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분야의 묵직한 책 두 권이 같이 나왔기에 묶는다. 두 권 다 저자의 이름에 제목이 들어가 있는데, <미셸 보의 자본주의의 역사 1500-2010>(뿌리와이파리, 2015)과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시대의창, 2015)가 그것이다. 각각 6판과 3판이란 사실을 앞세운 것도 공통적인데, 그만큼 '표준적'이라는 의미도 되겠다.

 

 

프랑스인 저자가 쓴 자본주의 역사로는 피에르 독케스의 <모호한 역사>(한울, 1995)가 있었다. 찾아보니 아직까지 절판되지 않았는데, 기억에 별로 남아있는 게 없다. 반면에 미셸 보는 자본주의 경제 연구의 권위자로 그의 <자본주의의 역사>는 1980년에 초판이 나온 이후 2010년에 6판이 나올 정도로 많이 읽힌다고 한다. 번역본은 그 6판을 옮긴 것이다.

30년 넘게 읽혀온 자본주의 역사 연구의 필독서.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로서 처음에는 몇몇 나라에서, 다음에는 전 세계에 걸쳐 인간의 생활양식과 정신세계를 바꾸어놓았다. 또한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들어서는 세계화와 금융화, 과학기술자본주의의 폭주가 국가 간의, 그리고 각국 내의 극심한 불평등을 초래하고 나아가 인류와 지구 자체의 존립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저자 미셸 보는 자본주의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정치경제학의 발전, 민주주의 이념의 성립, 노동운동의 발전 및 사회주의 사상의 전개, 경제공황과 금융위기,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세계화와 과학기술자본주의의 등장 등과 연관지어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옮긴 <E.K. 헌트의 경제사상사>도 이 분야의 교과서격인 책이다. 번역본 분량이 무려 1,100쪽이 넘는다.

이 책은 고전학파의 성립부터 현대의 급진파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경제학설사 교재와는 다른 관점으로 과거의 경제사상을 정리하고 있다. 즉 경제이론이 유통의 시각과 생산의 시각 중 어떤 것을 취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정해진다고 보고, 전자의 대표적인 이론으로서 효용가치론을, 후자의 대표적인 이론으로서 노동가치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표적인 두 이론을 제외한 기타의 이론은 두 이론의 적당한 조합이거나 절충으로 간주되며, 서로 섞일 수 없는 것을 절충했으므로 그 이론은 내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평가한다.

초역은 아니다. 과거 1980년대에 <경제사상사1,2>(풀빛)란 제목으로 출간돼 대학가에서 많이 읽힌 책이다. 역자가 그 세대에 속하고 나도 마찬가지인데, 경제학에 관심이 없던 때라 나로선 과도서로 비치된 책을 만져본 기억밖에 없다. 이번에 온전한 번역으로 다시 나왔다고 하니까 감회를 느끼는 독자도 있을 법하다. 

 

   

1982년에 처음으로 한국 독자에게 번역 소개되었지만(김성구, 김양화 옮김, 풀빛) 오랜 시간 절판된 상태여서 도서관이나 헌책방이 아니면 책을 구해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초판은 당시 정치 현실상 상당 부분이 삭제된 채 출간되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한 <E.K. 헌트의 경제사상사> 3판은 삭제된 내용 없이, 수치와 데이터를 업데이트했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로 더욱 복잡해진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이론들을 소개한다.

아무려나 경제서 독자들에게는 좋은 연말 선물이 될 법한 책 두 권이다...

 

15.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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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인문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놓칠 수 없는 책 두 권이 출간됐다. 사사키 아타루의 <야전과 영원>(자음과모음, 2015)과 아비탈 로넬의 <어리석음>(문학동네, 2015)이다. 둘다 출간이 예고되었던 책들이라 놀랍진 않지만 반가움마저 지울 수는 없다.

 

 

<야전과 영원>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을 통해서 인문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은 사사키 아타루의 대표작. 부제가 '푸코.라캉.르장드르'인데, 부제대로 세 사람에 대한 저자의 독해를 제공한다. 셋을 따로 읽는 게 아니라 겹쳐 읽고 가로질러서 읽는 것이 사사키 아타루의 전략. 국내에서는 아주 생소한 피에르 르장드르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책으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저자 사사키 아타루의 대표작. 한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가운데 어떻게 사회 안에서 주체가 되어가는지를 미셸 푸코, 자크 라캉, 피에르 르장드르를 가로지르며 분석해나간다. 저자는 통일된 시점이나 필연성, 전체성을 보장하는 것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음을 '야전과 영원'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야기하며, 오늘날 독자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텍스트와 거리를 둔 해석의 실천과 현실과의 상호작용임을 제안한다.

