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쉬엄쉬엄 읽고 있다. 매우 짧고,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책도 아니니만큼, 그리고 벌써 몇 번 읽은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천천히 읽게 된다. 


감동을 받는다든지 하는 것은 없고, 자연스럽게, 그저 하이데거가 하는 말을 지켜보게 된다. "Now the word "philosophy" is speaking Greek." 나는 하이데거의 이런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굳이 하이데거가 유럽중심주의적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비판할 마음도 없다. 하이데거 이후 축적된 연구들이 이러한 언명을 굳이 비평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서구중심주의니 하는 비판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의 시위 사태를 본다. 이란 전쟁, 그리고 유럽에서는 이에 더하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나라들마다 살림이 힘겨워지고 있다. 아마 제3세계의 국가들은 더욱 힘들 것이다. 나라마다 힘듦의 결도 다를 것이고 유럽에서의 시위의 발단과 진행도 다를 것이다. 나는 다만 특히 프랑스에서, 500년 이상 지속되어온 강력한 문명권이 에너지를 소진하고 퇴락하는 징표를 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딱히 별 감정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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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무엇인가?>. 들뢰즈 가타리가 마지막으로 공동 작업을 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요즘 이 책을 읽고 있다. 혹은 이 책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아직 한국어판이 나와있지 않다고 해야 할 것 같다. 1995년에 나온 판본은 절판이라고...) 


나는 이미 들뢰즈가 쓴 두 권의 스피노자에 대한 책을 읽었지만 특별히 감명을 받은 것은 없었다. 물론 이 책은 스피노자가 아니라 철학하기란 어떤 활동인가에 대한 것이지만, 스피노자의 철학의 확장판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런 맥락에서 읽고 있다.


이 책은 나에게 기쁨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 책은 영감을 주로, 새로운 시야를 준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스피노자에 대한 책을 쓰려고 했다고? 그랬더라면 그 책은 유치한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동시에 이 책은 서구 사상의 켜켜이 쌓인 두터운 퇴적층을 맞닥뜨리게 한다. 뚫고 들어가기 쉽지 않다. '극복'? 이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저 퇴적층의 두께를 보고나면 극복이란 망발에 가까운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은 비밀스러운, 혹은 비열한 기쁨같은 것도 준다. 들뢰즈 가타리는 이 책에서 자신들의 색깔을 감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 중심적이다. 전문 용어로 말하면 유럽중심주의적이다. 이 위대한 사상가들에게서 발견한 이러한 유치한 편견은 나에게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과도 같다. 같이 읽고 있는 르네 지라르의 책에서도 똑같은 것을 발견한다. 그들에게서 로컬리티를 발견하면서 즐거워 하는 나... 적당한 일탈은 몸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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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10-1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번역되어 나온 책이 있어요. 번역 수준은 정마 처참하지만...89년인가..여튼..저도 그걸로 읽었는데..번역이 헬이라 당시(2010년 즈음) 이해도가 많이 떨어졌습니다만..^^;;

weekly 2026-10-27 02:10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이제사 봤네요... 읽기도 번역하기도 쉽지 않은 책인 듯 합니다. 어느 용자가 나서서 다시 번역판을 내주었으면 하네요. 많은 계발을 주는 책이라...
 

지피티 Astra가 나오고 거의 AGI 수준이라는 얘기도 있어서 테스트를 해보았다. 나의 관심 영역에서는 그러한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나의 AI 사용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AI를 깔끔한 검색 도구 정도로 생각한다. 즉, 이미 공개되어 있는 평균치의 정보를 잘 가공해서 제공해주는 것으로 부가적으로 영감을 얹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AI가 제공해주는 것 이상으로 나만의 어떤 것을 얹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하자면 표절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책을 읽고, 샤프로 줄치고, 다시 싸인펜으로 줄치고, 작은 수첩에 메모하고, 컴퓨터 화면에서 저작툴로 긴 노트를 작성하고, 그러면서 나만의 생각을 끌어내고, 그것들을 정교화하는 등의 작업 방식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Astra가 나오고 나서는 21세기에 이러한 느려터진 방식으로 작업해도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좀 더 효율적으로, 좀 더 21세기적으로 작업해야 한다. 나는 당장 구글 제미나이를 구독했고 나만의 작업 방식을 만들어보려 했다. 읽고 있던 책의 요약을 시켜보았다. 그리고 바로 제미나이를 충동 구독한 것을 후회했다. 제미나이의 요약이 도무지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좀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었으면 했는데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한 선택은? 나는 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는 좋은 노트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일본 회사에서 나온 미도리 노트라는 비싼 노트를 주문했다. 일종의 단권화를 생각한 것이다. 거기다가 웬만한 것은 다 적어 넣는다. 두 가지 유혹이 있다. 첫째는 분야 별로 분권화하고 싶은 유혹, 다른 하나는 노트가 어느 정도 구체화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원고로 작성해보고 싶은 유혹. 이러한 종류의 유혹에 굴복한 결과는 이 노트 저 노트, 이 기기 저 기기, 이 바인더 저 바인더로 기록들을 흩뿌리는 것 뿐이었다. 단 하나의 노트 안에서 작업하기로 하면서 사고가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섣불리 키보드에 손을 대지 않는다. - 나에게는 이 방식이 맞는 것 같다.


어제로 제미나이 구독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오늘 클로드를 새로 구독하기 시작했다. 내가 테스트해 본 결과 적어도 철학 관련한 영역에서는 클로드가 최고다. 클로드 중에서도 (오퍼스5.5 모델이 새로 나왔지만) 오퍼스5가 내게는 최고인 것 같다. 나는 이제 AI가 나의 작업을 빠르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아마 나의 작업을 더 더디게 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중요한 것은, 적어도 나의 영역에서라면, 효율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깊이이어야 한다고 나는 확실히 믿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소문난 악필이라 글씨 쓰는 것이 힘겹다. 비싼 노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아껴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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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유튭, 네플릭스의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하나? 혹은 책을 읽으면 무엇이 좋은가? 이에 대한 가장 공감가는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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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옥스포드 서커스는 젊은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다. 그런데 머리에 하얀 눈을 얹은 사람들, 지팡이를 짚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웃으며 사진을 찍는 곳이 있었다. 옛날 YES라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였던 존 앤더슨의 공연장이다. 


존 앤더슨은 무려 81세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렬하게 노래한다. 감성과 창의성이 넘치는 젊은 시절 만들었던 곡들과 신곡 3곡을 섞어 세트리스트를 짰다. "내년에도 하겠는 걸. 유럽에 다시 올지는 모르겠지만..."


밴드로서 YES, 그 밴드의 주요 창작자로서 존 앤더슨은 자기만의 사운드, 자기만의 주제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몇 년 전 아래의 동영상을 유튭에서 우연히 보고 존 앤더슨이 아직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싶어 그의 공연을 찾아보기 시작했었다. 그들의 작품들은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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