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재현의 몫을 다양한 존재들에게로 확대해나가는 노력이 문학이 언제고 해오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반복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날 때 발생하는 차이가 없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스티글러(B. Stiegler)의 말처럼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은 우리를 더는 나누어질 수 없는(in-dividual) 의미로서의 개인이 아닌, 무수히 나누어지고 데이터화되는 가분체(dividual)적 존재로 이끄는 듯하다. 조각나고 분열된 형태로서의 개인. 이 지점에서 주체는 이미 상징적 정체성 그 자체로 인해 분열되어 있다는 정신분석학의 오랜 명제를 떠올려볼 수도 있겠지만, 늘 그렇듯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이러한 분열과 연결에의 강박 사이에서 분투하는 세대를 위시하며 이들에게로 향하는 문학은 과연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냉전 종식 이후 짧은 단극시대를 지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G2시대로 규정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의 질서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선 이번 전쟁은 미국 단일패권 체제에 맞서 주요 강대국이 수행하는 최초의 군사적 도전입니다. 그동안 미중 갈등의 심화에도 군사적 충돌은 없었는데, 우끄라이나전쟁은 비록 대리전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미국을 상대로 한 러시아의 실질적인 군사적 도전이거든요. 이것이 ‘신냉전’이 될지 ‘세계대전’이 될지 몰라도 미국·유럽 대 중국·러시아의 대립 구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규범적 차원에서는 이번 전쟁이 군사적 수단을 통해 주요 강대국 간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은 강대국 간 긴장이 고조되어도 일정한 타협이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군사력 사용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이른바 ‘야만의 시대’가 부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듭니다.

또 한편으로는 서구의 정체성이 균열되는 지점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냉전을 단순히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라고 이해하지만, 사실 미국과 유럽이 함께 ‘더 웨스트’(the West)로서 대응했습니다. 즉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서방 자유진영이라는 단일한 정체성 블록이 있었던 거죠.

저는 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다시 강화되고 있다는 시각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미국의 패권 기반 약화가 이 전쟁으로 가속화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우선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의심이 커지는 양상입니다.

다음으로 미국의 경제적 패권 기반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일시적으로는 천연가스나 무기를 수출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겠지만, 달러표시자산의 신뢰성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전쟁을 보면서 우리가 ‘합리성’을 너무 과신하지 않았나 하는, 조금은 비관적인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성’을 상대도 공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릅니다.

. 국제정치는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 언론의 보도는 서구 사회와 언론의 시각에 지나치게 동조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국제정치학 수업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뿐 아니라 중동, 중국, 러시아의 국제방송 영상을 함께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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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인종주의 민족주의 종족성의 정치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성백용 옮김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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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버 콕스는 실상 모든 본질적인 점에서 세계체제 시각과 일치하는, 역사적 자본주의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명제를 주장했다. (1) 자본주의는 단순히 하나의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체제(world-system)다. (2) 자본주의는 끝없는 자본의 축적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적 세계경제로서 작동한다. (3) 자본주의 세계경제에는 핵심부-주변부의 모순에 기초를 둔 기축적 분업이 존재한다. (4) 그 체제에서 중심 국가의 자리에는 불가피하게 꾸준한 이동이 일어났다. (5) 자본주의는 여러번 창출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한번 창출되었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330


 세계체제의 위기는 세계체제 전반의 기회이며, 어쩌면 특히 아프리카 경우에 그러하다. 현 세계체제의 진행 과정 자체가 위기를 악화시키며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론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한,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어떤 혼란, 다시 말해 25~30년에 걸친 세계적 대혼란을 수반하며 그로부터 어떤 새로운 종류의 질서가 나올 것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124


 이매뉴얼 월러스틴 (Immanuel Wallerstein, 1930~2019)은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The World-System and Africa>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냉전(冷戰)체제가 붕괴되는 세계체제의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음을 직감하고, 이러한 가능성을 아프리카에서 찾는다. 20세기 말 공산권국가의 붕괴로 세계체제의 패권을 확보한 자유주의 진영이지만, 공산권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체제 개편은 불가피할 것이었다.