만만찮은 분량의 책이지만 올해의 독서거리로 충분히 주목을 끌 만하다. 

 

 

<어리석음>은 데리다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 철학자 아비탈 로넬의 대표작.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이름마저 처음은 아니다. 애스트라 테일러의 다큐 <볼온한 산책자>(이후, 2012)에 등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애스트라 테일러의 다큐영화 <지젝!>(2006)에서도 지젝이 이름을 언급하고 있어서 일찌감치 로넬의 책 몇 권을 구한 적이 있다. <어리석음>도 그 가운데 하나이긴 한데, 나의 책관리의 어리석음 때문에 당장은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하튼 번역서의 출간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파격과 유희의 사상가 아비탈 로넬의 대표작이다. 얼핏 보기엔 어리석음을 논한 서양의 다양한 저작을 새롭게 읽는 형식이지만 어떤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거나 일정한 주제에 따라 묶여 있지는 않다. 여기에 핀천, 도스토옙스키, 워즈워스의 작품들에 대한 비판적 읽기가 더해지고, 칸트, 키르케고르, 워즈워스에 대한 명상은 위성이라는 명칭 아래 별도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로넬은 서양철학이 이 거대한 공백으로서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억압하고 왜곡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어리석음에 관한 철학적 사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어리석음의 사유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넬은 서양철학이 전제하는 진리 관념의 허구성을 비판한 니체와 그의 사유를 이어받아 해체의 사유를 실천한 데리다를 계승한다.

밀린 일거리로 다시 정신없는 연말이 될 듯싶지만, 마음으론 '야전과 영원, 그리고 어리석음'과 함께 한해를 마무리해도 좋겠다 싶다...

 

1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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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이주의 발견'으로 묶는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 2015)와 앤드루 롤러의 <치킨로드>(책과함께, 2015)다.

 

 

<사피엔스>는 입소문이 난 책이라 나도 원서를 미리 구입해놓은 책인데, 번역서가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 이스라엘 출신의 젊은 역사가의 첫 책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역사와 현대 세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변방의 유인원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수렵채집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한 곳에 모여 도시와 왕국을 건설하였는가? 인간은 왜 지구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 되었는가? 과학은 모든 종교의 미래인가? 인간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가? 멀고먼 인류의 시원부터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쳐 끊임없이 진화해온 인간의 역사를 다양하고 생생한 시각으로 조명한 전인미답의 문제작. 호모 사피엔스부터 인공지능까지, 역사, 사회, 생물, 종교 등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역사의 시간을 종횡무진 써내려간 문명 항해기. 이제 우리는 무엇을 인간이라고 할 것인가.

인류의 대장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제이콥 브로노우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바다출판사, 2009)를 떠올리게 해주지만(BBC 다큐였다), 시간적 터울도 있는 만큼 훨씬 강력한 책이지 않을까 기대된다. 

 

 

같은 문명사라고는 하지만 베테랑 저널리스트가 쓴 <치킨로드>는 인류의 역사가 아닌 닭의 역사가 주제다. 심지어 부제도 '문명에 힘을 실어준 닭의 영웅 서사시'이다(괜히 불쾌해지는 부제이긴 하다. '닭의 영웅 서사시'라니!).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닭에 대한 모든 이야기. 현대 닭의 조상 종인 '적색야계'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책 전반에 걸쳐 '길들일 수 없는 표범 같은' 적색야계가 동남아시아의 밀림에서 출발하여 태국을 거쳐 인도를 지나, 다시 메소포타미아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간 여정, 멜라네시아에서 원주민의 작은 배를 타고 바다 위의 작은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하와이 군도와 이스터 섬으로 퍼져나간 과정, 그리고 중국 남부로 들어가 한국과 일본으로 퍼져나간 경위를 자세히 추적한다.

