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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부동산, 설계된 절망 : 국가는 어떻게 승자가 정해진 게임을 만들었는가?
리처드 로스스타인 지음, 김병순 옮김, 조귀동 해제 / 갈라파고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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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도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소득 증가를 억제한 결과로 소득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집값 때문에 흑인들이 주류 주택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이러한 경제 정책들은 법률상의 흑백 주거 구역 분리 체계를 구성하는 일부로서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마땅하다... 노예해방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대다수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자유롭게 노동시장에 접근할 수 없었고 따라서 저축을 할 정도로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했다... 남북전쟁 이후, 국가 재건의 시대가 끝나고 강화된 계약 노동자 소작제는 과거 노예제의 여러 측면을 영속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_ 리처드 로스스타인, <부동산, 설계된 절망> , p168/375
리처드 로스스타인 (Richard Rothstein, 1939~ )의 <부동산, 설계된 절망 The Color of Law: A Forgotten History of How Our Government Segregated America>은 소득불평등이 자산불평등으로 나아가고, 이러한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사회구조를 분석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이 제도적/비제도적 장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에서 '국가'는 영구히 흑백분리를 결정짓는다.
법률상 흑인 분리를 만들어 낸 것은 연방정부의 대규모 공영주택 계획과 주택담보대출 금융 제도만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정부의 자잘한 조치와 행태들이 그러한 인종차별에 기여했다. 그것들 가운데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전기나 수도 같은 공공시설 이용을 거부하는 것 같은 사소한 조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_ 리처드 로스스타인, <부동산, 설계된 절망> , p136/375
국가의 최고 이념인 헌법(憲法)은 이러한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지만, 하위법인 법률(法律)에 의해 불평등은 은밀하게 인정되고 그 간극은 점차 커지게 된다. 이러한 차이는 세대를 거치면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남게 된다는 것이 <부동산, 설계된 절망>의 큰 줄기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대개 자식 세대에게로 이어지기 때문에, 20세기 중반에 정부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온전한 자유 노동시장 참여를 막으면서 하락한 소득은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특성이 되었다(p194)... 노동시장에서의 인종차별이 크게 약화되어 상당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중산층이 되었을 때는, 이미 시내의 흑인 동네 밖에 있는 주택들의 가격이 노동계급과 하위 중산층 가정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상태였다. 흑백 주거 구역 분리가 일단 확립되자, 마치 인종 문제와 관련해서 중립적 입장인 체하는 정부 정책들은 그런 흑백 차별을 더욱 강화하며 문제 해결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었다. 연방세법의 주택담보대출 이자 공제 정책은 그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교외 지역에 있는 백인 노동계급과 중산층 가정의 주택 가치는 수년에 걸쳐 매우 높아졌고, 그 결과 백인과 흑인 사이의 막대한 부의 차이는 두 인종 간 생활 방식을 영구적으로 결정짓는 데 크게 기여했다. _ 리처드 로스스타인, <부동산, 설계된 절망> , p195/375
<부동산, 설계된 절망>은 게토(ghetto)에서 헤어날 수 없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거주 문제를 다루지만, 안에 담긴 문제들과 시사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토지 개발 방식과 사업 추진을 위한 혜택, 주택 구입 자금 금융 제도 등 제도적인 부분과 거주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은 아파트 단지 내 임대 주택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남의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자산들은 구입 후 일정시간이 지나면 감가상각(減價償却, depreciation)을 통해 비용화되어 소멸되어가지만, 대체가 거의 불가능한 부동산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이자가 붙는 투자자산(投資資産)의 성격을 갖는다. 대량으로 공급되는 아파트는 이런 상품성을 잘 드러내는 건물로, 소유여부에 따라 정치성향이 크게 갈리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아파트 소유자와 비소유자 그리고 같은 지역 내에서도 국민임대아파트 거주자를 향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며,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현 상황에서 <부동산, 설계된 절망>의 흑백문제와 저자의 통찰은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흑백 주거 구역 분리가 백인들에 주입하는 그릇된 우월감은 결국 미국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정책들에 대한 백인들의 거부로 나타난다. 흑인만 사는 동네 생활이 초래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이들의 낮은 성취도는 나중에 그들이 중산층 직장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드는 또 다른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 이런 방식으로 흑백 주거 구역 분리는 그 자체를 영속화하며,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그것을 뒤집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_ 리처드 로스스타인, <부동산, 설계된 절망> , p212/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