 이데올로기 면에서 맑스-레닌주의의 붕괴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주변부 및 반주변부 지역에서 국가 주도의 개혁이 상당한 경제발전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 제거해버렸다. 이른바 공산주의 체제들의 붕괴가 실제로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의 붕괴였다고 내가 다른 지면에서 주장한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p113)...  자본의 축적이라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지도 원리는 점점 더 커지는 실질소득의 양극화를 필요로 하고 또 불러일으킨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115


 이러한 자유주의 진영의 외부 환경의 변화에 더해, 근대세계체제의 핵심기조인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성도 <세계체제와 아프리카>에서 함께 지적된다. '핵심부-주변부'의 불평등한 관계 안에서, '최소비용 최대이윤'의 추구는 끊임없는 주변부의 팽창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계산업은 점차 외곽으로 밀려나가게 되고, 중심부의 핵심 산업은 저비용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면서 자유주의로 변모한 세계체제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20세기 말 경기순환의 대국면이 전반적으로 수축되고 세계화(世界化)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더 이상 팽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닥친 생태위기는 동시에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로 작동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월러스틴은 세계체제의 마지막 주변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1945년부터 1970년경에 이르는 꼰드라띠예프 A국면의 패턴이 수입 수준의 전반적인 향상 및 양극 간 격차 축소를 나타낸 반면에, B국면의 패턴은 국내적으로 수입 양극화의 상당한 증가를 보여주었다. 적은 비율의 사람들이 적어도 장기간에 걸쳐 꽤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 소수의 집단을 제외하면 국내의 빈곤이 뚜렷이 증가했으며, 마침내 중간계층에서 상당한 규모의 집단이 떨어져나가고 그밖의 중간계층 대부분도 실질수입의 감소를 겪었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105


 잉여가치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과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배되기 마련이다. 이 분배의 조건은 결국 정치적인 문제로, 양측의 협상력에 달려 있다. 자본가들에게는 한가지 기본적 모순이 있다. 만약 세계적으로 노동에 대한 보수의 조건이 너무 낮으면 그것은 시장을 제한하며, 이미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알려준 대로 분업의 범위는 시장 범위의 함수다. 그러나 만약 그 조건이 너무 높으면 그것은 이윤을 제한한다. 노동자들로서는 당연히 자신들의 몫을 늘리기를 원하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투쟁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노동자들은 그들 조합의 힘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이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를 통해 주기적으로 나타난 이윤 압박(profit squeezes) 현상을 낳았다. 자본가들은 일정한 선까지만 노동자들과 싸울 수 있을 뿐인데, 왜냐하면 그 선을 넘어서 실질임금 수준을 너무 낮추면 그들의 생산품에 대한 세계적 유효 수요를 감소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되풀이된 해결책은 더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시장을 공급하도록 허용하는 한편, 정치적으로 취약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매우 낮은 임금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총 생산비용을 낮추어주는 새로운 인력계층을 세계 노동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세계의 탈농촌화는 이 필수적인 과정을 위협하며, 그럼으로써 자본가들이 그들의 세계적 이윤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위협한다. 두번째 장기적 추세는 생태학적 위기라 불리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관점에서 이것은 비용의 외부화를 종식할 위협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75


 그렇지만, 월러스틴은 아프리카에서 희망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가 겪는 문제가 본문에서 제기되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경제적 제국주의의 흐름과 정치적 제국주의 흐름 사이의 간섭과 방해다. '민족'과 '해방'이라는 좌파(the Left)이념으로 집권한 세력들이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세계질서에 편입되기 위한 정책을 펼 수 밖에 없는 모순. 월러스틴은 비동맹 운동(非同盟 運動, Non-Aligned Movement, NAM)의 한계성을 이와 같이 지적한다.


 내가 보기에 경제적 제국주의가 반드시 정치적 제국주의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때로는 정치적 제국주의에 의해 방해받기도 한다. 이 같은 방해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정치적 양상의 식민주의를 제거하는 것이 경제적 제국주의자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18


 운동이 권좌에 머물러 있으려면, 이 지점에서 오로지 한 가지 정책만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으니, 그것은 곧 진정으로 근본적인 변혁을 연기하고 그 대신 세계경제 안에서 '따라잡기'(catchup)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운동들이 세운 정권은 모두 한결같이 세계경제 내에서 국가를 더 강하게 만들고자 했고, 또한 주요 국가들의 수준에 더 가깝게 자체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했다. 으레 주민 대중이 정말로 원한 것은 '근본적인 변혁'이 아니라 바로 부유한 나라들의 물질적 혜택을 '따라잡는 것'이었으므로, 운동 지도자들에 의한 전후 정책의 변경은 실제로 인기가 있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65


 동시에, 월러스틴은 이러한 한계를 유지하는 '억압의 한계'로부터 세계체제 전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 억압은 결코 변화를 이끌어내는 진정한 힘이 될 수 없기에, 억압이 강해질수록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억압을 대체하는 희망과 확신을 가진 대중적 지지를 통해 주변부의 변화를 기대하는 저자의 마음을 우리는 <세계체제와 아프리카>에서 발견한다.