뒷표지 소개에는 '동남아시아의 야생 닭이 태평양을 건너 지구의 근육이 되기까지 인류가 사랑한 어느 새에 대한 특별한 보고서'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다. 소, 돼지와 함께 가장 핵심적인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닭의 위상과 그 다이니믹한 역사에 대해서 한번쯤 관심을 가져도 좋겠다. 닭의 역사가 아닌 닭요리의 역사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정은정의 <대한민국 치킨전>(따비, 2014)도 같이 생각나는 책이다...

 

15.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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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배를 하십니까?"란 질문을 받으면(보통은 "술담배, 안 하시죠?"라고 물어오지만), "거의 안 합니다"라고 답하는 축에 속하지만, 술담배를 다룬 책까지 마다하지는 않는다. 담배의 문화사를 다룬 에릭 번스의 <신들의 연기, 담배>(책세상, 2015) 덕분에 로드 필립스의 <알코올의 역사>(연암서가, 2015)까지 상기돼 두 권의 책을 같이 묶는다. 술담배를 같이 이어서 부르는 것처럼.

 

 

<알코올의 역사>의 저자 로드 필립스는 대학의 역사학 교수이면서 와인 전문가다. <와인의 역사>(시공사, 2002)가 국내에 먼저 소개된 바 있다. 568쪽이니까 적당한 분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알코올의 역사>는 어떤 책인가.

로드 필립스는 이 책에서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9천 년에 걸친 알코올의 문화사와 경제사를 조사하여 사람들이 술에 대해 갖는 태도와 술의 소비에 관해 다룬다. 늘 식단에 오를 정도로 건강에 유익한 주식(主食)으로서 알코올성 음료와, 사회.문화.종교적 불안감의 대상으로서 알코올성 음료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파헤친다. 저자는 이렇게 강력한 음료에 깃든 변화무쌍한 문화적 의미들을 좇으면서 놀랍게도 일부 우리 사회가 '포스트 알코올' 시대에 진입했다는 색다른 주장을 내놓는다. 글로벌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알코올성 음료인 술이 초래하는 의미와 결과를 심도 있게 짚어가며 분석 설명한 책이다.

교양 있는 애주가라면 소장은 물론 일독해봄직하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책을 쓰기 위한 참고한 책들의 목록도 관심거리다. 자료가 없으면 쓸 수 없는 게 역사서니까.

 

 

<신들의 연기, 담배>의 저자 에릭 번스는 미국의 베테랑 언론인이자 저명한 저술가다. '언론계 역사분야의 최고 저술가'로 꼽힌다고. 다수의 책이 있는데, 그 가운데 <메인호를 기억하라>(책보세, 2010)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신들의 연기>가 두번째 책인 셈.

학계 밖 저술로는 최초로 전미도서관협회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신들의 연기, 담배>. <메인 호를 기억하라>로 이미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된 적 있는 미국 저널리스트 에릭 번스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증류주, 책, 언론의 허위 보도 등 다양한 키워드로 미국 현대사의 이면에 묻힌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숨겨져 있던 진실들을 파헤쳐온 에릭 번스가 이번에는 담배가 지나온 파란만장한 여정을 추적한다. 고대부터 현대를 망라하여 담배와 관련한 모든 역사를 다루었다. 그 속에는 오랜 세월 인류와 동고동락했던 담배의 문화적.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소개에도 언급되지만 증류주를 다룬 <미국의 증류주: 알코올의 사회사>가 <신들의 연기>의 짝이 되는 책이다(필시 저자가 술담배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시대사 책으로 <1920년>과 1950년대 텔레비전의 미국 정복을 다룬 <정신 강탈자들의 침공> 같은 책들도 소개됨직하다.

 

 

짐작할 수 있지만 담배의 문화사 쪽으로는 몇 권 더 읽어볼 만한 책이 있다. 샌더 길먼과 저우 쉰의 <흡연의 문화사>(이마고, 2006)는 원제가 '흡연의 세계사'로서 "전 세계 각 문화권에서 행해져 온 모든 형태의 흡연과 그 역사를 집대성했다." 이언 게이틀리의 <담배와 문명>(몸과마음, 2003), 조던 굿맨의 <역사 속의 담배>(다해, 2010)도 같은 분야의 책.   

