? 한국과 영국을 가르는 차이점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이번 쿠데타 국면에서 윤석열이 쉬지 않고 입에 올리고있는 '자유민주주의' 라는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민주주의'와 같은 뜻인 것으로 생각하고, 윤석열이 말로는 민주주의라면서 행동으로는 독재자, 파쇼 짓을 하고 있네 라며 의아해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민주주의에 대한 초월적,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퇴행적 입장을 의미한다. 즉,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한국은 공산 세력인 북한과 붙어있기 때문에 서방식 민주주의를 했다가는 공산 세력의 암약을 방치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특히 헌법 1조에 대한 수정적, 혹은 더 정확히 말해 유보적 입장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이라는 체제의 자기 수호를 제1가치로 여긴다. 간단히 말해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양립가능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즉자적이지 못하다. 즉,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정의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공산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이 얼마나 처량한 개념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의 용법은 지극히 처량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하는 순간 '반국가세력'이 언급될 수 밖에 없고, 그러므로 '처단'이라는 말로 결말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자는 이 단순한 논리 회로 이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단순성을 마냥 비웃고 있을 수는 없다. 예컨대, 영국에는 없고 한국에는 있는 것이 바로 이 '자유민주주의' 라는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일 수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이고, 이데올로기는 실재하는 어떤 힘을 전제한다. 즉, 한국에는 북한이 붙어 있다. 북한은 부정할 수 없는 실재이다. 그리고 북한은 한국에 대해 실제적이고 임박한 위기를 초래하는 반국가세력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간단하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한국의 객관적 구성 요소 중 하나이다. 즉,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운명이다.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망령? 국민의 힘이라는 정당? 아, 그것은 한국의 운명이다.


그렇지만 이번 쿠데타의 전개 국면에서 우리는 분명한 희망을 본다. 이번 쿠데타는 4, 50년 전의 것과 양상이 분명 달랐다. 그 다름의 현상에 온갖 것들이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묶는 타래 중의 하나는 분명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의 신장일 것이다. (스피노자가 말하듯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결코 스스로 소멸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의 소멸은 언제나 다른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을 전제하며 그 투쟁에서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탄핵안 투푯날, 나는 여의도에 모여든 시민들이 부러웠다. 그날은 승리가 예정되어 있는 날이었다. 누구 말마따나 승리의 가장 큰 보상은 승리 그 자체일 것이다. 모든 대의라는 대의는 다 가지고, 그 추운 겨울날 자신을 희생해가며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에게 그 날 민주주의의 승리는 생애 내에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그날 여의도는 민주주의의 거대한 학교였다. 어쩌면 추우면 추울수록, 고생스러우면 고생스러울수록 그 승리는 더 달콤하게 여겨졌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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