 모든 반체제 운동의 경우 '잠정적인' 목적의 성취, 즉 국가권력 장악이 현존 세계체제를 침식하는 동시에 강화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지역권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강화작용보다 침식작용이 더 컸다는 것이 분명하다(p28)... 향후 25~50년의 중대한 정치적 전장이 국가 간 대립 또는 고전적인 형태의 계급투쟁(사적 부르주아 기업가 대 프롤레타리아 산업노동자)이 아니라 반체제운동들 내부 그리고 반체제운동들 일체의 울타리 안에 존재할 것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30


 무엇이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는가? 억압의 수준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억압은 흔히 변함없는 상수(常數)이며, 따라서 예전의 T1 시점에 동원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왜 T2 시점에는 동원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대중을 동원하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 희망과 확신 - 억압의 끝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믿음, 더 나은 세상이 정말로 가능하다는 믿음 - 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60


 월러스틴의 <세계체제와 아프리카>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대륙의 문제로 하기에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월러스틴이 아프리카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세계 힘의 중심점으로부터 먼 변방'이라는 점이 역으로 '세계 힘이 맞붙어 균형점'으로 자리잡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은 대칭적으로 생각할 지점을 던져준다. 또한, 본문에서 다루어지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금융과 군수산업에 기반한 전쟁을 통해 세계적인 유효수요(有效需要) 창출을 통한 세계체제 유지는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도 낯선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동아시아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통해 다른 제3세계에 비해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획득할 수 밖에 없었으나,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이 되는 것을 제한하는 분단체제의 한계를 실감하는 우리에게 아프리카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 문제를 고민하는 또 다른 과정이라 생각된다...


 요는 현대 세계의 4대 힘의 중심인 미국, 소련, 서유럽, 일본, 중국은 모두 지역권의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겠지만, 그래도 남부 아프리카의 사태 전개는 그들의 어젠다에서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그 지역으로서는 행운인 동시에 불행이기도 하다. 그것이 행운인 동시에 불행인 이유는 다음번의 경제적 팽창 국면으로 들어갈 때, 아마도 남부 아프리카에 정치적 관점에서는 더 다행스럽고 경제적 관점에서는 덜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48


 국제통화기금(IMF)은 채무상환위기에 처한 모든 국가에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더 적은 수입과 더 적은 주민 복지), 그리고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임금을 낮게 유지하거나 더 낮춤으로써, 내수를 위한 생산으로부터 무엇이든 세계시장에서 당장 팔 수 있는 것을 생산하는 체제로 전환함으로써)을 권고했다. 이 껄끄러운 권고안을 위해 IMF가 지닌 무기는 어떤 특정 국가가 IMF의 정책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모든 서방 정부의 단기적 지원을 보류시키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채무위기가 일어날 경우)  해당 정부의 지불 불능 사태가 코앞에 닥치는 것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108

‘탈식민화‘(decolonization) 과정이 1945년에 누구나 예견했던 것보다 여러 면에서 더 수월하게 이뤄진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만물의 상품화‘(따라서 세계경제의 양극화) 과정이 ‘원주민‘ 정부하에서 더 느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빠르게 진행되리라고, 중심부의 선견지명 있는 정책입안자들이 내다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애초부터 걸어온 역사적 궤적에 들어맞는 일이 될 것이다. - P25

모든 운동을 하나로 묶은 것은, 첫째로 ‘인민‘은 누구이며 인민에게 ‘해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공동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식이었다. 이 운동들은 또한 권력이 현재 인민의 수중에 있지 않으며 인민이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 그리고 불공정하고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 상황에 대해 책임이 있는 집단들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 P53

근본적인 문제는 운동들의 전략에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이중의 굴레에 매여 있음을 깨달았다. 운동들의 단 한가지 목표는 근대 세계체제의 주된 조정 메커니즘을 제공하는 근대세계체제 내에서 권력을 잡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반체제운동을 궁극적으로 무력화하고 세계의 변혁에 대한 그들이 무능력을 확실하게 하는 목표이기도 했다. - P73

‘인종‘(race) 개념은 세계경제의 기축을 이루는 분업, 즉 핵심부-주변부의 이율배반과 연관되어 있다. ‘국민‘(nation) 개념은 이 역사적 체제의 정치적 상부구조, 국가 간 체제를 이루는 동시에 그로부터 비롯하는 주권국가들과 연관되어 있다. ‘종족집단‘(ethnic group) 개념은 자본축적 과정에서 비임금노동의 구성분자들을 대규모로 유지하도록 해주는 가계(household) 구조의 창출과 연관되어 있다. 이 세가지 용어들 중 어느 것도 계급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는다. 이는 ‘계급‘과 ‘민족성‘이 서로 다른 맥락에서 정의 되었기 때문이며, 역사적 체제의 모순들 가운데 하나다. - P151

