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깊이가 돋보이는 절제된 풍경화
작년인가, 그림을 보고 정제되고 쓸쓸한 느낌이 들어 낙찰받은 그림이 있다. 20호 정도의 그림이라 서재에 걸어놓고 보기 딱 좋아서 구매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서사가 있거나 느낌이 있는 그림이기에. 이 그림은 후자 쪽. 나름 만족하고 있는데, 그림 좀 보러 다니는 지인이 놀러 와서 이 그림을 보고 한마디 했다. 아마추어 작가가 습작한 그림 같다고.
습작이라 평했다는 건, 아마도 현대 미술의 파격적인 실험성이나 극적인 묘사보다는 전통적인 구도와 차분한 기법을 택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림을 객관적으로 뜯어보면, 단순히 '취미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기엔 작가의 의도된 통제력이 돋보이는 지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기법과 표현 면에서 이 작품이 왜 ‘아마추어의 습작’이 아닌지 나름대로 변명해 보겠다.

이경률, 풍경, 73×60.6cm, 캔버스에 유채
1. 색채의 절제와 정서적 깊이
이 그림의 가장 큰 미덕은 '감정을 담아내는 색의 농도'다. 소위 수채화 느낌이 나는 유채. 유화 물감을 얇게 펴 바르거나 희석하여 사용한 기법은 화면에 공기감을 불어넣는다. 이는 캔버스를 꽉 채우는 유화 특유의 답답함 대신, 막힌 공간에 어울리는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아울러 파스텔 톤의 컬러 사용이 돋보이다.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초록과 갈색을 아주 낮은 채도로 눌러서 표현했다. 이는 작가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느낀 '쓸쓸함'이라는 정서를 위해 색을 조율할 줄 안다는 증거.
2. 의도된 구도와 시선의 흐름
아마추어의 그림은 화면 전체를 일률적으로 묘사하려다 평면적으로 변하기 쉽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수직과 수평의 대비 구도가 명확하다. 왼쪽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나무(수직)가 화면 전체의 기둥 역할을 하며 안정감을 준다. 그 너머로 흐르는 수평적인 물가와 능선은 시선을 멀리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묘사의 완급 조절까지 보인다. 전경의 풀잎들은 짧고 날카로운 터치로 리듬감을 준 반면, 먼 산은 형태를 흐릿하게 뭉개버렸다. 이러한 '원근에 따른 묘사의 밀도 차이'는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숙련된 기법이다.
3. '습작'이라는 혹평에 대한 반론
혹평하는 이들은 아마도 '나무 줄기의 단순함'이나 '정적인 구성'을 지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기교의 부족이라기보다 대상에 대한 담백한 접근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화려한 기교가 들어간 그림은 처음엔 눈길을 사로잡지만 금방 피로해질 수 있다. 반면, 이 그림처럼 감정의 여백이 있는 작품은 매일 보는 서재에서 감상자의 기분에 따라 매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그림을 구해하게 한 '그림에 담긴 감정'의 실체가 아니었을까.
결론: 객관적인 미학적 가치
이 그림은 '정적이지만 단단한 구조를 가진 서정적 풍경화'다. 기교를 뽐내기보다 감상의 농도를 조절하는 데 집중한 작품으로, 20호라는 크기는 서재라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그 쓸쓸함의 정서를 오롯이 느끼기에 최적의 규격이 아닐까 한다. 한마디로 정서적 깊이가 있는 좋은 그림이라는 거.
[덧]
작가가 알려진 작가가 아니라서 적절한 평가를 못 받는 듯하다. 이런 무명작가들은 많다. 화력이 깊은 작가들인데 말이다. 전라도에서 소위 30년 화력을 갖고 지방에서 활동하는 화가도 전국적으로는 무명작가로 통용된다. 검색하면 나오는 이력이 없으니까. 그래도 열심히 찾아보면 개인전 20회 이상 단체전 100회 이상의 화력을 갖춘 작가들임이 밝혀진다. 이렇게 무명작가들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이경률 작가도 그런 작가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찾고 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