 

 

국내서로 눈길을 돌리면 강준만의 <담배의 사회문화사>(인물과사상사, 2011)가 "대한민국 담배·흡연의 역사와 사회상을 담아낸 책"이고, 안대회 <담바고 문화사>(문학동네, 2015)는 조선조부터 구한말까지의 담바고(담배) 문화사를 살폈다. 안 교수가 옮긴 이옥의 <연경, 담배의 모든 것>(휴머니스트, 2008)이 관심의 도화선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18세기 조선의 흡연 문화사'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책. 아무려나 술과 담배에 대한 사랑도 이 정도 책들은 쓰고 읽어줘야 지극한 사랑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15.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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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 두 권을 같이 묶는다.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의 <살인>(어마마마, 2015)과 콜린 윌슨의 <인류의 범죄사>(알마, 2015)다. <살인>의 공저자는 부부 사이이며 마고 윌슨은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살인>이 이 부부의 대표작인데, 그밖에도 여러 권의 책을 같이 썼다. '다윈의 대답' 시리즈의 <신데렐라의 진실>(이음, 2011)이 그 가운데 하나다.

 

 

<살인>(1988)의 부제 겸 소개는 '살인에 한 최초의 진화심리학적 접근'인데, 사실 '인간은 왜 다른 인간을 죽이는가?'란 질문에서 진화심리학이 탄생했음을 고려하면 살인은 진화심리학의 '대표 주제'라 할 만하다. 고로 진화심리학의 기본서로도 읽어볼 수 있다.

진화심리학 분야의 명저. 부부이기도 한 공동저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원시 부족의 문서에서부터 디트로이트 경찰국 살인사건 기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살인 사건 기록을 활용하여 언제 그리고 왜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지를 과학적인 데이터로 면밀하게 분석하고,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과정의 산물로서 살인 안에 내재된 보편적이고도 사회적인 인간의 동기를 진화적 관점으로 명쾌하게 밝혀낸다.

진화심리학 전공자인 전중환 교수의 추천사도 참고할 수 있다.

이 책은 전통적인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범죄학, 법학, 정책학, 경제학 등을 다윈의 이론틀로 매끄럽게 엮는다. 새로운 통합 과학의 고전이자 이정표다. 스티븐 핑커도 폭력이 계속 감소해 왔음을 이 책에서 알게 되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저술했다. 호머의 서사시, 영웅 신화, 슈퍼히어로 물, 범죄 스릴러, 공포 영화, 액션 게임, 치정 멜로,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즐긴다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으로는 저명한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사이언스북스, 2006)가 있고, 국내 연구자들이 쓴 책으로는 <살인의 진화심리학>(서울대출판부, 2003)가 꽤 일찌감치 나왔었다(지금은 절판됐다).

 

 

콜린 윌슨의 <인류의 범죄사>는 예전에 <잔혹>(하서)이라는 제목으로 몇 번 나왔던 책이다. 1984년에 초판이 나온 책으로 새 번역본은 2005년판을 옮긴 것이다. 개정된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002년판 서문이 새로 붙어 있긴 하다. 더불어 <잔혹>이란 제목이 원제대로 바뀐 것은 환영할 만하다. 인류의 범죄사를 통해서 저자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역사. 이 책에서 저자는 심리학,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철학, 문학, 뇌과학을 넘나들며, 초기 인류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범죄사의 현장을 샅샅이 훑으면서 범죄의 기원과 본질, 인간성의 근원을 탐구해나간다. 인류는 생존과 자기보호를 위해 진화 과정에서 언어와 이성을 관장하는 좌뇌를 발달시켰다. 이러한 좌뇌 의식은 인간을 목적 달성에 집착하게 만들고. 집착은 맹목과 편협함, 잔인함과 어리석음(범죄성)을 낳았다. 하지만 집착은 동시에 과학과 철학과 예술(창의성)도 낳는다. 그렇기에 문명의 역사는 창조의 이야기이자 범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도서관 독학자로서 콜린 윌슨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은 <아웃사이더>이지만 살인에 관한 잡학적 책들의 저자로 기억하는 독자들도 있을 법하다(윌슨은 소설가이기도 한데, 그의 작품으론 <정신기생체>(현대문학, 2012)만 번역돼 있는 듯싶다). 일찍부터 그런 책들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 같은 책을 더 기대한 나 같은 독자로선 아쉬운 일이지만, 요즘 세대 독자라면 <인류의 범죄사> 같은 책을 더 반길 듯싶다. 여하튼 양장본으로 나온 이번 책이 그의 책 가운데서 가장 번듯하다... 

 

15. 1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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