구좌파운동들의 실패는 제일 먼저 1968년의 세계 혁명에서 정치적으로 큰 파급을 끼쳤다. 1945년 이후 구좌파운동은 지구 도처에서 - 공산주의운동들은 이른바 사회주의 블록에서, 사회민주주의운동들은 범유럽 세계에서, 민족해방운동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카리브해 연안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리고 포퓰리즘운동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에서 -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지만 세상을 뚜렷이 바꾸지는 못했고, 그것이 이 운동들에 대한 신뢰를 철회한 1968년의 혁명가들이 제기했던 비판의 핵심이었다. - P243

1970년 무렵 이후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하나의 긴 꼰드라띠예프 B 국면에 있었다. 이러한 B 국면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표준적인 특징들을 나타냈다. 세계적인 실업률 증가, 종전처럼 더이상 수익성이 나지 않는 주요 산업들의 반주변부 국가로의 이동(이 국가들은 이를 두고 자신들이 ‘개발 도상‘ developing에 있다고 주장한다), 투자를 통한 이윤 추구로부터 금융 부문에서의 이윤 추구로의 자본 이동,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비용을 내부화하려는 정부의 압력을 공격함으로써 그리고 복지국가의 보호 장치를 축소하여 세금을 인하하려고 노력함으로써 비용을 줄이려는 시도 등이 그런 특징들이다. 이 같은 정치적 노력을 두둔하는 취지의 담론을 우리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라고 불러왔다. - P244

우리는 종교에 기반을 둔 운동들이 국가권력을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함에 따라 그들의 ‘근본주의적‘ 성격이 약화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핵에너지 또는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가 샤리아나 낙태 반대 또는 그에 상응하는 어떤 것들보다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우리는 구좌파 반체제운동들의 경우 국가권력이라는 목표의 성취가 그들의 전통적 이데올로기 및 정치적 약속에 대한 열정을 어떻게 송두리째 앗아갔는지 살펴보았다. ‘근본주의‘운동들 또한 집권하게 되었을 때 어찌 이와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겠는가?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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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14 2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월러스틴의 책을 제법 읽었었는데 오랫만에 보니 반갑네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이런 학문적 업적을 남기시다니 대단하신 분입니다 정말..... 이분의 글을 읽고 나면 어떻게든 희망이 생기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겨울호랑이 2022-06-15 06:1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요즘과 같이 어수선한 시기에 저자의 통찰력있는 분석을 더는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mini74 2022-07-08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번 북플로만 접하다 알라딘서재로 호랑이님 서재에 들어오니 너무나 귀여운 고냥님 사진이 ㅎㅎ
축하드립니다 호랑이님 *^^*

겨울호랑이 2022-07-08 22:58   좋아요 1 | URL
좀처럼 사진 찍기가 어려운데 가까운데서 모처럼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미니님 감사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7-08 1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당선 축하드립니다.

최근에 이매뉴얼 월러스틴 책들 계속 올려주셔서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7-08 22:59   좋아요 2 | URL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가 저자의 타계로 1914년까지 다뤄져 많이 아쉽습니다. 더 오래 살았더라면 최근 정세에 대한 대가의 깊은 통찰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요......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

이하라 2022-07-08 1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기분 좋은 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2-07-08 23:00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

강나루 2022-07-09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당선 축하해요^^

겨울호랑이 2022-07-09 19:15   좋아요 0 | URL
강나루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러블리땡 2022-07-09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2-07-10 09:20   좋아요 0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

thkang1001 2022-07-10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7-10 09:30   좋아요 0 | URL
thkang님 감사합니다. 덥지만, 건강한 일요일 보내세요! ^^:)

thkang1001 2022-07-10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리고 《차이퉁》의 그렇고 그런 쓰레기 기사는 늘 있었고, 몇몇 몹쓸 놈들이 익명으로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지 않는가?

여기서 이따금 언급된 뤼딩이라는 자가 《차이퉁》의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S.를 모조리 삭제하고, 전부 B.로 쓰시오."라고 말하면, 그저 애써 고생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악의 없는 도청자는 그 소리를 엿듣고 무슨 생각을 할까?

여기에서는 절대적인 정의가 지배해야 한다. 카타리나가 바로 그 술집, 그러니까 불운했던 쇠너가 "앵앵거리는 여자와 함께 밖으로 사라져 버린" 그 술집을 탐색하러 가기 위해 카니발 옷을 재단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것은 그녀가 이미 퇴트게스와 인터뷰를 약속한 뒤, 그리고 《존탁스차이퉁》이 퇴트게스의 기사를 계속 실은 뒤였다. 그러니까 기다려야 한다. 확실히 입증되고 증거가 제시된 것은, 바로 하이넨 박사가 그의 환자 마리아 블룸이 급작스럽게 죽은 것에 대해 너무나 놀랐고, 그가 "예상치 못한 외부 영향들을 입증하지는 못하겠지만 배제할 수도 없다."라고 말한 사실이다. 무고한 페인트공들이 여기서 책임을 떠맡게 되어서는 안 된다. 독일 수공업의 명예를 더럽혀서도 안 된다.

여기서는 보고하기보다는 거의 인용만 하도록 하겠다. 인정해야 할 것은, 카타리나의 "스토리"와 사진이 더는 1면을 장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루트비히 괴텐이 "사업가의 별장에 숨었던 카타리나 블룸의 다정한 연인"이라는 표제와 더불어 1면에 실렸다. 7 내지 9쪽에 걸쳐 많은 사진과 함께 실린 스토리 자체는 지금까지의 기사들보다 훨씬 더 풍부해졌다.

카타리나의 아버지가 위장한 공산주의자였다는, 게멜스브로이히의 한 신부가 제공한 놀랄 만한 ? 관계자 모두를 놀라게 한 ? 정보가 사실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블로르나는 하루 날을 잡아 그 마을로 갔다. 우선, 이 신부는 자신의 진술을 거듭 확인해 주었고, 《차이퉁》이 그의 말을 그대로 올바르게 인용했다고 인정했으며,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제시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심지어 그럴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자신의 후각이 항상 믿을 만하다며, 블룸이 공산주의자라는 냄새를 그냥 맡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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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 세계의 시간 -상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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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경제(world economy)는 지구 전역에 걸쳐 있다. 시스몽디가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전지구적인 시장" 또는 "함께 교역을 하여 오늘날에는 일종의 단일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인류 전체, 또는 인류의 어느 부분 전체"를 가리킨다. 세계-경제(world-economy)는 우선 전지구의 일부분에만 관련된 말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 말은 경제적으로 독자적이며, 핵심적인 것들을 자급자족할 수 있고, 내부적인 연결과 교역이 유기적인 통일성을 이루는 단위를 말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18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3-1>에서는 세계-경제 체제에서 헤게모니 hegemony)에 대해 다룬다.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1930~2019)의 세계체제론(world-systems theory)에서 다루어진 중심부-주변부의 문제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권 : 세계의 시간> 에서 패권국의 흥망으로 그려진다.


 세계-경제에는 일정한 경계가 있는데,  그 경계선은 마치 해안선이 육지로부터 바다를 구획하듯이 그 세계-경제를 규정한다 ; 세계-경제는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도시와 하나의 지배적인 자본주의가 맡고 있다. 여러 개의 중심들이 형성된다면 그것은 이 세계-경제가 아직 젊거나 아니면 반대로 퇴화해가거나 격변을 겪고 있다는 표시이다 ; 이 공간 내에서는 각각의 개별 경제들이 계서제를 이루고 있다. 그중 어떤 것들은 가난하고 어떤 것들은 소박한 수준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중심에 위치한 하나의 경제만이 상대적으로 부유하다. 이로부터 불평등, 전압차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이 전체를 작동시키는 힘이 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24


 브로델의 3층 구조에서 아래 층위인 물질문명과 시장경제에서는 다양한 극점(極點)이 존재한다. 지배층의 사치품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활발한 교역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 단계에서는 최상위 정점(頂點)만이 존재한다. 정점이 갖는 헤게모니는 역사를 통해 도시에서 점차 영토형 국가로 넘어가는 진행과정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도시의 패권은 베네치아에서 시작되어 안트워프, 제노바, 암스테르담으로 넘어가며 마무리되고, 이후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한 네덜란드 패권이 영국(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으로 이전되며 영토형 국가의 승리로 완결되는 것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무엇보다도 계서제를 내포하며, 그 계서제의 최상층을 차지한다. 자본주의가 이 계서제를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상관이 없다. 자본주의가 제일 마지막에 개입하는 곳에서는 하나의 중개점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것은 이질적이면서도 적극 협조를 아끼지 않을 사회계서제로서 이것은 자본주의의 활동을 확장하고 활성화시키는 일을 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82


 영토국가는 잘 성장하지 못했거나 적어도 빨리 성장하지 못했고, 여기에 더해서 14세기의 장기적인 경기후퇴가 악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여러 국가들이 곤경을 겪고 해체되었으며 그 결과 도시들이 다시금 활동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도시와 국가는 여전히 잠재적인 적대관계를 유지했다. 도시가 국가를 지배할 것인가, 국가가 도시를 지배할 것인가? 이것이 유럽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120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전 단계 패권국가의 요건이 다음 세대에서 계승되었다는 점이다. 베네치아 상회, 안트워프의 채무증서, 암스테르담(네덜란드)의 거대 보관 창고 등은 한 시대를 장식하고 소멸되는 요소가 아니었다. 세계-경제 체제에서 이들이 갖는 경쟁력은 분명했고, 이들의 장점을 갖는 자본(資本)은 도시와 국가의 흥망과는 무관하게 빠르게 자신에게 유리한 곳으로 흘러들어가서 경쟁력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오늘날 다국적기업에서 보이는 초국가적 월경(越境.)행태는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갖는다. 


 전국시장(marche national ; national market)이라는 고전적인 개념만큼 자명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주어진 한 정치적 공간 속에서 획득된 경제적 응집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공간이란 어느 정도 넓은 범위, 무엇보다도 영토국가(Etat territorial) 또는 지난 날에 흔히 민족국가(Etat national)라고 불렀던 틀을 가리킨다. 이 틀 내에서 정치적인 성숙이 경제적인 성숙보다 앞서 있었으므로 우리가 알고 싶은 문제는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어떤 이유로 해서 이 국가가 경제적으로 내적 응집성을 얻었으며, 또 나머지 세계에 대응하여 하나의 단일한 총체로서 행동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도시가 주도권을 쥐고 있던 경제적인 총체들이 뒷전으로 밀려남으로써 유럽 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현상의 기원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을 뜻한다... 전국시장의 등장은 당연히 유통의 가속화, 농업 및 비농업 생산의 증대 그리고 총수요의 확대에 조응하는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385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에서 영토형 국가의 자본주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전국시장의 구축을 지적하고, 이러한 차이로부터 프랑스와 영국의 이후 명운이 갈라지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브로델은 백년전쟁(1337 ~ 1453)을 통해 프랑스 내 자국의 영토를 모두 잃고 섬나라로 전락한 영국은 이로부터 경제적 응집력을 가질 수 있었던 반면, 프랑스는 광대한 영토를 관리하기 위해 국가 역량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응집력을 발휘하는 것이 늦었기에 자본주의 단계에서 영국에 뒤처질 수 밖에 없었고, 산업화단계를 통해 그 차이는 넘어설 수 없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이러한 브로델의 분석으로부터 자본주의가 갖는 근원적인 불평등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계 체제 내에서 중심부, 중심부에서도 런던, 암스테르담과 같은 핵심 도시와 외부를 연결하는 무역로가 혈관(vein)과 같이 연결된 체계 - 동맥을 따라 금과 은의 화폐가 주변부로 흘러나가고, 정맥을 따라 각종 노동력과 상품이 흘러 들어오는 세계 체제 - 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수력발전에서 높은 낙차가 더 많은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요건인 것처럼. 


  실제로 헤게모니 국가들은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기보다 높은 수준의 불평등을 활용해 체제의 발전기를 가동시켜왔음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이른 시기에 이미 결정된 영국의 패권. 이제 우리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마지막을 남겨놓고 있다. 브로델은 마지막 권을 통해 물질문명,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다음 권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자...


 프랑스는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희생자, 즉 자신의 두께, 자신의 양, 자신의 거대성의 희생자인 것이다. 물론 크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점을 가지고 있다 : 프랑스가 외침을 겪을 때마다 잘 견뎌낸 것은 우선 나라가 크기 때문이었다 ; 외적들이 이 나라를 관통해서 심장부를 공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한 연결들, 정부의 명령전달, 내부의 운동과 맥동, 기술의 진보 역시 그 넓은 땅을 가로지르는 것이 힘들다는 똑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전염성이 강한 혁명적 운동이었던 종교전쟁도 한번에 이 공간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451


 영국이 어떻게 응집성 있는 전국시장이 되었는가 하는 중요한 물음은 곧 다음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 유럽의 확대된 경제 속에서 어떻게 영국의 전국시장이 자가 자신의 무게와 주변 상황을 이용하여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는가? 서서히 형성된 이 우의는 위트레흐트 조약(1713)때부터 명백하게 천명되었다 ; 영국의 우위는 7년 전쟁이 끝나는 1763년에 분명해졌고, 베르사유 조약(1783) 직후에 더 이상 논의의 여지 없이 확고히 굳어졌다. 이 첫번째의 승리는 산업혁명이라는 다음번의 승리를 불러왔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490

베네치아에서 상업은 무엇보다도 레반트 무역을 의미했다. 이것은 분명히 막대한 자본을 요구하는 상업이므로 베네치아의 거대한 화폐자본이 여기에 투입되어서 시리아로 갤리 선단이 떠나고 나면 도시 내에 현찰이 문자 그대로 바닥나는 정도였다. 자본의 순환은 제법 빠른 편이어서 6개월 혹은 1년 정도면 회수되었다. 그래서 선박의 왕복이 이 도시의 모든 활동에 리듬을 부여했다. 그러므로 베네치아가 독특한 성격을 띠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레반트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있고 상인들의 행동 전체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 P179

핵심적인 것은 안트워프에서 채무증서(cedule obligatoire), 어음 제도가 가진 극도의 편의성과 효율성이다. 편의성이라는 것은 환어음이 안트워프의 거래에 유입되었을 때 지참인 어음으로 변형되어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통용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효율성이라는 것은 제도화된 것은 아니지만 이 유통이 중대한 문제 - 동시에 교묘한 성격의 문제로서 교환의 출발에서부터 제기되는 문제 - 를 해결해준다는 점을 두고 한 말이다. 그것은 할인(escpmpte), 즉 시간의 차이에 따른 대가를 말한다... 이것은 기존의 환어음이나 은행의 전통적 체제 바깥에서 형성되어 크게 발달한 유연한 체제이다. - P196

유럽의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 작은 네덜란드는 과도하게 도시화, 조직화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높기" 때문이었다(p245)... 네덜란드 도시들은 함께 살기 위해서 공동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도시들은 하나의 세력집단을 형성했고, 업무를 분담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했고 연결망들을 구성했으며 피라미드 모양의 중첩된 여러 층 중에서 하나를 차지하는 식으로 계서제를 이루었다. 이 말은 이 도시들의 중심에, 또는 정상에 다른 도시들과 연결되어 있되 동시에 그 도시들보다 비중이 크고 구속력을 가지는 지배적인 도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덜란드 연방의 도시들에 대해서 암스테르담이 가지는 위치는 베네치아가 테라피르마의 도시들에 대해서 가지는 위치와 비슷하다. - P247

근대 초에 영국인들이 여하튼 자기 나라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던 것은 자신의 대지, 숲, 황무지, 늪지를 개간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때부터 영국은 스코틀랜드와의 위험한 변경, 지나치게 가까이 있어서 두려움을 주는 아일랜드, 15세기 초에 일시적으로 독립을 획득했고 그 봉기가 진압된 이후에도 "흡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던 웨일스가 불러일으킨 걱정거리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결국 영국은 자신의 소규모 영토 내에 머물러 있어야 했으므로 표면적으로는 패배를 겪었으나 이것은 다음 시기에 전국시장이 급속도로 형성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 P492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화(pound sterling)는 다른 많은 명목화폐(monnaire de compte)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다른 다른 나라의 명목화폐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국가에 의해서 증대되며 불리한 콩종크튀르에 의해서 큰 변화를 당하는 것과는 달리 이것은 1560-1561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서 가치가 안정된 이후 더 이상 변화하지 않았으며 1920년까지, 더 나아가서 1931년까지 내재적인 가치를 유지했다(p495)...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다 ; 파운드 화의 가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영국의 위대함의 핵심요소였다. - P496

영국은 계속해서 은을 수출하고 금이 유입되는 곳이었다. 이 체제는 18세기 내내 지속되어서 사실상 금본위제로 연결되었다. 금본위제가 명백하게 천명되는 것은 1816년의 공신적인 선포 이후의 일이다. 이제 파운드 스털링 화는 소브린 금화(gold sovereign)가 되었다. 그러나 1774년부터 이미 금은 은에 뒤이어 확실한 화폐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래 사용된 금화는 회수해서 정확한 무게대로 재주조했지만 은화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비싼 처리과정을 적용하지 않았으며 25파운드 이상의 금액에 대한 채무변제(discharge payment)로는 은화를 받지 않았다. 파운드 스털링 화는 법률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금에 연계되었고 그리하여 갑자기 새로운 안정화 기능을 담당했다 - P503

공채는 영국이 승리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것은 영국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거액의 자금을 확보해주었다. 이것은 영국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거액의 자금을 확보해 주었다. 이사크 데 핀토는 이점을 명백하게 이야기했다(1771) : "[국채]이자를 꼼꼼히 그리고 거르지 않고 정확히 지불한다는 것, 또 의회가 보증을 선다는 것이 영국의 크레딧을 만들었고 결국은 유럽을 경악시킨 국채발행 정책을 수행하도록 했다." - 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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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22-06-14 1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이제 거의 다 읽으셨네요. 대단하세요...유럽사에 관심이 있다면 브로델을 안 읽을 수가 없는데, 몇 년전에 지중해 시리즈 다 사놓고 1권 조금 읽다가 포기했어요...물질문명과 자본주의도 책은 다 사놓았었는데......지금은 지중해도 물질문명도 모두 중고처분하고 없습니다만..... ㅜㅜ 뭐 언젠가 또 살 겁니다. 아마. ㅋㅋㅋㅋ 제가 원래 샀다팔았다샀다 전문입니다. 언젠가는 읽어야죠. 다시한번 굳은 다짐을 해봅니다.ㅎㅎㅎ.

겨울호랑이 2022-06-14 14:21   좋아요 2 | URL
이번에 리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워낙 대작이라 정리하다보니 빠져나가는 것이 많네요... 브로델의 저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러차례 정독해야 함을 깊이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읽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붉은돼지님 말씀처럼 브로델 역사학에는 역사적 층위가 있어 쉽게 본론으로 나가지 않고 돌아가는 면이 있어 내용도 많고, 쉽게 내용이 잡히질 않네요. 일반 독자의 처지에서는 여러차례 읽는 방법밖에 없는 듯합니다. 저도 시간을 두고 다시 볼 계획입니다. 나중에 붉은돼지님 리뷰로 제 이해가 증진되길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
 

이런 점에서 근대사의 핵심 문제는 어떻게 해서 ‘주‘ 단위를 넘어 국왕통치하의 영토국가를 형성하고 그 단위로서 강력한 힘을 모으는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떻게 하면 경제적인 힘을 이 단위에서 형성하는가. 또 그  양자가  어떤 관계를 맺는가가 될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이탈리아의 상황을 한탄하고 프랑스 국왕의 업적을  칭송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보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 P65

부르주아 자본가의 등장과 엄청난 빈민의 증가, 16세기 이후 유럽 사회에서는 이런 극단적인 두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장기적으로 도시 및 산업 부문, 다시 말해서  자본의 영역은 갈수록 힘을 더해갈 것이며, 그와 동시에 귀족은 완고한 힘으로 버티면서 자신의 몫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그 변화의 와중에서 농민들은  분화되어갔고 그 중 일부는 빈민으로 전락했다.
근대 경제는 역동성을 띠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위기도 내포하고있었다. - P75

하지만 그를 불멸의 시인으로 만든 것은 사랑하던 여인 라우라를노래한 토스카나어 시집 『칸초니에레(Canzoniere)』였다. 1327년 그녀를처음 만난 순간부터 1348 년 그녀가 죽은 뒤까지 그녀에 대한 애모의 감정을 표현한 이 시집에서 그는 지상과 천상의 삶 사이를 방황하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묘사했다. 언뜻 보기에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는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근본적이 차이가 있다. 사랑하던 여인 베아트리체를 이상화시켜 천상에서의구원과 지상에서의 행복을 양립시킨 단테가 신학이 사상과 문학의 세계를 지배했던 중세 철학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면, 페트라르카에게서 인간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은 끝없는 갈등을 벌인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신뢰를 상실한 당대인들의 내면적 위기는 그의 제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에서 신랄하게 묘사되었다. - P96

이전의 개혁가들과 달리 루터의 주장과 행보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며 확산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면벌부에대한 맹신과 순례자들의 돈을 긁어내기 위한 가짜 성물, 기적으로 꾸며진 순례지를 비판하며 성서 읽기를 호소한 루터의 글과 연설이 수많은젊은 신학자들과 세속 식자층의 공감을 얻으며 널리 퍼져나갔음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인쇄술이 크게 공헌했다. 타협에 굴하지않는 루터의 공격적인 태도 역시 사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성공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독일의 정치 지배자들이다. 영방정부를 억압하거나 간섭하는 신성 로마 제국이나 대주교, 수도원장에게 분개한 그들은 비록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했지만 교회에 맞서 루터를  적극 지지하고 보호함으로써 루터 신학이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했다. - P126

칼뱅 신학의 핵심은 운명예정설과 선민의식이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현세에서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신의 선택에 부응하는 것이다.
근검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 역시 신의 은총에 보답하는 길이다.  여기에서 나아가 루터가 이자 수입을 죄악시했던 중세 신학을 답습한 것과는 달리 칼뱅은 자본을 증대시켜 공동체의부의 건설에 이바지하는 생산적인 대부를 고리대금과 차별화하고 인정해주었다.  - P133

이처럼 근대 초 유럽에서 군주와 귀족의 관계는 대체로 군주가 정치적, 법적 강제권을 독점하는 대신 귀족의 사회경제적 특권을 강화시켜주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귀족은 면세권과 영주재판권 등 전통적인 특권외에도 상석권과 교수형을 면할 권리, 문장과 무기를 착용할 수 있는 권리 등 다양한 사회적 특권을 누렸다. 다양한 사회계층은 이처럼 사회적지위와 부가 보장되는 귀족을 동경하며 귀족사회에 침투하기 위해서 온갓 수단을 동원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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